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본 리딩(1) >
웹드라마 <캠퍼스 낭만이 원래 이런 거야?>가 오늘부로 드디어 완결 종영이 되었다.
각 회당 평균 20여 분으로 채워진 24회분의 드라마.
비록 TV로 방영이 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모든 연령층에게 인지도를 얻어내지는 못했으나.
10대와 20대 초반에 한해서는 아주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지금까지 나온 모든 웹드라마 중에서 가장 인기가 좋았으니까.
그리고 엄청난 뉴페이스 신인이 출연했으니까.
이 드라마가 이렇게까지 잘 된 원인들 중에서, 우리 채희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초특급 신인 배우 정채희. 다음 작품은 브라운관으로!]
[괴물신인 정채희, 구선학 감독 작품에서 조연으로 호흡 맞춘다.]
[웹드라마 여신 ‘유나현’의 인기 요인은 무엇인가. 비주얼? 연기?]
이때다 싶었는지 제작사는 홍보에 나섰다.
앞으로 들어갈 차기작의 주타켓층은 이삼십 대였으나, 10대 시청자들 또한 놓칠 수는 없었으니까.
웹드라마이기 때문인지, 우리의 드라마는 완결이 되고 난 뒤에도 조회수가 붙는 추세가 줄어들지 않았다.
어쩌면 한 번 본 사람이 다시 정주행하는 것일 수도 있고, 완결이 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보는 사람들이 많은 것일 수도 있겠지.
뭐 아무렴 어때.
무슨 이유에서건 조회수가 높아지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된다면 우리에게는 그저 좋은 일일뿐이었다.
나는 기사나 커뮤니티의 반응, 그리고 웹드라마 영상에 달린 댓글들을 살펴봤다.
-시즌2는 당연히 나오겠죠? ^^ 기사 보니까 TV드라마 들어간다고 하던데ㅋㅋㅋㅋㅋ 기자들 팩트 체크 확실하게 안 하네. HJ엔터 빨리 오보났다고 정정 기사 내셔야죠.
-시즌2···. 제발···ㅠㅠㅠㅠㅠㅠ 미칠 것 같음. 설마 이대로 끝은 아니지? 아니 그렇다고 작품이 완결성이 없다는 건 아닌데.. 내 마음속에서 아직 떠나보낼 준비가 안 됐다고!!!!!!!!
-언니··· 가지마···.
-제발ㅠ 유나현이 이대로 끝이라고??? 거짓말이지?
-하마터면 기레기들한테 속을 뻔했네 어휴 ^^* 이대로 끝일 리가 없잖아ㅋㅋ 기사 나온 것들 다 거짓말이잖아 아 누가 속냐고ㅋㅋ
반응들이 아주 화끈하시다.
어떻게 보면 과격하신 것도 같고.
‘그만큼 아쉬운 거지.’
작품도 좋고, 연기도 좋고, 캐릭터 또한 엄청나게 잘 살렸다.
몰입해서 봤을수록 시즌2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에 아쉬워할 수밖에.
‘작가님이라도 계속 쓰셨으면 모를까.’
조수연 작가님도 드라마를 준비하신다고 하신다.
웹드라마가 아닌, TV 드라마를.
‘아쉬워도 어쩔 수 없지.’
이제 채희가 찍을 이 작품이 공개되면 아마 이렇게 아쉬워하는 반응 또한 쏙 들어갈 것이다.
웹드라마보다 훨씬 더 좋은 환경, 더 능력 있는 감독님, 그리고 더 실력 좋은 배우들이 함께 할 테니까.
채희는 그 속에서 자유롭게 날뛰며 재능을 풀어내면 알아서 명작이 탄생하겠지.
핸드폰으로 이런 반응들을 살펴보고 있는데, 진동이 울리며 톡이 왔음을 알렸다.
송하연으로부터 도착한 메시지였다.
