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사람, 귀가 참 이상하네요 >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지만 매일 촬영이 있는 것은 아니다.
주연이라면 모를까, 애초에 역할이 조연이기도 하고.
반 이상 사전제작이라서 여유가 있는 편이랄까.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회사에 와서 연습을 했다.`
오전부터 점심까지.
채희는 저녁 늦게까지 하고 싶다고 했는데 윤팀장님이랑 한실장님께서 모두 단호하게 안 된다고 말렸다.
이건 웹드라마와는 다르게 체력 싸움이라서, 지금 멀쩡하더라도 아낄 필요가 있다고.
그런데 나는 예외였다.
채희를 집에 보내고 나서도 나는 회사에 와서 업무를 거들어야 했다.
아티스트가 일이 없다고 매니저도 따라서 쭉 쉴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게다가 나는 신입사원이기도 해서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라 불만은 전혀 없었다.
배울 것도 아직 많이 남아 있었고, 이렇듯 널널하기도 하니 더욱더.
‘역시 풀캠이 좋아.’
나는 잠시 여유가 난 틈을 타, 휴게실에서 핸드폰으로 송하연의 음방 무대를 보는 중이었다.
요새는 세로 직캠, 가로 직캠, 페이스 직캠, 풀캠 등 갖가지 직캠 버전이 음방에서 제공된다.
덕분에 나는 이렇게 수혜를 입고 있는 중이었고.
‘아직도 캐스팅 제의가 안 들어왔다고 했지?’
가요 관련 업계에서 송하연의 무대를 한 번도 안 볼 리가 없는데, 아직도 유현지에게 캐스팅 제의를 한 사람은 없다고 한다.
정말 이 바닥 사람들의 눈은 다 옹이구멍인 모양인가?
어떻게 이걸 못 알아보지?
이렇게 재능이 팍팍 쏟아지는 게 대놓고 보이고 있는데?
“3팀 신입 맞죠? 채희 씨 담당.”
풀캠을 집중해서 보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불렀다.
실장님을 따라서 언젠가 한 번 뵌 적이 있는 얼굴.
홍보팀의 최대리님이었다.
“안녕하세요, 대리님.”
활달하고 친화력 있는, 소위 인싸스러운 사람이라서 기억에 유독 남았다.
제발 자기한테 말 걸지 말라는 아우라를 풀풀 풍기는 홍보팀 사무실에서 유일하게 한실장님을 반겨주던 사람이었지.
그는 내 핸드폰을 보며 말했다.
“하연이랑 친하다는 건 들었는데, 이렇게 직캠까지 챙겨보시는 거예요? 아, 팬이라 그랬나?”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모르겠네.
뭐, 일단 대부분은 다 알고 있다고 보는 편이 편할 것 같았다.
송하연이 내게 음악적으로 도움을 청했을 때, 이미 나에 대한 소문이 사내에 쫙 퍼지기도 했으니.
“네, 팬이라서 보고 있어요. 요새 성적도 좋잖아요.”
송하연의 이번 앨범은 지금까지 그녀가 낸 앨범 중 가장 좋은 페이스를 달리고 있었다.
음방에서 1위를 쓸어담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최대 음원 사이트에서도 상위권을 유지 중이다.
물론 대형 팬덤들 때문에 1위까지는 안 될 것 같지만, 1위를 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반응이 대부분.
사실 음악으로만 따지면 대중성은 충분한데, 송하연이 아직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지 못한 탓에 차트에서 대형 팬덤을 이기지 못하고 있는 거였다.
“하연이 요새 성적 좋죠. 그런데 이런 거 물어도 되나? 매니저님은 하연이 매니저 왜 거절하신 거예요? 이렇게 챙겨볼 정도로 좋아하시면서.”
인싸가 아니라 떠벌이인 모양이다.
눈빛이 사냥감을 노리는 매처럼 반짝이고 있다.
이 양반이 내가 신입사원이라고 눈치도 없는 줄 아나.
조금이라도 이상한 소리를 내뱉었다간 사내에 또 소문이 쫙 퍼질 만한 질문에, 나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자신이 없어서요. 신입이라 아무것도 모르는데 괜히 피해 끼치면 어떡해요. 그리고 그냥 팬으로 남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아하.”
무미건조한 대답, 만족스럽지 못한 반응이다.
그럼 뭐 자극적인 거라도 말해줄 줄 알고?
“혹시 연예부 기자 출신이세요?”
“네,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척하면 척이지.
그럴 줄 알았다.
그냥 습성 같은 거였네.
“그냥요. 이런 거 궁금해하시니까. 저한테 기삿거리라도 찾는 줄 알았죠.”
“하하하.”
뼈가 담긴 말에,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휴게실을 나갔다.
어디 대표 낙하산을 호구로 보려고.
아무튼 이렇게 휴게실과 사무실, 흡연실을 바쁘게 오가다 보니, 어느덧 퇴근 시간에 임박해 있었다.
