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 겉바속촉 매니저가 프로듀서라고? >
오늘은 두 개의 후속곡, 과 가 발매되는 날이다.
발매하기 전까지 다른 스케줄을 잡지 않았기에 유현지는 며칠간 푹 자며 체력을 회복하는 데 애썼다.
이제 앞으로 ‘K-콘서트’와 더불어 많은 스케줄을 소화해야 하기도 하니까.
유현지는 점심 무렵 잠에서 깨어 화장실의 거울을 바라봤다.
그리곤 입술을 짓씹었다.
‘이···쁘다고··· 말해됴.’
‘···이뻐.’
그때의 일이 아직까지도 머릿속에 생생하게 맴돌았다.
샴페인 노바가 이런 술주정으로 급격히 가까워졌다고 해서 언젠가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좀처럼 술을 같이 먹을 기회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마침 술자리에 같이 있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계속 정채희의 옆에 붙어서 삐진 걸 풀어주고, 재밌게 장난치며 얘기하는 걸 보며 부럽다는 생각도 했었고.
‘너무 성급했나···?’
그런데 급격히 가까워지기는커녕 흑역사가 생긴 느낌이다.
그때 이후로 누구도 그 일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흑역사에 대한 기억만 짙어질 뿐이었다.
“하아.”
유현지는 세수를 하며 그 일을 긍정적인 기억으로 바꾸려 노력했다.
그래도 이쁘다는 말을 듣기도 했고, 이런 노력들이 시행착오가 되어 나중엔 성과를 이뤄낼 수도 있는 거니까.
그녀는 집에서 쉬며 티저의 반응이나 팬들의 반응을 보며 시간을 때웠고, 곡이 발매되기까지 2시간이 남은 시점에서야 집을 나섰다.
이제 회사로 가서 오빠와 함께 모니터링해야 하니까.
***
우리 둘만 있는 소회의실.
나는 생글거리며 웃는 현지의 얼굴을 바라보고 말했다.
“티저 반응 봤어?”
“네. 오기 전까지도 계속 봤어요. 티저인데도 두 곡 다 반응 좋은 것 같아요. 기대를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언제나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하는 그녀.
나는 순간 그녀의 새하얀 얼굴 위로 그때의 그 새빨갰던 얼굴이 겹쳐 보였다.
당시엔 꽤나 당황했었지만 지나고 떠올려보니 무척이나 귀여웠다.
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몰라도, 귀여우면 됐지.
그녀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되어서 그런지 좀 더 가까워진 느낌마저 들었다.
나는 우리 앞에 놓인 노트북 대신, 핸드폰을 꺼내 캡쳐한 화면을 보여주었다.
“이 댓글 봤어?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지만 입술 깨무는 유현지는 진짜 성은이 망극.’”
“네, 봤어요.”
난 큭큭 웃으며 다른 캡쳐 화면도 보여줬다.
“이거는 봤어? ‘빈말이 아니라 리얼 사랑 쓸어담으려고 태어남.’, 그리고 ‘사람이 이렇게까지 사랑스러울 수가 있나?’”
혼자 웃으며 사진을 넘기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는데.
현지는 핸드폰이 아니라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왜? 다 봤던 거야?”
“아뇨. 나름 효과가 있는 것 같아서요.”
“뭐가?”
그녀는 생글생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냥 표정 연습한 거나 지금까지 노력한 것들이요.”
나도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럼. 당연하지. 누가 키웠는데.”
나는 기자나 방송국, 행사 대행사에게 오는 연락들을 받으며 계속 그녀와 함께 반응을 살폈다.
새로 올라온 반응들이나 우리가 재밌게 봤던 반응 같은 것들을.
그리고 마침내 음원이 발매되는 오후 6시.
음원 사이트에는 곡들이 올라왔고, 유튜브에도 두 개의 뮤직 비디오가 업로드되었다.
***
샴페인 노바의 숙소.
그녀들은 6시가 되기 전부터 분주하더니 6시가 되기 직전에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거실에 한 데 모여 앉았다.
그리고 마침내 6시가 되었을 때.
그녀들은 반짝반짝한 눈빛으로 유현지의 뮤직 비디오를 감상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본 것은 A&R팀의 주도 하에 만든
음악을 듣는 내내 감탄사를 속으로 삼키던 그녀들은 비디오가 끝난 뒤에야 호들갑을 떨며 난리법석을 피웠다.
“대박! 이번에도 너무 좋다! 역시 현지 언니!”
“진짜 너무 잘한다. 실력 더 는 것 같지 않아?”
“일단 곡이랑 안무도 장난 아닌데, 현지가 엄청 잘 살려. 춤선이 너무 예뻐서 말이 안 나와.”
“음색은 또 어떻고요. 현지 언니 완전 만능인 듯.”
그녀의 데뷔곡을 봤을 때는 싱숭생숭했으며, 경계의 마음도 함께 들었었는데.
후속곡이 나온 지금은 달랐다.
