< HJ엔터 매니지먼트4팀 특집 >
대표실.
프린트된 A4용지 속 기사의 전문을 읽은 박대표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무슨 신화를 만들어놨네?”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흥미 위주의 기사였다.
유현지와 정채희, 거기에 송하연과 이성호의 이름도 언급되어 있었는데, 그래도 나름 정보를 잘 모으긴 했는지 지금까지 박한울이 했던 대부분의 일이 그대로 설명되어 있었다.
현재 유현지가 음원차트 1위를 하며 스타가 되는 길목에 접어들었고, 정채희는 이미 한국에서는 스타인 데다가 일본에서는 슈퍼스타다.
송하연과 이성호는 두말하면 입만 아프고.
그러니 네티즌들이 이 기사를 보고 얼마나 흥미를 가지겠는가.
다만, 이렇게 나열되어 있는 것을 한 번에 보니 무슨 신화를 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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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독] 겉바속촉 매니저 박한울. 그는 누구인가? 」
-최근 들어 HJ엔터테인먼트의 성장 기세가 무섭게 올라오고 있다. 그런데 최근의 이 커다란 성장세의 뒤에는 모두 한 사람의 손길이 크게 들어가 있었다. HJ엔터테인먼트 박호진 대표의 외동아들이자 매니저 1년차 박한울 실장.
MBS예능 <짝꿍끼리>에 나와 ‘겉바속촉 매니저’로 화제를 모았던 박한울 실장은 매니저 일을 시작하고 1년도 되지 않아 실장이 되었는데, 이는 결코 과한 결정이 아니었다는 게 업계의 시선이다.
그의 업적과 능력은 이미 사내에선 정평이 나 있었는데, 그 업적의 첫 번째 시작은 바로 출근 첫 날,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던 정채희를 발굴해낸 것이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 관계자 A씨는 이렇게 말했···(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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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특집 기사를 작성한 것처럼 장황하다.
기사를 본 김본부장의 표정은 덤덤했고, 윤본부장의 얼굴은 홍보팀의 장부장처럼 오묘해졌다.
이들이 다 읽은 걸 확인한 장부장이 말했다.
“저희에게 나쁘지 않은 기사인 건 맞습니다. 회사의 네임 밸류가 쌓이기도 하고, 저희가 하는 게 이런 대단한 안목에서 나온 결정이라고 생각하면 긍정적인 시선으로 볼 거고요. 다행히 여기 언급된 아티스트들이 대중들에게 호감적인 이미지라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진 않을 겁니다.”
박한울에 대한 게 무슨 대외비도 아니었다.
또한 이미 업계에서도 소문이 난 상태였다.
이번에 유현지의 1위로 인해 성과가 더욱 뚜렷해졌기 때문에 이런 기사를 낸 듯했는데, 회사나 아티스트의 입장에선 나쁜 기사가 아니다.
또한 이렇게 다 보면 허무맹랑한 과장 같긴 해도, 막상 하나하나 따져보면 전부 사실이기도 했다.
윤본부장은 침음을 흘리며 말했다.
“내용은 좋아도, 박실장의 성격상 이렇게 노출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는 않을 것 같긴 합니다.”
“그래봤자 묻힐 기사야. 연예인들이랑 관계가 있다지만 대중들은 매니저한테는 관심이 없거든.”
말을 그렇게 했어도, 박대표는 기사를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띠웠다.
그의 입장에선 마치 아들이 상장을 받은 기분이었다.
“아까 하던 얘기 있잖아. 한울이더러 월말평가 보게 하자고 했던 거. 그거 이번에 바로 참여시키게 하지. 내가 개인적으로 말하면 안 하려고 할 테니까 윤본부장이 그냥 업무에 넣어버려.”
“네, 알겠습니다.”
박대표는 기사가 적힌 종이를 접지도 않고 조심스럽게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
이맘때쯤 되면 예능 PD들과 제작진들은 골머리를 썩곤 한다.
“젠장할 특집. 이번엔 또 추석 특집으로 어떤 걸 해야 돼?”
