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하산이 천재매니저였다고-66화 (66/170)

< 긴가민가하는 짝사랑 얘기라는 거예요? >

이제 영화도 후반부 촬영에 들어갔다.

이제 크랭크업까지 얼마 남지 않은 것.

듣기로는 이영진 감독의 영화는 우리보다는 살짝 느리게 있다고 한다.

그쪽은 우리보다 약간 더 일찍 시작하긴 했지만, 일찍이 해외 로케도 많이 가고 규모도 더 크니까 그러겠지.

그쪽도 우리도, 모두 서로를 피해갈 생각은 없어서 개봉 시기도 겹친다.

그래봤자 1~2주?

추석 연휴가 지날 즈음이면 이제 어느 정도 판가름이 나겠지.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내 머릿속 상념을 지워냈다.

그녀에게 좋은 소식을 전할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채워졌거든.

나는 익숙한 현관문 앞에서 비밀번호를 누르고 친숙한 공간에 들어섰다.

“오빠, 오셨어요?”

부엌 쪽에서 채희의 목소리가 들리고, 보글보글 소리와 함께 구수한 냄새가 피어났다.

그녀는 앞치마를 한 채, 슬리퍼를 질질 끌고 현관으로 나와 나를 맞이해줬다.

“냄새부터 맛있겠죠? 메뉴 뭐게요?”

“된장찌개?”

“정답! 제가 특별히 준비했다구요.”

“특별히? 오늘 무슨 날이야?”

채희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네? 아뇨? 그냥 제가 특별히 준비했다는 건데요?”

난 실소를 흘리며 말했다.

“잘했어. 사실 특별하다면 특별한 일도 있고.”

오늘 일어나자마자 전달받은 특별하고도 좋은 소식.

나는 토끼눈을 뜨고 있는 그녀를 보며 씨익 미소 지었다.

“우리 일본에서 찍은 광고 어제부터 나온 거 알지? 그거 나오자마자 지금까지 계속 일본 실검 1위래.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아, 오빠는 진짜 왜 맨날 말을 하다가-“

“네가 입었던 청바지 그거, 인터넷 포함 모든 매장에서 싸그리 품절됐대. 광고 올라온 지 1시간 만에.”

“···!”

헛숨을 집어삼키며 눈을 뎅그랗게 뜨는 채희.

그래, 이 맛이지.

내 입가에 아주 진한 미소가 번졌다.

이 반응을 보려고 내가 계속 뜸을 들였던 거다.

계속 이런 반응을 보려면 좋은 일이 꾸준히 생기도록 만들어야겠지.

앞으로도 쉴 틈은 없을 것 같다.

“매, 매진이요? 한 시간 만에?”

그녀의 입꼬리가 씰룩씰룩 움직인다.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어머! 어머!”소리를 내뱉기까지 한다.

“제가 그렇게 핏이 좋긴 한가 봐요?”

이젠 완전히 웃는 낯으로 물어보는데, 참 희한하지?

이렇게 좋아할 때는 왜 또 놀리고 싶어질까.

“아니, 보정으로 엄청 만졌대. 아주 힘들어 죽을 뻔했다더라.”

***

그 시각, 국내 인터넷에서도 이 소식이 전달되기 시작했다.

유튜브와 커뮤니티, SNS.

기사보다도 한 발 더 빠르게 이곳에서 먼저 일본의 광고 영상과 일본 반응을 다루었다.

[정채희 일본 광고 강림. 청바지와 맥주 광고로 야후 재팬 실검 1위까지··· 일본반응]

[헌팅포차에서 만난 사이로 초대박 터진 정채희. 드라마 완결 후에 일본인들이 더 충격받은 이유는?]

그 영상들을 들어가보면 번역된 일본어 댓글들이 주르륵 나온다.

-일본제패wwww 한류스타 얼마나 위대한 거냐

-정채희로 단번에 세계 최고 청바지 기업 돼버렸다www 나도 맥주는 저걸로 먹어야지.

-안 그럴 수가 없는 게 광고 정말 장난 아닌 것 같아. 이건 더 이상 광고라고 할 수준이 아니게 되어버린 거 아냐?

-틀렸어. 광모 모델은 정채희가 아니라 ‘신수아’다wwwww

한국의 네티즌들은 일본인들의 이런 격렬한 반응들을 본 뒤에야 광고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순서가 뒤바뀌었지만 원래 국뽕이란 이런 것.

허나, 광고를 보게 된 네티즌들은 국뽕 때문이 아닌 광고 그 자체에 매료되어버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광고에 나온 정채희의 모습 때문에.

-와 앀ㅋㅋㅋㅋ 내가 알던 일본 광고 맞냐? 하나도 안 촌스럽고 그냥 영상화본데?ㅋㅋㅋㅋ

-얘 진짜 이쁘긴 이쁘구나···.

-미모 머선129,,, 피곤할 정도다···.

-진짜 정채희 최고.. 최고.. ㅜ 예뻐서 눈물만 나온다.

