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한테 소홀하지 마세요 >
유현지의 무대가 모두 끝난 뒤, 직원들은 며칠 후에 있을 회의를 준비하러 벌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분주함 속에서 기쁨과 기대가 만연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다들 제대로 눈과 귀가 있으니 유현지의 커다란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본부장님, 저희 팀에 맡겨주시면 정말 잘 해낼 자신 있습니다.”
걸음을 옮기는 와중, 또다시 2팀의 고팀장이 달라붙었다.
다만 이전과는 달리 좀 더 간절한 심정이 목소리와 표정으로 드러났다.
왜 안 그럴까, 그런 무대를 봤는데.
그러나 유현지를 원하는 건 2팀뿐만이 아니었다.
고팀장이 본부방 옆에 붙자마자 1팀의 강팀장과 3팀의 윤팀장 또한 나란히 옆으로 붙었다.
“저희 1팀-“
김본부장은 그들이 채 말을 끝맺기도 전에 걸음을 멈췄고.
복도 한복판에서 그들의 눈을 담담하게 바라보며 얘기했다.
“3팀이 맡도록 하지.”
“예!?”
강팀장이 되묻고, 고팀장은 윤팀장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 살피는 듯했지만, 윤팀장 또한 영문을 몰라 얼떨떨한 건 마찬가지였다.
다만, 모두가 짐작하는 이유는 한 가지.
고팀장은 시선을 돌려 김본부장에게 물었다.
“설마 그 로드 때문인가요?”
설마설마 하며 김본부장의 입을 바라보는데,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설마가 맞다고 얘기해주었다.
“그래.”
고팀장은 즉각 반발했다.
“잘 아시겠지만 그 로드는 정채희 배우를 맡고 있습니다. 그럼 실질적으로 유현지는 다른 매니저가 맡다시피 하게 될 텐데, 지금까지 쌓은 자그마한 유대감 같은 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 그 매니저는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배워야 할 게 더 많을 겁니다. 지금 같은 시기에 정채희 배우 한 명한테 집중해도 모자랄 텐데, 심지어 배우도 아니고 가수라뇨. 활동 영역도 다르고 경험도 다릅니다. 효율적이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되면 다른 로드가 그 로드 밑에 들어가는 꼴이 됩니다. 이건 사내 위계질서도 해쳐서, 종합적으로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조목조목 모두 맞는 말이었다.
거기에 김본부장의 모토인 효율과 합리까지 언급했다.
자신에게 하는 반박으로는 100점에 가까운 대답.
다만, 가장 중요한 것을 빠뜨렸을 뿐이다.
다분히 의도적인 거겠지.
“월말평가 때랑 지금, 유현지의 어디가 바꼈지?”
“···보컬입니다. 그런데 그게 꼭 그 로드 덕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일류 트레이너들이-“
김본부장은 고개를 단호하게 저으며 말을 끊었다.
“다른 연습생들은 그 트레이너들한테 수업을 안 받는 게 아닐 텐데.”
그리고 월말평가 이전도 마찬가지.
능력은 이미 월말평가로, 그리고 방금 전 이 무대로 증명이 된 셈.
게다가 다들 모르겠지만 그녀를 추천한 것도, 그녀를 데려온 것도 모두 박한울이다.
어차피 추천한 거나 데려온 것 빼고는 다들 알고 있는 내용일 테니, 김본부장은 이유를 더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쓸데없는 시간 낭비였으니.
대신 마지막으로 말했을 뿐이다.
더 이상의 반박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듯, 단호하게.
“유현지는 3팀이 맡기로 하지. 그 매니저가 맡으라고 해.”
이미 김본부장이 3팀이 맡으라 할 때부터, 지퍼를 채운 것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윤팀장은.
김본부장이 그 말을 끝으로 떠난 다음에야 조용히 미소 지었다.
입꼬리가 귀에 걸릴 듯이.
***
유현지가 아티스트 계약서를 작성하는 동안, 나와 윤팀장님, 한실장님은 소회의실로 들어갔다.
윤팀장님은 웃음꽃 한가득, 그리고 한실장님은 걱정과 기쁨이 함께 어우러진 표정이었다.
