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표가 목표입니까? >
금요일 오후 5시가 되기 직전.
복학생 김유민은 슬리퍼를 질질 끌고 대학가의 조그맣고 허름한 식당으로 들어왔다.
가게 안에는 자신처럼 혼자 식사하러 온 테이블이 둘.
손님이 별로 없긴 해도 맛 하나는 아주 기가 막힌 곳이었다.
나만 아는 맛집이라고나 할까?
김유민은 자리에 앉기도 전에 제육볶음을 시켰다.
그리고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살피며 식사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자주 보이던 단골 한 명이 리모콘으로 음악방송 채널을 틀었다.
음악방송, <뮤직캠프>.
‘군대 있을 때 다 챙겨봤는데.’
김유민은 묘한 그리움과 공포를 동시에 느끼며 TV를 바라봤다.
언제나처럼 마찬가지로 MC들의 손발 오그라드는 장면이 보인다.
‘묘하게 중독성 있단 말이야?’
피식 피식 웃으면서 보는데, 마침 제육볶음이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오! 어머니, 맛있게 먹겠습니다!”
“그려. 많이 먹어.”
후- 후- 불고 입에 한가득 집어넣으며 극락을 맛보고 있는 와중.
TV에서는 어느새 신인이라고 소개된 여성 솔로 가수의 무대가 시작됐다.
‘역시 제육은 여기가 짱이야.’
힐끔힐끔 무대를 보며 제육볶음을 입에 집어넣기를 몇 번.
김유민의 숟가락은 조금씩, 조금씩 느려졌다.
그리고 힐끔힐끔 보던 시선은 어느새 TV에 완전히 고정되어 있었다.
‘귀엽긴 하네?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곡도 좋고, 실력이 엄청나다는 것도 한눈에 보인다.
오물오물 천천히 무대를 보던 김유민은 다시 숟가락에 제육을 담아 입으로 이끌었다.
그런데.
“···어?”
가수의 얼굴이 클로즈업됐다.
마치 너무나도 기쁘고 즐겁다는 듯이 가식없이 순박한 미소가 활짝 피어난 얼굴.
입으로 향하려던 숟가락이 우뚝, 멈췄고.
그는 멍한 표정이 되어 그렇게 석상처럼 몸이 굳어버렸다.
그렇게 마침내 무대가 끝나고, 엔딩 포즈를 취하며 배시시 웃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5초 동안 클로즈업되었다.
5초.
그 뒤에 화면은 다시 넘어갔지만.
그의 속에서는 그 짧은 5초 동안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어느새 멈춰 있던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숟가락을 그릇 위에 그대로 내려놓는 김유민.
그는 가슴에서 뭔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는 걸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름···. 이름이 뭐였지?”
그는 제육볶음의 온기가 서서히 사라져가는 것도 신경 쓰지 않은 채.
핸드폰으로 황급히 검색을 시작했다.
***
분명히 피곤해야 마땅한데 그 어느 때보다 더 힘이 나고 있다.
이상하다.
내 몸이 이렇게 체력이 좋을 리가 없는데?
“오빠, 이제 쉬어야 할 것 같아요. 저는 정말 괜찮으니까 무리하지 않으셔도 돼요.”
음악방송의 대기실.
유현지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현지야, 나 피곤해보여?”
“아뇨. 그렇지는 않아요. 그런데 너무 힘드실 것 같아서요.”
거울을 봐도 그렇다.
내 얼굴에는 생기가 돌고 있었다.
죽기 전 마지막 불꽃을 불태운다는 회광반조도 아니고.
아마 그 원인은 하나일 것이다.
바로 인터넷에 올라오는 유현지에 대한 반응.
나는 이걸 보는 것에 완전히 중독되어 있었다.
자꾸자꾸 확인하는 게 내가 보기에도 중증이었다.
1분에도 몇 번씩이나 새로운 글이 올라온 게 없는지, 댓글은 새로 달린 게 없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그야, 반응이 미친듯이 뜨거웠으니까.
물론, 아직까지 언급되는 횟수는 적었지만.
그녀에 대해 언급하는 소수의 인원들은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처럼 열띤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이러니 중독이 안 되고 배겨?’
