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성호, 송하연, 정채희, 유현지 >
회의가 끝난 직후부터 회사는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회의 전보다도 더욱 크게.
2본부, 그리고 4팀의 개설.
이에 더해 윤팀장의 본부장 승진과 박한울의 파격적인 실장 승진.
도저히 떠들썩하지 않을 수 없는 요소들이었으나, 직원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이러한 것들이 아니었다.
바로, 공석인 3팀과 4팀의 팀장 자리.
물론 저 둘 중 하나는 한실장이 맡게 될 게 뻔하니, 나머지 하나의 자리에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
한실장이 3팀의 팀장이 되면 결국 4팀이 남는 건데, 그 팀에는 정채희와 유현지, 그리고 박한울까지 있으니 더더욱 탐이 날 수밖에!
“고팀장님.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매니지먼트2팀 사무실에 실장이 들어와 말했다.
스케줄 중에 소식을 듣고 헐레벌떡 왔는지 숨이 고르지 못했다.
허나, 이에 대답한 건 고팀장이 아닌 다른 선임 매니저였다.
“야, 너 스케줄 중 아니야? 일은 똑바로 하고 와야지 인마! 고팀장님, 이따 끝나고 한잔 하실까요?”
“선배.”
“뭐.”
고팀장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렇듯 실장들이 공석의 팀장으로 밀어달라고 혈안이 되어 있었는데, 사실 2팀에 있는 실장들 중에 희망은 없었다.
1팀과 3팀만큼 눈에 띄는 성과가 없었으니까.
‘어차피 최실장이나 한실장이 할 텐데.’
눈앞에서 아웅다웅하는 실장들도 알긴 할 것이다.
성과와 능력, 상황을 모두 따져봤을 때, 1팀의 최실장과 3팀의 한실장이 3팀장과 4팀장이 될 거라는 것을.
하지만, 그래도 실낱 같은 희망이라도 물고 늘어져야 하는 것도 사실.
고팀장은 눈을 가늘게 뜨며 눈앞의 실장들을 바라봤다.
의미가 없긴 하나, 2본부장이 된 윤팀장에게 누구를 추천해야 할지를 고민하면서.
반면, 1팀의 상황은 이와는 또 달랐다.
강팀장은 입술을 짓씹으며 미간을 팍 구겼다.
사실 상황으로만 놓고 봤을 때, 자신에게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1팀에서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최실장이 1초라도 빨리 다른 팀으로 갔으면 하는 마음이 항상 있었으니까.
그런데.
‘송하연은?’
이성호는 어쩔 수 없었다.
그가 직접 최실장을 선택했기도 했으니 붙잡지 못할 게 분명했다.
아마 최실장이 3팀이나 4팀으로 가면 이성호도 함께 따라가게 되겠지.
‘송하연은 어쩌지?’
그는 회의가 끝난 뒤부터 계속 고심하고 또 고심했다.
이대로 송하연과 이성호가 함께 팀에서 나가면 1팀은 앙꼬 없는 찐빵이 되고, 자신은 직급이 같아진 최실장보다 입지가 현저하게 낮아질 게 뻔한 일이었다.
‘차라리 다른 실장을 밀어붙여버릴까?’
물론 모든 사안은 김본부장님과 2본부를 맡을 윤팀장의 손에서 결정될 터이나, 밀어붙이는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쓰읍. 어떻게 해야 되나···.”
강팀장은 볼펜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계속해서 고민했고.
전화하러 나갔다가 다시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는 최실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최실장, 잠깐 나 좀 보지.”
***
송하연과 함께 앨범 작업을 하던 도중.
나는 한실장님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예, 실장님.”
-어디냐?
“하연 씨 작업실이에요. 무슨 일 있어요?”
목소리가 평소와는 좀 다른 것 같아서 물었다.
기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진지한 것 같기도 하고, 심각한 것 같기도 하고.
-지금 옆에 하연이랑 같이 있어?
“네.”
마우스를 딸깍이던 송하연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밖에서 받을 걸 그랬나? 무슨 일이지?
-그래? 그럼 일단 회사로 빨리 와.
“아··· 네, 알겠습니다.”
