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 : 송하연, 박한울] >
A&R팀의 사무실.
유현지에 대한 데뷔 프로젝트에 한창 박차를 가하고 있는 이때.
박부장은 부하직원의 입에서 나온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부장님, 하연이가 음악 보냈는데 작곡에 박한울 씨 이름도 올라와 있는데요?”
“···뭐? 그 매니저?”
다른 업무를 하고 있던 박부장은 서둘러 파일을 확인했다.
정말로 작곡자 이름에 송하연과 박한울의 이름이 함께 올라와 있었다.
‘뭐야.’
1팀의 최실장도 작업하는 걸 봤다고 들었고, 김본부장님께도 듣긴 했다.
그런데 이렇게 작곡자 이름에 올라올 줄은 몰랐다.
그저 3팀의 윤팀장이 1차 회의에서 미리 PT를 준비했던 것처럼 유현지의 매니저인 박한울도 김본부장의 말을 옮기는 건 줄 알았지.
“정말 같이 작곡했다고? 그 사람 그냥 매니저 아니었어?”
“저번에 하연이가 그 매니저한테 음악 작업 도와달라고 했던 거 아시잖아요. 그때도 듣기로는 정말 음악은 해본 적도 없고 배운 적도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된 건데.”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실수 아닐까요?”
실수가 아니라면 참 이상한 일이다.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닌 송하연과 공동작곡?
있을 수 없는 일.
‘뭐 약점이라도 잡혔나?’
엉뚱한 생각이지만 이런 생각을 할 정도로 두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아무튼··· 한 번 들어나 보자.”
어차피 이게 지금 공모된 첫 번째 곡이다.
작곡팀이나 다른 외주 작곡가들은 아마 한창 곡을 만들고 있는 중일 테고.
사무실에 있던 A&R팀의 인원들은 모두 하고 있던 업무에서 손을 떼고, 가장 중요한 업무에 들어갔다.
그렇게 모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틀어진 음악.
생뚱맞게 박한울의 이름이 끼어 있긴 하나, 어쨌거나 회사 내 최고 에이스인 송하연이 만든 음악이니 기대감은 있었다.
그런데.
“···!”
“···!”
“···?”
도입부를 지나 첫 번째 훅이 나온 순간.
이들은 눈을 부릅 뜨고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들이 놀란 이유는 그 퀄리티도 그렇지만, 음악의 색깔과 특징들 때문.
이들은 A&R팀이다.
어떤 음악을 만들어야 할지 사내에서 가장 잘 알고 있는 팀.
작곡가들에게 곡을 설명하며 요청하고, 받은 음악에 수정을 요구하는 팀.
그렇기에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었다.
1차 회의에서 나온 방향과 색깔, 그리고 자신들이 작곡가들에게 설명했던 방향과 색깔이.
지금 이 순간.
가장 최고의 상태로, 자신들이 막연하게 상상했던 그것보다 아득하게 뛰어난 결과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입밖으로 꺼내고 싶은 말은 많았으나 아직은 입을 열어야 할 때가 아니다.
음악은 아직도 흘러나오고 있었으니까.
이들은 이제 다른 것에 집중했다.
가이드를 한 송하연의 목소리를 유현지의 목소리로 대체하면 어떨까.
좀 더 진지하게, 좀 더 깊숙하게 빠져들며 그렇게 귀를 기울였다.
“···.”
“···와.”
3분 30초 정도의 시간이 지나 스피커에서 아무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이들은 입밖으로 소리를 낼 수 있었다.
바람 빠지는 듯한 탄성, 그리고 육성으로 내는 진한 감탄사.
이들의 눈은 박부장을 향했다.
“부장님, 이거···.”
이들은 지금 자신들이 모두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부장은 저 의미없는 부름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래. 다른 곡 모을 필요 없이 이걸로 결정하는 게 최선이야.”
이보다 더 이번 싱글 컨셉에 잘 맞는 음악은 나올 리가 없을 테니까.
또한 유현지의 개성 있는 색깔을 이것보다 더 잘 표현하고 더 잘 어필할 수 있는 음악도 없을 테고.
“예, 그런데 부장님.”
“왜. 혹시 모르니 기다려보자고? 다 의미 없어. 그냥 이거야. 이 곡으로 해야 돼.”
“아뇨, 그게 아니라요. 그··· 박한울 매니저님, 이거 정말 실수 맞는 거겠죠?”
직원이 손가락으로 모니터를 가리켰고,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작곡 : 송하연, 박한울]
아까도 본 그 이름.
그러나 음악을 듣기 전과 음악을 들은 뒤인 지금 느껴지는 것은 그야말로 천지차이였다.
“다른 곡도 아니고, 이런 곡이니까··· 정말 실수 맞겠죠?”
***
채희와 해가 질 때까지 시나리오 분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밝은 표정으로 나를 맞이해주셨다.
“왔냐.”
“네.”