그런데 유현지의 얼굴에 걱정이 너무 많이 담겨있다.
“제가 이따 깨워드릴 테니까 지금이라도 주무세요.”
그녀는 자신의 다리를 덮고 있던 담요를 내게 건네며 말했다.
이걸 이불 삼아 누우라는 거지.
‘진짜 안 피곤한데···.’
정말 안 피곤하긴 한데, 그래도 돌아갈 때 덜컥 사고라도 나면 어떡해.
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길쭉하게 이어붙은 의자 위에 몸을 뉘였다.
‘따뜻하긴 하네.’
담요가 참 따스하다.
눈을 감고 있는데, 머리가 살짝 들려지더니 곧 뒷통수가 푹신해졌다.
뭔가 하고 보니, 유현지가 챙겨온 얇은 점퍼였다.
“이건 너 입어야지.”
“지금은 괜찮아요. 이따가 추워질 때 입을게요.”
“···고마워.”
복작복작한 공용 대기실.
나는 그 뒤로 기억이 뚝, 끊겼다.
***
재잘재잘. 조잘조잘.
귀를 부드럽게 간질이는 소리에 나는 눈을 떴다.
“어? 일어나셨다.”
나를 가리키는 낯 익은 얼굴.
그리고 사람들로 꽉 차 있는 우리의 파티션.
나는 그 익숙한 얼굴들을 보며 눈을 껌뻑였다.
“샴페인··· 노바?”
아무래도 놀러온 모양이다.
이 음방에서 최고 후배인 유현지의 대기실로.
아니, 얘네도 우리랑 같은 공용대기실이었지?
그럼 이제 막 도착했나 보다.
사전녹화가 이래서 편하다니까? 컴백이라고 세트도 빵빵하게 꾸몄겠지.
‘얘네 녹화 시간이 새벽 5시였으니까 3시간쯤 잤나 보네.‘
그래도 몸에 피로가 쌓이긴 했나 보다.
이렇게 기절하듯이 잘 줄은 몰랐지.
“잘 주무셨어요?”
유현지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제서야 분위기를 자세히 살필 수 있었다.
6인조 걸그룹 샴페인 노바와 그 매니저.
그리고 우리 댄스팀과 유현지.
‘분위기 나쁘지 않네.’
오랫동안 연습생 생활을 함께 했다지만, 샴페인 노바가 여기 찾아왔다고 해서 꼭 호의적이라는 법은 없었다.
그런데 다행히 견제하거나 그런 걱정스러운 일은 없었던 모양이다.
비단 유현지뿐만 아니라 댄서들의 표정도 좋았으니까.
물론 샴페인 노바의 표정은 마음이 마냥 편해 보이지는 않았는데, 그건 어쩔 수 없지.
현지는 이제 막 데뷔했음에도 불구하고 심상치 않은 징조를 보이고 있었으니까.
더구나, 그녀들도 현지의 뮤비와 무대를 봤을 테고.
그러니 경쟁자로서 걱정스러운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 수밖에 없다.
‘얘네도 이번 곡 나쁘지 않던데.’
이미 오늘, 아니 지금 새벽이니까 이제 어제지.
어제 올라온 그녀들의 뮤직 비디오를 봤다.
데뷔곡보다 색깔도 선명해졌고, 음악에도 더 신경을 썼으며 서로의 합도 좋았다.
YU엔터에서 그녀들의 데뷔 성적을 보고 더 투자한 모양.
“죄송해요, 저희가 시끄러웠죠?”
샴페인 노바의 리더인 박수현이 내게 말을 건넸다.
그리고 문득 그녀들의 매니저가 매우 통탄스러운 얼굴로 유현지를 바라보고 있는 걸 발견했다.
내 얼굴에 절로 함박미소가 지어졌다.
“아뇨. 덕분에 기분 좋게 깼습니다. 컴백 축하드려요. 이번 곡 좋던데요?”
“아, 감사합니다.”
“오! 저희 거 보셨어요?”
막내 이민지가 대뜸 끼어들며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그런데, 한 번 더 질문이 날아왔다.
“저희 음방 1위 할 수 있을까요?”
“···?”
“매니저님이 소문의 그분이라면서요. 연예계 무당.”
“···예?”