-[사진]
-[사진]
-방금 뮤비 촬영 다 끝냈어요! 이렇게 만족스러웠던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어요. 매니저님한테 정말 많은 도움 받았네요! (웃음) 대박 터지면 자랑스러워하셔도 됩니다~ 감사해요ㅋㅋ
뮤비 촬영장에서 찍은 사진들 중 유독 잘 나온 사진들을 보냈나 보다.
보정 어플을 썼는지 안 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역시 송하연!’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예쁘긴 했다.
나는 팬으로서의 마음을 담아 그녀에게 답장을 보냈다.
-뮤비 나오자마자 바로 보겠습니다. 기대할게요.
어느새 이렇게 송하연이랑 개인적인 연락까지 하게 됐는지.
나는 거기에 새삼스러움을 느꼈고, 눈앞에서 퍼질러 자고 있는 얘한테도 새삼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정채희, 안 일어나냐?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아직까지 자.”
분명히 어제 완결이 난 뒤로부터 밤새도록 인터넷을 했을 것이다.
댓글을 보고 또 보고 아주 핸드폰 액정이 닳도록 봤겠지.
하여간···.
“정채희, 일어나! 연습하러 가야지!”
“으음···.”
잔뜩 미간을 찡그리며 눈이 겨우 반쯤 떠졌다.
멍한 시선으로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눈을 껌뻑인다.
부스스하게 헝클어진 머리, 그리고 황토방 사장님 같은 잠옷.
이런 말을 하기는 좀 그렇지만, 막 잠에서 깬 모습마저도 이렇게 예쁠 수 있다는 건 반칙 같았다.
어떻게 사람이 이래?
관찰 예능 나가서 이런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줘도 다들 조작이라고 할 것 같았다.
“오···빠···?”
“그래. 너 또 댓글 보다가 밤 샜지?”
“밤 샌 건 아니고··· 조금 늦게 잤죠? 오빠 근데 지금 몇 시예요? 왜 알람을 못 들었지? 부재중 전화도 많이 와 있었네. 죄송해요. 못 들었어요. 아, 근데 목 말라요. 오빠, 저 물 좀 주세요.”
“와···. 어떻게 일어나자마자 이렇게 말이 많지? 너도 참 보면 볼수록 신기해.”
“아침부터 왜 시비예요.”
“점심이라고. 아침이 아니라.”
다른 배우들과 다르게, 채희는 마치 아이돌 연습생이라도 된 것마냥 매일같이 연습실을 들락날락거렸다.
또한 이번 웹드라마의 대성공에, 그녀의 성장 가능성과 이모저모를 따져서 우리 회사는 그녀에게 안락한 숙소를 제공해줬다.
회사와 아주 가까운 곳으로.
덕분에 내 수고가 좀 줄어들었지.
“오빠아···. 물 좀 주시면 안 돼요?”
대체 얼마나 늦게 잔 건지 아직도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었다.
말은 많이 하면서도 눈은 다 못 뜨고 있었고.
그래서 나는 그녀가 벌떡 일어나서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소식을 전해주기로 했다.
“너 공식 팬카페 생겼어.”
“···!”
가느다랗게 떠 있던 눈이 순식간에 그 크기를 부풀렸다.
아주 아주 커다랗게.
“네!?”
용수철처럼 허리를 튕겨 상체를 벌떡 세운 그녀가 내 양쪽 손목을 확! 붙잡고는 완전히 몸을 일으켰다.
“묻잖아요! 네!? 라고! 자세히 좀 말해봐요! 왜 말을 하다가 마는 거예요!”
몸짓과 눈빛이 사뭇 위협적이기까지 하다.
“뭘 더 말해. 이미 다 말했는데. 너 원래 팬카페들 있었잖아. 그중에서 공식 팬카페 지정됐다고.”
나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고, 그녀는 허겁지겁 핸드폰으로 카페 목록에 들어가 보았다.
이미 팬카페란 팬카페는 모조리 가입되어 있던 그 목록으로.