인터넷 언론은 뒤늦게야 이 소식을 다루기 시작했다.

[새로운 한류스타의 탄생! 정채희, 그녀의 일본 인기를 알아보다.]

[<헌팅포차에서 만난 사이> 정채희. 일본 인기 비결은? 광고로 매진 행렬+매출 폭등!]

[광고업계가 주목하는 슈퍼스타! 일본 인기가 가져다줄 국내의 변화는?]

일본에서의 이 거대한 인기가 끼칠 국내에서의 변화.

이는 명확했다.

높아지는 몸값, 높아지는 인기, 높아지는 인지도, 높아지는 급.

그야말로 ‘진짜’ 한류스타가 된 이들에게서만 보이는 전형적인 흐름이었다.

***

가뜩이나 바빴던 HJ엔터테인먼트는 박한울이 들어온 순간부터 서서히 더 바빠지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정말 역대 최고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탑 배우 이성호의 영화 결정으로 인한 미팅들과, 이로 인한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회의들.

갑작스레 ‘진짜’ 한류스타 대열에 합류하게 된 정채희로 인해 업계 안팎에서 들어오는 무시할 수 없는 매혹적인 제의들.

유현지의 후속곡에 대한 준비, 그리고 3팀의 반등에 불타오른 다른 아티스트들의 활동까지.

이젠 거기에 더불어 송하연마저 앨범 작업을 시작하겠다고 통보하고 있었다.

“···벌써? 너무 빠른 거 아냐?”

최실장이 물었지만 송하연은 독불장군이라는 별명에 걸맞는 단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미니앨범으로 만들어보려고요. 아직 정확한 틀이나 주제도 안 잡혔고, 그냥 작업하고 싶어서 하는 거니까. 그리고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거 아니에요? 언제는 빨리 만들라고 그렇게 보채시더니.”

그 똑부러지는 태도에 최실장은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살짝 굽혔다.

다른 아티스트라면 몰라도, 송하연은 터치할 부분이 한 군데도 없었다.

작사작곡은 물론이고, 자신이 모든 과정에 개입하며 항상 완벽에 완벽을 기하는 진짜 아티스트였으니까.

원래 일 잘하는 알바는 점장도 함부로 못 대하지 않은가.

이와 비슷한 이치였다.

그런데, 최실장은 그녀의 다른 모습 또한 알고 있었다.

박한울에게 대하는 모습.

남들이 채워줄 수 없는 것을 유일하게 채워줄 수 있는 그의 앞에서는 이 불도저도 순한 양이 된다.

박한울은 과연 이런 그녀의 모습을 알기나 할까?

“알았어. 일단 안건 올려볼게. 작업은 계속해도 아무도 뭐라 안 하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

“이왕이면 앨범 완성되고 바로 컴백 준비 시작했으면 해요. 그렇게 해주실 수 있죠?”

최실장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기계처럼 대답할 따름이었다.

“그래. 그렇게 해야지.”

***

방긋방긋 웃는 얼굴로 물어왔다.

“전 아직 이미지를 잡아놓은 게 없어서 일단 미니 앨범 형태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매니저님은 제가 어떤 앨범 내면 좋을 것 같아요? 혹시 따로 생각해두신 거 있으세요?”

기분이 무척이나 좋아 보인다.

앨범을 작업하는 게 이렇게도 기쁜가?

“아뇨, 없어요. 뭐가 됐든 전 하연 씨의 장점을 최대한으로 뽑아내는 쪽으로 방향을 잡을 수는 있는데, 나머지는 이제부터 정해야죠.”

“현지 씨 후속곡처럼요?”

“네. 아니면 현지 데뷔곡 때처럼 저한테 다 맡기셔도 되고요. 그런데 후속곡처럼 하기로 하지 않았어요?”

송하연은 어깨를 가볍게 으쓱이며 말했다.

“그쵸. 그래서 이제 결정할 그 나머지에 대해서 묻는 거예요. 어떻게 할지.”

이를 테면 그녀가 정해야 하는 건 앨범을 관통할 만한 주제와 색깔, 혹은 이런 느낌으로 하고 싶다는 욕심.

그것만 정하면 그 뒤로는 뭐, 우리가 하던 대로 쭉쭉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혹시 저 보면 막 떠오르는 거 없어요? 힌트가 될 수도 있잖아요.”

송하연이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원래 이런 건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고 툭툭 던지는 데에서 영감이 나올 수도 있는 거니까.

나는 그녀의 생각에 동의하며 가볍게 의견을 던져보기로 했다.

그녀를 보면 절로 떠올려지는 단어나 이미지들을.

“음. 그럼 이건 어때요?”

기대하듯이, 호선을 그리는 그녀의 입매와 눈매를 지그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머리를 거치지 않고 입에서 튀어나오는 대로 툭툭.

“워커홀릭. 완벽주의. 아니면 음악이랑 무대를 사랑하는 천상 가수, 아니면 착하고 순수하고 귀여운 여자? 아니면 사랑받는 게 어울리는 사람?”

