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하산이 천재매니저였다고-69화 (69/170)

< 같은 팀 >

한실장님, 윤팀장님, 그리고 나와 다른 매니저들까지 모두 한 데 모여서 시시껄렁한 얘기를 나누며 축하의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스케줄이 급한 게 아닌 이상, 지금 시간이 되는 매니저들은 모두 급하게 달려온 상태였거든.

그런데, 이런 따뜻하고도 들뜨는 분위기는 누군가가 우리 쪽으로 다가오며 멎게 되었다.

“고팀장?”

작은 키에, 부드럽고 온화한 인상의 고팀장.

그는 서글서글하게 웃고 있었고, 그 뒤를 따라 들어오는 2팀 실장 매니저는 얼굴이 경직되어 여유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우리 쪽으로, 아니 정확히 말하면 윤팀장님을 찾아온 이유야 뻔했다.

팀장의 자리를 노리는 것.

고팀장님은 나를 흘깃 쳐다보고는 웃는 얼굴로 윤팀장님에게 입을 열었다.

“잠깐 시간 좀 내줄 수 있지?”

“그래. 되지.”

윤팀장님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고팀장님이 몸을 돌려 우리 파티션을 나가려 할 때, 안으로 새로운 손님들이 찾아왔다.

“최실장.”

최실장과 송하연.

최실장은 고팀장과 윤팀장을 슥- 바라보며 물었다.

“저도 같이 얘기 나눌 수 있겠습니까?”

이에 윤팀장은 고팀장을 쳐다봤고, 고팀장은 웃고 있던 입꼬리를 더욱 끌어 올리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런데 어쩐지 그는 스스로도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연습생 신분이었던 유현지를 자기 팀으로 데려가려 할 때 그가 보였던 그 적극적인 모습이 보이지 않았거든.

본인도 가능성이 없다는 걸 아는데 이렇게 하는 이유는 아마 부하직원인 저 실장을 위해서겠지.

그렇게 그들이 사무실을 함께 빠져나가려 막 발을 떼어낼 때.

송하연만은 꿈쩍도 하지 않고,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는 다른 건 뭐가 됐든 좋아요. 그냥 박한울 매니저님이 제 담당이 되셨으면 좋겠어요.”

최실장과 함께 왔지만 입장은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목적은 명확했다.

내가 케어해주는 것.

아마 그녀는 지금 우리가 함께 작업하는 것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일 거다.

내가 앞으로 더욱 바빠지게 되면 타 팀보다는 내 담당 연예인에 더욱 우선이 되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고, 지극히 당연한 일일 테니.

이제 모두의 시선은 내게로 쏠렸다.

윤팀장님은 마치 나더러 결정하라는 것처럼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그리고, 최실장님이나 고팀장님, 한실장님도 내 입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갑작스레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지만, 사실 갑작스러운 건 아니지.

그녀의 러브콜은 이전부터 꾸준히 있어 왔으니.

다만 문제라면 내 입장 또한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실장으로 승진이 예정되었지만 그건 직함과 권한에 대한 변화일 뿐.

아, 이젠 정식으로 내 밑에 매니저를 둬서 여유는 더 있을 수 있겠지.

그럼 담당 연예인이 한 명쯤 늘어나는 것도 괜찮을 테고.

그러나 나는 그렇게 일반적인 루트를 타고 싶지 않다.

내가 일을 하고 있는 목적은 단순히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비즈니스맨이 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지금껏 내가 해왔던 대로, 그녀들의 앞에 성공으로 향하는 길을 깔아주고, 함께, 옆에서, 나란히 걷고 싶었다.

채희의 연기를 지켜보며, 현지의 무대를 지켜보며.

그래서 나는 이번에 역시 에둘러 거절하며 이렇게 말하기로 했다.

“같은 팀으로는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팀원은 같은 식구니까요. 언제든지 의지하시고 기대셔도 돼요.”

나중에 새로운 아티스트를 추가로 담당하게 될 수도 있지만, 나는 그녀와의 이 관계 역시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녀가 앨범 작업을 할 때 돕고, 현지의 앨범 작업을 할 때는 그녀가 나를 돕는.

