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하산이 천재매니저였다고-72화 (72/170)

< K-콘서트 도쿄 >

음원차트 1위.

이에 대한 효과는 정말이지 생각 이상의 결과를 낳았다.

우리 회사의 최고 에이스였던 송하연도 음방에선 1위를 밥먹듯이 했지만 음원 차트에서는 저번 한 번에 그치지 않았던가.

그것도 한 시간 동안 반짝.

<레전드를 노래하라>의 무대로 화제가 된 덕분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는 많은 점이 달랐다.

홍보를 위한 예능 활동을 하지도 않았는데도 SNS와 커뮤니티에서 입소문이 크게 퍼졌고.

1위를 한 것도 한 시간 반짝이 아니었다.

하루가 지난 지금 역시도.

1. The Radio Is Playing – 유현지

5. Why Not Me? – 유현지

는 한 계단 떨어졌지만 그래도 상위권 순위는 잘 유지되고 있었다.

“여보세요, HJ엔터 매니저 박한울입니다. 네, 피디님.”

원래 매니저들은 인맥관리에 힘을 쓰며, 발에 땀띠가 나도록 발품을 팔고 다닌다는데.

나는 단 한 번도 그래본 적이 없다.

지금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계속 오지 않은가.

원래 아쉬운 쪽에서 먼저 컨택을 하는 법이다.

“후우. 이것도 꽤 힘드네요.”

찾는 곳이 너무 많잖아.

배부른 푸념을 하니, 정실장님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실장들이 다 그렇지.”

나를 제외한 4팀의 유일한 실장.

그는 송하연과 이성호를 담당하게 됐다.

최실장··· 아니 최팀장님이 맡고 있던 아티스트들인데 그는 이번에 팀장이 됐으니, 그들을 맡을 실장급도 한 명은 둬야 했으니까.

회사의 모든 매니저들이 현재 정실장님을 가장 부러워하고 있었다.

최팀장님의 눈에 들어 회사 최고의 에이스들을 어부지리로 맡게 됐으니 말이다.

“한울아, 케이콘서트 제작진들 이따 2시에 오기로 했지?”

“네. 컷 몇 개 따야 한다고요.”

K-Concert 도쿄.

송하연과 유현지에게 몇 컷 딴다고 직접 여기로 행차하신단다.

영상만 넘겨달라거나, 아니면 방송국에 가야 할 수도 있는데.

아니면 진짜 애매한 시간에 촬영한다거나, 그도 아니면 정확한 시간도 없이 무한대기를 타야 한다거나.

그런데 우리는 아니었다.

‘역시 이래서 잘나가고 봐야 한다니까?’

우리는 그렇게 며칠간 음방과 인터뷰 등 밀려드는 스케줄을 차례차례 소화했고.

어느새 도쿄로 출발하는 날이 밝았다.

***

촤르르르륵─

카메라 소리가 맞나 싶을 정도로 요란한 소리가 귀를 때렸다.

일본에 출발하기 위해 공항에 내리자마자 들린 소리였다.

“저쪽부터 인사해요.”

“네.”

송하연의 리드에 맞춰 유현지가 웃으며 손을 흔들고, 다시 다른 쪽을 보고 하트를 하고.

그 모습을 뿌듯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귀에서 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박한울 매니저님도 인사해주세요!”

“···네?”

기자로 보이는 이가 무심한 얼굴로 말하면서, 놀란 내 얼굴을 그대로 카메라에 담아낸다.

“풉.”

“하하.”

송하연과 유현지의 웃음소리도 위안이 되지 않는다.

유현지의 컴백 이후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제의들 중에는 나에 관련된 것들도 많았는데, 나는 그 모든 것들을 거절하고 있었다.

나를 장작 삼아 현지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좋았으나, 나라는 사람 자체가 이슈가 되는 것은 그리 달갑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역시, 그렇게 무작정 외면한다고 해서 일찍 꺼질 관심은 아니었나 보다.

여기서까지 이러는 거 보면.

‘하긴 나 같은 케이스가 흔치 않긴 하지.’

매니저가 프로듀서를 하고 있으니.

나는 기자의 끈질긴 요청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인사를 끝까지 하지 않았다.

여기는 그녀들이 주목받아야 하는 장소잖아?

우리는 게이트 안으로 들어서며 더더욱 커다란 소리와 마주해야 했다.

“와아아아! 현지야! 현지야! 윙크! 윙크!”

“아 진짜! 밀지 마세요!”

“하연아! 여기 봐봐! 웃어줘! 꺄아!”

아주 북새통에 난리통에 시장바닥이 따로 없다.

경호원들의 도움이 있다지만 나와 스텝들은 신경을 곤두세우며 걸음걸음을 옮겼는데.

현지와 하연 씨는 팬미팅 현장에라도 온 것처럼 방긋방긋 웃는 얼굴을 잘도 유지했다.