“정채희 선배님이랑 현지 알아본 거랑, 그리고-“
헛웃음이 절로 나오는 가운데, 다른 멤버들이 그녀를 제지시켰다.
부적, 겉바속촉, 겉촉속촉에 이어서 이제는 무당?
‘소문이 저기까지 퍼졌구나.’
그런데 어쩌지?
‘아무래도 그쪽은 1위는 못 할 것 같은데.’
물론 그녀들이 이전의 활동으로 쌓은 인기 때문에 당장만 보면 우리 현지보다 위에 있었지만, 그것도 얼마 안 가 뒤집힐 것이다.
나는 잠시간의 시간 동안 샴페인 노바의 멤버들과 그녀들의 매니저를 매우, 매우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현지를 놓아준 YU엔터.
내겐 너무 고마운 분들 아닌가.
그들에겐 이렇게 해줄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
크랭크인을 코앞에 앞두고 있는데 구선학 감독은 밤 새는 줄 모르고 일하고 있었다
대본 리딩이 끝난 뒤부터였다.
구선학 감독은 계속해서 콘티에 디테일을 더하고 또 더하였다.
그 때문에 회의는 끊이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촬영감독, 조명감독, 미술팀, 음악팀, 분장, 의상, 소품, 세트···.
덕분에 스태프들은 자잘하게 할 일이 계속해서 새로 생겨났지만, 이는 나중에 할 일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과 같은 것.
자꾸만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완벽에 완벽을 기하고 싶은 욕심이 끊임없이 솟구치니 작업을 도저히 그만둘 수가 없었다.
사각사각.
연필을 잡고 콘티에 디테일을 수정하며 추가하고 있는 구선학 감독.
그의 이마에서는 구슬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눈빛은 쉼없이 번들거리고 있었고, 온몸에서는 에너지가 펄펄 끓었다.
‘이건 내 인생 최고의 걸작이다!’
감독의 영감과 욕심을 이토록 자극시킨 것은 바로, 리딩에서 목도한 배우들의 연기.
그 리딩은 가뜩이나 열정 넘치던 가슴에 더욱 큰 불을 지피고 말았다.
조연들도 좋지만 무엇보다 주연들.
그중에서도 정채희.
애초에 정채희를 먼저 주연으로 낙점했던 건, 지금 와서 생각해봐도 정말 신의 한 수라고 할 수 있었다.
‘이젠 정채희 아니면 상상도 할 수 없어.’
주연은 네 명이지만 진정한 주인공은 그녀 한 명.
시나리오가 그렇게 만든 게 아니라, 그녀의 연기가 그렇게 만들었다.
아마 영화를 본 관객들의 머릿속에선 정채희가 가장 기억에 남을 것이다.
감독은 그녀가 리딩실의 공기를 훅! 하고 빨아들인 듯 숨이 턱, 하고 막혀왔던 그때가 잊혀지지 않았다.
존재감, 아우라, 포스, 분위기, 스타성.
뭐라고 불러도 상관없을 그것이 콸콸 흘러 넘쳤고, 몰입력과 감정전달, 표현력은 예술인의 혼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좀 더. 좀 더.’
사각사각.
배우들의 연기를 더욱더 생동감 넘치게 살리기 위한 노력.
최고의 재료로, 최고의 요리를 만들기 위한 준비.
이미 최종검토를 마쳤던 콘티는 그렇게 계속 디테일이 덧붙여지며 퀄리티를 높여가고 있었다.
***
“크으!”
듣는 사람까지 시원해지는 소리를 내며 소주잔을 내려놓는 이성호.
그는 마른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며 눈앞의 친구에게 말했다.
“한울이랑도 빨리 한잔 해야 되는데, 이놈 왜 이렇게 바빠?”
“잘나가고 능력 있으니까 바쁘지. 지금 유현지 반응이 장난이 아니야. 팬 생겼다 하면 바로 찐팬 돼서 라이트 팬이 보이지를 않아.”
대표실이 포장마차가 된 것에 대해 마뜩잖은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아들 칭찬을 할 수 있게 되자 바로 기분이 좋아졌다.
“한울이 이놈이 그런 능력 있었으면 진작에 일 좀 시키지. 들어보니까 아주 괴물이더구만?”
