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
다음날 리허설을 마치고, 마침내 K-Concert의 첫날이 다가왔다.
오늘은 본공연만 하는 게 아니다.
짧은 인터뷰도 겸하는 레드카펫 일정도 있고, 미니 팬미팅과 같은 일정도 따로 있었다.
그것들을 모두 끝마치고 나서야 본공연의 차례.
그러니까 오늘 하루종일 무척이나 바쁠 예정이라는 거다.
“오늘은 하연 선배님 없이 저희끼리 다니는 거예요?”
“응. 날짜는 같아도 시간은 다르니까. 레드카펫은 둘이 입장 시간 사이에 텀도 좀 있고.”
아침부터 풀 세팅을 마친 현지에게 대답했다.
이러고 있으니, 어제 저녁의 모습과 상당히 대비됐다.
예능을 별로 안 나가는 현지는 가뜩이나 외부 노출도 적었는데, 심지어 그렇게 편한 모습을 보인 적도 없으니 그리 화제가 된 것일 터.
일본에서나 한국에서나 어젯밤에 뜻밖의 화제를 몰고 온 덕에 나는 지금까지 기분이 좋았다.
우리 애들 귀여운 게 동네방네 다 소문이 났으니까.
“저희 팬분들도 많이 오셨을까요?”
이제 곧 미니 팬미팅.
이건 공연 티켓과 별도로 입장권을 구매해야 한다.
아마 현지의 팬분들이 본공연에 얼마나 올지 여기서 대강 가늠할 수 있을 터.
미니 팬미팅에 몇 분이나 오시는지 아직은 알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할 수 있었다.
“응. 많이 오셨을 거야. 엄청.”
***
귀가 웅웅거리고, 심장이 세차게 뛴다.
유현지는 본공연을 앞두고 아까 팬들과 만나 소통했던 시간을 떠올렸다.
낮에 진행된 한 시간여의 미니 팬미팅과 잠깐의 레드카펫 행사.
팬분들과 직접적으로 소통을 한 건 음방 때 잠깐이 전부였고, 이렇게까지 길게 소통을 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그녀로서는 오늘이 무척이나 특별한 날이었다.
더군다나 수많은 나라에서 이 공연을 주목하고 있다는 것 때문이기도 했고.
오늘이 첫 해외 공연이기도 했고.
그렇게 심장에 손을 올리고 있는데, 다시 한번 그녀의 귓가로 관객들의 환호 소리와 커다란 음악소리가 겹쳐 들렸다.
샴페인 노바의 차례.
무대 위에는 그녀들이 즐겁게 퍼포먼스를 보이고 있었다.
아까는 떨려서 죽을 것 같다고 말했었는데, 유현지는 역시 그녀들이 잘 해낼 줄 알고 있었다.
“현지야.”
“네.”
현지를 부르는 매니저의 목소리.
그녀는 무대에 올라가기 전의 이 시간이 무척이나 좋았다.
그가 언제나 이렇게 격려의 말을 해주곤 했으니까.
“오늘도 잘할 수 있지? 네가 기대했던 무대잖아. 관객들 많은 무대.”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며 신나게 뛰놀 수 있는 무대.
음악, 안무, 가사, 의상, 댄서 등 모든 것은 다 짜여 있었으니, 이제 올라가서 하던 대로 선보이기만 하면 된다.
“네, 잘할 수 있어요.”
지금의 모든 것을 선물해준 매니저에게.
그녀는 옅게 웃으며 대답했다.
***
샴페인 노바의 무대가 끝나고, 아무도 없는 무대 위의 대형 스크린에서는 방송국에서 미리 찍어둔 몇 개의 영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다음 차례인 현지가 스크린에 나오자마자 공연장이 떠나갈 듯 환호성을 내지르는 관객들.
‘우리 현지 인기 좋네.’
어제의 그 사진들이 일본의 커뮤니티와 SNS에서 화제가 된 덕인지, 현장에서의 반응도 좋다.
그리고 그 영상들이 끝나고 마침내 현지가 댄서들과 함께 무대의 중앙으로 걸음을 옮겼다.
듬직해 보일 정도로 위풍당당한 걸음걸이.
작은 키와 여리여리한 몸집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서는 이 넓은 공연장을 장악할 만한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하아. 좋겠네.”