그녀들은 지난 활동 때 함께 찍었던 예능 ‘비하인드’ 이후로 현지를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었다.
이런 정글 같은 연예계에서 정말 친구라고 할 수 있을 만한 동료를 찾은 기분.
아니, ‘친구 같은 동료’라기보다는 그냥 ‘친구’에 더욱 가까웠다.
“우리 같이 듣고 있는 거 현지한테 인증하자. 아! 맞다! 그냥 아예 SNS에 인증사진 올릴까?”
친한 연예인들끼리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이렇게 홍보를 도와주기도 한다.
물론 이미지나 여러 가지 측면에서, 도와주는 사람 역시 이득이 있기도 하나, 지금의 이들에게는 그것들이 전혀 중요치 않았다.
“···언니.”
“···지금요?”
“음···.”
인증사진을 올리자는 말에 얼굴이 굳는 멤버들.
그녀들은 서로의 모습을 바라보며 더욱 얼굴을 굳혔다.
그제서야 말을 꺼낸 리더 박수현도 아차, 하며 덧붙였다.
“10분 안에 모이자.”
“20분이요! 10분은 너무 짧아요.”
“오케이, 20분.”
누구는 화장실에, 누구는 방에 들어가며 아까 전보다 더욱 분주하고 바쁘게 움직였고.
결국 40분이 지나고 나서야 모인 그녀들은 꾸민 듯 안 꾸민 듯 깔끔하면서도 내츄럴한 모습으로 거실에 나타났다.
“다 준비됐지?”
고개를 모두 끄덕이는 멤버들.
40분 동안 다음 곡도 듣고 싶어서 애가 탔던 박수현은 동영상 촬영을 누르며 서둘러 뮤직 비디오를 틀었다.
5초 이내, 혹은 10초 이내의 영상만 잘라 올리겠지만 일단은 다 찍어놓고 잘라야 하지 않겠나.
그렇게 표정 관리를 하며, 송하연과 박한울이 만든 의 뮤비를 감상하던 그녀들은.
곡이 하이라이트를 향해가자, 표정을 관리하던 것도 잊고 혀를 내둘렀다.
리듬에 맞춰 몸을 간단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전율이 등허리를 타고 머리 끝까지 퍼졌고, 몸은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라 앉아있기조차 고역일 지경이다.
이들 역시 음악과 댄스를 사랑하는 가수.
이 음악을 두고 가만히 앉아 감상하는 것은 죄책감마저 들게 했다.
게다가 이렇게 엄청난 음악으로 반응 영상을 찍는데, 고작 이 정도의 반응만 보여준다고?
이 음악에 이 정도의 리액션밖에 안 하는 건 오히려 욕 먹기 딱 좋았다.
‘안 되겠다.’
‘못 참겠어!’
그녀들은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났고, 리듬에 맞춰 격하게 몸을 움직였다.
카메라를 신경 쓴 행동이기도 했지만, 진심이 없지도 않았다.
가뜩이나 경악스러웠던 유현지의 재능이 미칠 듯이 신나는 음악에 맞물려 더욱 부각되고 있었다.
또한 반대로.
완성도 높은 음악이 유현지의 실력에 맞물려 더욱더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우선적으로.
그저 음악이 끝내줬다.
샴페인 노바는 직감했다.
이 음악은 그녀를 명실상부 스타의 자리로 올려놓을 거라고.
‘이게 성공 못하면 말이 안 되지!’
그녀들의 리얼한 반응은 얼마 안 있어 바로 SNS에 업로드되었다.
***
반면.
샴페인 노바가 소속된 대한민국 최고의 기획사, YU엔터테인먼트에서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
“···.”
장내엔 찌를 듯한 적막이 내려 앉았고, 그 중심에 있는 김대훈 대표는 태블릿을 보며 이를 아드득 갈았다.
유현지가 컴백한 지 고작 3시간.
김대훈 대표는 유현지에 대한 반응을 계속 살펴보다가, 이내 부글대는 화를 참지 못하고 저 한쪽에 있는 신인개발팀장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어떻게 생각하나?”
신인개발팀장으로선 목 앞에서 칼날이 왔다갔다 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억울한 면도 있었다.
아무리 신인개발팀장이라지만 데뷔할 애들을 선별하는데 독단적으로 결정했겠나?
다만, 직장인으로서 이런 억울함은 토로해서도 안 된다.
그럼 훨씬 더 억울한 일이 생길 거라는 걸 아니까.
“죄송합니다.”
“지금 내가 죄송하다는 말이나 듣자고 이러는 줄 알아?”
살벌한 공기가 흘렀다.
김대훈 대표는 유현지의 데뷔를 보며 참담한 심정을 감추기 힘들었었는데, 지금은 그보다 더했다.
아주 땅을 칠 정도로 후회되었고, 분노와 짜증이 펄펄 끓어올랐다.
“내가 아주 가슴이 뜯겨져나가는 것 같아. 이런 재능을 알아보고 키우는 게 신인개발팀이 하는 일 아닌가? 다른 데서 구하라는 것도 아니고, 우리 품에 몇 년 동안이나 있었는데 이걸 왜 못 알아보냐고! 대체 왜!”
