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팀을 만들자고? >
“오셨어요?”
송하연의 작업실.
고작 하루를 꼬박 쉰다고 바쁘게 달려왔던 그녀의 피로가 다 풀릴 것 같지는 않았기에, 나는 채희와의 일을 핑계로 하루를 더 쉬게 내버려뒀다.
역시 그렇게 하기를 잘했지.
그제 아침에 봤던 얼굴과는 낯빛부터가 달랐다.
초롱초롱한 눈, 옅은 메이크업으로 가려졌지만 그럼에도 보이는 생기 있는 피부, 윤기 나는 머릿결, 매끄러운 입술.
그때 자신의 상태를 이제는 제대로 인지한 모양인지, 그녀는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틀 내내 잤어요. 몰랐는데 체력이 바닥이긴 했나 봐요.”
“베테랑이신데 컨디션 관리도 제대로 신경 쓰셔야죠.”
“그러니까요. 이게 항상 마음처럼 안 되네요.”
나는 컴퓨터 앞에 앉기 전에, 컴퓨터 뒤편에 놓인 테이블 쪽으로 가 앉았다.
그리고 그녀는 정수기 앞에 서, 믹스커피를 들어 보였다.
“커피 드실래요?”
“네, 고마워요.”
그녀는 커피 믹스를 종이컵에 부으며 물었다.
“후속곡 회의는 언제 한대요?”
“그제 말씀드렸던 컨셉은 한 번 더 정리해서 보고서 올렸어요. 컴백 여부도 아까 결정됐고요. 아마 오늘내일 안으로 회의 날짜도 픽스되지 않을까요? 그래봤자 일주일 안에 열릴 것 같기는 해요.”
A&R팀도 미리 준비하고 있었고, 나도 이번엔 정식으로 올렸으니까.
회의 준비를 굳이 오래 끌 이유가 없다.
우리 회사가 엔터사인 데다가, 대기업이 아니라서 이런 건 참 편하다니까?
좋게 말하면 비효율이 적은 것, 굳이 나쁘게 말하자면 주먹구구식.
주먹구구식이 비효율과 같은 의미가 될 수는 있지만 아버지와 본부장님의 노력 덕분인지, 나는 우리 회사의 업무 처리 방식이 효율적이라는 느낌만을 받았다.
“현지 씨 콘서트 반응이 좋더라고요.”
그녀는 빙글빙글 돌며 잘 섞이고 있는 커피를 내 앞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러게요. 다들 좋게 봐주셔서 다행이에요. 하연 씨도 팬분들 후기가 엄청나던데요? 제가 어떤 글을 봤냐면-”
김이 올라오는 인스턴트 커피를 테이블 위에 두고 우리는 더 대화를 나눴다.
어느덧 우리도 많이 가까워졌나 보다.
마치 우리 애들을 대하는 것처럼 스스럼이 없어지고, 편해지고 있다.
이러다가 아주 절친 되겠어?
그래도 계속 수다만 떨 수는 없으니, 이제 슬슬 시작해야겠다.
“이제 그럼 작업 얘기 좀 해볼까요?”
“네.”
내 말에 그녀도 자세를 고쳐 잡았다.
“전에도 말했듯이 이번엔 하연 씨 도움이 좀 더 필요해요. 하연 씨 앨범 만들 때를 대비해서 이참에 한 번 비교해보세요. 현지 데뷔곡 작업했던 것처럼 할 지, 아니면 이 후속곡처럼 작업할 지.”
“좋아요. 이것도 마음에 들면 반반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솔직히 저번엔 시키는 대로만 해서 편하긴 했는데, 제 생각이 없으니까 좀 심심하기도 했거든요.”
작게 웃으며 말하는 그녀.
우리는 그렇게 유현지의 후속곡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
피자 냄새가 풀풀 풍기고 있는 송하연의 작업실.
테이블 위에는 먹다 남은 피자가 올려진 피자박스와, 반쯤 남은 콜라 페트가 놓여 있었고.
둘은 컴퓨터 앞에 앉은 채, 성취감과 희열로 일렁이는 서로의 눈을 마주 바라보았다.
“나흘이나 됐죠?”
송하연이 물었고, 나는 대답했다.
“나흘밖에 안 된 거죠. 이만한 곡이 나왔는데.”
나흘.
우리가 곡을 완성시키는 데에는 꼬박 나흘이란 시간이 걸렸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리는 다른 업무에는 완전히 손을 떼고 이 작업에만 매달렸다.