더군다나 이제 같은 팀이 되면 그녀도 내 도움을 못 받을까 봐 불안해할 일도 없겠지.

송하연의 동공이 살짝 흔들렸지만 곧 제자리를 찾았다.

그리고는 살포시 미소를 보이며 대답했다.

“그래도 조금은 더 가까워졌네요?”

“저희 이미 가까워진 거 아니었어요? 전 꽤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친근한 그녀의 말에 나도 친근하게 너스레를 떨었다.

우리는 우리만의 관계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서로에게 유대감이 있고, 언제든지 기대어도 되지만.

그녀는 연예인으로서, 아티스트로서, 이미 스스로 모든 것을 할 줄 안다.

지금껏 쌓아 올린 것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잘하겠지.

“그러네요. 원래 가까웠지 참.”

나는 반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서 그녀를 지켜보며, 그녀가 손을 내밀면 언제든지 잡아주기로 했다.

혀를 내두르며 또 다시 경악하고 있는 매니저들 가운데.

윤팀장님은 침음을 흘리며 말했다.

“음. 4팀은 이렇게 완성하는 게 낫겠네. 그런데 본부장님이랑 대표님이 이렇게 허가해 주실지가 문제지. 아무래도 멤버들이···.”

성호 삼촌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말이었다.

아무래도 최실장님이 4팀장을 맡게 될 테니까.

‘너무 액기스들만 모이기는 했네.’

이 정도면 4팀에는 당분간 아티스트를 못 받을 수도 있겠다.

‘아니 어쩌면 앞으로도···?’

아니다. 또 내가 누굴 데려오면 걔는 누구한테 맡길 건데?

나한테 맡기는 게 가장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걸 알고 있을 테니, 아마 허락해주지 않을까 싶다.

유현지를 내게 맡겼던 것처럼.

내가 이러한 상념을 하고 있을 때.

문득 모두의 시선이 내게 꽂혀 있다는 걸 깨닫고, 퍼뜩 상념을 지워냈다.

한실장님은 이런 나를 보고는 큭큭,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본부장님 스타일 알잖아요. 효율 우선. 이렇게 짜여지는 걸 반려할 마땅한 이유도 없죠. 팀마다 스타급 연예인 공정 분배라는 건 듣도 보도 못했네.”

다른 매니저들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되겠네요, 확실히. 게다가 누구 한 명이서 연예인들을 다 담당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같은 팀인 거니까.”

“그리고 이제 본부장님도 둘이잖아요. 김본부장님이랑 우리 윤본부장님. 윤본부장님이 의견 내면 반반 되는 거 아닙니까?”

“아마 될 것 같은데요? 3팀 체제였으면 몰라도, 지금 4팀에 아티스트가 채희랑 현지밖에 없으니까 어거지로 밀고 들어오는 것도 아니잖아요.”

윤팀장님도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그리곤 고개를 돌려 고팀장님과 2팀의 실장, 그리고 최실장님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린 하려던 얘기 마저 하러 갈까?”

“네.”

그들은 함께 소회의실로 들어갔다.

***

팀에 관한 것은 앞으로의 결과를 봐야 알겠지만, 대부분이 얼추 결정이 난 상황.

나는 그쪽에 더는 신경을 쏟지 않고, 그보다 더욱 중요한 곳에 신경을 쏟기로 했다.

나와 송하연이 만든 현지 후속곡의 뮤직 비디오 촬영.

이미 안무도 완벽하게 준비됐고, A&R팀이 만든 두 번째 곡 또한 무사히 녹음을 마친 상태였으니.

이제 정말 컴백이 머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그 두 번째 곡은 아직 안무도 받지 않았고 또 뮤비까지 찍어야 하니, 컴백이 바로 코앞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아마 채희의 영화 촬영이 끝날 때쯤에는 컴백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제 촬영이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기도 하니.

“승진 축하드려요.”

뮤비 촬영장으로 잡힌 양평으로 출발하기 전에, 샵에 먼저 들르기 위해 현지를 픽업했는데.