한실장님은 내게 시선을 고정하며 입을 열었다.
“얘 혼자 둘 다 관리하는 건 어떻게든 가능해도,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모든 스케줄에 따라가는 건 불가능해요. 결국 로드 애들 좀 더 붙여야 하는데, 질서니 순서니 하는 건 다 넘겨도 채희 연기는 어떡해요.”
내가 옆에 없으면 100%의 연기를 보일 수 없는 채희.
나는 그녀 옆에 꼭 붙어 있어야 하는데, 신인가수까지 맡게 됐다.
여기에 대해 나는 이미 대책이 있었다.
아니, 대책이라기보다는 유현지 덕분이지.
“현지 씨는 제가 붙어있지 않아도 잘할 거예요. 긴장도 안 하는 체질이고요.”
내가 유현지에게 해주려는 건 재능을 끌어올리고 그녀를 성공하게끔 이끄는 것.
거의 프로듀서와 같은 영역이기 때문에, 모든 스케줄마다 운전을 하거나 꼭 옆에 따라붙지는 않아도 된다.
어차피 내 직책은 평매니저로 변함이 없긴 한데, 유현지에게 있어서만큼은 프로듀서 겸 실장 정도로 생각해도 될 터.
한실장님도 연예인들 스케줄을 다 따라가는 게 아니지 않은가.
나 또한 유현지에게는 그렇게 하면 된다.
‘채희 고질병이 완전히 고쳐질 때까지는.’
그리고 이제 채희도 영화에 들어가서 한창 바쁠 테지만, 촬영이 없을 때의 배우 스케줄은 굉장히 널널한 편이다.
나중에 종합적으로 따지고 보면 난 유현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지도 모르지.
꼭 옆에 붙지 않아도 된다고 해도 웬만하면 붙어있을 생각이니까.
윤팀장님은 한실장님의 걱정을 간단하게 불식시켜주었다.
“야, 본부장님이 왜 얘한테 맡기라고 했겠어. 서로 잘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실력을 그만큼 키워놨으니까 앞으로도 계속 그러라는 거지. 딱히 얘를 위해서 그런 건 아닐 거 아냐. 다 가수랑 회사를 위해서지.”
가수와 회사를 위해서 나를 붙였다는 것.
그게 정답이다.
김본부장님은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한 한실장님은 내게 무거운 과제를 가볍게 툭 던졌다.
언젠가 닥칠 문제였고, 또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까지도 막막하기만 한 그것에 대하여.
“한울아, 채희한테는 네가 말해. 다 네가 만든 일이니까.”
“···네.”
큭큭, 웃으신 윤팀장님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덧붙였다.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는데··· 아무튼 우리 막내가 능력 하나는 진짜 기똥차요, 아주.”
***
사옥의 옥상.
1팀의 강팀장과 최실장은 남들의 귀를 피해 구석진 곳으로 이동했다.
강팀장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말했다.
“아쉽게 됐어. 따면 너한테 맡기려고 했는데.”
“···전 하연이 있잖아요.”
“그래도 아쉽잖아. 운 좋으면 하연이만큼 클 수도 있는데.”
최실장은 역시 강팀장은 자신의 위에 있을 인물이 아니라고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그걸 보고도 고작 이런 생각밖에 못하다니.
‘그 정도면··· 정상을 노릴 수도 있어.’
매력은 송하연도 확실했지만, 유현지는 독보적인 개성을 가지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비슷한 색깔을 찾아볼 수가 없는.
“근데 그놈은 대체 어떻게 알아보고 그렇게 한 거지? 운빨인가. 아니, 도박성도 있네. 일 년도 안 된 매니저가 이렇게 둘을 맡게 되는 경우가 어딨어. 안 그래? 이게 다 김본이 특이해서 그런 거지, 다른 곳에서는 절대 이렇게 안 된다니까?”
알아본 게 운빨? 맡기 위해서 노력한 게 도박?
최실장은 너무 어이가 없어 헛웃음조차 안 나올 지경이었다.
재능을 알아본 건 능력이고, 그렇게 확실하게 실력향상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것 또한 능력이다.
결국 그가 유현지를 맡게 된 건 처음부터 끝까지 능력 때문이라는 거였다.