“그거 들었어? 1팀에 A&R팀이 찾아와서 최실장한테 묻고 난리였다네? 그거 정말 네가 공동작곡한 거 맞냐고.”
나도 들었다.
우리 팀장님이랑 한실장님한테서 연락이 왔었지.
그만큼 곡이 좋기 때문에 그런 반응이 나온 것일 터.
나는 그때 대답한 것처럼 어깨를 으쓱이며 간단하게 답했다.
“네, 뭐 좀 그렇게 됐어요.”
“야 인마. 그런 재주가 있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한 번 자세히 말해봐. 어떻게 작업했어?”
몸은 좀 피곤하지만 아버지의 표정을 보니 꼭 자세히 말해줘야 할 것 같았다.
너무 기뻐하셔서.
한량으로 살 땐 이런 얼굴을 보기 힘들었었는데, 요즘은 꽤 자주 보는 것 같다.
나는 아버지께 처음부터 끝까지 길게 설명을 해주었고, 아버지는 중간중간 꼭 추임새를 넣으며 이야기를 즐기셨다.
마치 만담꾼이라도 된 것 같다.
“나도 들어보니까 진짜 최고더만. 그럼 거의 네가 다 만든 거네?”
“저 혼자면 절대 그렇게 못 뽑았죠. 하연 씨가 뛰어난 거예요.”
“짜식이 이젠 겸손도 떨어?”
“사실인데요, 뭘.”
정말로 나 혼자라면 만들 수도 없었을뿐더러.
송하연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빨리, 이렇게까지 고퀄리티로는 못 만들었다.
“아무튼 그건 됐고요. 물어볼 게 있는데-“
“아무튼 그건 됐다니? 이게 지금 회사에서 얼마나 이슈였는데. 너 이제 작곡가 데뷔하는 거라니까?”
“아무렴 어때요. 어차피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을 텐데.”
작곡가로 이름을 올린다는 것에 대해선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그저 유현지의 데뷔곡이 이렇게 좋게 뽑혔다는 것에 대한 기쁨, 그리고 유현지의 앞으로에 대한 기대감만이 들 뿐이었다.
내 생활에도 바뀐 것 하나 없을 테고.
나는 정말 매니저가 천직이라니까.
“아버지, 물어볼 거 있다니까요.”
“뭔데?”
분명히 그때 제작사 대표는 시나리오 각색과 동시에 프리 프로덕션에 들어간다고 했었다.
그런데, 어째 가장 중요한 것들에 대해서 들려오는 게 없었다.
스태프 구성은 대부분 됐고, 투자도 어느 정도 이뤄졌다고 들었는데.
“왜 캐스팅 소식이 없는 거예요?”
“정채희 영화?”
박송이를 비롯한 조연들 몇몇을 제외하고는, 주연에 대한 캐스팅 소식이 전혀 없었다.
주연 넷 중에 결정된 건 채희 하나뿐.
“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오래 소식이 없는데요?”
물론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걸 나도 알고는 있었다.
첫째, 시나리오 각색이 안 됐었다는 것.
아무리 구선학 감독이 있다지만 고작 웹드라마 하나 쓴 작가가 웹드라마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만든 드라마 대본을 시나리오로 각색한다고 한 것이다.
언제 완성될지도 모르고, 어떻게 완성될지도 미지수.
시나리오가 나오기도 전에 출연을 결정짓기는 쉽지 않았겠지. 특히 탑스타들은.
또한 업계 관계자들도, ‘그 작가가 영화는 제대로 알겠어?’라는 반응이 대부분일 터.
둘째, 거장 이영진 감독이 만드는 영화와 장르가 완전히 겹치고, 시기 또한 겹칠 위험이 높다는 것.
가뜩이나 첫 번째 위험도 있는데 다른 리스크 또한 있는 거다.
구선학 감독이 드라마를 대박 쳤다고 해도, 영화로는 이영진 감독과 비비기엔 아직 한 수 아래라는 평가가 지배적.
개봉 시기를 조정하면 모를까, 만약 겹친다면 확 깨질 리스크가 높으니 그걸 굳이 짊어질 필요는 없는 거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주연 캐스팅이 힘들다는 건 미리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지금까지 채희 말고 한 명도 캐스팅 못 한 건 좀 심했지.
아버지는 기뻐하던 표정을 살짝 가라앉히고는 쩝, 입맛을 다셨다.
“나도 한 번 물어봤는데 제작사랑 감독이 눈 낮추려고 하지는 않더라고. 어떻게든 꼭 잘 소화할 수 있는 배우를 찾을 모양이야.”
“···.”
“난감한 상황이지. 자기들은 자신감이 있는데 다른 배우들이랑 기획사는 그걸 안 믿으니까. 시놉이 마음에 든다고 해도 리스크가 더 크고. 원래 이 바닥 사람들이 특히 지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고 묻히는 거에 벌벌 떨잖아. 그래도 이젠 시나리오 나왔으니까 상황이 더 좋아지겠지. 제작사도 시나리오 나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으니까 이제 다시 캐스팅 재개될 거야.”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는데, 아버지가 위로의 말을 던졌다.