“그러게 말이야. 난들 알았겠냐고. 한울이가 이렇게 능력이 좋을지.”
그렇게 한참을 박한울에 대한 얘기만 하던 둘.
이야기는 점차 매니저의 중요성에 대해 넘어갔고, 그 얘기는 또 이성호의 팀에 대한 얘기로 넘어갔다.
박대표는 말했다.
“이제 슬슬 매니저도 정해야지. 어느 팀으로 갈 거야? 미리 말해두는데 한울이는 안 돼.”
“걱정 마. 나도 그렇게 창창한 놈 앞길 막을 생각 없어. 웬만큼 잘하면 몰라, 캐스팅부터 시작해서 둘이나 스타로 만들고 있는데 거기에 내가 끼는 건 아니지.”
커리어를 생각하면 그렇다.
이미 올라갈 대로 올라간 이성호를 이대로 유지하는 것보다, 밑바닥에서부터 스타로 키우는 것이 훨씬 어려우며, 훨씬 더 인정을 받을 수 있다.
가뜩이나 바쁜 박한울에게 이성호의 매니지까지 맡기면, 정채희와 유현지에게 향할 집중이 분산될 터.
게다가 박한울이 아직 실장급도 아니라서, 여러모로 많이 애매해질 수가 있다.
또한.
“난 내가 하고 싶은 작품 할 거야.”
이성호는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탑스타 중 한 명.
흥행도 당연히 포기할 수 없는 요소이기는 하지만 그게 우선순위는 아니었다.
어차피 심한 망작이 아닌 이상 자신이 작품에 들어간 순간 성공가도를 달리게 될 테고.
“그래서 팀은 어떻게 할 거냐고.”
“팀장들이랑 다 말은 해봤는데, 아직 고민돼. 그런데 급할 거 있어? 느긋하게 가자고.”
이성호는 다시 잔을 채우고 건배했다.
그렇게 얼마나 마셨을까, 집에 들어갈 시간이 돼서야 겨우 자리를 정리할 수 있었다.
“내일은 아예 배달시켜 먹을까?”
“···어휴, 징한 놈.”
이성호는 박대표의 질린 표정을 보며 키득거렸다.
그렇게 사옥 밖을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각자의 집으로 가려는데.
“선생님.”
“음?”
“1팀의 최태현입니다. 제가 집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1팀의 최실장.
이성호는 옅게 미소 짓는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나 아직 선생님 아니요. 거기까진 안 갔어.”
“네, 선배님.”
최실장의 눈에 시선을 고정한 이성호가 박대표에게 말했다.
“이분 눈에 욕심이 아주 그득그득한데? 박대표, 나 먼저 갈게.”
박호진 대표는 차에 순순히 몸을 싣는 이성호를 보며 픽, 웃었다.
“대표님,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그래, 얘기 잘해. 저 친구 대할 땐 솔직하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게 최고야.”
“감사합니다, 대표님.”
최실장이 이러는 이유는 모를 수가 없었다.
자신의 팀에, 자신의 담당으로 데려오기 위해서.
박대표는 최실장을 응원했고, 이성호는 일단 얘기나 들어보자는 생각이었다.
어찌 됐든 팀을 선택해야 하니, 얘기를 들어봐서 나쁠 거 없었으니까.
탁!
운전석에 올라탄 최실장.
뒷좌석에 앉은 이성호는 대뜸 본론부터 찌르고 들어왔다.
“어떻게 하시려고? 이미 1팀이랑 얘기는 해봤는데.”
최실장은 뒤쪽으로 자세를 틀고, 이성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형형하게 눈빛을 빛냈다.
“정확히 말하면 강팀장님과 얘기하신 거죠.”
“그러니까··· 같은 팀이기는 한데, 강팀장이랑 그쪽은 또 다르다?”
“예.”
거침없이 튀어나오는 대답.
이성호의 보조개가 깊게 패였다.
“역시 욕심이 그득그득하시구만.”
이성호는 박대표가 걸어간 쪽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대표가 목표입니까?”
최실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확고하게 굳혀진 목표를 입에 담았다.
“2인자가 되는 게 제 목표입니다.”
< 대표가 목표입니까?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