내가 작업실에서 뭘 하고 있는지 알 텐데도 바로 오라는 걸 보면 급한 일이 있긴 한가 보다.
전화를 끊고 송하연에게 말하기 위해 입을 떼려던 찰나.
그녀의 핸드폰에서도 최실장으로부터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핸드폰과 나를 잠시 번갈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그대로 핸드폰을 귀에 붙였다.
“여보세요.”
그녀의 통화를 대놓고 엿듣는 것 같아서 나는 괜시리 내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습관처럼 인터넷 뉴스를 켜서 살폈다.
오늘도 평화롭고 일상적이다.
이 배우는 음주운전을 했구나.
“네, 작업실이요. 네. 같이 있어요. 네. 아뇨···. 저, 매니저님.”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덤덤한 얼굴을 한 채 고개를 돌렸다.
“네.”
“혹시 회사에 가실 거예요?”
“···네.”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다시 핸드폰에 대고 말했다.
“전 매니저님이랑 같이 갈게요.”
전화를 끊은 그녀와 나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 바라봤다.
나도 무슨 일인지 모르는 것처럼 그녀도 무슨 일인지 잘 모르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게, 어제 현지의 첫 번째 곡 녹음을 마쳤을 때까지만 해도 회사에서나 어디에서나 아무런 일도 없었거든.
오늘도 나랑 아침부터 함께 작업하는 중이었고.
연예계 일이란 게 늘 그렇듯이 루머나 논란이 될 일이 갑작스럽게 터졌거나, 아니면 우리가 여기 있는 동안 회사에서 무슨 일이 생겼거나.
둘 중 하나일 테지만 방금 전에 살핀 인터넷 뉴스에서는 우리 회사와 관련된 뉴스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면 아직 안 터진 건가?
“그럼··· 갈까요?”
“네.”
우리는 그렇게 영문도 모른 채로 작업실에서 나와 함께 차에 올랐다.
그리고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마주친 직원들에게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승진 축하해요, 박실장님.”
“···!”
“···!”
“어머, 몰랐구나? 하하!”
나와 송하연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녀도 놀란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실장? 내가? 벌써? 갑자기?’
머릿속에 물음표가 여러 개 떠오르고 있었는데, 그녀의 표정이 시시각각 바뀌기 시작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동공이 흔들리고,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그러다가 이내, 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승진 축하해요. 그럼 빨리 들어가볼까요?”
발걸음을 재촉하는 그녀.
걷는 속도가 방금 전보다 명백하게 빨라져 있었다.
***
그녀는 1팀으로 가고, 나는 3팀에 도착했다.
내 승진 말고도 무슨 일이 있긴 한가 보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느꼈던 묘한 분위기도 그렇고, 얼굴에 여러 가지 감정을 담고 있는 윤팀장님과 한실장님을 봐도 그러했다.
“무슨 일이에요? 저한테는 갑자기 실장이라고 하던데.”
나는 곧바로 물었고, 팀장님은 오늘 있었던 일을 모두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아침에 갑자기 잡힌 회의, 그리고 그 결과.
나는 그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몇 번이나 놀랐고, 설명이 모두 끝난 뒤에야 그들의 표정이 왜 이러한 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 나도 지금 그들과 비슷한 표정이지 않을까?
“축하합니다, 팀장님. 아니, 이제 본부장님이시네요?”
윤팀장님은 기쁨과 걱정, 고민, 흥분이 모두 뒤섞인 얼굴로 미소 지었다.
“고마워. 네 덕분인 것 같다. 그리고 너도 승진 축하한다. 1년도 안 돼서 실장 달았는데 이상하게 안 느껴지는 것도 참 신기해?”
나는 가만히 입을 다물었고, 그들 또한 입을 다물었다.
잠시 입을 달싹거리던 팀장님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나와 팀장님의 시선은 한실장님에게 향했다.
“넌 어떻게 하고 싶냐?”
한실장님은 잠시 대답없이 진중한 얼굴이 되었다가.
이내, 피식 웃으며 가벼운 어투로 물었다.
“3팀에 남을지, 아니면 4팀에 갈지요?”