송하연은 스케줄이 없어서 그렇다 치고, 나 또한 사정이 받쳐준 덕이었다.
채희도 이제 혼자 연기를 잘할 수 있게 됐고, 현지는 이제 자잘한 활동만을 하고 있었으니까.
거기에 우리 팀에서도 이 작업의 중요성을 알고 있으니, 내 업무를 다 빼줘서 이렇게 시간을 몽땅 할애할 수 있었던 거다.
“하긴 진짜 이만한 곡이 나왔는데, 나흘이면 엄청 짧은 거죠. 제 앨범 작업 때만 해도 매니저님 없었으면 훨씬 더 오래 걸렸을 테니까요.”
작게 웃음을 터뜨린 그녀가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거기엔 우리가 함께 한 사흘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모니터에 띠워진 작곡 프로그램.
그녀와 처음 작업했을 때만 해도 이 프로그램 창을 보며 뭐가 뭔 지 하나도 몰랐었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뭐가 뭔 지 정도는 알 것 같았다.
막상 혼자 해보라 하면 절대 못 하겠지만.
그녀는 다시 내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이제 내일이 회의죠? A&R팀이 이 갈고 있다고 들었는데, 제 생각에는 아마 이거 들으면 화도 안 날 것 같아요. 저도 같이 만든 작업물이라 제 입으로 말하기 민망하긴 해도요.”
글쎄, 그건 봐야 알 것 같다.
현지 데뷔곡의 경우에는, 우리가 만든 곡이 A&R팀이 작업하고 있던 비슷한 결의 곡보다 더 나았기 때문에 그대로 진행했지만.
이번에 만약 저쪽에서, 우리가 준비한 것과 결이 다르면서도 매우 괜찮은 것을 준비했다면 또 모르는 것 아니겠나.
“이번 작업은 왠지 저번보다 더 재밌었던 것 같아요.”
재밌었다는 내 말에 그녀도 킥킥, 웃으며 대답했다.
“저야말로요. 역시 곡에 제 생각도 같이 들어가니까 너무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더 기대되고 있어요. 제 앨범은 어떻게 만들어질지···. 저 정말 매니저님 만난 게 얼마나 행운인지 몰라요. 어제는 자면서 무슨 생각 했는지 알아요? 이 회사에 들어온 게 제 평생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고까지 생각했다니까요? 약간 아쉬운 건, 그렇게 들어온 팀이 3팀이 아니라는 것 정도?”
그녀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이렇게 같이 작업할 수 있게 됐으니까 괜찮아요. 다시 제 매니저 해달라고 하는 건 아니니까 부담 갖지 말구요. 아! 그런데 매니저님이 원하신다면 저는 언제든지 환영이긴 해요. 하하.”
어쩐지 말이나 감정표현에 있어서 우리 사이에 오가는 게 좀 더 풍성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흘 전에 느꼈던 것처럼, 그녀와 내가 그만큼 더 가까워졌다는 거겠지.
나는 이 농담과 진담이 섞인 듯한 말에 대해선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모니터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한 번 처음부터 쭉 들어볼까요?”
“그럴까요?”
딸깍.
모니터링 스피커로 음악이 흘러나오자, 우리는 눈을 감고선 씨익 미소 지었다.
유현지가 데뷔 타석으로 2루타를 날렸다면, 지금 이 곡은 아마 끝내기 홈런 정도?
관중석이 미친듯이 들썩이며 열광하는 게 눈앞에 선명하게 보이는 듯했다.
***
회사 내 거의 모든 부서가 함께 참여하는 회의.
덕분에 시간이 15분이나 남았는데도 벌써부터 복작거리고 있었다.
후속곡 컴백은 곧 하나의 프로젝트.
어떠한 곡을 어떻게 보여줄지 컨셉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하고, 마케팅과 홍보 방법에 대해 말하기도 하며, 앨범 아트부터 뮤직 비디오 컨셉, 이에 더해 헤어와 메이크업, 의상까지도 다뤄야 한다.
물론 1차 회의이기 때문에 곡의 컨셉이 주가 되긴 한다.
곡의 컨셉이 먼저 정해지면 그제서야 이에 맞춰 나머지에 대한 자료들을 준비할 수 있을 테니까.
이렇듯, 굉장히 중요한 회의였으나 막상 회의실 안으로 들어오는 이들의 얼굴에서는 편안한 여유만이 엿보였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이번엔 아예 3팀을 통해 박한울의 보고서가 정식으로 올라왔으니까.
