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하산이 천재매니저였다고-42화 (42/170)

< 어쩌면 저한테 배정하라고 할 수도 있죠 >

즐거운 여행을 끝마치고 돌아온 다음날.

오늘은 매우 중요한 일정이 있었다.

바로 유현지의 데뷔 전,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점검하는 일.

그동안의 보컬 변화를 매일같이 받아서 판단해본 결과, 아마 오늘이 마지막이 될 듯 싶다.

여기서 준비가 다 됐다고 판단이 되면, 아버지께 바로 말씀드릴 예정이다.

그럼 거의 쇼케이스처럼 많은 직원들 앞에서 그녀의 실력과 색깔이 드러나는 무대를 보여주며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가동되겠지.

음악, 컨셉, 의상, 앨범아트, 마케팅 등등.

모든 게 그 무대에 의해 방향이 정해질 것이다.

그리고 나는 데뷔까지의 그 과정들을 뒤에서 전부 지켜보며 많은 부분에서 몰래 관여할 생각이고.

아무튼 오늘부터 굉장히 바쁘다는 거다.

“매니저님 또 오셨어요?”

“아, 네. 안녕하세요.”

“기사 뜬 거 봤는데, 정배우님이랑 여행 갔다면서요.”

채희 때문이든, 유현지 때문이든, 허구헌 날 연습실에 들락거리니 이젠 이런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나누게 되었다.

신인개발팀이나 A&R팀, 혹은 아티스트나 그 매니저, 또는 다른 직원들과.

이 정도면 이제 어지간한 곳에 소문은 다 났다고 봐야지.

내 입으로 말하고 다니지는 않았으나 내가 유현지를 봐주고 있다는 사실을 굳이 숨길 이유도 없고, 이런 걸로는 내 아버지가 대표인 걸 알 수도 없을 테니 조심할 이유도 없다.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거나, 어차피 매니저 맡지도 않을 건데 헛짓거리 한다고 여기거나, 아니면 유현지가 탐나서 경계하거나 등등.

날 보는 시선들이 여러가지로 나뉘었지만 이런 것들에도 신경 쓸 필요는 없고.

다만 의아한 건.

‘아무도 안 묻는단 말이야.’

다른 사람들은 다 왜 유현지를 신경 쓰냐고 물어보는데, 채희를 비롯한 우리 팀 사람들은 유현지에 관해 일절 입에 담지 않았다.

덕분에 편하긴 하지만, 뭔가 묘한 느낌도 들었다.

분명히 퇴근을 했는데 당연히 내가 회사에 있을 거라는 듯 연락을 하거나, 할 일이 없을 때 빨리 퇴근을 시켜준다든가 하는.

‘어차피 시간이 해결해줄 일이야.’

내가 유현지의 매니저가 되면 끝이다.

깊게 생각할 필요가 없지.

나는 머릿속 상념들을 싸그리 지워내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유현지가 있는 연습실로.

“오셨어요?”

“네. 오늘 컨디션은 괜찮아요?”

“네, 엄청 좋아요.”

얼굴에 그늘이 진 걸 본 적이 없어서,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얼굴만 보고는 알 수가 없었다.

좀 더 시간이 지나고 알아가다 보면 눈빛만 보고도 자연히 알 수 있게 되겠지?

지금 채희와 내가 그러는 것처럼.

“긴장하지 말고 해요. 오늘 안 되면 내일 하면 되니까.”

“평소에도 긴장을 잘 안 하는 편인데 지금은 더 긴장이 안 돼요.”

“그래요? 다행이네요.”

유현지는 싱긋 미소 짓고는 말했다.

“매니저님 덕분에 실력이 많이 는 것 같아요. 요즘 연습이 너무 재밌어요.”

난 어깨를 으쓱였다.

“다 현지 씨가 재능이 있어서 그런 거죠 뭐. 그리고 아직 점검 시작 전이잖아요. 그런 말 하기에는 아직 일러요.”

“네, 잘해볼게요.”

나와 유현지는 마주보며 얼굴에 작은 미소를 띠웠다.

