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하연의 콘서트 >
“여러분 재밌어요?”
송하연의 물음에 공연장 가득 즐거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벌써 공연한 지 한 시간째.
공연장이 전부 다 축축하게 젖은 느낌이다.
송하연이나 관객들이나 다들 같은 색깔로.
이곳의 공기는 전부 다 즐거움으로 꽉 차 있었고, 그 외의 것은 끼어들 틈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와 현지는 그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공연을 경탄스레 바라보았다.
우리도 언젠가 이런 공연을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의 이 뜨겁고 축축한 느낌보다 더 짙고 진한 느낌으로.
‘언젠간.’
나는 이를 현지에게 굳이 말하지 않았다.
너무 막연하다고 하기엔 지금 그녀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고, 그렇다고 반드시 이런 무대를 만들자고 하기엔 부담이 될 수도 있잖아?
현지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조용히 무대를 바라보는 현지 옆에서 똑같이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유현지 씨, 이제 준비하세요.”
“네.”
이제 곧 그녀의 차례.
현지는 어깨가 굳지 않게 추욱 늘어뜨리며 숨을 차분하고 고르게 쉬었고, 무대 위 송하연은 거친 숨을 내쉬며 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 대단하네.’
환호를 내지르는 팬들을 바라보는 송하연의 얼굴이 커다란 스크린에 띄워지고 있다.
스크린에 보이는 그녀도, 그리고 우리 앞쪽에 가까이 보이는 실제의 그녀도 전부 다 빛이 반짝거리고 있다.
나도 좋아하고 팬들도 좋아하는 그녀의 즐기는 얼굴.
그녀는 팬들이 좋아하는 걸 보며 더욱 힘을 발휘하는 타입이었고, 우리는 그런 그녀를 격하게 사랑하였다.
“너무 재밌게 놀아서 이제 잠깐 쉬어야겠어요. 아, 발라드 부르냐고요? 아뇨. 발라드 부르는 것도 얼마나 힘든데요. 전 정말 말 그대로 쉬려고요. 여러분, 저 잠깐 쉴 테니까 그동안 여러분은 꼭 신나게 노셔야 해요? 알았죠?”
관객들은 눈치 챘다.
이제 게스트가 나올 차례라는 것을.
하연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탁, 조명이 꺼져서 깜깜해진 공연장.
무대 위에서 별처럼 밝게 빛나고 있던 송하연은 우리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현지 씨, 즐겨요. 봤죠? 우리 팬분들 다 엄청 좋은 분들인 거. 실수해도 괜찮으니까 최대한 즐겨요.”
준비할 때는 완벽주의자이지만 무대 위의 그녀는 철저한 기분파다.
그래서 그녀는 이러한 응원의 말 또한 할 수 있는 거였다.
즐기는 게 얼마나 좋은 효과를 발휘하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
어쩌면 완벽하게 준비한 것도 최대한 즐기기 위해 마련하는 안전장치 같은 거 아닐까?
“네, 선배님. 오빠, 저 갔다 올게요.”
“그래, 파이팅!”
지금까지 현지가 섰던 무대 중 가장 커다란 무대.
심지어 이와 엇비슷한 무대도 없었다.
그런데 그녀는 성큼성큼 잘도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심장이 두근거리는데, 참 강심장이기도 하다.
역시 무대체질은 무대체질인가.
“후우. 이제 좀 살 것 같네.”
벌컥벌컥 물을 마신 송하연이 얼굴 위로 흐르는 땀을 톡톡 조심스레 닦았다.
“실제로 보니까 역시 훨씬 더 멋있네요. 최고였어요.”
“실제로 보니까요? 제 노래 코앞에서도 많이 들어보셨잖아요.”
“그래도 공연하는 걸 보는 건 처음이잖아요. 공연하는 송하연이 어디 다른 데에 비교가 되나요?”