“그분이 있으니까 마음이 이렇게 든든하고 편하네. 다른 팀 회의할 때랑 느낌부터가 확 다르잖아.”
“언제 ‘그분’이 됐어? 큭큭. 벌써 라인 타냐?”
“다른 라인이 있기는 하고?”
“그건 맞지. 나도 이제부터 그분이라고 부르련다.”
작은 목소리라지만 농담까지 나누고 있지 않은가.
A&R팀의 박부장은 이들의 대화를 들으며 저편에 앉은 박한울과 3팀을 지그시 쳐다봤다.
‘이번엔 이길 수 있어.’
박부장은 그들을 보며 눈썹을 꿈틀거렸다.
박한울의 능력은 인정하지만 자신의 팀 역시 능력이 있다.
그동안 허투루 노력해온 게 아니고, 허투루 이 생활을 버텨온 게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엔 팀원들과 더욱더 열심히 준비했다.
팀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기 위해서.
우리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저번엔 박한울과 송하연이 함께 작곡했다는 것만 알았지, 컨셉부터 애초에 그가 다 짰다는 것은 몰랐지만.
그와는 별개로 컨셉에 대해서나 프로듀싱을 할 때에도, 끼어들 틈이 도저히 보이지 않기도 했다.
덕분에 손가락만 빨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후우. 할 수 있어.”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나자, 대표와 본부장이 모두 들어왔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회의가 시작됐다.
박부장은 저번과 같이, 가장 먼저 앞에 나가 PT를 하며 회의의 포문을 열었다.
***
‘와. 역시 직원들이 능력이 있다니까?’
A&R팀이 준비한 곡은 내가 애초에 생각했던 곡의 방향과 거의 흡사했다.
저번에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만일, 유현지의 의견이 없었다면 나도 저기에서 몇 가지만 더 보태고 몇 가지는 빼면서 작업했겠지.
PT가 이어지며, 주위의 눈이 나를 흘깃흘깃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그에, 나는 표정에 변화를 보이지 않고 최대한 담담하게 유지하려 노력했다.
A&R의 박부장님이 숫제 나에게 발표를 하는 것처럼 내 얼굴을 대놓고 쳐다보며 발표하고 있기도 하고.
‘소문대로 이를 갈았나 보네.’
박부장님은 목소리와 태도에서 보이는 것처럼 충분히 자신감을 가질 만했다.
유현지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방향, 그러니까 데뷔곡을 결정했던 것과 같은 기준으로만 판단하자면, 사실 지금 내가 준비한 것보다는 저쪽이 더 알맞거든.
그렇기 때문에 내 안에서 고민이 깊어졌다.
‘음···.’
내가 그렇게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도중, A&R팀의 발표가 끝이 났다.
그리고.
실내에 있는 모두가 내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내가 이미 정식으로 후속곡의 컨셉에 대해 보고서를 제출하기도 했으니, 이는 당연했다.
하지만 과연 정말로 당연한 일일까?
대부분의 회사에선 정해진 형식이라는 게 있고, 모든 일에 순서와 역할이 정확히 나뉘어져 있다.
물론 이와 반대로, 순서와 역할이 뒤죽박죽이거나 애매한 경우도 더러 있기도 하지만.
‘매니저가 이런 역할을 하는 건 아마 신생회사 빼고는 우리 회사밖에 없을 거야.’
다들 당연하다는 듯, 태연한 얼굴로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게 문득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옛날 엔터 회사라면 모를까, 매니저가 이런 일을 하는 역할은 아니지 않나.
더구나 A&R팀이 떡하니 있는 마당에, A&R팀의 PT가 끝난 뒤 따로 준비한 걸 발표한다니.
저번에는 본부장님의 뒤에 숨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했지만, 사실 이러한 업무는 A&R의 고유 영역이다.
매니지먼트팀과 협력해서 진행할 수 있다고는 하나, 온전한 매니지먼트팀의 역할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일개 매니저의 역할로 정해진 선을 이미 넘어도 많이 넘은 상태였다.
신인개발도 하고, 작곡도 하고, 프로듀싱도 하고.
무엇보다 이미 데뷔곡으로 증명까지 한 마당에 멋쩍어 하는 것 또한 우스운 일.
그래서 나 또한 정말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한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당당한 걸음으로 앞에 섰다.
“매니지먼트3팀의 박한울입니다.”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나니, 이곳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한눈에 들어왔다.