그렇게 진이 다 빠질 것만 같은 시간이 지나고 나자.

그녀들은 재밌다는 듯한 웃음을 머금고 나를 바라봤다.

송하연은 내 팔을 툭 건드리며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자분들한테 인기가 참 많으시네요, 겉매속프님?”

“···그건 또 뭐예요?”

“’겉은 매니전데 속은 프로듀서’요. 어느 네티즌이 그렇게 부르더라고요.”

“···.”

어처구니가 없어서 벙찐 얼굴이 되었는데, 유현지도 내 팔을 살포시 탁탁 때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원래 이렇게 웃는 애가 아닌데, 이 별명이 그렇게 웃긴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사실 프로듀싱이라고 할 것도 없었잖아요. 다 하연 씨가 했지. 저는 전문용어도 안 썼다니까요? 딥보이스니 뭐니 다 하연 씨가 했고.”

그런데, 이런 말에 그녀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그라들었고, 이내 은은한 미소만이 자리했다.

송하연은 말했다.

“매니저님이 말씀하신 걸 제가 전문용어로 옮긴 것뿐이잖아요. 작곡했을 때랑 마찬가지로.”

그녀들의 눈빛이 너무 따사로워서 시선을 슬쩍 피하며 헛기침을 했다.

대중들이나 외부 사람들에게는 관심과 인정을 받아도 별로 기쁘지도 않았는데.

이들에게 이렇게 인정을 받는 말을 들으면 항상 가슴이 살짝 들뜨곤 한다.

“그래도 그게 성공한 건 다 현지랑 하연 씨가 잘해서 그런 거예요.”

“고마워요,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오빠가 잘해주신 덕이에요.”

나는 옆에 있는 로드 매니저들에게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만 했다.

이게 부러우면 타고 나든가.

***

일본 공항에서도 열띤 응원과 환호를 받고, 우리는 호텔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송하연과 현지는 3일로 나뉜 K-Concert 일정 중에 첫 번째 날인 1일차에 몰렸기 때문에 우리는 내일 점심 무렵 비슷한 시간에 리허설이 잡혔다.

고로, 오늘은 이제 푹 쉬기만 하면 된다는 것.

나는 해외 일정이라곤 채희의 일본 광고 촬영 때밖에 없었기 때문에 최팀장님도 함께 온다고 했다.

급한 일정 때문에 새벽녘에 도착할 것 같다고 하고.

경험이 쌓이면 이제 나도 혼자 애들을 데리고 어디든 갈 수 있겠지.

아무튼 지금부터 내일 아침까지는 쉬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

“밖에 나가서 밥 먹으면 안 돼요?”

송하연과 현지가 같이 방에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팀장님께 연락을 넣어보기로 했다.

그러자, 돌아오는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일정에 지장 없으면 편한대로 해. 그런데··· 하연이가 뭐 더 덧붙이는 말은 없었어?

“네?”

-언제 일어나서 언제 준비하니까 시간이 얼마나 남는···. 아니, 그래서 정말 그냥 물어보기만 했다는 거지? 가도 되냐고.

“네.”

핸드폰 너머로 허탈한 웃음소리가 들렸다가 처음과 같은 대답이 재차 돌아왔다.

-그럼 편한대로 해. 하연이는 도쿄에 많이 와보기도 했고 시간도 알아서 조절할 수 있을 테니까 너무 걱정 안 해도 괜찮을 거야.

정실장님도 그렇고 최팀장님도 그렇고.

회식 이후로 나를 편하게 대해주셨다.

거리감이 좁혀졌기 때문인지, 최팀장님은 지금처럼 은근슬쩍 한탄하듯 말을 하곤 했다.

대체 하연 씨한테 얼마나 시달렸으면.

얘기만 들어보면 송하연이 마치 딱딱하고 냉철한 사업가 같은데, 정작 내 앞에는 순둥순둥하게 웃는 여인만이 보일 뿐이었다.

나는 전화를 끊고는 말했다.

“그래요. 나가서 먹죠. 그런데 얼굴은 좀 숨기시고요.”

기쁘다는 듯 서로를 마주보며 웃는 그녀들.

저렇게 친하게 지내는 모습은 언제 봐도 내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래, 이왕 놀러 나가는 김에 더 친해지면 좋겠네.’

***

도쿄의 저녁거리.

송하연과 유현지 둘 다 거의 잠옷과 비슷한, 헐렁하고 편한 옷을 걸치고 모자를 썼다.

“어때요? 자세히 안 보면 못 알아보겠죠?”

왠지 뿌듯해하며 묻는 현지의 말에 나는 그녀들을 살폈다.

그래, 자세히 안 보면 누군지는 못 알아볼 것 같다.

그녀의 말이 맞다.

그런데.

‘···눈에 띄는데?’

