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하산이 천재매니저였다고-63화 (63/170)

< 완벽하지 않아도 되니까 >

채희의 일본 광고 미팅을 끝냈다.

일본에서 딱 두 개의 광고만 한다고 하니, 그들은 군침을 삼키며 억 소리 나는 개런티를 불렀고, 우리는 그 금액에 도장을 찍었다.

‘일정 문제없고, 비행기표 확인했고, 그리고 또···.’

나는 핸드폰에 적어둔 체크 리스트를 확인하며 물었다.

“채희야, 여권이랑 개인 물품들 잘 챙겼지?”

일찌감치 모든 준비를 마친 채희는 소파에 늘어지게 앉아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근데 아직 못 챙긴 거 하나 있어요.”

“뭐?”

채희는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홀쭉한 배를 쓰다듬었다.

“제 뱃살이요. 내 소중한 뱃살···.”

“···.”

“진짜 광고 촬영 다 끝나면 미친듯이 먹을 거예요.”

연예인들에게 광고라는 건 늘 그렇다.

TV나 인터넷에 매일마다 노출되는 것이다 보니, 최대한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

심지어 청바지 아닌가.

사실 컴퓨터로 좀 만지는 경우가 대다수이기는 한데, 그래도 최대한 관리를 하고 가는 것과 안 하고 가는 것은 천지차이다.

“큭큭. 야, 살 빠졌다고 저리 슬퍼하는 사람 본 적 있냐?”

윤팀장님이 팔짱을 끼고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실소를 흘리며 채희에게 말했다.

“너 지금 영화 촬영 중인 건 안 잊었지? 그리고 누가 관리하라고 시킨 것도 아니고.”

그녀는 이미 충분히··· 아니, 충분을 뛰어넘는 핏을 갖고 있었다.

다이어트는 개나 줘도 상관없었을 텐데.

아무래도 일본에서의 인기가 예상을 뛰어넘는 것 같으니, 기대하는 팬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다.

원래 인기 연예인이 더 관리에 민감한 이유가 이것이다.

인기를 잃는 것이 죽기보다 싫으니까.

채희는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으나, 그래도 입술을 삐죽이며 말하는 걸 보니 역시 어느 정도는 맞기는 한가 보다.

“저 일본 처음 가는데 사람들이 실망하면 어떡해요. 기사도 많이 뜰 텐데.”

“널 보고 실망하면 그건 그냥 3D 사람을 안 좋아하는 거야.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먹어. 축축 처지는 거 보니까 나까지 힘 빠진다.”

“뭐야···. 걱정하는 거예요, 칭찬하는 거예요, 아니면 타박하는 거예요.”

말은 저렇게 하면서 얼굴은 좋아한다.

역시 단순하다니까.

뭐, 사실이기도 하지만.

“이제 준비 다 됐으면 가자.”

“네!”

우리는 짐을 들고 채희의 집에서 빠져나와, 차에 몸을 실었다.

***

2시간여만에 도착한 도쿄 하네다 공항.

입국장으로 향하는 길에 나는 내심 기대를 품었다.

인천 공항에서도 그녀는 사람들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받았고, 비행기에서도 일본인들이 그녀를 보고 눈이 빠질 듯이 크게 뜨며 “에에에!”하는 것도 실제로 봤으니까.

나는 그녀를 슬쩍 바라봤다.

얘도 내심 기대하고 있을까 해서.

“푸웁!”

아니나 다를까, 엄청나게 기대하고 있었다.

입술을 자꾸 가만 두지 못하며 오물거리고, 눈엔 긴장이 듬뿍 묻어 있었으며, 목 부근과 걸음걸이 또한 아주 빳빳하게 굳어 있었다.

“왜··· 왜요!? 왜 웃으시는 거예요?”

그녀도 자기의 상태를 아는지, 내 웃음에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그 반응에 나와 윤팀장님의 입에선 제대로 웃음이 터졌다.

“프하하하!”

“푸훕! 큭큭큭.”

“왜, 왜 둘 다 웃으시냐구요! 사람들 다 쳐다보잖아요 진짜!”

목소리를 낮게 죽이면서도 꿋꿋하게 따지고 든다.

이미 붉어진 얼굴을 팜플렛으로 가리려고는 하는데, 목이랑 귀까지 빨개져서 더 웃길 뿐이었다.

나는 갈피를 못 잡고 시시각각 변하는 그녀의 얼굴을 재밌게 구경하며 말했다.

“그냥 손이나 흔들어주고 웃어주면 되지. 팬들이 네 표정 보고 뭐라고 생각하겠어? 그런 무서운 표정으로 돌아다니면 공항 경찰이 수상하다고 잡아갈지도 모른다?”

“···떨리는 걸 어떡하라고요···. 저도 웃어주고 싶은데 언제 슈퍼스타였던 적이 있어야죠.”

“얼씨구? 그럼 일본에선 슈퍼스타 됐다는 말이네?”