“진짜다! 진짜예요! 회원도 엄청 늘었어요!”
온몸에서 생기가 넘쳐 흐르는지, 몸을 가만히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저 카페에서 하루종일 죽치고 있겠네.
좋은 소식인지 나쁜 소식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팬들 실망시키지 않으려면 연습하러 가야지.”
잔뜩 신이 나서 기쁨을 누리던 그녀의 몸이 우뚝 멈췄다.
그리곤 결연에 찬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진짜 진짜 잘할 거예요! 빨리 연습하러 가요! 빨리요!”
“···일단 좀 씻어라. 아침밥도 좀 먹고.”
하여간 애도 아니고 말이야.
“네! 아! 근데 팬카페에 인사부터 할게요!”
***
+
[안녕하세요! 정채희예요!]
일단 팬카페에 가입해주신 팬분들께 감사 인사부터 드리고 싶어요! 다 제 작품 보고 좋아해주신 분들 맞죠? 저도 우리 팬분들 댓글 보면서 엄청 좋아했거든요! 오늘도 팬분들 반응 보느라고 늦잠 잤어요···ㅎㅎ 저 정말 앞으로도 엄청 열심히 해서 여러분들 절대절대 실망시키지 않을 테니까 꼭 제 옆에서 떠나지 마시고 잘 지켜봐주세요! 사랑해요 팬분들!!!❤❤❤❤
+
이렇게 시작한 인사 글은 엄청난 장문으로 이어졌다.
이걸 컷트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팀장님과 실장님은 많은 고민을 했지만, 그냥 이대로 올리기로 했다.
어차피 지금까지의 스케줄들로 인해 성격이 어느 정도 밝혀지기도 했고, 신인이니까.
좀 푼수 같기는 하지만 팬들을 엄청 사랑하고 있다는 것만은 아주 명확하고 고스란히 느껴졌으니, 이건 이것 나름대로 좋아 보였다.
또한 얘가 뭘 써도 팬들한테는 명문처럼 보이겠지.
그러니 길면 길수록 좋게 느껴지지 않겠는가.
“이제 연습하러 가요!”
채희는 똘망똘망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아주 의욕이 만땅이시다.
우리는 그 뒤로 본격적으로 연습에 빠져들었고, 채희는 그 의욕의 크기에 맞게 무시무시한 연기력을 쉬지 않고 펼쳐냈다.
하여간 괴물은 괴물이라니까.
“오빠, 저 욕심일 수도 있는데요. 이것까지 잘됐으면 진짜 좋겠어요. 원래 작품이라는 게 대박 나는 게 엄청 어렵잖아요.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작품이 좋아도 대중들 선택 못 받으면 끝인 거니까. 근데 그걸 아는데 그래도 욕심이 막 나요.”
“알아, 너 욕심 많은 거. 그리고 잘될 거야. 그건 걱정하지 마.”
이렇게 연기를 하는데 대박이 안 날 수가 있나.
나는 문득 기대가 되었다.
구선학 감독님은 연기력이 받쳐주지 않는 배우는 작품에 일절 쓰지 않기로 유명했다.
그 명성에 맞게, 라인업이 다 정해진 지금 캐스팅 면면들을 보자면 만만한 배우가 정말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그걸 감안하더라도 채희는 그중에서 독보적이었다.
나는 촬영의 결과물이 기대가 되었고, 대중들의 반응이 기대가 되었으며, 또한 촬영장에서의 반응이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이런 연기를 처음으로 선보일 수 있는 대본 리딩 자리도.
내 입가로 악동 같은 미소가 지어졌다.
이 쟁쟁한 배우들 사이에서, 채희는 또다시 그때의 그림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캠퍼스 낭만이 원래 이런 거야?>의 대본 리딩 현장에서의 그 정적과 뜨거움을.
비록 작품에서의 역할은 조연이지만, 그곳에서의 존재감만큼은 원톱 주연에 버금가지 않을까?