“그래. 이왕이면 4팀으로 가. 3팀이랑 4팀은 이제 내 소관이니까 그 정도는 할 수 있어. 그렇게 하면 아마 3팀장은 최실장이 될 것 같은데.”
나와 함께 있으면 다른 것들은 모두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그래왔던 것처럼.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기쁨을 누림과 동시에 걱정이나 고민까지 함께 짊어지게 된 건 다름이 아니었다.
채희와 현지를 제외하고 3팀에 남아있는 팀원들과 아티스트들.
한실장님은 속으로 결정을 내렸는지,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말했다.
“형, 우리 애들은 우리가 책임져야지. 안 그래도 소홀해진 것 같아서 미안해 죽겠는데 한울이만 보고 옮기라고? 현지나 채희는 얘가 알아서 잘하겠지만 원래 있던 애들은 아니잖아. 내 담당 아닌 다른 애들도 눈에 밟히고.”
나와 윤팀장님은 그런 한실장님에게 반대의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역시 좋은 사람이네.’
내가 속으로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데, 윤팀장님은 입꼬리를 올리면서도 일부러 미간을 구겼다.
“짜샤. 형 아니고 본부장이야.”
***
마침내.
마침내 기다리던 기회가 찾아왔다.
최실장은 강팀장을 따라 옥상으로 올라왔다.
직원들이 참 할 말이 많은지 아니면 일이 없는지, 이미 옥상에는 선객들이 많이 자리하고 있었다.
허나, 강팀장과 최실장이 구석으로 향하니,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흥미롭게 눈을 빛내면서도 자리를 슬그머니 비켜주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최실장은 그가 자신을 불렀을 때, 이미 머릿속으로 어떤 말이 오갈지 몇 가지 예상하기는 했다.
가장 가능성 높은 건 자신더러 1팀에 남고 다른 실장이 가면 어떻겠냐는 것.
두 번째로 가능성이 높은 건 송하연을 1팀에 두고 가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강팀장이 꺼낸 예상치 못한 말에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성호 배우랑 하연이 데리고 2본부로 가라.”
아쉬움이 철철 흘러 넘치는 목소리.
최실장은 예상치 못한 전개에 눈을 끔뻑였다.
박한울이 성과를 냈을 때는 폄하하며 능력을 부정하기도 했고, 외부 인맥 말고는 눈에 띄는 능력도 없어 못난 모습도 많이 보였으며, 얼마 전에는 서로 대립각을 세우며 으르렁거렸던 사이였는데.
이렇게 선뜻 모든 걸 내어준다고 하니 쉬이 믿지 못할 수밖에.
“···예?”
강팀장은 얼굴을 와락 구기며 재차 말했다.
“나라고 이러고 싶어서 그런 줄 알아? 이성호 배우는 붙잡을 엄두도 안 나고, 하연이 걔도 네가 가면 담당이라는 이유로 같이 가려고 하겠지. 3팀이든 4팀이든 박한울 있는 2본부로 가려고 할 거 뻔하잖아. 걔도 평소에는 괜찮은데 고집 부릴 때는 너무 세. 어차피 붙잡아도 안 잡힐 애들 등 떠밀어서 보내줄 테니까 대신 너도 하나는 약속해줘라.”
“무슨 약속인지··· 한 번 들어보고요.”
강팀장은 혀를 쯧, 차며 말했다.
“4팀에 가든 3팀에 가든 서로 협력은 적극적으로 하자고. 우리 애들도 좀 잘돼야지.“
최실장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무척이나 속이 좁고 그릇이 작은 사람.
상사로서는 그다지 좋은 사람은 아니었으나, 다른 팀으로 있으면 꽤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능력과 분수에 맞지 않는 욕심은 많아도, 아티스트를 위할 줄은 아는 사람이니까.
“알겠습니다. 그건 걱정 마세요. 같은 식구니까요.”
“그리고··· 박한울 도움도 가끔은 받을 수 있지? 4팀 가게 되면 네가 잘 좀 말해봐. 이성호 배우 작품 골라준 거나 하연이 돕고 있는 것처럼 도와줄 수 있는지. 난 대표님 귀에 어떻게 들어갈지 몰라서 엄두도 못 내겠다.“
최실장은 큭큭,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요. 저도 강요할 수는 없는 입장일 것 같아서 확답은 못 드리겠네요. 그런데 옆에서 지켜본 바로는, 말 꺼내는 걸로 걱정하지는 않으셔도 될 겁니다. 팀장님이랑은 달라서 속이 좁은 사람은 아니거든요.”