“광고 개런티 보면 꼭 틀린 말도 아니잖아요.”

“···어. 그건 인정.”

이렇게 대화를 하다 보니, 어느새 그녀의 경직된 몸과 표정이 부드럽게 풀려 있었다.

얘는 참 요상한 게, 어떻게 보면 귀여운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그냥 철딱서니 없는 꼬맹이 같기도 했다.

물론, 외모와 마음이 너무 예뻐서 어떻게 하든 예뻐 보이는 건 맞지만.

“자, 이제 입국장이다. 채희야, 슈퍼스타는 이럴 때일수록 당당하게 걸어야 하는 거 알지?”

“놀리지 마세요! 오빠 진짜 제 매니저 맞아요? 그냥 놀리려고 따라왔죠!”

놀리는 거 맞다.

너무 재밌는데 어떡해.

우리는 그렇게 입국장을 나섰고.

곧이어 헉! 하고 헛숨을 집어삼켜야만 했다.

“와아아아아아!”

“꺄아아아악!”

갈비뼈가 웅- 하고 울리는 것만 같다.

그들이 내는 소리가 이 넓은 공항을 가득 메우고도 터져나갈 것만 같다.

눈에 보이는 건 열광하는 사람들, 그리고 사람들, 또 사람들.

그 많은 사람들이 채희를 바라보며 팔을 흔들고, 눈빛을 빛내며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손에 든 건 한국어로 적힌 피켓.

<헌팅포차에서 만난 사이>에서 그녀의 역할이었던 ‘신수아’의 이름도 보이고, <캠퍼스 낭만이 원래 이런 거야?>에서의 ‘유나현’의 이름도 보이고, ‘정채희’라고 적힌 것도 보인다.

숨이 턱, 하고 막혀올 만큼 압도적인 광경에 우리는 입을 떡 벌린 채 할 말을 잃었다.

예상은 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건··· 대박인데?”

그들의 사랑이, 그들의 팬심이, 그들의 관심과 행복과 흥분이 노골적으로 보이고 들리고 느껴진다.

슈퍼스타에겐 당연하고도 지겨운 일상일지도 모르고, 인기 아이돌에게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르겠으나.

채희는 배우.

팬미팅조차 한 적 없던 그녀는 이런 열띤 반응에 면역이 없었다.

믿기지 않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눈에 물기가 조금씩 차오르고 있었다.

“울지는 말지?”

“안.. 울거등여···?”

말이 끝남과 동시에 코 옆을 타고 또르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녀가 황급히 고개를 돌리며 눈물을 닦자, 그걸 본 팬들이 더욱더 커다란 소리를 내지르기 시작했다.

‘일본인들이··· 원래 이렇게 반응했나?’

내가 알기로는 분명 이렇게까지 커다랗게 반응하지는 않는 걸로 알고 있는데.

아무래도 그녀의 인기는 우리의 상상 이상인가 보다.

드라마가 초대박이 터졌다는 건 이미 알았지만, 역시 글로 보며 이해하는 거랑 이렇게 피부로 체감하는 건 정말 다르다니까?

우리는 그렇게 팬들이 넘치도록 쏟아내고 있는 사랑을 느끼며 천천히 공항을 빠져나왔다.

***

“오. 이거 저랑 잘 어울리는 것 같지 않아요? 평소에도 이거 입고 다녀야겠다. 오빠, 이거 저 받아도 되는 거죠?”

“···보정은 필요가 없겠는데?”

보정을 하면 망가질 수준이다.

핏이 진짜 어떻게 이러지?

거의 매일 보면서도 볼 때마다 새롭다.

“···야바이.”

“···스고이.”

스텝들의 반응은 뭐 말할 것도 없다.

매일 보는 나도 이런데, 실물로 처음 보게 된 그들은 어떠할까.

광고 감독은 심지어 턱까지 덜덜 떨면서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 뒤로는 뭐.

거의 팬미팅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이 열띤 반응을 보일수록 채희의 연기력은 더욱더 깊어지고 다채로워졌으니.

그렇게 연기가 무르익을수록 스텝들은 보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커다란 반응을 보였다.

이게 일인지 아닌지.

“와아! 일본은 이런 식으로 하는구나? 되게 재밌는데요? 다들 잘 반응해주시니까 신나서 더 열심히 연기했던 것 같아요.”

그녀가 촬영을 즐겼다는 건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충분히 얼굴 위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잔뜩 신이 난 얼굴.

누가 보면 정말 어디 놀러 온 줄 알겠다.

‘애가 텐션이 올라서 더 잘 나왔지. 맥주 광고 찍을 때도 이럴려나?’

.

.

.

“우오오오! 스고오오이! 혼또니 스고이이이!”

오히려 더했다.

채희가 몰입하는 데에 방해될 정도로 아주 격렬한 반응을 보인다.