그녀의 조막만한 얼굴에 시원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고마워요. 매니저님이 하는 말이라서 더 좋네요. 입에 발린 말은 하지 않으시니까.”
“네, 정말 팬으로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때, 조명이 은은하게 켜지며 스크린에 현지의 모습이 비쳤다.
댄서들과 함께 자세를 잡고 있는 그녀.
관객들은 그녀를 알아보고 더욱더 격하게 환영해주었다.
‘우리 하연이 콘서트에 게스트로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 말하듯이.
그들은 최대한 크게 호응해주며 무대를 더 더 뜨겁게 달구었다.
그리고.
두웅- 베이스 소리와 함께.
은은했던 조명이 확! 밝아지며 본격적으로 그녀의 데뷔곡 <구름 위의 꿈>의 무대가 시작됐다.
뒤쪽에서 이렇게 보면, 그녀와 댄서들, 그리고 관객들이 모두 한꺼번에 시야에 들어온다.
여기는 분명 송하연의 콘서트일진데.
나는 내 안에 있는 커다란 무언가가 전신을 거칠게 누비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때요? 전 그 기분이 잘 상상이 안 돼요.”
음악소리 때문에, 내 귀에 입을 바짝 가까이 대며 묻는다.
“예?”
“매니저로서의 느낌은 다를 거 아니에요. 궁금해요, 그런 표정을 짓고 계셔서.”
이 기분이 어떠냐고?
나는 정의 내릴 수 없는 이 오묘한 느낌에 전율하며 씩, 미소 지었다.
“이런 게 성취감인가 싶어요. 회사에 들어온 뒤에 매번 느끼는 거긴 한데, 이번은 더 특별하네요.”
내 미소를 보며 그녀도 미소 지었다.
“앞으론 계속 더 크게 느끼실 거잖아요.”
그래, 지금은 송하연이 게스트로 불러준 거지만 나중에는.
나중엔 유현지의 이름을 내건 콘서트장에서, 그녀의 팬들로 꽉꽉 채운 수만 명의 팬들과 함께 몇 시간이고 공연하는 걸 지켜볼 수 있겠지.
빨리 그날이 왔으면 좋겠다.
송하연은 말했다.
“앨범 제작할 거예요. 도와주실 수 있어요? 이번엔 처음부터.”
시기상의 문제였지, 애초부터 도와줄 생각이었기에 나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당연하죠. 대신 현지 후속곡 작업부터 먼저 하고요.”
“그게 뭐 어려운 거라고요. 어차피 현지 씨 곡은 매니저님이 다 알아서 하시고 전 손만 움직이는 거잖아요.”
뭐, 그렇다고 해두자.
중요한 건 아니었으니.
나는 저 무대 위에서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고 가진 재능을 마음껏 뽐내는 유현지를 바라보며 아쉬움을 삼켰다.
그녀의 곡이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이 이 순간 사무치도록 아쉬웠다.
좀 더 보고 싶은데.
“곡 끝나가네요. 이제 들어가세요?”
“아뇨. 현지랑 같이 끝까지 보다가 가려고요. 많이 도움될 테니까요.”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재밌게 지켜봐주세요. 저 이제 올라가볼게요.”
“네.”
곡이 딱 끝나고, 관객들이 함성을 마구 내지를 때.
댄서들이 빠지고, 송하연이 유현지의 옆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와, 어떻게 제 무대보다 더 크게 환호해요? 여기 제 콘서트장이에요 여러분!”
웃음이 번지는 공연장.
스크린에는 송하연과 유현지가 환한 미소를 띠우며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커다랗게 잡히고 있었다.
이 사람들 비주얼 가수들이었네.
***
“어땠어?”
콘서트를 끝까지 지켜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나는 이제서야 이걸 물을 수 있었다.
방금 전까지도 그녀는 너무 상기되어 있었으니까.
아티스트가 감상과 여운에 젖어 있는데 방해하는 건 안 될 일이지.
