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하산이 천재매니저였다고-15화 (15/170)

< 1, 2회 공개 >

1회와 2회가 올라가기 전.

<캠퍼스 낭만이 원래 이런 거야?>는 충분한 홍보가 이루어졌다.

제작사에서도 이미 투자를 잔뜩 땡겨오기도 했거니와, 만들어진 결과물을 보고는 적극적으로 푸시해도 되겠다고 판단한 것.

또한 인혁은 아이돌이다.

제법 인기있는 아이돌 그룹 ‘슈터’의 비주얼 센터.

그리고 아이돌을 작품에 끌어들이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화제성.

[슈터의 김인혁 SNS서, “이번 작품 기대해주세요!” 연기로 출사표를 던지다!]

[김인혁의 연기 데뷔! 아이돌의 발연기 논란 또다시 일어나나?]

[공개 전부터 들썩들썩! 인혁의 웹드라마 데뷔. 동료 배우들은 누구?]

기사와 더불어 연예계 관련 커뮤니티가 떠들썩하다.

물론, 지엽적인 부분에 한해서.

아직 김인혁도 그만큼의 탑스타는 아니거든.

‘어쨌든 이런 것도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게다가 우리 회사의 푸시도 나름 선방을 하고 있다.

우리 기획사가 2티어라지만 어쨌거나 나름 상위권 기획사이지 않은가.

연기 기대주의 데뷔작이자 주연 작품이기 때문에 아낌없이 홍보를 쏟아내고 있었다.

그렇게 티저도 나오기 전부터 조금씩 홍보가 되던 것이.

티저가 나오고 나서부터는 그 사이즈가 조금 더 커졌다.

46초의 티저.

그리고 주연을 비롯한 각 주요 배우들의 연기가 짤막하게 담긴 하이라이트.

각자의 역할과 캐릭터를 손쉽게 파악할 수 있게 편집된 걸로 봐서는, 이 감독님이 아주 혼신의 힘을 쏟아 만드신 것 같았다.

“떨려?”

“그래 보여요?”

나는 채희에게 물었고, 채희는 역으로 질문했다.

저 질문에 답을 하자면, Yes.

아주아주 떨려 보인다.

안면, 목, 어깨부터 시작해서 전신이 경직된 듯했고, 앞에 놓인 간식과 음료에는 손도 안 대고 있지 않은가.

채희가 간식이랑 음료에 손도 대지 않는다니, 이게 정상일 리가 없다.

“응. 엄청 떨려 보여. 한실장님도 그렇게 보이죠?”

고개를 뒤로 돌려 한실장님에게 물었다.

그러나 그는 옅은 미소만을 띤 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러네.”

싱거운 대답.

왠지 머릿속에 상념이 많아 보였다.

며칠 전부터 저 상태인 걸 보니, 뭔 일이 있긴 있었던 모양이다.

개인적인 일이거나, 아니면 우리 3팀의 다른 아티스트한테 뭔 일이 일어났거나.

아무튼 내가 관여할 바는 아니다.

내가 관여할 바는 오직 채희와 관련된 것뿐.

나는 딱딱하게 경직된 채희가 보는 앞에서, 마우스를 쥐고 이곳저곳에 들어갔다.

맘껏 즐겨야 할 때인데 이 순간을 긴장으로 날려버리면 아깝잖아.

조금 풀어줘야지.

“사진이 진짜 잘 뽑혔네. 그치? 프로필 열심히 찍은 보람이 있다.”

웹드라마의 촬영을 모두 끝내고 곧바로 찍은 채희의 프로필 사진들이 여러 기사들에 첨부되어 있다.

압도적인 비주얼로 다양한 분위기를 소화한 컨셉 사진들도.

“이뻐요?”

“네가 직접 봐. 댓글들이 아주 이쁘다고 난리네.”

그래봤자 인혁의 팬들이 립서스비식으로 남겨준 것들이겠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야.

아마 최종회가 나올 때쯤엔 지금이랑 많이 달라질 거다.

그땐 진짜 채희의 팬들이 이러한 댓글들을 남기겠지.

아무튼 댓글들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는지 긴장을 조금 푸는 것 같았다.