하긴, 청바지 광고는 캐릭터 ‘신수아’의 다양한 색깔 중 청량함과 순수함을 어필했다면.

이 맥주 광고에서는 그중에서도 청량과 순수를 제외한 묘한 섹시함을 은근하고도 진하게 어필했으니까.

채희는 스텝들의 반응에 웃음을 터뜨리며 좋아하면서도, 연기에 들어가면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연기력을 선보였다.

어쩌면 청바지 때나 지금이나 스텝들이 경악하는 이유도 이런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드라마에서 본 것보다 연기의 농도가 훨씬 더 높아졌으니까.

‘그때랑 지금은 많이 다르지.’

그때는 메소드라는 걸 몰랐고, 지금은 적재적소에 활용하기 위해 훈련하고 있는 중이었으니.

나는 그녀의 연기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이 광고가 풀리면, 일본의 팬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려나?

역시 임팩트를 생각해 두 개의 광고만 찍는 게 정답이었다.

물론, 그 임팩트의 크기는 우리가 애초에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크겠지만.

***

일본에서 광고 촬영을 마치고 돌아온 날.

나는 떡볶이 감옥에 빠져 왠종일 떡볶이만 먹어야 했다.

이젠 떡만 봐도 신물이 올라올 지경.

한동안 떡라면도 먹지 말아야겠다.

“하여간 자기는 살 안 찐다고 다른 사람도 안 찌는 줄 알아요.”

거울을 보니, 턱살이 좀 붙었다.

이 턱살이 꼭 그날의 떡볶이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영향이 아예 없지도 않겠지.

“어휴.”

거울 앞에서 한숨을 내쉬며 턱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는데.

이런 나를 보며 현지가 웃음을 참고 있는 게 보였다.

거울을 통해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살짝 놀라며 입을 열었다.

“안 찌셨어요. 지금도 멋지세요.”

잘생겼다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꺼내는 멋지다는 말은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진짜 멋진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나도 양심은 있거든.

엎드려 절 받는 건 싫으니, 나는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돌렸다.

“활동 끝내는 거 아쉽지는 않아?”

지금 음원 사이트 순위는 7위.

우리는 7위를 찍은 순간부터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으며 완전히 알박기를 해버렸다.

이러한 인기에 공중파 예능이나 인터뷰, 화보 등 많은 제의가 현지의 앞으로 들어왔는데.

우리는 이를 거의 다 쳐냈다.

“괜찮아요. 후속곡 때문에 그러는 거잖아요.”

다시 한번 나와 송하연이 같이 후속곡 작업을 하기로 얘기가 됐다.

의외로 그녀는 아무런 말도 덧붙이지 않고 흔쾌히 승낙했는데, 이쯤 되면 내가 먼저 말을 꺼내봐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앨범 작업은 언제 다시 할 거냐고.

“그래. 이번에도 좋은 걸로 만들어볼게. A&R팀에서도 이번엔 우리 꼭 이길 거라고 아주 눈에 불을 켜고 작업하려고 하더라. 우리한텐 좋은-“

똑똑.

우리의 대기실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걸음을 옮겨 문을 열자, 송하연이 밝디밝은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잘 지내셨어요?”

연락은 자주 했지만 얼굴을 보는 건 좀 오랜만이다.

나는 그녀가 콘서트를 앞두고 한창 바쁘고 잔뜩 예민해져 있을까 봐 대기실에 찾아가지 않았는데.

역시 베테랑은 다른 모양이다.

콘서트를 한 시간 앞에 두고도 이런 얼굴이라니.

“잘 지냈죠. 하연 씨는요?”

“저도 너무 잘 지냈어요. 식사는 하셨어요?”

이렇게 형식적이면서도 일상적인 대화를 하고 있는데, 문득 그녀의 뒤에 서있던 최실장님의 표정이 오묘해지고 신비로워지는 게 보였다.

뭔가 얼굴이 고생 깨나 한 듯 수척해 보이는데.

혹시.

난 송하연에게 물었다.

“콘서트 준비하는 데에 별 문제는 없었고요?”

흠칫, 몸을 떠는 최실장님.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나 보다.

송하연의 완벽주의 때문에 힘들었겠지.

프로의식이 뛰어난 탓이고, 완벽주의가 결코 나쁜 건 아니지만 피곤한 것도 사실.

“네, 전혀 문제 없었어요.”

“···아하.”

이런저런 얘기를 잠깐 나누고, 송하연과 현지가 서로 응원을 해주고서야 그들은 대기실을 나갔다.

나는 새삼 현지에게 감사함이 느껴졌다.

“현지야.”

“네.”

“우리 앞으로도 항상 이렇게만 가자. 너무 막 그렇게 완벽하지 않아도 되니까.”

“네···?”

내 말에 그녀가 눈을 깜빡이며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러다가 이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네. 오빠도요. 완벽하지 않아도 되니까.”

< 완벽하지 않아도 되니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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