“···아. 좋네요.”

눈매가 살짝 파르르 떨렸던 것 같은데, 너무 대충 던졌나?

대답도 시원치 않은 걸 봐서는, 역시 영감과 같은 아티스트의 영역은 나와 영 안 맞긴 한가 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그녀의 미간이 살짝 모아지더니 곧이어 매끈한 턱에 손가락을 올렸다.

그리고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침을 꿀꺽 삼킨다.

‘혹시 이딴 게 도움이 된 건가?’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감탄했다.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영감을 받는 모습을 코앞에서 목격할 수 있다니.

수십 번은 더 생각했던 거지만, 역시 이 일을 하길 잘했지.

“그···.”

그녀는 입술을 살짝 핥더니, 슬쩍 내 눈을 흘깃흘깃 바라봤다.

“혹시 영감 떠올랐어요?”

“네, 그렇긴 한데···. 음.”

아무래도 말하기가 좀 민망한 모양이다.

그러면 뭐 어때.

원래 예술가들이 종종 그러지 않은가.

설명으로 들을 땐 최악일 것만 같은데, 막상 나오는 결과물을 보면 완전히 다른 거.

결국 중요한 건, 그녀의 머릿속에 잡힌 느낌과 이미지라는 거다.

나는 그녀에게 용기를 주고자 이렇게 말했다.

“그거 아세요? 외국 아티스트들 같은 경우에 약에 취해서 쓴 가사랑 곡으로 막 히트곡 써내잖아요. 약에서 깨고 보니까 자기도 이게 무슨 가사인 줄 몰랐다고도 하고. 오아시스의 ‘샴페인 슈퍼노바’가 그런 곡이래요. 메가 히트곡인데 BBC에서는 역대 최악의 가사 7위에 뽑히기도 했죠.”

내 말에 자신감을 얻었는지 그녀는 달싹거리던 입을 열 수 있었다.

“좀 노멀하긴 해요. 사랑 얘긴데···. 상상 같은 거···? 그냥 뭐··· 어쩌다 보니까 갑자기 어느 순간 달라 보이기도 하고··· 막 꼭 그렇게 남녀 간의 사랑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이런 것도 나름 괜찮지 않을까’하는 그런 거···.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서, ‘만약 이렇게 되면 어떨까’하는 뭐 그런 느낌.”

그게 무슨 느낌인지 나로서는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녀 역시도 정리가 잘 되지 않는 모양인데, 그래도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이미지는 어느 정도 잡힌 모양이다.

“그니까 긴가민가하는 짝사랑 얘기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녀는 내 물음에 눈을 아주 커다랗게 뜨더니, 격하게 손사래를 치며 목소리를 크게 키웠다.

“아뇨! 그런 거 아니구요! 그런 거 아니에요, 정말!”

뭐 그렇다면 그런 거지.

“그럼 뭔데요? 정확히 알아야 제가 돕죠. 혹시 예시 같은 거라도 없어요?”

“예···시···요? 어···. 음··· 그게··· 쓰읍···. 음.”

아무래도 그녀와의 앨범 작업은 예상과는 달리 좀 지난하게 진행될 듯했다.

***

보컬 연습실.

유현지는 곡에 맞는 보컬 트레이닝을 받은 뒤 홀로 연습하고 있었다.

‘곡이 너무 맘에 들어.’

어떻게 자신이 막연하게 원했던 느낌보다 더 좋은 걸 이렇게 금방 내놓을 수 있을까.

‘볼수록 신기해.’

이렇게 능력 있는 매니저를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겠지?

물론 그가 이러한 능력이 없었더라도 그와 함께 했겠지만, 능력이 있어서 더욱 믿음직스러운 것도 있었다.

“한 번 보내볼까?”

아직 완벽하게 연습이 되지 않았지만, 이쯤에서 한 번 녹음해서 보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가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잘되고 있는 거였지, 홀로 완벽했던 적은 애초에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에게만큼은 완벽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줘도 기대만 될 따름이었다.

“후우.”

유현지는 물을 마시고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아직 완벽하진 않더라도 최선을 다해야 하니까.

그녀는 컴퓨터로 녹음을 시작하곤, 음악을 틀었다.

헤드셋으로는 그가 만든 음악이 흘러나오고, 타이밍에 맞춰 그가 개발해준 목소리를 마이크에 흘려 넣었다.

어째서인지.

지금까지 연습했던 것 중에 가장 잘 나온 것 같았다.

그녀는 칭찬받을 생각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에게 녹음본을 보냈고, 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곧장 읽었다.

그렇게 그녀는 가만히 핸드폰만 바라봤다.

그리고 음악의 플레이타임인 4분여의 시간이 흐른 뒤에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고나서 불과 몇 초도 지나지 않아.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귀에 핸드폰을 더 바짝 붙였다.

그에게로부터 듣는 칭찬은 언제 들어도 항상 기분이 좋았으니까.

< 긴가민가하는 짝사랑 얘기라는 거예요?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