이제 1, 2회 공개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10분.

우리는 10분이 지나고, 1, 2회를 함께 감상했다.

***

보이그룹 ‘슈터’를 좋아하는 평범한 고등학생 팬.

그녀는 인혁의 연기 데뷔 소식에 몹시도 흥분했고, 그건 팬들 대부분에게 똑같이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우리 인혁이 드디어 연기 데뷔!!!!ㅠㅠㅠㅠㅠㅠ

-하아···. 진짜 존버한 보람이 있다 드디엌ㅋㅋㅋ 아 너무 행복해

-인혁이 비주얼이면 당연히 연기해야지~ ^^

독서실에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팬카페를 둘러보고 있을 때, 마침 1회와 2회가 동시에 업로드되었다.

그녀는 공부고 뭐고 부리나케 들어가 곧장 1회를 시청하기 시작했다.

“···!”

첫 장면부터 나오는 인혁의 무지막지한 비주얼.

그녀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지를 뻔했지만 가까스로 참아낼 수 있었다.

‘제작진들이 뭘 좀 아네···.’

이렇게 흡입력 있는 첫 씬이라니.

제작진들이 아주 작정을 한 것 같았다.

‘어떻게 이렇게 연기도 잘해?’

생활 연기라지만 상당히 괜찮았다.

사실 연기력은 팬들 사이에서도 걱정이 되었던 부분.

괜히 논란이 될까 봐 아무도 이 부분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걱정할 필요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녀의 입가에 히죽히죽 웃음이 나왔고, 핸드폰에 얼굴이 빨려들어갈 듯 몰입하여 시청하였다.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충격적인 장면을 볼 수 있었다.

+

-···저, 저, 저기요.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무심하게 걸어가는 ‘유나현’에게 말을 거는 ‘정현성’.

-저, 저··· 제 말 안 들리세요? 저.. 이거 이어폰 좀···. 저기요···?

번호창을 열고 핸드폰을 건네는 ‘정현성’에게 ‘유나현’은 이어폰을 빼고 말했다.

-죄송해요. 남자친구 있어요.

-···.

-그래도 번호 물어봐줘서 고마워요. 그럼 이만 가볼게요.

-아··· 네···! 네!

+

연기의 포커스는 인혁에게 맞춰져 있었지만, 누가 뭐래도 이 장면의 주인공은 정채희였다.

그 오묘하게 매혹적인 분위기와, 별거 하지 않았음에도 매우 뚜렷하게 존재감을 뿜어내는 연기.

“···.”

아까 인혁이 첫 씬으로 등장했을 때는 저도 모르게 ‘꺄악!’ 소리가 나올 뻔했지만, 지금 이 장면을 보고는 입이 벌어진 채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야말로 미친 비주얼과 미친 연기! 미친 분위기!

‘···이 언니 대박이네.’

인혁의 팬이기 때문에 이 작품을 시청하게 된 그녀는, 정채희가 등장한 순간부터는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순수하게 작품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2회까지 모두 시청을 마친 후.

그녀는 아주아주 심각한 오류를 발견하고는 후다닥 댓글을 남겼다.

-아니 이거 오류인 듯;;; 정말 화가 나네요. 왜 다음 회가 없죠? 빨리 조치 부탁드려요 담당자님. 진짜 큰일 나기 싫으면.

***

1회와 2회의 반응이 상당하다.

아직 초반이기에 폭발적인 반응까지는 아니었으나, 조회수 대비의 반응은 앞으로를 무척이나 기대할 만하게 만들고 있었다.

물론 시청자들의 대부분은 인혁의 팬들이었기 때문에, 뭘 했어도 반응이 좋았겠지만, 댓글들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여주 언니 대체 뭐임? 어떻게 저렇게 이쁘냐··· 진짜 어이가 없네.

└ㅋㅋㅋㅋㅋ아니 왜 화가 났엌ㅋㅋㅋ

-인혁이 연기 진짜 잘한다 제작진분들 어디 계신지 모르겠어서 동서남북으로 절 올립니다(꾸벅)

└연기 진짜 잘함ㅋㅋ 깜짝 놀랐네. 근데 여주랑 같이 찍는 씬에서 훨씬 더 연기 잘하는 것 같지 않아요?