“영화는 급하게 안 가도 되니까 걱정 말고 있어. 그래도 구 감독이랑 채희 이름이 있어서 다행히 투자는 나름 나쁘지 않게 되고 있다고 하고.”
이제 시나리오가 나와서 캐스팅이 다시 본격적으로 재개된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해도 아마 극적인 변화는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아버지께 물었다.
“아버지, 그쪽에서 원하는 배우가 정확히 뭐래요? 스타급 배우? 아니면 잘 살릴 수 있는 배우?”
“둘 다겠지?”
“확실한 건 아니죠?”
내 물음에 아버지는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이셨다.
“그럼 한 번 알아봐주실래요? 그쪽에서 원하는 배우가 어떤 배우인지, 그리고 캐스팅 제의를 누구한테 했었는지랑 지금 진행상황 같은 거요.”
“···작곡가도 했겠다, 이젠 캐스팅 디렉터까지 해보려고?”
그렇게 되묻는 아버지의 눈빛에서는 기대의 빛이 일렁거렸다.
내 안목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본부장과 아버지.
‘아, 송하연도 어떤 면에서는 더 잘 알려나? 아, 유현지랑 채희도···.’
나는 고개를 홱홱 저었다.
뭐, 아무튼 캐스팅 디렉터 한 번 해보자.
작곡가도 했는데 까짓 다른 거라고 하지 말라는 법 있어?
“네, 한 번 해보려고요. 캐스팅 디렉터.”
***
그 다음날.
나는 또다시 채희의 집으로 출근을 해야만 했다.
“우리 분명 이전까지는 연습실에서 하지 않았냐?”
“바뀔 수도 있는 거죠. 원래 예술하는 사람들은 환경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고 하더라고요. 새로운 느낌도 받을 수 있고, 집중도 더 잘 될 수 있고요. 그리고 밥도 매일 밖에서 먹으면 건강에 안 좋잖아요. 얼마나 더 연습해야 할지 모르는데, 균형있는 식사도 하고 그래야죠. 저 이제부터 관리해야 돼요.”
혓바닥이 길지만 그냥 그런갑다 하고 넘어갔다.
딴에는 회사에 출근하면 내 케어가 유현지에게도 분산될까 봐 이러는 것 같은데.
어차피 분석을 매번 날 샐 때까지 하는 것도 아니거든.
또한 영화를 찍기 전까지 매일마다 내가 연습을 돕는 것도 아니고.
“알려준 거 복습은 제대로 했어?”
“네!”
내 말에 그녀는 이미 너덜너덜한 시나리오를 자랑스레 들어올려 보였다.
물론 아무리 많이 읽었더라도 고작 하루만에 이렇게 될 리는 없고, 내가 말해준 걸 열심히 필기하고, 포스트 잇도 덕지덕지 붙이고 해서 그렇게 보일 뿐이었다.
복습하면서 좀 더 적은 것도 많고, 포스트 잇도 더 많아졌겠지.
저 시나리오는 이제 본격적으로 연기 연습에 들어가면 좀 더 너덜너덜해질 예정이었다.
“오빠, 근데 작곡가로 데뷔하셨다면서요.”
집구석에만 있었을 텐데 또 그건 언제 들었대?
이젠 새삼스럽지도 않아서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됐어. 그런데 전문적으로 할 건 아니고.”
“맞아요. 전문적으로 하는 건 또 달라서 항상 신중하게 결정해야 돼요. 그리고 제가 봤을 때, 오빠는 배우 매니저가 진짜 천직이에요!”
너덜너덜해진 시나리오를 흔들면서 말한다.
그래, 내가 분석은 또 아주 기가 막히게 하지.
나는 픽, 웃고는 말했다.
“그럼 재주 좀 살리자. 어제는 시나리오 분석했으니까 오늘은 캐릭터 분석해야지. 그리고 이거 끝나면 장면 분석하고.”
“···.”
채희는 이미 두툼해진 시나리오를 내려다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포스트 잇 그냥 다 떼버리고 따로 정리할까요? 이러다간 백과사전 될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펜과 포스트 잇을 앞에 준비한다.
아직도 인터넷에선 채희의 이름이 많이 보이며, TV에서도 그녀가 찍은 광고가 몇 개나 흘러나오고 있다.
사실 이쯤 되면, 어느 정도 자만심이 들 만도 한데.
그녀에게선 그런 모습이 일절 보이지 않았다.
주연배우 캐스팅이 자신 빼고는 한 명도 되지 않은 상황인데도,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언제나 열심히.
더욱더 성실하게.
그녀는 항상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얘도 이렇게 노력하는데 나도 최대한 할 수 있는 걸 해야지.’
분석도 그렇고, 연습을 도와주는 것도 그렇고.
또한.
난항을 겪고 있는 캐스팅을 돕는 것도 그렇고.
< [작곡 : 송하연, 박한울]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