현지는 여운의 영향인지 나지막하게, 그러나 또렷한 목소리로 입을 뗐다.
“너무 좋았어요. 하나부터 열까지 다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내가 보기에도 그녀의 공연은 최고였다.
완벽하게 준비한 무대 위에서 자유롭게 날뛰며 즐기는 모습도 그렇고.
정신줄을 놓은 듯이 열광하는 팬들도 그렇고.
그 시간의 그곳은 밖과는 완전히 별개의 세상이라 해도 될 정도였다.
“오빠, 저 후속곡은 어떤 곡이에요?”
그녀의 물음 속에서 나는 무언가 잡아챌 수 있었다.
원하는 느낌이 있구나.
이미 내 머릿속에 선명한 그림이 잡혀 있었지만, 나는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글쎄. 아직은 딱히 잡힌 게 없어서. 너는 어떤 거 원하는데?”
내 말이 자연스러웠는지는 모르겠다만, 그녀는 주저 없이 원하는 것을 말했다.
“선배님 공연보다 관객들이 더 열광했으면 좋겠어요.”
‘와, 너무 좋다.’라는 감상이 나오는 곡도 아니고, ‘오! 신나는데?’라며 고개를 까딱일 수 있는 곡도 아니고.
관객들을 펄펄 끓게 만들어 미친듯이 뛰놀 수 있는 곡을 원하는 거다.
‘···어렵긴 하겠네.’
내가 천재 작곡가인 건 아니지만 그러한 곡을 만들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또 아닐 것 같다.
그런 부분은 송하연에게 맡기면 되니까.
나는 현지의 장점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쪽으로, 그리고 곡이 성공할 수 있는 쪽으로 정확한 방향을 가리키기만 하면 된다.
네비게이션은 내가, 운전은 송하연이.
“그래. 그런 쪽으로 한 번 잡아볼게.”
재능 넘치는 아티스트의 욕심은 언제나 존중해줄 만한 가치가 있다.
지금 당장 그보다 더 잘 어울리는 방향이 있다고 하더라도, 원하는 걸 버리라고 강요하는 건 결국 아티스트로서의 수명과 한계를 깎아먹는 짓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꺾인 전세계의 수많은 사례들을 봐오며 항상 안타까워했으니, 이제 그걸 반면교사 삼아 나도 욕심을 부려야 하지 않겠나.
천재가 재능을 만개할 수 있도록 최대한 서포트해줬을 때 나오는 작품.
나는 먼 훗날,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 무척이나 기대가 되었다.
***
모두가 잠든 새벽.
침대에 누운 송하연은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그 엄청났던 콘서트가 아까 전이었는데, 지금은 너무 고요하기만 하다.
아직도 귓가엔 그 황홀한 함성 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듯했고, 눈앞엔 관객들의 표정이 선명하게 그려지는데.
지금은 그 감각이 마치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공허하고 허무하다.
분명히 기쁘고 즐거웠고 행복했는데, 공연을 끝마치고 오면 늘 이렇다.
특히 오늘과 같은 단독 콘서트는 더욱 이러한 느낌이 강하다.
“···이래서 쉬는 것도 연습해야 하는데.”
자신은 아무래도 불가능할 것 같았다.
“지금 주무시겠지?”
송하연은 박한울을 떠올렸다.
앨범을 어떻게 만들지 미리 얘기라도 해둘 걸 그랬다.
그랬으면 이렇게 공허하게 있지만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안 주무시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결국 내려놨다.
매니저라는 직업이 아무리 밤낮이 없다고 해도 그렇지, 이 야심한 새벽에 연락하는 건 실례일 테니까.
“하아.”
송하연은 눈을 감고 이불을 끌어안으며 몸을 뒤척였다.
아무래도 오늘은 잠을 좀 많이 설칠 것 같다.
‘빨리 아침이 왔으면 좋겠다.’
당장 작업하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
역시 자신은 워커홀릭이 확실했다.
***
콘서트가 끝난 다음날 아침.