작년에 런칭되어 단기간에 HBC를 대표하는 예능이 된 <우리의 컨텐츠>.
대중들의 관심이 예능에서 유튜브로 옮겨지는 추세를 이기려 하지 않고, 오히려 이용하여 대박이 났다.
게스트로 하여금 유튜브에 올릴 컨텐츠를 기획하며 만들게 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함께 보여주는 예능.
쿡방, 먹방, 브이로그 등의 천편일률적인 컨텐츠가 아닌 이상, 인터넷에서의 화제를 만들어내기에 최적인 포맷이다.
그러나 문제는 또 특집이랍시고 무리수를 두다가는 천편일률적인 컨텐츠만도 못해진다는 것.
그것이 제작진들을 골치 아프게 했다.
“하아. 뭐 특집 아이디어 없어? 김작가? 유피디?”
회의실에 모인 이들의 표정은 죄다 거기서 거기.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없음을 한눈에도 알 수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김작가와 유피디는 아이디어를 적어둔 수첩을 보며, 떨어지지 않는 입을 가까스로 떼어냈다.
“농촌이나 어촌에 친척을 둔 게스트가 생업을 돕는 걸··· 일단 짜두긴 했어요. 인터넷 방송이나 유튜브에서 이런 컨텐츠가 잘 먹히기도 해서요.”
“저는 직업 특성상 추석에 가족들과 함께 보내지 못하는 분들 사연 받아서 게스트가 대신 일하는 컨텐츠를 생각했습니다.”
둘 다 그럴 듯하지만, 이를 듣는 신피디의 표정은 그럴 듯하지 못했다.
“우리가 제일 피하자고 했던 게 관찰 예능이랑 비슷한 컨텐츠들이잖아. 지금까지 TV에서 주구장창 보여줬던 것들이랑 뭐가 달라? 그리고 우리는 게스트가 직접 기획하게끔 만들어야 돼. 먼저 짜고 하는 건 우리 방향이 아니라니까?”
직접 기획하게 해야 하는데, 특집을 꾸려야 한다.
이러한 아이러니 때문에 회의는 지지부진해질 수밖에 없었다.
회의가 길어질수록 늘어나는 건 기획이 아닌, 한숨뿐.
제작진들은 그렇게 한참을 회의하다가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신피디는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뒤적거리다가 우연히 아이돌 팬덤들 사이에서 불이 붙은 화제를 발견하게 됐다.
이 화제는 모두 HJ엔터의 한 매니저에 대한 기사에서 비롯된 것.
신피디는 그 기사를 보며 눈에 이채를 띠웠다.
“···유레카.”
그는 쉬는 시간이랍시고 전부 도망간, 아무도 없는 회의실에서 혼자 아이디어를 정리했다.
‘과장이라 해도 상관없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흥미와 이슈가 되는 지의 여부니까.
그리고 만약 사실 확인을 거쳐 이 기사가 정말 사실로 밝혀진다면, 그건 정말 큰 희소식이 될 수 있다.
그렇게 정리를 대강 마쳤을 때.
쉬는 시간이 끝나 회의실 안으로 들어온 모두에게 신피디는 말했다.
“이번 추석 특집은 HJ엔터 특집으로 해볼까? 추석 관련이 있고 없고는 사실 중요한 게 아니잖아. 그리고 컨텐츠는 이 매니저가 알아서 잘 짜겠지.”
원래 게스트들이 직접 컨텐츠를 기획하는 프로그램이니까.
신피디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역시 일거리는 떠넘기는 게 최선.
그것도 유능한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었다.
***
화장품 광고 촬영을 위해 현지는 메이크업을 받고 있었고.
나는 그 뒤에서 핸드폰을 보며 실소를 지었다.
‘이게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냐.’
처음엔 별거 아닌 기사였다.
나에 대해 기사가 난 게 처음도 아니고.
기사의 내용도 내용인지라, 그 뉘앙스가 전체적으로 나를 굉장히 고평가하고 있던 게 이렇게 사건이 커지게 된 이유가 되었다.