어떻게 최종점검인데 이렇게 긴장이 안 될 수가 있지?

유현지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마치 오늘 별 일이 없는 것처럼, 평소와 같이 평온하기만 했다.

아무래도 자세하면서도 매우 긍정적인 피드백을 매일마다 줘서 그런 것 같다.

아무튼, 우리는 그렇게 평소처럼 무대를 시작했다.

그녀는 연습실 중앙에서, 그리고 나는 그 앞에서.

단 세 곡이었다.

댄스 한 곡, 보컬 한 곡, 그리고 둘 모두를 동시에 보이는 곡.

그녀는 세 곡을 모두 끝내고는 내게 물었다.

참 드물게도, 그녀의 얼굴에선 자신감이 언뜻 묻어나 있었다.

긴장은 안 해도 자신감은 잘 보이지 않았었는데.

“어땠어요?”

난 양쪽 엄지를 치켜세우며 대답했다.

“최고였어요. 역시.”

이런 걸 나만 보기엔 정말로, 정말로 아까웠다.

이젠 모두에게, 그리고 온세상에 선보일 차례.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이라도 데뷔시켜서 자랑하고 싶을 지경이다.

이 가수가 내 가수다, 내가 키운 아티스트다, 하고.

***

이미 월말평가를 보며 유현지의 데뷔의 여부가 결정되었었다.

다만, 결정된 건 솔로로 데뷔한다는 것뿐, 그 외의 것은 아직 결정되어진 바가 없다.

김본부장은 사무실에서 시계를 바라봤다.

이제 모두가 모여, 유현지의 무대를 봐야 할 시간.

거기서 나머지 모두가 결정되어질 것이다.

공연장 같은 곳은 없다.

대형기획사에선 사내에 PT발표와 같이 다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무대가 있다곤 하지만, 아직 HJ엔터에는 그런 걸 만들 만한 여력이 없었으니까.

대신 연습실을 이용할 뿐이었다.

김본부장은 사무실에서 나와 연습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박한울이 데려온 인재, 박한울이 키운 인재를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해.

딱딱한 구둣발 소리를 내며 걷고 있는데.

매니지먼트2팀의 팀장, 고팀장이 옆에 붙어 말을 건넸다.

“본부장님, 저희 여력 됩니다.”

작은 키에 부드럽고 온화한 인상.

그리고 그와 대비되게 기회를 보면 끈덕지게 물고 놓치지 않는 성격.

“유현지 그 친구, 월말평가 때 보고 꼭 키워보고 싶어졌어요. 저희 팀 유실장이 맡고, 제가 같이 관리하면 스타로 만들 자신 있습니다.”

대답이 없어도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그는 필요 이상의 말을 덧붙이지도 않았다.

자신의 목적과 의지를 알린 것에 만족했다는 듯이.

아니, 자신이 그런 사족을 싫어한다는 걸 잘 알아서 그런 것도 있을 거다.

고팀장과 김본부장은 그렇게 말없이 함께 걸음을 옮기며 연습실 안으로 들어갔다.

가장 넓은 연습실에는 이미 인원들로 가득했다.

A&R팀, 작곡팀, 앨범마케팅팀, 신인개발팀, 그리고 매니지먼트1, 3팀의 팀장 등등.

김본부장의 눈은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한쪽을 향해 꽂혔다.

유현지와 박한울이 함께 있는 곳으로.

마치 벌써 매니저와 아티스트 관계가 된 것처럼 보이는 그들.

그런 저들을 보고, 고팀장은 말했다.

“자주 찾아갔다고 합니다. 노래도 봐주고 댄스도 봐주고. 그런데 사실 유대감 작업이죠. 연습생들 불안하고 관리받고 싶어하는 욕심 있으니까. 어차피 데뷔하면 이 시절 유대 같은 건 금세 잊잖아요.”

이건 사족이다.

듣기로 들었어도 막상 여기서도 붙어있는 걸 보니 뺏길까 봐 불안한 거겠지.

아니, 뺏긴다는 표현도 잘못됐다.