그녀는 차에 올라타자마자 예쁘게 포장된 조그마한 상자를 내게 내밀었다.

“선물이야?”

“네. 비싼 건 아니에요.”

값이 무슨 상관이랴.

승진 선물을 챙겨줬다는 마음이 중요하지.

나는 가볍고 자그마한 선물을 건네받고는, 포장을 조심스럽게 뜯어 상자를 열었다.

“오!”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탄성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 안에 놓인 아주 작은 것을 천천히 꺼내어 봤다.

넥타이 핀.

값비싼 브랜드는 아니었으나, 심플하면서도 멋드러졌다.

“고마워. 넥타이 할 때마다 꼭 이거 낄게.”

활짝 웃으며 말하니, 그녀는 내 반응이 만족스럽다는 듯 싱그럽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앞으로 정장 입을 일이··· 아! 있긴 있다.

연말 시상식 시즌.

그때 이 넥타이 핀을 착용하고 신인상을 받는 현지를 축하해주는 거지.

‘무조건 상 받을 수 있게 만든다.’

그녀의 선물이 내 의욕을 더욱 고취시켰다.

우리는 근처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때우고는, 본격적으로 1박 2일의 촬영 일정을 소화하러 출발했다.

***

며칠간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현지의 뮤직 비디오 촬영 일정을 함께 하고, 그 뒤에는 송하연과 다시 앨범 작업을 하고.

또 그 뒤에는 현지의 두 번째 곡 녹음까지 했으니 시간이 빨리 갈 수밖에.

다만,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내 마음 한 켠에는 채희에 대한 미안함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이제 나 없이 잘하기도 하고, 어느덧 영화 촬영도 익숙해졌을 테니 마음을 놓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안한 건 미안한 거다.

그녀에게 소홀한 것도 사실이니까.

전화만 하면 뭐해. 현장에 가지를 않는데.

한실장님이 어째서 3팀에 남기로 했는지 이제야 확실히 공감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는 이해는 했을 지언정 제대로 공감은 하지 못했었거든.

아무튼 내가 이렇게 바쁘게 일하는 사이, 회사에서는 연일 회의가 진행됐고.

결국에 우리가 결정한 대로의 결과가 나오게 됐다.

한실장님은 3팀을 맡게 되어 한팀장님으로, 최실장님은 내가 있는 4팀을 맡게 되어 최팀장님으로.

그리고 4팀에는 성호 삼촌, 송하연, 현지, 채희까지 넷.

실장은 나를 포함, 최팀장님을 따라 1팀에서 오신 한 분까지 둘.

로드 매니저는 무려 8명이나 들어왔다.

이렇게 4팀의 멤버들이 모두 확정이 됐으니, 우리는 자연스레 회식 자리를 만들었다.

“이제 정말 매니저님이랑 같은 팀이네요?”

치이익- 고기가 익어가는 불판만을 바라보는 채희의 옆에 딱 달라붙어 열심히 고기를 굽고 있었는데, 송하연이 우리 테이블로 잔을 들고 와 앉으며 말했다.

“그러게요. 감개무량하네요. 채희야, 이거 먹어. 다 익었다.”

채희는 대답없이 내가 접시에 올려준 고기를 젓가락으로 집었다.

아예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있는데, 없는 사람처럼 취급하고 있는 거였다.

아까까지도 전화했으면서 막상 만나니까 이러는 거 보면, 그 의도는 뚜렷하지.

자기 삐졌으니까 달래달라는 뜻.

그래서 나는 그에 맞춰 열심히 미션을 수행 중이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송하연은 소주병을 들어 채희에게 내밀었다.

“한잔 받으실래요?”

“앗! 네, 선배님!”

내 말은 귓구멍 근처에도 들어가지 않더니, 송하연의 말에는 득달같이 움직이며 두 손으로 공손히 잔을 받쳤다.

채희의 잔을 채워주며, 송하연은 조곤조곤한 어조로 말했다.

“미안해요. 담당도 아닌데 제가 염치없이 욕심부려서 바쁘신 거예요. 저 많이 원망했죠?”

“아, 아뇨! 선배님은 전혀 원망 안 했어요! 진짜요!”