‘처음엔 이렇게 불타지는 않았는데.’
이 기사에 현지와 채희, 그리고 성호 삼촌과 하연 씨가 언급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팬들의 커뮤니티에서 우선적으로 다뤄졌는데.
이게 그저 내용이 믿기지 않기 때문인지, 아니면 여기에 적힌 대로 애들이 쭉쭉 승승장구하고 있어서인지.
조금씩 퍼지고 퍼지게 되어, 타 아이돌 팬덤들에게 발견된 것이 문제가 되었다.
-얘 어떻게 스카우트 안 됨? 진짜 우리 애들은 다 잘하는데 회사가 개오바임 ㅆㅂ
-솔직히 애들 이번 컨셉보단 데뷔곡 컨셉이 훨씬 좋았는데 왜 자꾸 무리수 두는 거임? 이상한 실험 같은 거나 처하지 말고 HJ엔터 반만큼만 해봐라ㅡㅡ
-매번 지들 자기만족으로 예술하는 것도 아니고ㅋㅋㅋㅋ 그냥 박한울처럼 애들한테 어울리는 걸 좀 시키라고 이 자식들아!!!
-ㅋㅋㅋㅋㅋㅋㅋ얘네 다 배부른 소리하네ㅋㅋㅋ 너네 회사는 컴백이라도 시켜주잖아. 우리 티리들은 오빠들 애국가로 컴백해도 절할 수 있다ㅋㅋㅋㅋㅋ 이게 나라냐??
회사에 불만이 있던 타 아이돌 팬덤들이 폭발했다.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왔던 불만사항들이, 자신들의 아티스트가 처한 환경과 너무나 대비되는 이 기사 때문에 이내 터져버린 것이다.
반면.
4팀 아티스트들의 팬덤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아아···! 매니저님 그대는 그저 ‘빛’이군요.
-우리 채희 이번 영화도 기대하고 있을게요ㅠㅠㅠㅠㅠ 사랑합니다 매니저님! 앞으로 만수무강해서 우리 채희 평생 관리해주세요!
-우리 하연이갘ㅋㅋㅋㅋㅋ 유일하게 음악 작업할 때 믿고 맡기는 사람ㅋㅋㅋ 이것만 봐도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정말 감사합니다 매니저님!!! 저번 앨범 개지렸어요!! 이 시대의 진정한 능력자이십니다!!
이들도 그렇지만 특히나 현지의 팬덤은 거의 미쳐 날뛰는 중이었다.
그도 그럴 게, 이번 K-콘서트에서 그녀는 역대급 무대를 보여주며 이미 팬들 사이에서 레전드라고 화제가 되고 있는 상태였거든.
이미 축제 분위기에서 이런 기사까지 터졌으니, 미쳐 날뛸 만도 하지.
더구나, 그녀의 팬들이 공통적으로··· 많이 열렬하게 응원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아무튼 우리 팀 팬들을 제외하고는, 내게로부터 타 회사들로 포커스가 옮겨진 덕분에 나는 별로 곤란에 처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이지 뭐.
‘그런데 연습생들 입장은 또 다를 거란 말이지.’
아마 연습생들은 이 기사를 보고 지금쯤 엄청 비장하게 마음을 먹고 있지 않을까?
내일 연습생들의 월말평가에 내가 참여하게 됐거든.
좀 귀찮긴 해도 업무의 일환이기도 하며, 회사에 도움이 되는 거니 하루 정도는 고생해줄 수 있긴 했다.
“오빠, 저 끝났어요.”
시선을 앞으로 옮기니, 어느새 메이크업을 다 받고 준비가 끝난 현지가 서 있었다.
“그래, 예쁘게 잘 됐네.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촬영 시작할 거야.”
“네.”
나는 월말평가 베테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녀에게, 내일 해야 할 평가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연습생들의 마음은 연습생이었던 그녀가 가장 잘 알 테니까.