게다가 유현지는 자신이 맡고 있는 송하연과 함께 활동한 댄스팀 소속이었다.
봐도 팀장이나 자신이 더 많이 봤지, 박한울보다 덜 보지는 않았을 터.
‘그때 어떻게든 데려왔어야 했는데.’
박한울.
그를 진작에 데려왔어야 했다.
음악에 있어선 독불장군이나 다름없는 송하연을 길들일 수 있는 유일한 존재.
게다가 이젠 다른 능력들까지.
탐이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는 놈이다.
“그나저나 이제 3팀은 콩가루 됐네. 후배 뒤 닦아주게 생겼는데 누가 열심히 하겠냐고. 쯧! 하여튼 윗놈들이 하나만 알고 둘은 몰라요. 밀어줘도 적당히 밀어줘야지. 일 년도 안 된 새파란 애송이한테 그렇게 둘 맡기는 게 정상이야? 그냥 팀이나 실장 밑으로 배정해줘서 암묵적으로 관리하게 하는 거면 몰라. 콕 집어서 그놈 고른 거잖아. 쯧쯧. 그렇게 유도리가 없어서야.”
최실장은 기계적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입에서 나오는 거라곤 하나부터 열까지 다 헛소리밖에 없으니, 별 도리가 없었다.
“그러게요. 거기도 이제 볼 만하겠네요.”
“그렇지?”
최실장은 다짐했다.
언젠가는 눈앞의 이놈을 치워버리거나, 아니면 새로운 팀을 만들겠다고.
최소한 그렇게라도 해야 박한울을 자신의 밑에, 실장으로 데려올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생길 테니까.
‘박한울, 그놈만 내 밑으로 데려오면···.’
매니저들이 모두 꿈꾸는 최종 목표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수도 있다.
***
부모님을 모시고 온 유현지와 함께, 다 같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저녁 시간이 되어서야 그들은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그때에 딱 맞춰 채희에게 톡을 받을 수 있었다.
[집으로 와요.]
이제 일이 모두 끝났다는 정보를 준 범인은 한실장님이나 윤팀장님 둘 중 한 명이겠지.
하지만 따져서 뭐하리.
나는 오묘한 감정을 느끼며 채희의 집으로 향했다.
오묘한 감정이라 함은.
사실상 내가 그녀에게 잘못한 게 없다는 것 하나,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걸음이 무겁다는 것 하나, 또한 아직도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막막함 하나.
마지막으로, 그동안 알고 있었음에도 내게 얘기를 꺼내지 않은 이유에 대한 의문까지.
여러 가지가 뒤섞여서 머릿속과 가슴을 채우고 있으니.
그녀의 얼굴을 마주하고도 표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왔어요?”
문을 열어주는 그녀는 자주 봤던 모습과 같이, 후줄근한 반팔티와 트레이닝복 바지를 입은 채,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있었다.
언제나와 다름없이.
표정 또한 마치 무슨 일이 있냐는 것처럼 태연자약하기만 하다.
그래서 나도 담담함을 가장한 얼굴로, 태연하게 대답했다.
“어, 밥은 먹었어?”
“아뇨, 오빠 안 먹었다면서요. 같이 먹어요.”
문이 닫히고 도어락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자, 그녀는 몸을 돌려 성큼성큼 거실 소파로 걸음을 옮겼다.
“뭐 먹을래요?”
“···치즈 떡볶이?”
다분히 그녀를 위한 메뉴 선정.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씩, 미소 지었다.
“콜.”
그리고 침묵.
그녀는 소파에 앉아 배달 어플을 켰고, 나는 그녀가 앉은 소파의 반대쪽 끝에 앉아 입을 다물었다.
잘못한 게 없는데 괜히 어색하고 긴장된다.
화가 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오빠.”
“응?”
날 부르는 목소리에 퍼뜩 고개를 돌려 바라봤는데, 그녀의 눈이 반달처럼 곱게 휘어져 있었다.
“혹시 긴장해요?”
“아니?”
“긴장했네요, 뭐. 왜요? 왜 긴장했어요?”
“···.”
그 직설적인 질문에, 내 스스로도 동공이 흔들리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얘 머릿속에 뭔 생각이 차 있는지 모르니 해답을 못 찾겠다.
