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희 사이에 그 정도 부탁이야 >
정식으로 유현지의 매니저가 됐으니, 나는 차를 몰고 그녀의 집으로 데리러 갔다.
회사의 각 팀마다 전략을 짜는 중이라 당장 그녀가 뭘 해야 할 건 없지만.
‘나는 있거든.’
컨셉이나 방향 등 내가 생각해놓은 것들이 있었는데, 이를 아버지나 본부장님께 말하기 전에 그녀와 함께 상의해보는 게 우선.
아무리 그녀와 잘 어울린다고 해도 그녀가 원하는 방향과 다르면 곤란하니까.
“우리 현지 잘 부탁해요.”
“걱정 마세요, 어머님.”
집에 매니저가 데리러 오는 게 처음이라서 그런지 어머님까지 함께 나오셔서 현지를 배웅해줬다.
어제 아버님이랑 회사에 같이 오셔서 그렇게 좋아하시더니.
결국 집으로 돌아가서 눈물을 흘리셨나 보다.
눈이 아직도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다.
“저 믿고 마음 푹 놓으세요.”
그렇게 책임감을 한 스푼 더 얹게 되었다.
역시 대화를 나누러 오길 잘했지.
나중에 바쁘게 활동하게 되더라도 유현지가 원치 않는 방향이었어봐.
그건 나를 위한 활동이지, 그녀를 위한 활동이 아니다.
“부모님께서 많이 좋아하셨나 봐요.”
“네. 엄청 좋아하셨어요.”
나는 운전석에, 그녀는 보조석에.
벨트를 매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오늘은 연습하러 가는 게 아니라서 그런지, 옷차림부터 해서 전체적으로 화사한 느낌이 풍겼다.
이 정도면 어느 그룹에 들어가도 비주얼 센터를 차지할 텐데, 역시 아무리 생각해봐도 YU엔터는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할 것 같다.
그들이 아무리 착해도, 유현지가 떡하니 스타가 되는 걸 보면 배가 아플 테니까.
그녀는 나지막한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데뷔하게 됐다는 게 아직도 실감이 안 나요. 꿈 꾸는 것 같아요.”
“빨리 적응하세요. 데뷔한다는 거 실감하기도 전에 인기까지 얻으면 어떻게 적응하시려고요.”
“저 인기 얻을 수 있을까요?”
“당연하죠. 장담할 수 있어요.”
그 말을 듣고 잠시 말이 없던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상하게 매니저님이 말씀하시면 다 믿게 되는 것 같아요.”
낯이 간지러워져서 뺨을 긁적였다.
“가면서 음악이라도 들을까요?”
“좋아요.”
아직 운전을 하기 전.
평소처럼 내 핸드폰으로 블루투스를 연결할까 하다가, 그녀에게 권하기로 했다.
취향을 좀 더 알고 싶어서.
“현지 씨가 좋아하는 음악 트세요.”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운전대를 잡았다.
우리가 가는 곳은 회사가 아닌 인근의 카페.
일종의 외근이랄까.
정식 매니저가 되니 이런 점이 편했다.
업무 시간인데 굳이 회사에 안 있어도 되잖아.
거리상으로는 금세 도착하겠지만, 뺑뺑 돌아갈 수도 있다.
얘기가 진행되는 것에 따라서.
“혹시 이 노래 아세요?”
아마 뭘 틀어도 알 확률이 높다.
역시.
흘러나오는 노래는 내가 잘 아는 노래였다.
박자감을 중점적으로 살리면서 멜로디 또한 귀에 꽂히는 강렬한 팝송.
라이브 영상도 봤었는데 무대를 찢어놨었지.
“예전부터 이 노래 좋아했었는데, 전 안 어울리는 곡이라 연습을 못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잘 어울리게 됐네요?”
보컬이 바뀌어서.
이제는 잘 어울릴 것이다.
“네, 매니저님 덕분에요. 나중에 시간 나면 한 번 연습해보려고요.”
차는 주거단지 바깥으로 나왔는데 역시 뺑뺑 돌아야겠다.
음악이 흘러나오는 동안 그녀는 살짝살짝 리듬을 탔다.
고개를 작게 끄덕끄덕, 허벅지 위의 손가락을 까딱까딱.
그러다가 종반부쯤 되자, 그녀는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다음 곡을 선곡하기 위해.
“이 노래도 아세요?”
“그럼요, 알죠. 현지 씨는 이 노래가 왜 좋아요?”
“전체적인 느낌부터 다 좋아요. 도입부도, 보컬도, 악기 재질도 좋고, 멜로디도 좋고. 그리고 지금 이 파트가 특히 더 좋은 것 같아요.”
나는 머릿속으로 차곡차곡 데이터를 쌓아갔다.
그녀가 좋아하는 스타일과, 내가 생각했던 그녀의 앨범 컨셉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그렇게 우리는 한 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인근을 뺑뺑 돌았고.
