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작발표회 >
시간은 빠르게 흘러, 우리는 어느새 첫방송을 하루 앞두고 있었다.
반 사전제작이기 때문에 9회의 편집본까지 완성되었다고 하는데, 사실 좀 더 강행군을 달렸다면 11회 정도까지도 찍을 수 있는 일정이기도 했다.
채희와 박송이를 비롯한 모든 배우들, 그리고 제작진 모두 아직까지도 열의를 불태우며 임하고 있었으니까.
“오빠, 저 진짜 어떡하죠? 제작발표회 영상들 보니까 기자님들 엄청 무서우시던데.”
채희가 걱정을 한가득 집어먹은 표정으로 물었다.
드라마의 첫방송을 앞두고 반드시 해야 할 일 하나, 제작발표회.
홍보를 위해선 필수로 거쳐야 할 과정이자 전통이었으나, 사실 배우들이나 작가, 감독 모두 다 싫어하는 일정이었다.
기사가 아닌 영상으로 접한 네티즌들 또한 제작발표회를 싫어하는 건 마찬가지였고.
영상에 달린 댓글들에도 좋은 소리가 별로 없었다.
-15:07 작가님 거의 울먹거리면서 얘기하시네··· 기레기 진짜 어휴···.
-질문을 너무 배려 안 하고 막 하는 듯;;
-기자들 질문하는 게 쫌···. 처음 질문부터 뭐지..? 질문 제대로 한 기자가 얼마 없는 듯..
-연애사 묻는 기자가 젤 싫음.
-기자들 정말 싸가지 없다··· 반말로 찍찍 하고.
이런 느낌을 받는 것은 거의 모든 제작발표회가 동일했다.
채희는 연기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들 또한 많이 의식하기도 하니 더욱 부담스럽고 걱정스러울 터.
게다가 제작발표회가 처음이기도 했다.
나는 차마 아무 걱정하지 말고 편하게 다녀오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런다고 해서 될 것도 아니고, 정말 긴장없이 편하게 가도 안 됐으며, 그런 의미 없는 응원보다는 노하우 하나라도 전해듣는 게 훨씬 나을 테니까.
문제는 나 또한 채희와 마찬가지로 제작발표회에 대한 경험이 아예 없다는 거였다.
하지만 그 대신, 우리들 옆에는 베테랑들이 있지.
내가 윤팀장님을 바라보자, 채희 역시 윤팀장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팀장님은 심각한 얼굴로 채희에게 말했다.
“곤란한 질문 같은 거 있으면 두루뭉술하게 대답하면서 넘겨. 대부분 질문도 엄청 길고 한꺼번에 여러 질문 쏟아낼 테니까 어물쩡 넘어가기도 좋아. 그러면 진행자 분이 알아서 매끄럽게 잘 넘겨주실 거야.”
제작발표회에 가기 전까지 팀장님은 채희가 받을 만한 무례한 질문들을 쏟아냈고, 채희는 거기에 대처하는 연습들을 해야 했다.
참, 질문들을 듣자 하니, 기자의 입장에서 제작발표회가 드라마에 관련된 기사를 얻는 자리라기보다는, 어떻게든 말실수 하나를 건져보겠다고 나오는 자리처럼 느껴졌다.
‘정말 걱정이 태산이네.’
내가 뭐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더욱 답답했다.
그래도 시간 내에 가기는 해야 해서, 샵에서 잔뜩 꾸민 채희와 우리는 제작발표회가 열리는 회장으로 차를 몰아 출발했다.
그렇게 막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스타일리스트가 채희의 매무새를 점검하고 있을 때.
우리가 탄 차량을 향해 익숙한 인물들이 다가와 창문을 두드렸다.
“음?”
우리 모두가 그 두 명을 보며, 얼굴에 의문부호를 띄웠다.
박송이의 매니저.
그리고 그 뒤에 팔짱을 끼고 선 박송이.
창문을 열고 얼굴을 마주하니, 매니저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송이가 정채희 배우님 좀 잠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뒷좌석에 앉아있던 채희가 고개를 쭉 빼서 운전석 창문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에, 박송이는 잠시 미간을 찌푸리고는 턱짓했다.
“문 열어. 들어가게.”
그녀는 시선을 내게 옮기며 물었다.
“들어가도 되죠?”
“아, 네.”
나는 팀장님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슬쩍 보곤 바로 문을 열었다.
요즘 촬영장에서 보이는 그녀의 태도를 보자면, 참···.
대놓고 채희를 경쟁상대로 보는 게 좀 뭐하긴 했지만, 그래도 나쁜 말이나 나쁜 행동은 한 적이 없었다.
또한 연기 실력도 나날이 발전하는 듯하여, 드라마의 퀄리티를 끌어올리는 주역 중에 한 명이기도 했고.