└진짜로 여주랑 같이 붙어있는 씬이 연기 훨씬 잘함··· 문제는 여주 연기가 아주 미쳐버려서 티가 잘 안 난다는 거지···. 저분은 대체 누구신데 저렇게 이쁘면서 연기도 잘하는 거죠?

이미 읽은 댓글을 또 읽고 또 읽고.

대체 댓글을 몇 번이나 정주행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제 슬슬 일어나지? 집에 가야 할 거 아냐.”

“잠깐만요. 조금만 더 읽어볼게요. 모니터링하는 것도 일의 일환이잖아요. 시청자 피드백 받아들이는 게 배우한테 얼마나 중요한데요.”

내게 시선도 안 주고 저런 말을 내뱉고 있다.

이미 몇 번이나 읽었으면서 피드백 타령은 무슨.

“가는 길에 핸드폰으로 해. 그러면 되잖아.”

“아! 맞네.”

채희가 저렇게 좋아하는 모습이 보기가 좋아서 몇 시간 동안 내버려두고 있었지만, 나도 퇴근은 해야지.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준 뒤, 나는 차에 시동을 걸지 않고 핸드폰을 켰다.

‘일이 이렇게 재밌을 줄이야.’

유튜브에 들어가 새로 달린 댓글들을 읽었다.

댓글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여주 역할 진짜 찰떡이다. 어떻게 이런 캐스팅을 했지? 제작진 진짜 존경스럽넼ㅋㅋㅋㅋ

그럼. 진짜 찰떡이지.

이 캐릭터를 이만큼이나 매력적으로 소화시키는 건 아마 채희가 유일할 거다.

“근데 좀 억울한데? 캐스팅은 오지도 않았는데.”

다 내가 결정한 거지.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조금 아쉽긴 하네.”

그래도 채희가 좋은 반응을 받는 게 마치 내가 받는 칭찬처럼 느껴졌다.

이게 매니저의 기쁨인가.

나는 딱 매니저가 천직인 것 같다.

“역시 좀 더 일찍 일할 걸 그랬어.”

***

매니지먼트1팀의 최실장.

그는 며칠 전 옥상에서 한실장에게 들었던 쌍욕이 무색하게도.

박한울 매니저를 데려오겠다는 뜻을 전혀 굽히지 않았다.

오늘 공개된 웹드라마의 1회와 2회.

앞으로의 반응을 기대할 만하고, 정채희 역시 신인배우 치고는 굉장한 연기력을 보이고 있었으나.

송하연 만큼의 포텐은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아직 걔가 초짜라서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어떤 선택이 본인에게 더 이득이 되는지.

“그럼 알려주면 되지.”

그 조막만했던 웹드라마의 환경과 완전히 대비되는 스타 가수의 환경과 대우.

현실을 깨닫기엔 몸소 겪어보는 게 최고의 방법이었다.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하는 화려한 스타의 삶.

평범했던 사람도 이런 화려한 환경 때문에 연예인병이 걸리곤 하는 것이다.

매니저 역시 마찬가지.

지금까지 했던 게 소꿉장난이라는 걸 깨닫게 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최실장은 자신의 상사인 강팀장님과 함께 본부장님과의 미팅에 참석했다.

“앉지.”

김본부장님의 맞은편에 앉은 최실장과 강팀장.

이곳에 와서 본부장님과 대면하는 모두가 위축된다고들 하지만, 최실장은 오히려 당당하게 어깨를 폈다.

본부장님의 성향은 일찍이 파악했으니까.

‘이건 본부장님도 허락하실 거야.’

이런 최실장의 확신을 담은 눈빛을 바라보며 본부장은 물었다.

“하연이 매니저 일로 상의할 게 있다고?”

“예. 3팀의 박한울 매니저가 얼마간 일이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여태까지 찍었던 웹드라마가 이제 막 올라오기 시작했으니까.

최실장이 노린 건 이 잠깐의 틈이었다.

최실장은 시종일관 당당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그가 생각할 때, 이건 불합리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효율적이며 합리적인 것이었으므로.