아예 카페에서 커피를 테이크 아웃해서 다시 차 안으로 들고 들어왔다.
내가 먹을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그녀가 좋아하는 따뜻한 녹차라떼.
이미 좋아하는 건 다 외워놨지.
“저희 카페 안 가요?”
“네, 음악 들으면서 드라이브나 하죠.”
“좋아요.”
추가로 한 시간 반.
총 두 시간 반 동안 우리는 음악을 들으며 계속해서 얘기를 나눴고.
나는 그녀를 집으로 데려다줬다.
왜 불렀는지 의아할 법도 한데.
그녀는 이를 묻는 대신 싱긋 미소 지으며 물었다.
“아까 튼 것까지 포함해서 제 플레이리스트 보내드릴까요?”
“그럼 좋죠.”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집으로 들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내가 아무리 숨길 생각이 없었다 해도 그렇지, 왠지 내 머릿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단 말이야.
레퍼런스를 마구 던져주며 이런 점이 좋고, 이런 점은 별로다, 라는 것들까지 아주 상세하게 말하지 않았는가.
‘눈치가 귀신인가.’
아무튼, 레퍼런스는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
그녀와 두 시간 반 동안 우리는 충분히 많은 얘기를 나눴고, 내 머릿속에는 곡에 대한 확고한 이미지가 잡혔다.
그 길로, 나는 곧바로 본부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무슨 일이지?
“현지 데뷔곡에 대해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 만나뵐 수 있을까요?”
아직 사내에서 회의가 시작되지도 않았지만, 나는 개입하고자 했다.
본부장이 안 된다면 아버지에게라도.
다행히, 본부장님은 내게 어느 정도 신뢰가 쌓인 듯, 곧장 승낙해주었다.
-지금부터 두 시간쯤 시간 나니까 그때 봤던 식당으로 와.
“네, 알겠습니다.”
두 시간이면 차고 넘치지.
***
사내 소식에 대해선 송하연 또한 밝았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 사내에서 가장 핫한 소식 또한 들을 수 있었다.
유현지와 박한울에 대한 소식.
그 소식에 대한 초점은 박한울에게 맞춰져 있었다.
그도 그럴 게.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면서 운 좋게 정채희를 맡아 성공가도를 달리게 됐는데.
자신에게 매니저 제안도 받고, 음악적으로 도움 요청을 받기도 했다.
거기다 이젠 가능성 높은 새로운 신인가수까지 맡게 되었으니.
직원들로선 뜨거운 감자일 수밖에 없었다.
“음···.”
송하연으로서는 마음이 약간 복잡했다.
자신의 매니저를 거절한 이유는 어느 정도 납득이 됐다.
자신이 없어서, 신입이라 아무것도 모르는데 피해 끼칠까 봐, 팬은 팬으로 남을 때가 가장 행복한 것 같아서.
또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정채희에게 집중하고 싶다는 이유도 있을 거라 생각됐다.
아무튼, 한동안 정채희 외엔 아무도 맡지 않을 거라 생각됐는데 뜬금없이 가수까지 맡게 된 것.
그에게 매니저 제안을 거절당한 송하연으로서는 조금, 아주 조금은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와 함께 연예계 생활을 한다면, 신뢰나 유대감도 그렇거니와 무엇보다도 음악 작업에 있어 큰 도움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을 테니까.
“나중에 너무 바빠지면 어쩌지?”
송하연이 걱정하는 건 이거였다.
그가 나중에 너무 바빠지면 자신이 그를 필요로 할 때, 도움을 못 받을 수도 있으니까.
“뭐 좋은 방법 없나?”
송하연은 소파 위에 쭈그려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박한울의 프로필 사진을 보며.
그런데 그때.
참으로 타이밍 좋게도.
지이잉- 지이잉-
박한울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하연 씨, 혹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어떤 부탁이요?”
귀에 핸드폰을 딱 붙이며 경청하고 있는데, 씨익 미소가 지어질 만한 말이 들려왔다.
-곡 하나만 부탁드리고 싶어서요. 제가 말하는 대로 만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그럼요. 저희 사이에 그 정도 부탁이야. 아무리 바빠도 도와달라고 하면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
본부장님과의 미팅을 마치고 송하연에게 가는 길.
사실 미팅이라기보다는 일방적인 설명에 지나지 않았다.
레퍼런스를 모두 전달하고, 어떤 식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까지 상세하게 말했다.
다행히 그에겐 경험과 노하우가 많았고, 내겐 확실한 이미지가 머릿속에 딱 잡혀 있으니.
그 전문적이지 못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본부장님은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역시 괜히 베테랑이 아니야.’
애초에 본부장님의 능력이 아주 좋다고 소문이 자자했으니까.
아무튼 본부장님은 그렇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사내 미팅을 진행하기로 했고, 나는 나대로 송하연에게 곡을 요청하기로 했다.