이미 박한울이 유현지를 매니지하기로 처음부터 결정되었으니, 뺏으려고 손을 뻗고 있는 건 사실상 고팀장이니까.

물론 아무런 효과도 발휘할 수 없기야 하겠지만.

의자에 앉은 본부장은 저들을 눈에 담으며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이제 박한울이 유현지를 얼마나 더 성장시켰을지 지켜볼 시간.

기대감이 한껏 키워졌다.

***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이, 아버지께 말한 지 불과 이틀 만에 이런 자리가 만들어졌다.

이미 데뷔에 대한 건 진작에 결정이 되었기 때문이겠지.

아무튼.

주어진 시간이 이틀밖에 없어서 그런지, 우리 팀 사이에선 충분한 대화가 이뤄지지 못했다.

아니, ‘충분’도 아니지. 아예 이에 대해 얘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얼굴이 더욱 따가웠다.

한실장님과 윤팀장님.

유현지가 당연하다는 듯이 내 옆에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해 물어볼 법도 한데.

아직까지도 한 번을 안 묻고 그저 나와 유현지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내가 먼저 얘기해주길 기다리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윤팀장님과 눈을 마주쳤을 때, 윤팀장님의 입이 먼저 열렸다.

“한울아, 네가 꽂혀서 열심히 한 건 알겠는데 우리 팀에 못 올 수도 있어. 우리가 맡는다고 해도 너한테 맡기기는 좀 힘들 수 있고. 넌 일한 지 얼마 안 됐잖아. 무엇보다 너한텐 채희도 있으니까.”

“···.”

뭐부터 말해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물었는데, 그걸 실망했다고 받아들인 모양인지, 윤팀장님은 마치 위로를 해주듯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짜식이 역시 능력은 있는 모양이더라. 원래 너처럼 하면 신인개발팀에서 싫어할 만도 한데 넌 아주 칭찬이 자자해. 하루가 다르게 유현지 실력 느는 거 같다고.”

나는 슬쩍 유현지를 바라봤다.

내가 맡을 거라고 호언장담했는데, 이런 말을 듣고는 뭐라 생각할까 해서.

‘···멀쩡하네?’

아무런 변화가 없다.

정말 아무런 변화가.

‘감이 좋은 건가.’

어쩌면 내게 뭔가 있다고 이미 눈치 챘을지도 모르겠다.

하긴, 내가 데뷔를 미뤘을 때도 그게 가능한지, 어떻게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예 묻지 않았으니까.

또 데뷔를 결정지을 때도 마찬가지.

일개 평매니저가 할 수 없는 것들을 나는 대놓고 해왔으니, 연습생이라 해도 이미 몇 년의 짬밥을 먹은 그녀가 눈치 채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

그 덕분에, 나는 윤팀장님에게 이렇게 대답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 노력했어요. 현지 씨 실력 끌어올리려고. 제가 이렇게까지 했으니까 위에서 좋게 봐줄지도 모르잖아요. 어쩌면 저한테 배정하라고 할 수도 있죠.”

“···글쎄. 그럴 일은 없을걸?”

있을걸?

어깨를 살짝 으쓱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할 때, 연습실 안으로 아버지가 들어오셨다.

우리 회사의 대표.

나는 시선을 돌려 유현지를 바라봤다.

“이제 곧 시작할 것 같아요. 준비한 것만 그대로 보여줘요. 더 잘하려고 하지 않아도 되니까 긴장하지 말고요.”

유현지는 예의 그 순박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어요.”

표정은 순박한데 심장은 대범하기 이를 데 없다.

생각해보니 나는 그녀가 긴장한 얼굴을 여태껏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이 자리에서만큼은 떨릴 만도 한데.

나에겐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유현지도 채희처럼 내게 많이 의지했으면, 내가 정식으로 매니저가 됐을 때 굉장히 힘들어졌을 테니까.

“잘하고 올게요.”

그리고 마침내 유현지가 연습실 중앙으로 사뿐사뿐 걸음을 옮기는데.

참, 저 발걸음이 마치 봄날 산책로를 걷듯 태평해 보이기까지 했다.