“당분간 하연이 매니저 정해질 때까지만, 그리고 박한울 매니저가 일이 생길 때까지만 하연이를 잠깐 담당할 수 있게 해주셨으면 합니다.”

3팀에 직접 말해봤자 씨알도 먹히지 않을 테니 본부장님께 말한다.

또한, 박한울이 정말 송하연의 매니저가 돼서 승승장구한다고 한들, 하연이를 여기까지 키운 것도 자신들이고, 박한울을 데려온 것도 자신들이다.

공은 함께 나눠가질 터, 굳이 견제한다고 안 데려올 이유가 없다.

작은 파이를 자신들끼리 나눠먹는 것보다, 한 명을 더 껴서 큰 파이를 나눠먹는 게 더 이득일 테니까.

“왜 하필 박한울이지?”

“이미 하연이를 설득한 바 있고, 음악적으로도 얘기가 잘 통한다고 판단됐기 때문입니다. 이미 한 번 거절한 적이 있지만, 그건 정보의 비대칭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밖에서 바라보는 것과 피부로 인지하는 건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무리해서 빼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다시 한번 제대로 판단하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으면 합니다.”

이거야말로 정보의 비대칭이다, 라고 김본부장은 생각했다.

박한울이 어떠한 일들을 했는지 최실장은 모를 테니까.

그리고 인재를 다른 팀에서 빼돌리는 건 회사 내에서 굉장히 민감한 문제다.

하지만, 그것을 감수하더라도 아티스트가 잘 된다면 그게 더 이득.

최실장이 생각한 것과 같이, 본부장은 그렇게 판단했고.

그렇기에 이렇게 말했다.

“그건 안 돼.”

“···예?”

예상 외의 답변이었기 때문일까.

당당했던 최실장의 얼굴이 한순간에 어벙해졌다.

“이미 앨범이 완성됐는데 박한울이 거기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다음 앨범을 만들 때라면 모를까, 지금은 이쪽에 있는 게 이득이라 생각되는데. 내 말이 틀렸나?”

김본부장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자신을 참 냉철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효율과 합리성을 추구하고.

‘지금은 정채희를 담당하는 게 효율적이다.’

그동안 박한울을 유심히 지켜봤고, 웹드라마의 1, 2회도 봤다.

아직 모든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일단 능력이 확실하다는 것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헛바람 들면 안 돼.’

혹여 스타의 옆에 있다가 헛바람이 들까 염려되었다.

그의 능력은 인정하지만 박한울이라는 사람의 경력이 짧은 것도 맞으니까.

“더 할 말 없으면 이제 그만 일어나지.”

당황했던 것도 잠시.

최실장은 급하게 머리를 굴리며 말을 꺼냈다.

“그, 그럼 본인을 설득해도 안 되는 겁니까?”

김본부장의 대답은 단호하기만 했다.

“안 돼.”

박한울 같은 인재의 능력은 적재적소에 활용해야만 한다.

박한울의 활약이 겉으로는 반도 드러나지 않았지만, 본부장은 그 모두를 알고 있다.

‘아무래도 내기는 내가 진 것 같군.’

일전에 대표님과 했던 소소한 내기.

-만약 잘 안 되면, 그땐 정말 더 이상의 특혜는 없는 겁니다.

-알았다니까 그러네.

드라마가 고작 2회밖에 나오지 않아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나.

사실 그 내기는 이미 진 거나 다름없었다.

김본부장, 그가 스스로 인정했으니까.

그런데, 졌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분하지 않았다.

그런 인재라면 대표님이 말려도 자기 손으로 특혜를 퍼다줄 테니.

지금은 일단 박한울의 성장을 방해할 만한 것들을 막고, 그가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게 놔두는 것이 최선이었다.

‘일단 음악 쪽에도 조예가 깊다는 건 참고해야겠어.’

더구나 공포증이 있는 정채희에, 독불장군인 송하연까지.

아티스트를 다루는 능력까지 탁월하다.

모두가 나간 본부장실.

그는 유튜브에 달린 댓글들을 살펴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 1, 2회 공개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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