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하산이 천재매니저였다고-67화 (67/170)

< 2본부와 4팀 >

송하연의 작업실에서 음반 작업을 하는 도중.

나는 현지의 곡이 나왔다는 A&R팀의 연락을 받고는 곧장 회사로 향했다.

‘어떻게 나왔으려나.’

부디 잘 나왔으면 좋겠다.

완벽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약간의 수정만 거치면 두 곡으로 컴백할 수 있을 만큼만이라도 되길.

난 회사에 도착하고 바로 A&R팀으로 가, 작업실의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다 죽어가는 팀원들의 얼굴이 전부 내 쪽으로 향했다.

후끈한 열기와 함께, 여러 가지 냄새도 뒤섞여 풍겨왔는데, 이게 무슨 냄새인지는 곳곳에 놓인 흔적을 보고 바로 알 수 있었다.

겹겹이 쌓인 컵라면 용기와 피자 박스, 그리고 꽤 높이 쌓인 믹스 커피 종이컵과, 한쪽에 나란히 놓인 에너지 드링크 캔들까지.

‘대체 얼마나 갈렸길래···.’

그들의 눈빛은 마치 결사항전 중인 전사들을 떠올리게 했다.

초조함과 긴장감, 그리고 비장함마저 엿보였다.

“안녕하세요. 연락 받고 왔습니다. 3팀 박한울입니다.”

박부장님은 입을 열며 작게 미소를 흘렸다.

“유현지 씨 곡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작곡가를 쥐어짜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네요.”

나는 그의 이러한 태도에서 언뜻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

자신감이 없었다면 내게 질투와 같은 저열한 감정을 내보이거나, 아니면 내 능력을 애써 낮잡아 무시하며 치졸하게 굴었을 테니까.

“작곡가님뿐만 아니라 직원분들도 쥐어짜내진 것 같은데요?”

피식 웃으며 너스레를 떠는 내 말에, 직원들이 전부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진짜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현지 씨 녹음도 앞두고 있으니까 기한도 촉박했고요.”

“와, 저는 작곡가님 달래느라고 아주... 어휴. 지금쯤이면 아마 작곡가님이 저희 욕 신나게 퍼붓고 있을 것 같은데.”

“아니, 매니저님은 어떻게 그렇게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거예요? 그냥 A&R들어오세요. 아니면 프로듀서를 하시든가.”

“매니저님은 지금도 프로듀서시지. 큭큭. 녹음할 때 되면 우리 또 입 다물고 아무 말도 못할걸? 우리보다 더 잘 보시니까.”

이상하게도,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에선 호의가 넘실거리며 자리하고 있었다.

나 때문에 죽을 뻔했다고 이렇게 볼멘소리들을 뱉어내는데도, 그 밑바닥에 친근감이 있다는 게 느껴졌다.

‘두 곡 준비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해서 그런가?’

저번 회의에서, 내가 준비한 곡으로 컴백하는 쪽으로 물 흐르듯이 진행되는 분위기였는데.

나는 거기서 ‘익숙함’을 중요한 요소로 들어, A&R팀이 준비한 곡까지 두 곡으로 컴백하자고 했었다.

‘아무래도 그거 때문인 것 같네.’

박부장님은 내게 씩,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나쁘지 않을 거예요. 매니저님이랑 송하연 씨가 같이 준비한 곡 정도의 수준을 기준으로 잡았거든요.”

“네.”

그들이 능력이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는데, 이런 말까지 들으니 점점 기대가 커졌다.

“여기 앉으세요.”

박부장님이 가리킨 의자에 앉자, 분위기가 순식간에 팽팽하게 당겨졌다.

호의는 호의고, 기준에 맞는 건 별개의 얘기니까.

대체 어느 A&R팀이 로드 매니저한테 이러겠냐마는, 이미 이들이나 나나 새삼 그런 걸 생각하거나 따지지는 않았다.

“설명은 필요 없으시죠?”