척 보면 안다.

채희는 지금 거짓말 중이었다.

‘원망했네, 했어.’

나도, 송하연도.

“크흠. 아이구. 난 화장실 좀 가야겠다.”

나를 제외한 우리 팀 유일한 실장인 정실장님이 어색한 연기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자기 잔도 함께 들고 일어난다.

설마 저게 안 보일 거라고 생각한 건가?

“앨범 작업도 이제 거의 다 끝나가요. 이제 이것만 끝나면 앞으로는 뺏고 싶어도 못 뺏으니까 잠시만 이해해줘요. 제가 좋은 앨범 만들고 싶은 욕심이 많아서 그래요.”

“네, 네!”

말투와 표정에서 저렇게 진심이 팍팍 느껴지니, 채희도 예의 바르게 손을 모으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 탓도 있지 뭘. 내 시나리오 골라주느라 중간에 시간이고 체력이고 쏟았을 텐데.”

얼굴이 불그스름해진 성호 삼촌이 씨익, 웃으며 정실장님이 비운 자리에 털썩 앉았다.

성호 삼촌까지 이러니 채희는 토끼눈을 뜨며 역동적으로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정말! 저는 괜찮습니다, 선배님!”

대선배이자, 최고의 배우까지 끼어드니 채희는 이제 자기가 죄라도 지은 것 같이 안절부절못했다.

나를 바라보며 간절한 도움의 눈길도 보내지 않는가.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성호 삼촌에게 물었다.

“얼마 전에 대본 리딩 하셨다면서요? 어땠어요?”

화제를 돌리기에는 이게 가장 적합할 것 같았다.

정말로 궁금하기도 했고.

역시.

삼촌은 미간을 모으며 “크으!” 감탄을 진하게도 표현했다.

“죽여줘 아주. 리딩 해보니까 딱 알겠더라고. 네가 왜 나한테 이걸 추천해줬는지. 나한테 너무 잘 맞아.”

그리곤 채희를 향해 말을 덧붙였다.

“채희 씨는 축복받은 거예요. 이런 매니저는 온 지구 다 뒤져도 없거든요.”

“제발··· 말씀 편하게 해주세요, 선배님···. 하연 선배님도···.”

둘은 끝끝내 말을 놓지 않았다.

채희가 안절부절못하는 게 재밌는 모양이다.

그런데.

다들 짓궂게 장난치고 있다는 걸 채희, 얘만 모르고 있다.

‘뭐, 그러니까 더 재밌는 거지만.’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는 와중에도, 현지는 저쪽에서 가만히 앉아 자리를 이동하지 않고 있었다.

‘그럼 내가 가야지.’

명색이 담당 매니저인데 회식 자리에서 채희만 챙기는 것도 이상하잖아?

“채희야, 나 잠깐 자리 좀 이동할게.”

“네?”

“저쪽에도 한 번 가봐야지.”

“아, 넵.”

잔을 들고 현지가 있는 테이블에 갔는데, 그녀는 내가 오자마자 내 소매를 살짝 잡고는 밖을 향해 눈짓했다.

“바람 쐬고 싶다고?”

대답 없이 고개를 작게 끄덕이는 현지.

‘술 많이 마셨나?’

그렇지는 않아 보이는데?

그런데 어쨌든 바람 쐬고 싶다면 쐬게 해줘야지.

나는 대수롭지 않게 그녀와 함께 가게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와보니 그녀의 얼굴은 토마토처럼 새빨개져 있었다.

방금 전 가게 안에서만 해도 하얗기만 했는데.

‘진짜 취했나?’

걱정이 되어 그녀를 유심히 바라봤다.

고개를 떨군 채, 바닥에 박힌 시선.

그리고 열렸다 닫혔다 하는 입.

얼굴과 귀, 목까지 다 빨개져 있었다.

그녀는 침을 꼴깍 삼키더니,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이···쁘다고··· 말해됴.”

지금 이 순간은 앞으로 오래도록 내 머릿속에 강렬하게 박혀, 절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았다.

“···이뻐.”

< 같은 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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