기대와 질투 어린 눈빛들, 아버지의 뿌듯하고도 대견한 눈빛.
담담하게 신뢰를 보내는 본부장님의 눈빛과 A&R팀의 호승심 어린 뜨거운 눈빛까지.
나는 각기 다른 빛깔의 눈빛들을 고스란히 받아내며 PC에 USB를 꽂았다.
내가 준비한 건, A&R팀이 했던 것처럼 세세하고 전문적인 PT는 아니었다.
송하연과 함께 곡을 만드느라 PT에 집중할 시간이 없기도 했으며, 이미 간략하게 보고서를 제출하기도 했으니까.
물론 능력의 문제도 있었다. 나는 A&R팀이 가진 만큼의 깊은 지식은 없었으니.
그러나, 다른 걸 다 제치더라도 내게는 결과물이 있었다.
“저와 1팀의 송하연 가수는 오늘의 회의에 앞서, 미리 곡을 준비했습니다.”
내가 아닌 남들이 이렇게 했으면 뻘짓을 했노라는 말과 함께 비웃음을 샀을 수도 있었겠으나.
지금 여기 모인 이들 중엔, 괜한 짓거리를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어 보였다.
오히려 빨리 들어보고 싶어 하는 눈치.
나는 딸깍, 뜸들이지 않고 곧바로 음악을 틀었다.
아직 믹싱이 되지 않아 투박하지만, 그래도 진가를 드러내기에 부족하지도 않다.
우리가 만든 곡은 관객들이 미친듯이 뛰어놀 수 있는 음악.
그렇다고 정신없이 시끄럽고 가벼운 곡이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우리의 색깔은 오히려 더욱 깊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하연 씨가 고생이 많았지···.’
그녀는 락을 베이스로 집어넣기도 하고, 힙합을 베이스로 의견을 내놓기도 하며, 여러 가지를 시도했었고.
나는 그 여러 가지의 훌륭한 시도들 가운데, 몇몇을 따로 떼어내어 섞게끔 만들었다.
그 결과.
음악의 사운드는 더욱 풍성하고 다양해졌으며, 관객들의 가슴을 진탕 내기에 충분한 비트가 뽑혀 나왔다.
나는 음악이 흘러나오는 동안 가만히 서서 모두의 표정을 눈으로 찬찬히 훑어봤다.
도입부부터 중반부까지는 모두가 제각기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누군가는 놀라움을, 누군가는 의심과 불신을, 누군가는 흥분을, 누군가는 흐뭇함을.
허나, 곡이 다 끝나고 스피커에서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게 되었을 땐.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이 모두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경악과 흥분, 기대가 한 데 뒤섞인 표정.
나는 딱딱하고도 뜨거운 공기 속에서 이 장면을 만족스럽게 눈에 담아내고는, 이어 PT를 진행했다.
그러나, 아무도 내 말을 집중해서 듣는 이는 없었다.
사실 PT라는 게, 앞으로 만들 결과물과 그 목적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으니까.
이미 그 결과물을 떡하니 내놓아 보여줬는데 이에 대해 설명하는 PT가 뭐 중요하겠나.
하지만, 곧이어 모두의 집중을 끌 만한 말이 이어졌다.
나 또한 미리 준비하지는 않았기에 갑작스럽게 꺼낸 말이지만, 이대로 있다간 정말 물 흐르듯이 내가 준비한 곡만 쓸 것 같았거든.
‘저쪽도 괜찮은데.’
여차 하면 우리의 다음 앨범에 실을 수도 있을 테고 말이다.
“이번엔 두 곡을 준비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내 말을 모두가 집중해서 들을 뿐, 아무도 놀라거나 하지는 않았다.
두 곡을 내놓는 경우가 자주 있기도 하거니와, 이들도 내가 말하는 바가 뭔 지를 이미 잘 알고 있을 테니까.
“팬들은 이미 유현지 가수에게 기대하는 컨셉과 색깔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익숙함’이라는 요소를 결코 경시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앞으로의 활동에서도 데뷔곡이나 A&R팀에서 앞서 발표한 것과 같은 색깔을 다양하게 활용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즉석에서 꺼낸 말이지만, 워낙 정석적인 얘기이기 때문일까.
그들은 듬성듬성 비워지고 빈약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내 말을 경청했다.
‘유비무환이지. 다다익선이고.’
이미 한 곡은 제대로 뽑혔고, 다른 한 곡도 그리 오래 걸릴 것 같지도 않으니.