현지의 등장을 반기는 환호성들 틈에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옆을 바라보니, 아까 전부터 나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YU엔터의 유정훈 팀장이 오만상을 구기고 있었다.
이전에 서로 윈-윈을 하자며 윤본부장님과 치킨집에서 만났던 그때의 팀장님.
“예?”
“윤팀장님 승진했다면서요. 그쪽 분도 승진하시고. 하, 누구는 매일매일 눈치 보는 게 일인데···.”
무대 위 현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고, 그는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대체 어떻게 알아보신 겁니까? 송하연 씨 댄스팀 할 때 영상도 찾아봤는데 잘 모르겠던데.”
계약을 하기 전, 나는 불안에 떨어서 조급해져 있었다.
당연히 다들 현지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볼 줄 알았거든.
이렇게까지 사람들의 눈이 옹이 눈인 줄은 몰랐지.
무대 위에서 데뷔곡의 시작 자세를 잡는 현지를 보며, 나는 물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오히려 제가 물어보고 싶을 정도예요. 저렇게 빛이 나는 애를 대체 어떻게 못 알아보신 건지.”
“···.”
그는 나를 잠깐 쏘아보다가 자리를 떴고, 나는 저기서 자신의 재능을 만천하에 뽐내기 시작하는 그녀를 자랑스럽게 바라봤다.
그녀의 데뷔곡,
<구름 위의 꿈>
지금까지 가질 수 없다고 생각했던 꿈. 구름 위에 있는 것처럼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었던 꿈.
어느 날 갑자기 불어온 바람으로 인해 구름이 완전히 개고, 꿈에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는 내용의 곡.
그런데 지금은 그것이 바뀌었다.
이제 구름 위에 있는 것은 꿈이 아니라.
반짝반짝 빛나는 스타가 된 그녀였으니.
***
넓고 커다란 공연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꼭대기의 관객석.
유현지의 무대를 보기 위해 일본에 간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그리 좋지 못했다.
‘아이돌 보려고 일본까지 간다고?’
‘와, 미친놈. 나 같으면 그 돈으로 차라리 다른 걸 한다.’
‘야, 언제까지 망상에 살래? 걔 어차피 너랑 안 만나줘.’
당시에는 기분이 좋지 않았으나, 이제는 오히려 그들이 불쌍해 보였다.
─와아아아아!
전신이 울릴 정도로 커다란 함성으로 가득 찬 공연장.
영혼에 양식이 채워지듯 황홀한 느낌.
그들은 과연 이러한 기분을 평생이 지나기 전에 한 번이라도 느낄 수 있을까?
그는 이 음악과 무대를 보기 위해 여기까지 온 게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구름 위의 꿈>에 이어, ,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두가 기대하던 의 무대가 펼쳐졌을 때.
-벌써 지치면 어떡해. 아직 음악이 나오고 있잖아
머릿속의 아주 일부분을 차지했던 상념조차도 깨끗하게 사라지고.
그저, 머리가 새하얗게 달아올라, 목이 찢어질 듯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열광! 열광! 그리고 열광!
가장 꼭대기 좌석에 앉아있던 그는 볼 수 있었다.
여러 팬덤이 뒤섞인 이 공연장에 있는 형형색색의 응원봉들이, 모두 제각각의 속도로 미친듯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
이윽고, 이 곡의 하이라이트.
시작부터 깔려 있던 코러스가 폭발하며, 관객들의 반응 역시 펑! 하고 터져버렸다.
***
“하아. 하아.”
무대에서 내려온 현지.
나는 흥분으로 번들거리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이 또한 방금 그 폭발적이었던 무대의 편린.
이걸 보는 건 오로지 나에게만 허락되는 최고의 특혜였다.
거칠게 숨을 고르는 그녀의 온몸이 파르르 떨리고 있다.
얼굴도 붉게 상기되어 있다.
무대체질에다가, 항상 차분함을 유지하는 그녀가 이럴 정도면 대체 얼마나 좋은 걸까?
퍽 궁금해졌다.
그래서 어땠는지 소감을 물어보려 했는데, 그녀의 입이 나보다 먼저 열렸다.
“무대··· 괜찮았어요? 잘 기억이 안 나요. 잘했는지 못했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기분이 좋았어요. 너무 많이요. 너무 너무 좋아서 잘 모르겠어요.”