“현지야, 연습생 입장에선 월말평가 때 어떤 식으로 평가해주는 게 제일 좋아? 칭찬 위주로 하면서 단점을 말해주는 게 좋은 지, 아니면 발전 방향을 자세하게 집어주는 게 좋은 지, 뭐 그런 것들.”
이왕 평가하는 김에 그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재능이 무척이나 뛰어나지 않는 이상 내가 맡으려 달려들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연예기획사가 다 슈퍼스타들로만 돌아가는 건 아니지 않은가.
현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저한테 하시던 대로만 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저는 오빠가 말씀해주시는 게 제일 좋았어요.”
내가 하던 대로라면, 단점이고 장점이고 발전방향이고 전부 말하는 건데.
‘글쎄.’
그녀가 이게 좋다고 느끼는 이유는 아마 내가 칭찬을 훨씬 더 많이 해서 그런 거 아닐까?
현지는 워낙 칭찬할 것 투성이니까.
‘그런데 다른 연습생들 사정은 많이 다를 거란 말이지?’
그래도 이렇게 하는 편이 본인들한테 더 나을 것 같긴 했다.
그러면 단점을 말하더라도 최대한 따뜻하게 말하도록 해야겠다.
***
HJ엔터테인먼트 매니지먼트4팀.
최팀장은 사무실에 앉아 전화를 받으며 씩, 미소 지었다.
“예. 다들 바빠서 스케줄을 확인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제안은 당연히 좋죠. 긍정적으로 고려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HBC의 대표 예능인 <우리의 컨텐츠>에서 온 제의.
최팀장은 전화를 끊고는 참았던 웃음을 시원하게 터뜨렸다.
영화 홍보와 같은 협조를 최대한 더 받아내기 위해 고려해보겠다고 말했으나.
추석 특집으로 HJ엔터 특집, 아니 정확히 말하면 4팀 특집이었으니 이 이상 좋을 게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그들이 원하는 게 좀 뻔하다는 것?
현재 화제가 되고 있는 박한울이 고군분투하며 모두를 돕는 그림을 바라는 것 같았다.
물론 방송의 메인이 되는 것은 당연하게도 4팀의 스타들 네 명이긴 했다.
그런데 현재의 화제도 화제고 박한울의 능력을 간접적이나마 보여줄 수도 있으니, 그가 돕는다면 시청률과 화제성의 측면에서 추가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아직은 제작진이 이를 콕 집어 말하진 않았는데, 프로그램의 컨셉 자체가 알아서 기획을 짜보라는 식이니, 아마 제작진 미팅에서도 그런 방향으로 얘기가 흘러갈 것이다.
“재밌긴 하겠네. 그래도 박실장이랑 상의 좀 해봐야겠어.”
언제까지나 자신의 목표는 그의 뒤를 이어 2인자가 되는 것.
추석 시즌에 채희가 주연으로 찍은 영화가 개봉하기 때문에, 그라면 수락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긴 할 테지만 그래도 의사는 물어봐야지.
작지는 않은 사안이라 본부장님이나 대표님과 상의해서 결정할 일이었으나.
최팀장이 가장 먼저 연락한 것은 그 둘이 아닌, 박한울이었다.
“광고는 잘 촬영하고 있어? 다름이 아니라, ‘우리의 컨텐츠’에서 섭외 요청이 들어왔는데···.”
통화는 그리 짧지만은 않았다.
제작진이 뭘 바라고 있을지 추측한 것들도 다 말하고, 이 제안을 수락한다면 방송이 어떤 식으로 흘러갈 지 등 많은 것을 설명해야 했으니까.
그러나 그가 결정을 내린 것은 순식간이었다.
-무조건 해야죠, 이건.
그 뒤로는 일사천리.
본부장님과 대표님 또한 빠르게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회사의 입장에선 굉장히 좋은 제안이었기 때문에.
그리하여 잡힌 제작진과의 미팅은 내일 월말평가가 끝난 뒤. 늦은 저녁 시간이었다.
< HJ엔터 매니지먼트4팀 특집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