“뭐 인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도 아까워 죽을 것 같은 얼굴이시잖아요.”
“아깝지! 아까워 죽지! 너라면 송하연이랑 이성호가 팀에서 나가는데 안 아쉽겠냐?”
“아까워 죽죠.”
“거 봐. 지도 어지간히 속 좁으면서 무슨.”
송하연이 옥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강팀장이 그렇게 아쉬움에 사무쳐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을 때였다.
그녀는 이미 소식을 들었는지 뚜벅뚜벅 빠른 발걸음으로 다가왔다.
“저 왔어요. 무슨 일로 부르셨어요?”
최실장은 그녀의 눈에 깃든 열망을 발견했고, 씨익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같이 가자고. 4팀.”
최실장의 목표는 2본부 중에서도 오로지 박한울이 있는 4팀.
송하연 또한 그러할 것이다.
그녀는 강팀장과 최실장의 얼굴을 살폈고, 둘이 방금 전까지 어떤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지 알아챌 수 있었다.
2본부가 생긴다는 것과, 현재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이미 1팀 사무실에서 듣고 온 뒤였으니까.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좋아요. 그럼 바로 3팀으로 가볼까요? 아, 이제는 4팀인가?”
“아직 안 만들어졌으니까 3팀이지.”
최실장이 웃으며 대답했는데, 옆에서 부들부들 떨던 강팀장이 끼어들었다.
“하연아, 너무 쉽게 가는 거 아니냐?”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너무 아쉬워하지는 마세요. 저한테 박매니저님이 꼭 필요해서요.”
강팀장은 쩝, 입맛을 다셨다.
사실 그녀는 스스로 이렇게 성장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독불장군이라 부르곤 하나, 그말인즉슨 그만큼 혼자 알아서 잘 해낸다는 뜻을 담고 있기도 했다.
잘 해내지 못했으면 독불장군이라는 별명이 붙여질 일도 없었을 테니.
실질적으로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 1팀에 남기보다는, 박한울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게 여러모로 상책.
송하연 곁에 그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는 무척이나 뚜렷하게 나타나기도 했으니까.
“가끔 도와줄 수 있지? 우리 애들 곡 좀 만들어주거나, 응?”
“제가 다른 사람 곡은 안 쓰는 거 아시잖아요.”
유현지의 경우처럼 박한울이 옆에 붙어 있으면 모를까.
그 생략된 말을 알아들었기에, 강팀장은 이어지는 그녀의 말로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대신 편곡이나 조언 같은 건 괜찮을 것 같아요.”
“그래. 약속했다?”
“네.”
마지막 말을 남긴 뒤, 최실장과 송하연은 등을 돌려 발걸음을 옮겼다.
가벼운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가는 둘.
“그런데요, 실장님. 가기 전에 확실히 해두고 싶은 게 있어요.”
걸음을 멈추지 않으며, 최실장은 대답했다.
“알아. 네가 원하는 게 뭔 지.”
“사정이 잘 안 되면 전 혼자서라도 그분 쪽으로 가고 싶어요.”
“···안다니까.”
하연은 민망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혹시나 해서요. 아무튼 팀장 승진 축하드려요.”
“아직 확정은 아니긴 한데··· 고맙다.”
최실장은 낮게 웃음을 흘렸다.
음악이나 스케줄 등 일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참 부드럽고도 편안한 아이였다.
음악에 간섭하거나 일에 관련하여 문제가 생기면 눈빛이 돌변한다는 게 문제였지만, 그것도 이제 박한울이 옆에 있게 될 테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3팀으로 향하는 최실장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좀처럼 진정시키기가 힘들었다.
만약.
뜻대로 되기만 한다면.
‘이성호, 송하연, 정채희, 유현지.’
4팀의 구성은 이 네 명이 될 테니까.
기대가 안 될래야 안 될 수가 없지 않겠나.
< 이성호, 송하연, 정채희, 유현지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