내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묻지도 않았는데, 대답은 들은 것 같다.
그래서 나도 그녀의 물음에 기꺼이 대답을 보여주었다.
손가락으로 관객석을 가리키면서.
“한 번 봐. 어떤 지.”
내 손가락을 따라 그녀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리고, 얼굴이 환희로 가득 물들어갔다.
“다들··· 아직도 너무 좋아하시네요.”
아니, 단순히 ‘좋아한다’고 하기엔 표현이 너무 부족하지.
소름이 돋았다는 듯 연신 감탄사를 내뱉고 있었고, 입을 살짝 벌리며 깊은 여운에 빠져 있었다.
그들은 최고점을 찍은 열광 때문에 아직도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역시.
아티스트가 하고 싶은 걸 하게 해주는 게 맞았다.
그녀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고, 내 선택 또한 틀리지 않았다.
나의 모든 감각이 단정하듯 말해주고 있었다.
그녀는 오늘, 방금 전의 무대로 또 한 번 성장을 이뤄냈다는 것을.
***
이런 큰 공연장에서 무대를 하는 게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송하연은 평소와는 다른 느낌을 받고 있었다.
“하연아. 이제 곧 올라갈 거야.”
“네.”
“잘하고 와. 파이팅.”
“네, 파이팅.”
박한울이 보이지 않는다.
그가 담당하는 유현지의 차례는 이미 끝났으니까.
‘당연한 거야.’
무대를 끝낸 유현지가 휴식하게 해줘야 한다.
모든 무대가 다 끝나고 나면 다시 나와야 하니, 대기실에서 푹 쉬고 있겠지.
박 매니저는 실시간으로 반응을 모니터링하고 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밥을 먹고 있을 수도 있다.
‘바쁘겠지.’
당연한 거다.
일이니까.
그런데, 그걸 알고 있음에도 못내 섭섭했다.
이제 친해진 줄 알았는데.
어차피 여기 대기실에 있는 거, 잠깐 나와서 응원이라도 해줄 수 있는 거 아닌가?
‘팬이라면서.’
송하연은 저 앞을 바라봤다.
스크린에 띠워진 자신의 영상을 보며 잔뜩 기대감을 키우고 있는 팬들을.
그녀의 기분은 다시 올라갔다.
언제나 자신이 완벽을 기하는 이유가 저기 있었고, 계속해서 기량을 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가 저기 있었다.
그녀의 입꼬리가 헤실헤실 풀어졌다.
역시 팬들에게 보여주는 공연은 시작 전부터 마음을 두근두근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하연 씨.”
관객석을 바라보고 있던 송하연의 고개가 홱! 하고 옆을 향했다.
“파이팅! 여기서 지켜보고 있을게요.”
박한울.
그가 웃는 얼굴로 응원하자, 그녀의 눈매는 더욱 부드럽게 휘어졌다.
“고마워요. 파이팅!”
마침 딱 무대 위로 올라갈 시간이다.
송하연은 가볍게 걸음을 옮겼고.
앞에 있는 관객들의 시선과, 뒤에서 보고 있을 시선을 고스란히 느끼며 미소 지었다.
반주가 흘러나옴과 동시에, 팬들의 환호성을 타고 뜨거운 팬심이 가슴에 닿았다.
지금까지 낸 곡이 너무 많아 이 자리에서 모두 보여줄 수는 없었지만, 첫 곡은 이것.
작업이 너무 안 돼서 하루하루를 스트레스로 보내고 있을 때, 그가 도와줘 순식간에 완성할 수 있었던 정규 앨범의 타이틀곡.
처음으로 음원차트 1위를 했던 곡.
그리고 팬들을 만족시킬 수 있었던 곡.
그녀의 목소리는 마이크를 타고 공연장에 퍼졌고.
팬들의 환한 미소를 보며, 그녀의 얼굴에도 따스한 미소가 걸렸다.
무대가 너무 좋다.
이렇게 좋은 음악을 들려줄 수 있어서 너무 좋다.
팬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
그녀가 느끼는 즐거움과 행복은 목소리를 통해, 그리고 스크린에 보이는 표정을 통해 관객들을 물들였다.
이러한 광경을 보며, 그녀의 마음 속에서는 박한울에 대해 고마운 마음이 점점 더 커져갔다.