아무리 매니저로서 A&R팀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뒤에서 흑막처럼 간섭한다고 해도, 바로 옆에서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만드는 것만 못할 테니까.
“그런데 벌써부터 이렇게 작업해도 돼요? 아직 정해진 게 없잖아요. 앨범 형태라든지 컨셉이라든지 아무것도 결정 안 난 거 아니에요?”
송하연의 작업실.
거의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들은 말이었다.
그녀는 말을 이었다.
“전화 끊고 나서 생각해보니까 그렇겠더라고요. 아직 1차 회의도 안 들어갔을 텐데.”
“그렇긴 하죠.”
“그런데··· 어떻게 만들어요? 만들기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정말 협조하고 싶은 마음은 많은데 타이밍이 좀 이른 것 같아서요.”
나는 여기서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설마 대책도 없이 찾아왔겠어?
내 대답은 간단했다.
바로 본부장님의 이름을 파는 것.
“지금 본부장님께서 부르셔서 만나고 오는 길이에요.”
이름을 파는 건 본부장님과 이미 상의가 된 내용이었다.
내가 그녀를 만나서 직접 작곡 요청하는 것까지도 당연히.
“아···. 아, 그럼··· 음. 그렇구나.”
내 대답에 그녀는 눈을 굴리며 고개를 연신 주억거렸다.
알아서 납득하는 듯한 모습.
짬밥 되는 프로가 이래서 편하다.
척하면 척!
‘군대랑 비슷한가? 상병한텐 설명 길게 안 해줘도 되지.’
뭘 시켜도 알아서 이유가 떠오르니까. 거기다 단서도 조금이면 된다.
아마 송하연의 저 작은 머릿속에서는 시나리오가 A부터 D까지 짜여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한테 자세히 물어보면 모르쇠로 답하려 했는데.
“그럼 됐네요. 그래서 어떻게 만들면 돼요?”
한껏 밝아진 송하연의 얼굴을 양심의 가책도 없이 태연하게 바라보며, 나는 본부장에게 했던 설명을 또 한 번 반복했다.
물론 이번엔 설명으로만 그칠 생각이 없었다.
“나머지는 만드시는 거 보면서 그때그때 말씀드려도 될까요?”
좋게 말하면 요청이고, 나쁘게 말하면 아예 처음부터 하나하나 허수아비처럼 조종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선생과 제자처럼, 혹은 메인 프로듀서와 새끼 작곡가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입꼬리는 더욱 깊게 패여졌다.
마치 바라고 있었다는 듯이.
“알겠어요. 저희 사이에 그 정도는 해드려야죠.”
음악이나 일에 있어서 한없이 독불장군인 송하연에게 이렇게 하는 걸 다른 사람들은 꿈도 꿀 수 없겠지만, 나는 왠지 될 것 같았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흔쾌하게 받아들일 줄은 몰랐는데.
오히려 내가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나한텐 다행이지 뭐.’
난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그녀와 함께 작업에 들어갔다.
유현지의 데뷔곡.
나는 데뷔부터 그녀를 성공가도에 올려놓을 생각이었다.
앞으로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이.
***
구선학 감독과 조수연 작가, 그리고 대표를 비롯한 제작사 중요 인물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다만, 이 많은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는데도 불구하고 종이 넘기는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사락- 사락-
퀭한 얼굴, 그러나 번쩍이는 눈동자의 조수연 작가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면서도 시나리오를 읽는 그들의 표정을 찬찬히 눈에 담았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둘씩 시나리오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서, 입꼬리를 올리며 큰 숨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시나리오를 읽는 데 이미 도가 튼 사람들이 모였으니 다들 빨리 읽을 법도 한데, 아직 다 읽지 못한 한 사람, 구선학 감독은 아주 천천히 시나리오를 살피고 있었다.
꿈틀거리는 눈썹,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리저리 비틀리는 입술, 종이에 뭐가 있는지 어느 페이지에서 계속해서 머물러 있는 눈동자.
회의실의 모두는 재촉의 말 하나 없이 밝은 표정으로 그런 구선학 감독을 가만히 기다렸다.
이미 다 본 입장에서 보자면, 감독이 누군들 이런 시나리오를 싫어할 리가 없을 테니까.
역시, 아니나 다를까.
마지막 장을 덮고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큰 숨을 길게 토해내는 구선학 감독.
다시 눈을 뜨고는 형형한 눈빛을 과시했다.
“생각보다 더 일찍 끝내서 꼼꼼히 살폈는데···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네요. 디테일한 부분만 조금 보완하면 될 것 같습니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의자에 앉아있던 조수연 작가는 몸에서 긴장이 쭉 빠졌다.
환희와 뿌듯함, 그리고 성취감 등 많은 감정이 온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구선학 감독은 그런 조수연 작가를 감탄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덧붙였다.
“이제 배우들한테 전달하도록 하죠. 어차피 여기서 크게 달라질 부분은 없을 테니까요.”
< 저희 사이에 그 정도 부탁이야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