그런데 그때, 저쪽, 그러니까 매니지먼트1팀 쪽에서 높게 쏘아붙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그 사람 싫어하는 거 알잖아요! 그럼 미리 쳐냈어야죠!”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나도 의자에 앉은 채로 미어캣처럼 고개를 쑥 빼들고 그쪽을 쳐다봤다.
‘송하연···?’
팔짱을 낀 송하연이 눈썹을 치켜올린 채로 살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런 표정도 지을 줄 아는구나.
소문과는 달리, 나는 지금까지 너무 온화한 모습만 봐와서 몰랐다.
어쩌면 소문이 과장된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지.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송하연은 계속해서 쏘아붙였고, 최실장은 삐질 흘리는 땀을 훔치며 그녀를 진정시키려 애쓰고 있었다.
그런데 그 옆에, 내가 아까 봤던 그 사람도 있었다.
홍보팀의 최대리.
“하연아, 개인적으로 별로라도 그 사람이 대중들한테 명성 있는 건 알고 있잖아. 그냥 그 사람 이용한다고 생각해. 프로그램 나가서 편곡 멋지게 하면 원곡 초월, 어? 뭐 이런 걸로 기삿거리도 나고 좋지.”
가만히 얘기를 들어보니, 대중들한테 인기 있는 레전드 가수를 커버하며 경연하는 예능이 잡힌 듯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가수가 송하연이 개인적으로 상당히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거지.
최실장님의 입장에서는, 그 프로에 지금 나가는 게 차트에서 더 높은 순위로 올라가는 데 있어 시기적으로 가장 좋다고 생각해서 잡은 것일 테고.
‘얼마나 싫어하길래.’
나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그 험악하고 살벌한 광경을 남의 집 불구경하듯이 바라보고 있었는데.
문득 그 홍보팀 최대리님과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최대리님의 눈이 나를 떠날 줄 모른다.
젠장.
“어? 박 매니저님!”
이제 모두의 시선이 내 쪽으로 쏠렸다.
좀 더 흥미진진한 표정들을 하고선.
급히 주변을 둘러봤지만, 지금 남아있는 팀원들 중에선 날 빼내줄 만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박 매니저님! 잠시만 와주세요.”
최대리 자식이 나를 손짓으로 부르고 있다.
한 손에는 믹스 커피를 탄 종이컵을 들고서, 마치 재밌는 판을 짜듯이.
아까 뼈 담긴 말을 했다고 해서 복수하는 건가?
아니, 그냥 저 사람 성격이 그냥 저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남 생각 안 하고 흥미로운 판을 즐기는 성격.
둘 중에 뭐가 됐든 내게는 너무 얄미워 보였다.
나는 송하연과 최실장의 상반된 눈빛을 고스란히 받으며 천천히 그쪽으로 향했다.
불렀는데 아무 이유 없이 안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그들 앞에 서서 가볍게 목례를 하니, 송하연은 내 눈을 살짝 피하며 손바닥으로 목 뒤를 쓸었다.
민망한 모양이다.
그런데 그 모습을 눈여겨 본 최대리가 더 흥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박 매니저님은 팬의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까 휴게실에서 하연이 직캠도 보고 그랬잖아요. 지금보다 차트에서 순위가 더 높게 올라가야 하는데 많이 아쉽지 않아요? 대중적으로 좀 더 인기 얻으면 쭉쭉 치고 올라갈 수도 있는데.”
그건 맞는 말이었다.
그 가수를 개인적으로 싫어하든 좋아하든 상관없이, 그 프로그램이 대중들한테 인기가 있는 것도 맞고, 쉽게 화제가 되는 것도 맞으니까.
그런데, 본인이 이렇게 싫어하는데 억지로 강요할 필요까지는 없지.
나는 도움을 바라는 최실장님의 눈빛을 못 알아본 척,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요. 제가 봤을 땐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계셔서요.”
송하연의 입꼬리가 살짝 움찔거렸다.
그녀가 방금 전까지와는 180도 다른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아까 제 직캠 보셨어요?”
사실 유현지가 나오는 걸 보려고 무대 전체가 나오는 풀캠을 찾아본 거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여러 번 돌려봤어요. 엄청 좋더라고요.”
“그래요? 어떤 거 보셨는데요?”
“방송사별로 나온 건 다 봤죠.”
“아.”
이제야 내가 평소에 보던 송하연의 얼굴이 되었다.
부드럽고 귀여운.
좀 전의 그 무서운 표정은 내게 아주 낯선 느낌을 줬었는데, 지금은 무척이나 익숙한 느낌이다.
그녀는 내게 하소연을 하듯 한숨을 폭 내쉬며 볼멘소리를 했다.
“저 그 사람 정말 싫단 말이에요. 예전에 우연히 만났을 때 저한테 뭐라고 했는 줄 아세요? 음악에 진정성이 없고 알맹이가 빠져서 밋밋하대요. 정작 자기는 작곡해본 적도 없으면서.”
“하!”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진정성이 없고 알맹이가 빠져? 송하연이?
“그 사람, 귀가 참 이상하네요.”