같은 팀도 아니었고, 바쁘기도 했는데, 그는 최선을 다해서 자신을 도와주었다.
연습생들이고 아티스트고, 지금은 회사의 모두가 그의 도움을 바라고 있는데, 그는 담당이 아닌 사람들 중에서는 여전히 자신의 손을 잡아주었다.
송하연은 최선에 최선을 다해서 노래했다.
자신의 목소리가 무대 뒤에도 닿을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쉬운 거라고는 하나.
처음부터 끝까지 그와 함께 완성한 미니 앨범이 아직 발매되지 않아, 지금 보여줄 수 없다는 것.
어서 빨리 보여주고 싶은데, 그게 너무 아쉬웠다.
그렇게 5곡의 곡을 끝내고 송하연은 무대에서 내려왔고.
그녀는 자신을 보며 박수를 치고 있는 박한울에게 다가가, 눈을 마주하며 말했다.
“고마워요, 제게 이런 광경을 만들어주셔서.”
***
한편 그 시각, HJ엔터의 대표실에는 박대표와 김본부장, 그리고 이번에 새로이 본부장이 된 윤본부장이 모여 앉아 가벼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4팀에 쏠리긴 했지만, 연이어 좋은 소식들만이 들려오기에 분위기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
박대표는 윤본부장에게 물었다.
“적응은 잘 하고 있어? 어려운 일은 없고?”
“예,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힘든 점은 없습니다.”
박대표는 피식 웃었다.
“없기는. 요즘 한울이 원하는 곳이 많지?”
“···.”
“요즘 계속 연전연승하니까 연습생이고 아티스트고 다들 징징댄다더라고.”
그 말대로였다.
1본부고 2본부고, 연습생들이고 전부.
박한울이 연전연승하니까 모두 그의 손길이 자신에게도 닿기를 원하고 있었다.
연습생들은 어떻게 하면 그가 자신을 봐줄까 고민하고, 유현지처럼 스스로도 모르는 재능을 알아봐주기를 소원하고 있었다.
가수들은 유현지와 송하연처럼 프로듀싱을 해주길 바라고 있었고, 배우들은 정채희처럼 대본과 시나리오를 골라주며 훈련시켜주길 바라고 있었다.
윤본부장은 입을 달싹거리다가 말했다.
“박실장은 전문적인 프로듀싱을 하기엔 지식과 기술이 없습니다.”
그 말에 박대표가 큭큭대며 웃었다.
“아니, 다른 걸 다 떠나서 의욕이 없지. 한울이는 내가 제일 잘 알아. 걘 누가 억지로 시킨다고 해서 할 놈이 아냐. 지 하고 싶은 거 하게 내버려둬야 돼.”
윤본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게다가 이미 맡은 역할을 넘어서까지 잘 하고 있습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딱 보니까 자기가 재능을 인정한 아티스트한테서만 의욕을 얻는 것 같기도 하고.”
가만히 듣기만 하던 김본부장이 한쪽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리며 말했다.
“그래도 활용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응?”
“예?”
그의 입에서 나온 방안은 무척이나 합리적이었으며, 타당한 명분마저 있었다.
“월말평가에 참여시키면 적어도 연습생들만은 보게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박실장도 이제 실장이니까요.”
“···.”
“···.”
4팀에 새로운 아티스트를 넣을 계획이 없기도 하고, 이제 막 실장을 달긴 했지만.
꾸준히 월말평가에 참여하게 할 수는 있었다.
빈도의 문제긴 하나, 어쨌건 월말평가에 참여하는 건 매니지먼트팀의 업무 중 하나이기도 하니.
“그거 괜찮네.”
박대표의 입꼬리가 귀에 걸릴 듯이 올라갔다.
그런데 그때.
다급함이 담긴 노크 소리가 대표실을 울렸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온 홍보팀의 장부장은 웃는 듯 우는 듯, 기괴한 표정으로 말했다.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기사? 무슨 기사?”
장부장은 프린트한 A4용지를 건네며 말을 이었다.
“박한울 매니저의 정보들을 취합한··· 기사입니다.”
두 본부장과 박대표의 시선이 A4용지로 향했다.
그리고 그 기사의 타이틀에는 이렇게 적혀져 있었다.
「 [단독] 겉바속촉 매니저 박한울. 그는 누구인가? 」
<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