나는 송하연과 미팅을 가지기로 했다.
회사에서 1차 회의가 진행되기도 전인데, 이번에도 우리는 또 먼저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거 괜찮나?
“실장님, 이래도 돼요?”
“되지. 안 될 거 있어? 내가 뭐라 그래, 아니면 팀장님이 뭐라 그래. 그리고 업무는 우리가 알아서 빼줄 테니까 그런 부분은 걱정하지 마. 그런데···.”
“네.”
“하연이는 괜찮대?”
콘서트가 끝난 다음날이다.
그것도 단독 콘서트.
원래 콘서트가 끝난 다음날엔 퍼지는 게 당연할진데, 그녀는 심지어 먼저 연락을 주기까지 했다.
오전에 바로 미팅 가질 수 있냐고.
“저도 걱정돼서 물어보니까 괜찮대요. 힘들었으면 이렇게 먼저 연락했겠냐고 말하던데요?”
한실장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와···. 진짜 걘 보면 볼수록 대단해.”
나도 마찬가지다.
몸 상한다고, 급할 거 없다고 말했는데, 어찌나 뜻이 완고하던지.
일단, 한 번 상태를 살펴보고 미팅을 빨리 끝내든가 해야겠다.
그런데 역시.
사람이 그렇게 강철 같은 체력을 갖기는 쉽지 않지.
나는 송하연에게 물었다.
“잠··· 못 주무셨어요?”
소회의실에서 마주 보고 앉았는데, 그녀의 눈이 시뻘겋다.
척 봐도 피곤이 덕지덕지 붙은 얼굴.
그러나 눈빛만큼은 기이할 만큼 총명하고 또렷해서 잘 판단이 안 선다.
“괜찮아요. 안 피곤해요.”
나를 똑바로 마주하며 입꼬리를 끌어 올린다.
그런데 표정만 그렇게 만들면 뭐하냐고.
“눈은 시뻘건데요? 그냥 쉬세요. 콘서트를 그렇게 화끈하게 했는데 며칠은 퍼져 있어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해요.”
“···제가 체력이 좋나 봐요.”
참 이 사람도 특이하지.
이렇게까지 말하면 어쩔 수 없다.
‘일찍 끝내야겠네.’
나는 어제 현지의 말을 듣고 생각했던 것과, 오늘 급작스럽게 미팅을 준비하게 되어 잠깐만에 정리한 것들을 토대로 간단하게 전달했다.
역시 호흡을 맞춘 경험이 있어서일까?
그녀는 내가 말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눈이 갈수록 더 초롱초롱해져.
“매니저님.”
“네.”
“이거 끝나면 제 앨범 작업 들어가는 거 맞죠?”
“네. 왠종일 그것만 붙잡고 있을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협조할 수는 있습니다.”
그녀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금 바로 작업실 갈까요?”
아니.
여기서는 단호하게 끊어야지.
정말 몸 상할지도 모르니까.
다만, 완벽주의인 그녀가 쉬이 납득할 수 있게끔.
“컨디션도 생각하셔야죠. 그런 상태로 만들면 최선의 결과가 나올 것 같지는 않네요.”
“···그건 그렇네요. 네. 그럼, 쉬었다가 바로 연락드릴게요.”
헛웃음이 나올 것 같다.
컨트롤하는 게 이렇게나 간단하다니.
어쩌면 완벽주의라는 것도 꽤 괜찮을지도?
그녀는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그녀에게 말한 것들을 토대로 다시 정리에 들어갔다.
이제는 굳이 아버지께 전달할 필요도 없이, 그냥 실장님이나 팀장님께 전달하면 된다.
그러면 회의가 잡힐 거고, 본격적으로 프로젝트가 가동되겠지.
“일하자, 일.”
새로운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거라 생각하니 몸에 활기가 도는 느낌이다.
역시 나는 워커홀릭이 확실했다.
< 송하연의 콘서트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