“네, 바로 들려주세요.”

고개를 끄덕인 그가 곧장 음악을 틀었고, A&R팀의 작업실은 음악으로 가득 채워졌다.

나는 눈을 감고 귀에 흘러 들어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다른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유현지가 이 노래를 불렀을 때, 이 노래로 무대에 섰을 때.

나는 딱 이 두 가지를 기준으로 판단하면 된다.

그리고.

아직 1절이 채 끝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내 입가엔 부드러운 미소가 걸리게 되었다.

“···!”

“···!”

눈을 반개하니,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얼굴에서 기대와 환희가 함께 커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곡이 전부 다 끝났을 때.

그들은 숨을 죽이며 내 입을 바라봤다.

‘말해 뭐 해.’

역시 이들에게 기회를 준 건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내 입가에 커다랗게 환한 미소가 지어지자, 이들은 그제서야 꾹꾹 눌러왔던 기쁨을 터뜨렸다.

“됐다!”

“으아아아! 퇴근이다아아!”

“부장님! 오늘 회식 안 하나요?”

“흐흐. 회식이냐 퇴근이냐, 뭘 골라야 되지?”

이어지는 박부장님의 말에, 직원들은 아주 커다랗게 함성을 내질렀다.

“회식하고 다들 내일 나오지 마.”

“와아아아아!”

“이야아아! 부장님 최고! 사랑합니다!”

나는 이 광란의 광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조금 수정할 부분 있다는 건 모레 말씀드려야겠다.’

지금 말하면 죽을지도 모르니까.

***

나와 송하연이 함께 만든 노래

오늘은 이 노래를 녹음하는 날이었다.

오후 1시.

나와 송하연, 유현지, 그리고 A&R팀 박부장님과 직원 둘, 거기에 엔지니어까지.

우리는 녹음실에 모였다.

“준비는 잘 됐어요?”

“네, 선배님. 곡 너무 마음에 들어요. 저한테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현지의 말을 듣고 옅은 미소를 보이는 송하연.

이곳에 모인 멤버는 데뷔곡을 녹음했을 때와 같았지만,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정말로 한 식구가 된 것처럼 편한 분위기가 가득하다.

“저희 곡도 들어봤어요?”

박부장의 물음에 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그것도 너무 마음에 들어요.”

박부장님이 안도하며 나를 흘깃 쳐다봤다.

아니, 노려본 건가?

곡을 조금만 손보자고 말했을 때 보인 그 황망한 표정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결국 그렇게 손을 본 다음에 본인도 만족했으면서.

나는 크흠, 가볍게 헛기침을 하곤 현지를 찬찬히 살폈다.

영상팀에서 우리의 녹음 과정을 촬영하러 올 테니까.

“현지야, 나 봐봐.”

“네.”

“음.”

저 뽀얗고 깨끗한 피부 위엔 메이크업이 아주 옅게 되어 있었다.

반팔 티와 트레이닝복 바지도 헤지지는 않았고, 전체적으로 자연스럽고 예쁘게만 보인다.

“됐다. 예쁘네.”

그녀가 빙그레 웃을 때, 마침 문이 열리며 영상 팀 직원이 카메라를 들고 들어왔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요?”

짝- 박수를 치며 싱그럽게 외치는 송하연의 말에 우리는 녹음을 시작했다.

***

눈을 감으면 아직도 그때의 전율이 생생하다.

그 열광하는 관객들도 선명하게 기억나고,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것 같은 분위기도 피부로 느껴지는 듯했다.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송하연.

그녀가 부러웠고, 닮고 싶었다.

팬들과 저렇게 즐기면 얼마나 행복할까.

저런 분위기를 자신도 만들어내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의 곡으로는 저렇게 열광하며 미친듯이 뛰어놀게끔 할 수는 없으니, 그렇게 할 수 있는 새로운 곡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곡은 지금 기대를 뛰어넘는 사운드로 헤드폰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시작은 핵심 멜로디를 드러내며 반주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게끔.