그녀의 평소 태도를 감안하여 여기서 채희를 기다리고 있던 이유를 추측하자면, 가능성이 큰 것은 하나.
“기자들이 뭐라고 해도 절대 당황한 티 내지 마. 너 연기 잘하잖아. 드라마 찍고 있는 현장이라고 생각하는 게 여러모로 편할 거야.”
차에 올라타자마자 내뱉은 말.
역시 내 추측이 맞았다.
그녀는 제작발표회 경험이 없는 채희에게 조언을 해주기 위해, 이곳에 미리부터 도착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였다.
드라마에 논란이 생기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뭐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이유에 대해 깊이 파고들기보다는 그냥 넝쿨째 굴러들어온 도움을 넙죽 받는 편이 옳았다.
“그리고 대답 늦었다고 아무도 뭐라 할 사람 없어. 충분히 생각하고, 질문에 답 못 찾겠으면 그냥 질문 잘 못 알아들은 척 딴소리 내뱉어.”
“네네.”
“그러면 또 다음 기자가 다시 그 질문 할 수도 있어. 어차피 진행하시는 분이 알아서 끊어주시기는 할 건데 그게 애매할 수도 있단 말이야. 그럴 땐, 그냥 다른 사람 쳐다봐. 다 너보다 경험 많으니까 알아서 잘 도와줄 거야. 그렇다고 나만 쳐다보지 말고, 웬만하면 감독님 쳐다봐.”
“네네.”
윤팀장님이 큰 틀에서의 조언을 많이 해주셨다면, 박송이는 디테일한 대처 방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채희는 그냥 경청하며 고개를 주억거리기에 바빴고.
‘이런 관계를 뭐라고 해야 하려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아끼는 후배’는 절대 아닌 것 같고, ‘친한 동료’도 절대 아닌 것 같고.
뭐 아무튼 그리 나쁘지 않은 느낌인 것만은 확실했다.
***
단상에서 실컷 사진을 찍고, 드디어 걱정하던 그 시간이 다가왔다.
구선학 감독, 이우진 작가, 박송이, 김기혁, 정채희, 윤성준.
방송사, 첫방송 날짜와 시간, 드라마 제목이 적힌 글자가 적힌 벽면 앞에 여섯 명이 주르륵 앉아 있었다.
왼쪽에는 진행자가 있었고, 이 여섯 명 앞에는 엄청난 수의 기자들이 건조한 표정으로 앉아 노트북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정채희는 그 삭막하고 축 처진 광경을 바라보면서도 지금껏 들었던 조언들을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되뇌었다.
그러면서 왼쪽 편에 앉은 박송이를 바라보기도 했고.
진행자 뒤쪽에 있는 계단 아래에서 입술을 꾹 깨물고 있는 자신의 매니저를 바라보기도 했다.
찝찝해하고 걱정하고 있는 박한울의 표정을 보는데, 어쩐지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아무래도 아무런 조언도 못 해준 게 마음에 걸려서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 것 같다.
‘아무것도 안 해줘도 되는데.’
그저 고개만 돌리면 보이는 곳에 그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채희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큰 힘이 되고 있었으니까.
윤팀장님의 조언보다, 박송이의 디테일한 노하우보다 더.
“해럴드연예의 김주영입니다. 감독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마침내 기자들의 질문이 시작되었고, 역시나 분위기는 칙칙하고 싸늘했다.
하지만 이미 모두가 예상했던 바.
무례한 질문들에 매끄럽게 대처하는 모습들을 보며, 채희는 다시 한번 각오를 다졌다.
그렇게 몇 개의 질답이 오간 뒤에, 정채희에게 들어온 첫 번째 질문.
기자는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정채희 배우님께 질문 있습니다. 껄끄러우실 거 아는데, 제가 악역을 담당해야 할 것 같아요. 저번 웹드라마에선 키스씬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아무래도 있을 것 같아서요. 혹시 키스씬을 이미 찍었다면 이게 생애 첫키스였는지, 키스씬을 찍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그리고 아직 안 찍었다면 키스씬을 찍을 때 어떤 느낌이 들 것 같은지 묻고 싶습니다.”
무례하기 짝이 없는 질문.
‘껄끄러우실 거 아는데’라고 말한다고 안 껄끄러워지는 것도 아니고, ‘악역을 담당해야 할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고 해서 착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냥 껄끄러운 질문을 악역이 한 것, 그저 그뿐이었다.
이에 진행자는 알아서 정리를 하며 질문의 내용을 확 바꿔버렸다.
“예, 전작이랑 이번 작품이랑 로맨스 라인에 대한 차이를 물으시는 것 같은데 정채희 배우, 답변해주시죠.”
아주 많이 바뀐 내용에 기자가 혀를 차며 오만상을 찌푸렸고, 정채희는 대답하기 위해 마이크를 들었다.