자세히 볼 수밖에 없다.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은 뒷모습만으로도 시선을 사로잡고, 마스크로 얼굴의 반을 가려도 주목받기 마련이다.

그녀들이 그러했다.

옷차림이 어떻든, 모자를 썼든 안 썼든.

예쁨이 도저히 가려지질 않는다.

‘주목을 받으면 자세히 보게 되고, 그러면 알아보게 되는 거지.’

이 주변은 한창 K팝 팬들로 들끓고 있을 텐데 과연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봤다.

“하연 씨, 평소에 어떻게 하길래 못 알아봤어요?”

“알아봐요.”

“네···?”

“알아보세요.”

“···?”

그 태연한 말에 나는 눈을 껌뻑였다.

그리고 기억을 되뇌어봤다.

생각해보니, 그녀도 그렇고 최팀장님도 그렇고 못 알아볼 거라는 말과 못 알아보게 하라는 말은 없었다.

괜히 내가 유난을 떤 거다.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잠깐 SNS에 올라가고 말거든요. 편하게 입으면 별로 방해하지시지도 않구요.”

“아.”

나는 그녀의 말을 철썩 같이 믿고 당당히 밖으로 나섰다.

하지만.

“꺄아아아아!”

“하연아! 현지야! 여기 봐줘!”

최팀장님과 송하연이 간과한 건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 저번 정규앨범으로 송하연의 인기가 더욱더 높이 올랐다는 것.

그리고 둘째, 송하연이 솔로로만 활동하다 보니, ‘이쁜 애 옆에 이쁜 애’가 만들어내는 시너지가 얼마나 파괴력 있는지 미처 몰랐다는 것.

옆에 있는 게 우리 현지면 말 다 했지.

“그냥··· 들어가죠.”

“···네.”

“네.”

서로 팔짱을 낀 채 시무룩해하는 송하연, 그리고 순한 눈망울을 천천히 깜빡이며 주변의 사람들을 훑는 유현지.

그 모습은 실시간으로 한국과 일본의 SNS와 커뮤니티에 올라갔다.

***

오사카의 작은 편의점에서 일하다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핸드폰을 뒤적거리던 알바생.

그는 커뮤니티에 막 올라온 [초카와이 미소녀들 키---타!www]라는 게시글을 아무 생각없이 클릭했다.

그런데.

별 기대 없이 들어간 게시글에는 초고화질로 찍은 두 미소녀들의 근접사진이 몇 장이나 이어졌고.

이를 본 그는 무료함이 순식간에 날아가버렸다.

흐리멍텅했던 눈빛 또한 확! 또렷하게 바뀌었다.

“누구지?”

그는 곧바로 이 사람들이 누구냐는 댓글을 남기고 다시 사진을 뚫어져라 감상했는데.

곧이어 다른 댓글들도 주르륵 달렸다.

-얘네 한국인들 같은데?

-아이돌이냐?wwww

-송하연이잖아. 옆에는 누군지 모르겠네.

-이 사진 벌써 올라왔네www

“왼쪽이랑 오른쪽 중에 누가 송하연이라는 거야?”

시무룩해하는 아이, 혹은 사슴처럼 무해한 눈으로 카메라를 바라보는 아이.

둘 다 걸치고 있는 옷은 너무 내츄럴했는데, 본판은 미친듯이 귀엽고 예뻤다.

두 명 다 보면 볼수록 너무 마음에 들었고, 호기심을 계속해서 자극했다.

“왜 저리 시무룩한 거지? 얘는 왜 이렇게 멀쩡한 거고?”

그때 편의점의 문이 열리며 손님이 들어왔고, 손님이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핸드폰으로 시선이 문득 향했다.

“어!?”

거기엔 지금 자신의 핸드폰에 띠워진 사진과 똑같은 사진이 띠워져 있었으니.

“저··· 손님.”

“예?”

알바생은 자신의 핸드폰을 들어 보이며 공손하게 물었다.

“실례지만 이 애들에 대해 아시나요?”

손님과 알바생의 눈이 마주쳤고, 손님의 눈매는 진한 호선을 그렸다.

“자세히 설명해드릴게요. 일단, 유튜브에 접속해서 ‘유현지’라고 검색해보세요.”

“네? 아··· 네?”

가수인지도 몰랐고, K팝에 관심조차 없었던 알바생은.

그렇게 송하연의 팬이 되었고, 유현지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유현지의 팬이 대부분 그러하듯.

굉장히 열렬하게 응원하는 헤비 팬이.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비단 이곳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궁금해지는 귀여운 사진으로 한 번.

그리고 이날 저녁에 방송된 합동 라이브에서 나온, 아까 일에 대한 자세한 설명으로 인해서 또 한 번.

그녀들은 밖에서 밥이나 먹으려 했을 뿐이었는데.

어느새 일본 SNS와 커뮤니티에 크게 홍보가 되기 시작했다.

< K-콘서트 도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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