조금씩 조금씩 고조되며 하이라이트에서의 최고점을 길게 가져갈 수 있게끔.

유현지는 이 곡의 핵심 매력 포인트 중 하나가 되는 코러스 부분을 넘긴 뒤에 입을 열었다.

“벌써 지치면 어떡해. 아직 음악이 나오고 있잖아.”

***

코러스까지 모두 녹음을 마친 뒤.

누군가는 입술을 달싹거리고, 누군가는 침을 삼켰으며,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한 번··· 들어볼까요?”

엔지니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녹음이 다 된 음악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도입부는 핵심 멜로디와 더불어 반주의 존재감을 어필했다.

그리고 그 뒤로, 몇 겹이나 쌓은 코러스 화음이 작게 깔렸다.

코러스가 미리 귀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장치.

하이라이트에서 이 코러스 소리를 폭발시키면 더욱 극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런 장치가 깔린 뒤에야 비로소 그녀의 보컬이 흘러나왔다.

-벌써 지치면 어떡해. 아직 음악이 나오고 있잖아.

첫 소절부터 가슴에 박히는 목소리.

핸드폰으로 주고받았던 녹음본을 들었을 때도 놀랐지만, 지금은 더했다.

‘목소리가 무슨···.’

확실하다.

그녀는 데뷔 이후, 재능이 더 개화되었다.

단순히 천재라서 재능이 알아서 성장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경험이 조금 쌓인 덕분일 수도 있다.

그도 아니면 그녀가 원하는 느낌의 곡을 그녀에게 잘 어울리게 만들어줬기 때문일 수도 있다.

“와!”

“하.”

“미쳤다···.”

이유야 뭐가 됐든 좋다.

마침내 곡이 하이라이트를 지나갈 때, 우리는 몸이 뜨겁게 달궈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으니까.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모두의 얼굴에 ‘대박!’이라는 글자가 적혀져 있는 듯했고, 몸을 가만두지 못하며 손이나 발, 고개를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작업을 한 우리가 이럴진데, 믹싱과 마스터링이 다 끝난 음악이 무대 위에서 흘러나오면 어떻게 될까?

팬들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상상만 해도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그렇게 음악이 다 끝났을 때, 나를 포함해 모두의 시선이 현지의 얼굴에 닿았다.

그리고 현지는 우리를 이렇게 들뜨게 한 게 무색하게도, 평온한 얼굴로 순박한 미소를 띠우며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오빠, 잘 된 것 같아요?”

또다.

또 웃는 얼굴로 이런 질문을 한다.

분위기로 보아, 그리고 내 반응으로 보아, 이미 답을 알고 있을 텐데.

그렇지만 나는 또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해줬다.

“응. 너무 잘했어.”

“그래요?”

그녀가 만면 가득 함박미소를 띠자, 지켜보던 모두의 눈매가 짙은 호선을 그렸다.

나도 그렇고.

그런데 문득.

한쪽에서 조용히 우리를 찍고 있는 카메라가 눈에 들어왔다.

곡에 너무 집중하는 바람에 깜빡 잊었는데.

‘설마 이 빙구 웃음도 내보내진 않겠지?’

나는 급히 입가를 가렸다.

***

녹음이 끝난 다음날.

회사는 무척이나 어수선해졌다.

대표와 본부장, 그리고 매니지먼트팀 팀장급들의 회의가 바로 오늘 당장 잡혔기 때문에.

“강팀장님, 무슨 회의일까요?”

“나도 모르지. 중요한 것 같긴 한데···. 쯧.”

무엇을 회의할 지 모르니, 이런저런 말만 무성하게 나돌 뿐이었다.

‘1팀에서 강팀장이 내려오거나 쫓겨나고, 그 대신 최실장이 팀장을 맡을 것이다’라는 추측도 있었고.