그렇게 스케줄과 연습을 병행하는 나날을 보내길 얼마.
마침내 오늘, 대본 리딩의 날이 다가왔다.
***
<헌팅 포차에서 만난 사이>에서 여주인공을 맡은 배우, 박송이.
매니저와 함께 대본 리딩장을 향하고 있던 그녀는 핸드폰을 불안하게 보며 눈썹을 좁혔다.
“얘 왜 이렇게 인기가 많아? 고작 웹드라만데···. 생긴 것도 그렇게까지 예쁜 것도 아니구만. 오빠, 나 이러다가 얘한테 스포트라이트 뺏기면 어떡해?”
그녀가 보고 있던 핸드폰에는 정채희에 대한 사람들의 열렬한 반응들이 띄워져 있었다.
그도 그럴 게, 그 웹드라마는 가장 인터넷 활동이 활발한 10대와 20대 초반에게 큰 인기를 끌었으니까.
박송이는 이런 배우가 자신의 드라마의 조연으로 있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실장 매니저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코웃음을 치며 조소했다.
“그래봤자 웹드라마야. 어린 애들 기준은 그냥 잘생기고 예쁘면 장땡이라고. 연기력도 다 캐릭터빨이겠지. 거기 출연진들 중에서야 제일 잘했을지 몰라도 여기랑은 수준이 완전히 다르지.”
불안한 와중에 희망찬 소리였다.
뒷좌석에 앉아 있던 박송이는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고 몸을 운전석 쪽으로 기울였다.
“그렇겠지? 나 집중 못 받고 그러지 않겠지?”
“거기 출연진들이랑 여기 출연진들이랑 비교해봐라. 너도 있고, 그런 초짜들 있는 데랑은 180도 다르다니까? 아마 기도 제대로 못 펼걸? 잘하면 리딩장에서 대사 절지도 몰라. 그럼 볼 만은 하겠다. 지금쯤이면 아마 자기가 진짜 연기 천재라도 되는 줄 알고 있을 테니까.”
실장 매니저는 낄낄대며 말했다.
신인, 처음부터 얻은 인기, 칭찬받은 연기력, 아름다운 외모.
스타병에 걸려 자신을 연기 천재라고 착각하게 만들 수 있는 요소들이었다.
박송이는 설득력 있는 실장의 말에 납득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구선학 감독님 기준이랑 디렉팅이 까다롭기로 유명하니까.”
“그래, 송이야. 걔는 기준 낮은 10대들한테 반응 얻은 거라 다 거품일 거라고. 구선학 감독님 앞에선 실체 다 까발려질걸?”
“근데 연기 보고 통과한 걸 거 아니야. 막 그렇게 못하지는 않겠지.”
실장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근데 막 그렇게 잘하지도 않을 거라고. 딱 기준점 통과한 그 정도. 너는 그런 애들 신경 쓰면서 심력 낭비하지 말고 너만 신경 써. 너만 잘하면 돼. 아니면 리딩장에서 아예 확 기 눌러버리든가.”
박송이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에이, 됐어. 오빠는 가만 보면 날 완전 나쁜 년으로 만들려는 것 같더라?”
마음의 안정을 되찾은 그녀는 편하게 핸드폰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정채희의 사진들이 띄워진 화면.
“음. 역시 내가 더 이뻐. 이런 애들은 실물이 완전 별로라니까? 성격도 완전 개차반일걸? 만나서 싸가지 없이 굴면 콱 눌러버려야겠다. 싹싹하게 굴면 가끔 좀 챙겨주고.”
“역시 넌 너무 착해서 탈이야.”
“선배가 후배 챙겨주는 건 당연한 거지, 오빠. 이런 걸로 착하다고 하면 나 어디 가서 욕 먹어.”
은은한 미소를 띤 박송이의 얼굴엔 근심이 요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 이들에게 있어서는.
정채희의 연기가 거품이라는 게 기정사실이 되어 있었으니까.
< 대본 리딩(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