그런데 희한한 건.
‘하나도 안 떨리네···?’
무례한 질문을 첫 질문으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상황에 맞닥뜨리니 이상하게 전혀 떨리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연기하는 게 아니라서 그런가? 아니면···.’
고개를 살짝 돌려보니, 저 기자를 죽일듯이 째려보고 있는 자신의 매니저가 보였다.
‘저럴 줄 알았어. 하여간 오빠는 신입이면서 몸을 안 사린다니까?’
만약 이곳이 제작발표회장이 아니었다면, 자신의 매니저는 저 기자에게 한마디 퍼부어주었을 것이 분명했다.
채희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면서도 마음이 지극히 평온해지는 것을 느꼈다.
“두 작품 모두 저한텐 너무 좋은 작품이라서요. 저는 로맨스 서사에 대한 차이보다는 캐릭터에 대한 차이에 집중하고 있어요. 캐릭터에 대해 생각하면서 이럴 땐 어떤 감정이 들까, 저럴 땐 어떤 생각이 들까, 하면서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진행자가 바꿔버린 질문과도 딱 들어맞지는 않는 답변이었으나, 누구 하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애초에 질문부터가 이상했으니까.
게다가 기자들 또한 앞선 질문과 비슷한 것들을 재차 하려 들지 않았다.
얼굴색 하나 안 변하며 아주 침착하고 차분하게 대답하는 것을 보곤, 사이즈가 딱 나왔으니까.
‘얘한테는 아무것도 못 건지겠다’라는 사이즈가.
***
“저 오늘 어땠어요?”
입꼬리를 끌어올리고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묻는다.
‘나 잘했죠?’라고 하는 듯 잔뜩 의기양양한 표정.
내 입에서 작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어째 요즘 들어 저런 표정을 자주 보는 듯하다.
그도 그럴 게, 채희는 요새 뭐든지 잘 해내고 있었으니까.
“그래, 잘했다.”
“그쵸? 잘했죠?”
“그래, 잘했다고.”
두 번이나 잘했다고 말해주자 그제서야 헤벌쭉 웃으며 핸드폰을 살펴본다.
제작발표회를 통해 나온 수많은 기사들, 그리고 그에 대한 네티즌의 반응들.
첫방송을 하루 앞두고 있었기에 이미 어느 정도 홍보가 이뤄지기도 했었으니, 반응들이 꽤 적지 않게 올라와 있었다.
“팬카페에 글 엄청 많이 올라왔어요, 오빠.”
“그럴 만하지. 얼마나 오매불망 기다리셨던 분들인데.”
채희의 팬들은 아주 신이 나 있었다.
웹드라마, <캠퍼스 낭만이 원래 이런 거야?>에서 독보적인 연기를 선보였으니, TV드라마에서는 또 어떨지 기대가 되는 탓이다.
언제는 시즌2를 해달라고 그렇게 노래를 부르더니.
‘역시 하이라이트 영상이 자극이 좀 컸지.’
제작발표회가 시작됨과 동시에 업로드 된 우리 드라마의 하이라이트 영상.
누가 영화감독 아니랄까 봐, 아주 영상을 기가 막히게 뽑으셨다.
-와 정채희 미쳤다···. 와아. 와. 진짜 와 소리밖에 안 나오네.
-1:33 이 부분 정채희 분위기 뭐임?;;;; 신인 맞냐?ㅋㅋㅋㅋ 어이가 없을 정도네.
-아니 정채희 얘 연기력 뭐냐고. 저 쟁쟁한 배우들 사이에서도 하나도 안 꿀리네ㅋㅋ
팬카페 회원이 아닌 네티즌들의 반응이 이러했으니, 팬들은 어떠할까.
말해봤자 입만 아플 정도로 아주 난리가 난 상태였다.
“오빠! 오빠! 이거 봐요. 누가 하루 동안 어떻게 기다리냐고 숨 참겠대요. 그만큼 엄청 기대되나 봐요!”
자랑하듯이 핸드폰 화면을 내게 보여준다.
하여간, 널리고 널린 게 이런 댓글인데 자기 팬이 써주니까 또 새롭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팬카페에 올라오는 글과 댓글들을 모두 하나하나 즐겁게 살펴보고 있는 채희.
저번에도 그랬지만, 이런 채희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내게는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방송 나가면 좋은 댓글 훨씬 많이 달리겠지?’
그럼 채희는 그걸 보고 더 신나 할 거고.
나 또한 더 뿌듯하고 기분이 좋아지게 되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나 다름없었다.
“빨리 방송됐으면 좋겠다.”
“저도요. 팬분들이 되게 좋아하실 것 같아요.”
그래. 방송 보고 안 좋아할 리가 없지.
‘누가 고른 작품인데.’
아무튼, 빨리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
< 제작발표회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