‘1팀에는 이미 송하연과 이성호가 있고, 3팀에는 무섭게 성장하는 차세대 슈퍼스타 정채희와 유현지가 있으니, 2팀으로 누구 하나는 가게 될 것이다’라는 추측도 있었다.

“아니면 혹시 박한울을 실장으로 올리려는 거 아닐까요?”

“야, 그게 이렇게 거창하게 팀장급만 모아서 회의할 일이냐? 그리고 이렇게 어떤 회의할지도 미리 안 알려주고?”

“아, 하긴.”

흡연장과 휴게실, 그리고 사무실에서는 계속해서 이야기가 맴돌고 있었다.

“선배님, 혹시 4팀 만드는 거 아닐까요?”

“그런가? 하긴 요즘 좀 빡빡하긴 했지.”

“그래서 4팀장 결정하는 거나 팀 분배도 새로 해서 완전히 개편하려는 거죠.”

“거기까진 너무 네 희망사항 같은데? 왜? 지금 팀 마음에 안 드냐?”

“에이. 그럴 리가요. 제가 얼마나 우리 팀을 좋아하는데.”

“쓰읍. 아닌 것 같은데···.”

입과 소문은 참으로 무서운 게, 어느 정도 떠돌다 보면 결국 정답만이 남게 되기도 한다.

그리하여 4팀이 만들어질 거라는 말이 직원들 사이에서 확정적으로 굳혀져 갈 즈음.

마침내 회의 시간이 다가왔고.

박대표와 김본부장, 1팀의 강팀장과 2팀의 고팀장, 마지막으로 3팀의 윤팀장까지 한 자리에 모여 회의가 시작됐다.

먼저 말을 꺼낸 건 박대표.

그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세 팀장들을 담담하게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다들 고생 많았어요. 회사가 이렇게 빨리 성장할 수 있었던 건 모두 여기 모인 우리 팀장들 덕분입니다. 그런데, 시스템은 그대로 있고 회사만 성장해서 그런지, 아티스트 관리에 여유가 없다고 들었거든요. 그래서 우리도 성장세에 맞춰 본부를 개편하려고 합니다.”

여기까진 다들 예상한 얘기.

그러나, 그 뒤에 이어진 말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2본부를 만들 거고, 윤팀장은 기존에 맡았던 3팀이랑 새로 생길 4팀을 관리하게 될 거예요.”

2본부와 4팀의 개설과, 윤팀장의 승진.

“그리고-“

여기까지도 충분히 놀랄 만한데, 다음 회의에서는 사내 모든 매니저들과 아티스트들을 뒤집어 놓기에 충분한 것들을 다룰 예정이었다.

비어버린 3팀장 자리와 새로 오를 4팀장의 인사를 어떻게 할지, 그리고 새로 개설될 4팀에 어떤 매니저들과 아티스트가 들어오게 될지.

4팀을 소수 체제로 갈지, 아니면 처음부터 다른 팀들과 숫자를 엇비슷하게 맞출지.

이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지만, 확실하게 정해진 게 딱 하나는 있었다.

“4팀에는 정채희 배우랑 유현지 가수가 소속될 겁니다.”

사실, 이는 매우 당연한 결정이었다.

회사의 성장도 성장이지만, 애초에 이런 회의가 열린 이유가 1팀과 3팀의 업무 포화 때문이었기에.

갑자기 본부장으로 승진하게 되어 얼떨떨한 윤팀장, 그리고 서로 흘깃흘깃 보며 눈싸움을 하고 있는 고팀장과 강팀장.

그들의 귀로 대표의 가벼운 목소리가 이어 들려왔다.

“아, 참. 그리고 3팀의 박한울 매니저는 실장으로 승진할 겁니다. 이유는 충분히 아시리라 믿어요.”

자신의 아들이기 때문이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게 하라는 주의의 뜻이 담겨 있었지만.

질투가 아니고서야 그렇게 생각할 사람은 이미 이 회사에 단 한 명도 없었다.

< 2본부와 4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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