능력 있는 저들에게 맡겨보는 것도 괜찮지 않겠어?
혹시라도 만들어진 결과물이 별로이면 그땐 그냥 안 쓰면 되는 거고, 아니면 좀 더 다듬어서 나중에 앨범에 실어도 되는 거니까.
‘그런데 눈빛들이 왜···.’
왠지 모르게 아버지와 본부장님의 눈빛이 많이 부담스러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착각인가?
***
회의가 끝난 후의 대표실.
김본부장과 박대표가 마주하고 있는 테이블 위에는 오늘의 회의록이 올라와 있었다.
다만, 지금 이곳에서 이렇게 둘이 마주하고 있는 이유는 오늘의 회의 때문이 아니었다.
박대표는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4팀을 만들자고?”
“예. 이제 저희도 규모를 넓힐 때가 됐습니다.”
박대표는 계속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김본부장은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단단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송하연도 이번 앨범으로 가시적으로 성장했을뿐더러, 탑스타인 이성호 배우님 또한 우리 품으로 들어왔습니다. 또한, 정채희는 일본에서의 반응까지 더하면 이미 ‘라이징 스타‘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할 만큼 성장했고, 유현지가 보이는 성장세도 이미 평범한 수준은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 이대로 가면 제대로 관리할 수 없다는 겁니다. 1팀도, 3팀도. 소수의 아티스트에게 관리가 집중되니, 다른 아티스트들이나 매니저들 사이에서도 불만의 말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음. 포화 상태라는 거구만.”
고개를 주억거리는 박대표의 가슴 속에서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쳤다.
이성호는 제외하더라도, 송하연과 정채희와 유현지까지.
모두 철딱서니 없던 아들이 만들어낸 것 아닌가.
이번 앨범으로 인한 송하연의 성장에는 박한울의 도움이 주효했고, 정채희와 유현지는 애초에 발견한 것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모두 박한울의 작품이니까.
‘이놈 이거 나중에 일 한 번 제대로 내겠어.’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기존의 시스템으로는 관리가 벅찰 만큼 회사가 성장했다.
그런데 2년, 3년, 그리고 그 이상의 시간이 더 지나면 어떻게 되겠는가.
박대표는 입꼬리를 길게 말아 올리며 말했다.
“그래. 미리 여유 있게 개편하는 것도 괜찮겠어.”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 하나.
김본부장에게는 무척이나 예민할 수도 있는 사안이 하나 있었다.
“혹시 개편에 대해서 생각해둔 방향 같은 건 있어?”
김본부장은 처음 말을 꺼냈을 때와 한 점 변함이 없는 표정으로 또박또박 대답했다.
“2본부를 만드는 편이 가장 효율적일 겁니다.”
“···.”
연예 기획사의 부서에는 회사마다 차이가 존재했다.
어디는 가수팀과 배우팀으로 나누기도 했고, 어디는 여기처럼 매니지먼트팀으로 뭉뚱그리기도 했고, 어디는 아예 배우들을 자회사로 따로 관리를 하기도 했다.
본부를 두 개 만드는 것 정도는 그리 파격적인 개편 방법도 아니다.
다만, 이 말을 꺼내는 게 이 회사의 유일한 본부장인 그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이 놀라울 뿐.
‘역시 김본부장이라니까.’
회사의 성장이 달린 일이지만, 당사자로서 이 말을 꺼내는 게 어디 쉽겠나.
어떻게 보면 제 권한을 나누겠다는 것이기도 한데.
김본부장을 바라보는 박대표의 눈동자에서 스멀스멀 달달한 맛이 첨가되려고 하자, 김본부장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2팀까지는 제가, 그리고 새로운 4팀까지는 2본부로 운영하는 방향이 좋을 것 같습니다.”
4팀장에는 누구를 앉힐 지, 2본부장은 누구로 할 지, 아티스트 담당은 어떻게 개편할지 등등.
매우 크고 작은 사안들이 아직 한가득 쌓여 있었지만.
그럼에도 큰 틀이 대략이나마 잡혔으니, 남은 것들이 결정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리라.
“일단은 우리끼리 먼저 대략적으로 상의해보자고.”
“예.”
“아, 그런데 말이야. 일단 한울이는-”
그때, 김본부장과 박대표의 입이 동시에 열리며.
똑같은 말이 튀어나왔다.
“4팀으로 넣지.”
“4팀으로 넣죠.”
< 4팀을 만들자고?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