100% 진심으로 내뱉은 말에 송하연의 얼굴이 더욱 밝아졌다.
그런데 그녀가 최실장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마자, 스위치가 바뀌듯이 바로 싸늘한 얼굴이 되었다.
“저 안 할 테니까 취소하든 말든 알아서 하세요. 그리고··· 매니저도 바꿔주세요. 제 말은 아예 들을 생각도 없이 실장님 말만 최우선인 사람이더라고요. 그분이 중간에서 조율만 잘했어도, 저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어요.”
최실장님은 나를 한 번 흘깃 쳐다보고는, 다시 송하연에게 시선을 옮겼다.
최실장님이 막 입을 떼려 했는데, 그보다 먼저 송하연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한울 매니저님한테 뭐라고 하지 마시고요. 간섭하려고 한 게 아니라 불러서 온 것뿐이잖아요?”
그때 홍보팀 최대리의 입이 또 한 번 방정맞게 움직였다.
“역시 박 매니저님이 하연이 찐팬이시네요. 매니저 거절한 것도 자신 없어서라면서요. 신입이라 아무것도 모르는데 피해 끼칠까 봐. 사실 그런 건 조금씩 배워나가면 되는데. 실수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요.”
‘이 참에 네가 이 매니저 자리로 들어가보는 게 어때?’라는 말이 뒷말에 생략되어 있었고, 지금 여기서 귀를 열고 듣고 있는 모두는 이 생략된 말을 알아채지 못할 리 없었다.
저놈의 입을 확 꿰매버리든가 해야지.
송하연의 입에서 매니저 바꿔달라는 말이 나오니까, 이때다 싶어서 이 말도 꺼낸 거겠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는 송하연에게, 나는 방긋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팬은 팬으로 남을 때가 가장 행복한 것 같기도 해서요. 이것도 말했었는데, 최대리님이 일부러 이 말은 빼놓고 말씀하신 것 같네요. 연예부 기자 출신이라서 그런가? 하하! 조금 악질적인 버릇을 못 버리셨나 봐요.”
나는 웃는 얼굴 그대로 최대리에게 물었다.
“대리님, 친구 없으시죠?”
최대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정곡을 찔렀나 보다.
***
“왜 그렇게 사람이 막무가내예요?”
소문이 다 퍼진 후, 채희가 나한테 처음으로 내뱉은 소리였다.
“신입이 그렇게 하면 다른 사람들이 안 좋아해요. 분명 뒷말도 나올 거라니까요?”
내게 이런 말을 하면서도, 정작 채희를 보자면 기분이 좋은 듯했다.
아까부터 계속 내 입에 먹을 걸 넣어주고 있다.
초콜릿이나 과자나 음료수 같은 것들.
목소리의 톤도 살짝 올라가 있고, 고개를 좌우로 살랑살랑 흔들기도 한다.
한실장님은 그날 바로 전해들으시고는, 화가 잔뜩 나서는 자초지종을 아주 세세하게 물어보셨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 이런 말을 하고 계신다.
“최실장이 아무 말도 안 한 거 맞지? 그때 그 자리 끝나고.”
“네, 아무 일도 없었어요.”
“1팀에서 뭔 짓거리 하면 바로 나한테 말해.”
“네, 실장님.”
아무래도 나 많이 아껴지고 있는 것 같다.
한실장님이나 윤팀장님이나 채희한테서.
‘난 아버지 믿고 저지른 건데.’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최대리에게 망신을 준 것에 대해서, 팀장님이나 실장님은 내게 아무런 말씀도 없으셨다.
채희는 말로만 타박하며 걱정하지, 기분은 아주 좋아 보였고.
아니, 얘는 오히려 속 시원하게까지 보인다.
이미 얘기가 다 끝났던 송하연 매니저 화제를 꺼낸 게 최대리니까.
나는 그 얘기가 또다시 물살을 타기 전에 확실히 입장을 밝혔고.
“그나저나 채희야. 이번에 대본 나온 거 봤지?”
“네.”
채희의 눈빛이 기대감으로 일렁였다.
제작진이 전해준 5회 대본.
채희의 분량은 눈에 띄게 늘어나 있었다.
‘서브 스토리 차례라서 그런 걸 수도 있는데, 내 생각엔 그게 다가 아닐 것 같단 말이지.’
5회를 기점으로 채희의 분량과 비중이 더 커질 것 같았다.
아무렴, 작가나 감독, 다른 스텝들, 그리고 제작사 대표까지 모두 채희의 연기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
“음. 오빠, 근데요.”
“응. 대본에서 뭐 궁금한 거 있어?”
“아뇨, 그게 아니라요. 그 방송사별로 하연 선배 직캠 다 봤다고 한 거, 그거 진짜예요?”
나는 아무런 대답없이 채희의 눈을 가만히 바라봤고.
채희는 직접 내 손에 쥐여줬던 과자 봉지를 도로 뺏어갔다.
진짜 쫌생이 같으니라고.
< 그 사람, 귀가 참 이상하네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