목소리는 점차 커지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거의 호통이었다.
원래는 다른 안건 때문에 모인 회의였지만, 이미 해당 안건은 뒷전이었다.
유현지가 너무 눈에 밟혀, 발매와 동시에 계속 반응과 추이를 살펴보던 김대표는 회의 시간이 다 되어서까지 멈출 수가 없었고.
지금의 지경에 다다르게 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TOP 100 차트가 바뀐 걸 보고는 안타까움과 분노에 몸서리가 쳐졌다.
+
1. The Radio Is Playing – 유현지
.
.
4. Why Not Me? – 유현지
+
사색이 된 신인개발팀장이 땀만 삐질삐질 흘리고 있자, 김대표는 또다시 버럭 소리쳤다.
“앞으로 회사를 10년은 더 먹여살릴 수 있는 인재를 대체 왜 못 알아봐서 다른 회사에 홀라당 넘겨주냐고!”
신인개발팀장은 과거 유현지에게 할 말 못할 말을 다 했었다.
유현지가 아이돌이라는 꿈을 접고 박한울을 만나기 전까지 자신감이 없었던 이유였다.
‘나도 이렇게 될 줄 알았냐고!’
원래 연습생들은 그런 말들을 듣는 게 일상이라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니라 생각했었는데, 작금에 와서는 왜 그랬을까 후회가 될 뿐이다.
당시엔 정말로 특출난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누가 봐도 재능으로 똘똘 뭉쳐 있다는 게 보이니까.
그는 바싹바싹 마르는 입을 겨우겨우 열었다.
대답을 않는다고 가만히 넘어갈 것 같지는 않았기에.
“듣기로는··· 박대표님의 아들이 다 개발했다고 합니다. 워낙 실력이 출중해서··· 프로듀싱에도 참여했고··· 유현지뿐만 아니라 송하연이랑 정채희도··· 게다가 이성호 배우에게도 크게 도움을 줬다고-“
자신의 실수를 가리기 위해 상대를 띄우는 것은 매우 고전적인 수법.
그러나 그 허무맹랑한 소문이 진짜라면, 이것 또한 설득력이 된다.
모두가 불가능한 걸 해내는 그 사람이 잘한 거지, 자신이 못한 게 아닌 게 되는 거니까.
다만 문제는.
그 말을 듣는 상대방에게는 그저 변명에 불과했다는 거다.
“그런다고 없던 재능이 생겨!? 어쨌든 저렇게 하는 게 우리 연습생이었다는 거잖아! 우리 회사 나간 지 아직 1년도 안 됐다고!”
사실 결과가 이러하니, 김대표의 귀에는 무슨 말이 들어오든 변명으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
***
처음의 반응만 확인한 뒤, 현지가 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업무를 하며 여전히 수시로 반응을 모니터링했다.
발매하자마자 SNS와 커뮤니티에 입소문이 쫙 퍼져서 새로운 사람들을 끌어모았고, 그들이 댓글을 남기고 추천을 하며 더욱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모았다.
나는 이 기울기가 무척이나 큰 우상향 곡선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발매한 지 2시간이 지나.
우리는 영상팀에서 촬영한 녹음 비하인드와 함께 뮤비 비하인드 영상을 풀었다.
원래 이틀 간격으로 풀려고 했었는데, 반응이 너무 뜨거웠거든.
이때다 싶어서 내던져버렸는데, 이게 또 신의 한 수가 되었다.
반응은 더욱 크게 들끓기 시작했으니까.
물론.
미처 예상했던 방향은 아니었지만.
-잠깐. 저 겉바속촉 매니저가 프로듀서라고?????
-헐. 이름 확인해봤는데 진짜임···. 이게 왜 진짜임??
-??? 저 이름 데뷔곡에도 있는 이름인데 이 사람이 진짜 저기서 빙구 미소 짓고 있는 저 매니저라고???
-왘ㅋㅋㅋ ㄹㅇ이네? 찾아보니까 데뷔곡도 만듦ㅋㅋㅋ
“아.”
영상팀도, 그리고 우리도.
내가 곡 작업을 하는 게 너무 익숙해져서 이게 대중들한테 얼마나 큰 파급력을 일으킬지 미처 계산을 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별로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는 것이 맞았다.
나는 잠시 당황했다가, 이내 미소를 지으며 평온을 되찾았다.
“뭐 어때.”
조금이라도 더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면 됐지.
“그래. 더 불타올라라. 얼마든지 더 장작이 돼줄 수 있으니까.”
그리고 한 시간이 더 지나.
+
1. The Radio Is Playing – 유현지
.
.
4. Why Not Me? – 유현지
+
1위와 4위를 차지했을 때.
지이잉- 지이잉-
핸드폰과 인터넷이 동시에 진동을 하기 시작했다.
< 저 겉바속촉 매니저가 프로듀서라고?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