무대 체질이란 게 이런 건가.

그녀는 자신에게 꽂히는 시선들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니.

그녀가 연습실 중앙에서 정면을 향해 똑바로 섰을 때, 난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걸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웃고 있네···?’

자신에게 꽂히는 시선들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게 아니라.

오히려 즐기고 있었다.

앞에 있는 시선들이 팬들도 아니고, 즐기고 싶어서 안달이 난 관객들도 아닌데.

***

유현지는 중요한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매니저에게 연습이 재밌다고 말했던 건 빈말이 아니었다.

그를 만나기 전과 지금은 실로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었다.

자신의 재능을 온전히 알아봐주고 그에 딱 맞는 조언을 해주는 것.

그는 항상 자신에게 재능이 있다고 말해주지만, 유현지는 오히려 그가 더 재능이 넘친다고 생각됐다.

어디서도 이런 사람은 보지 못했으니까.

물론 트레이너처럼 가르쳐주진 못하지만, 그는 그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를 만나고 난 뒤, 유현지는 조금씩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됐다.

그와 자신이 함께 발전시킨 이 실력.

유현지는 가감없이 뽐내기로 했다.

댄스 실력은 월말평가에서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빛들이 빛나는 게 뿌듯하게 다가왔다.

YU엔터에 있을 때는 냉혹한 시선만을 받아왔는데, 기대의 시선이 이렇게나 기분이 좋은 거였다.

송하연의 댄서로 수많은 무대에 서면서도 받아보지 못했던 눈빛들이다.

당연히 댄서였던 자신에겐 조금만큼의 관심도 주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심지어 대표와 본부장마저 흐뭇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재밌어.’

실력이 느는 게, 그리고 기대를 받는 게, 칭찬을 듣는 게.

이제 더욱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게.

너무 기분이 좋아 참을 수 없었다.

유현지는 이 기분을 표정과 댄스에 그대로 담아냈다.

다행히 선곡 또한 즐거운 음악이었으니 이 기분을 담는 게 좋으면 좋았지, 안 좋을 리도 없고.

“노래는 송하연 선배님의 ‘Bring Me’입니다.”

이번 송하연 앨범의 타이틀 곡.

월말평가 때 불렀던 곡이라 사람들의 표정에는 별반 변화가 없었다.

분명히 그때와 똑같을 거라 생각하고 있을 터.

‘그때랑은 다른데.’

이미 달라진 노래를 들어본 신인개발팀만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그들은 재밌겠다는 듯 눈매를 휘며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Bring me’.

이 곡을 선택한 데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송하연의 댄스팀으로서 수없이 들었던 송하연의 이번 앨범 타이틀곡이기도 하지만.

허밍소리로 매니저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진 계기가 됐던 곡이기도 했고, 연습실에서 부르는 걸 듣고 그가 계약을 제안한 곡이기도 했다.

그래서 유현지는 이 곡을 부르기로 했다.

아무래도 이 곡이 자신에게 뭔가 축복을 주는 것만 같아서.

매니저도 잘 어울린다고 말해줬고, 신인개발팀 또한 곡을 들어보고는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그렇게 시작된 노래.

“나를 데려가주지 않을래.”

첫 소절을 부르자마자.

“···!”

“···!”

직원들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처음엔 어려웠지만, 연습을 하면 할수록 점점 자신에게 딱 맞는 옷이라 생각되는 보컬.

이렇게 마음에 드는 옷을 디자인해준 매니저는 저기 한쪽에서 팔짱을 끼며 씨익 웃고 있었다.

유현지는 그를 보곤 더욱 자신 있게 목소리를 내뱉었다.

“나를 가져가주지 않을래.”

유현지의 맑고 깨끗하며 높은 목소리에 힘이 단단하게 실리며.

연습실에 모인 모든 이들의 마음에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리듬을 타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대표에게도.

입꼬리만을 살짝 올리고 있는 본부장에게도.

처음부터 자신의 매니저를 맡기로 약속했던 그에게도.

< 어쩌면 저한테 배정하라고 할 수도 있죠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