문제가 뭔 지 알아야 답을 도출하든 말든 하지.
불과 여행을 갔을 때까지만 해도, 얘 눈빛만 보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꿰뚫어보듯 알았었는데, 오만이었나 보다.
아직 알아야 할 부분이 더 많아.
“왜 대답이 없어요? 제가 서운해하거나 섭섭해할까 봐서요? 전 아직 오빠 필요한데 막 혼자 몰래 다른 연습생한테 시선 팔려 있어서? 이렇게 매니저 맡게 될 때까지 한마디 말도 안 해줘서?”
“야···.”
“오빠 그거 기억 나죠? 제가 오빠한테 면죄권 세 개 줬던 거.”
면죄권.
단어를 들으니 딱 기억이 났다.
-인심 썼다! 오빠한테 삐지거나 서운해할 만한 일 있어도 세 번은 면죄권 줄게요. 딱 세 번이에요?
-됐어, 필요 없어.
-에이. 그래도 언젠간 쓸데가 있겠죠. 이거 진짜 인심 쓴 거거든요? 오빠가 저 그렇게 생각해주시는데 제가 이 정도야 못하려고요.
‘짝꿍끼리’에서 작가와 내가 대화한 내용을 보고 기분이 좋아진 그녀가 줬던 면죄권.
나는 그동안 이걸 쓴 적이 없었다.
당연하지. 하루에도 열댓 번씩 입술 튀어나오는 애한테 이게 무슨 소용이냐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런데.
채희는 어깨를 으쓱이고 우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제 오빠 면죄권 없어요. 아셨죠?”
뭔가 팽팽하게 당겨졌던 줄이 탁 풀리는 것 같았다.
이제야 내가 그녀의 말마따나 긴장을 했었다는 게 느껴졌다.
면죄권,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네.
그때는 한실장님이랑 작가가 얄밉게만 느껴졌었는데, 이제 보니 은인이었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근데 왜 세 개가 다 없어지냐? 한 개만 없애야지.”
“···와, 진짜 설마설마 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예상을 한 치도 안 벗어나요? 오빠, 진짜 염치라는 게 있어요?”
“아니, 섭섭해하는 거 이해해서 면죄권 날리는 건 인정하잖아. 그런데 계산은 똑바로 해야지. 이제 나 면죄권 두 개 된 거다?”
“아뇨! 하나로는 너무너무 부족해서 세 개인 거거든요? 우기면 안 되죠! 이제 다 없어졌어요! 진짜 내가 그동안 얼마나 서운했는데!”
이제야 평소로 돌아온 느낌이다.
몸과 마음이 너무 편안하다.
이런 미녀와 함께 집에 단둘이 있는데도, 아까 전의 불편하고 긴장되는 느낌보다 지금의 이 편안한 느낌이 훨씬 더 좋았다.
그녀 또한 마찬가지인지, 잠시 뒤 우리는 서로의 얼굴에 미소가 걸려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오빠, 근데요.”
“어.”
“저 이런 말하기는 좀 그런데, 아니··· 이런 말은 꼭 해야겠는데요.”
갑자기 또 뭘까.
난 말라있던 입술에 침을 바르며 물었다.
“···뭔데?”
그녀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저한테 소홀하지 마세요. 알겠죠?”
“하. 또 뭐라고.”
“알겠냐니까요?”
난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대답했다.
“그걸 말이라고 하냐?”
“···오빠 진짜 나쁜 버릇 있는 거 알죠. 확실하게 알겠다! 아니다! 대답을 해달라니까요?”
“알겠다고 하는 거잖아. 뭐 말도 안 되는 걸 걱정하고 있어.”
내 대답에, 채희는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그럼 됐어요.”
정말 괜한 걸 다 걱정한다.
그렇게 둘이 영양가가 단 하나도 없는 얘기들을 나누며 치즈 떡볶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유현지를 돕고 있는 걸 알아챈 게 먼저일까, 아니면 면죄권을 준 게 먼저일까.
만약 전자라면.
그녀는 일부러 내게 면죄권을 준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부드럽게 풀기 위해서.
< 저한테 소홀하지 마세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