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신입, 저희 팀이 데려가려고요 >
“혹시 랩도 하시나요?”
그녀의 고민은 간단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다른 곡들에 비해 딱히 임팩트가 없다는 것.
그러나 그건 창작자들이 주로 하는 착각에 불과했다.
이 곡은 이미 충분히 좋으니까.
1년 반 만에 돌아오는 정규앨범의 타이틀로서도 손색이 없는 음악.
그러나.
‘좀 더 좋아질 수 있는 방향을 모르는 것도 아니지.’
손색이 없다는 말이 곧 완성형의 최고라는 뜻은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이걸 시대의 명반으로 만들 수 있다는 뜻도 아니긴 한데, 그래도 더 나아질 방법 하나는 확실히 떠올랐다.
그것도 쉽고 빠르게.
“랩···이요?”
되묻는 송하연의 표정은 당혹스러움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지금까지 송하연은 노래에 랩을 단 한 번도 넣어본 적이 없으니까.
“네, 랩이요.”
“아··· 그··· 요즘 가수들도 노래에 랩을 많이 넣는다는 건 알고 있는데···. 하하. 아무튼 의견은 감사합니다. 고려해볼게요. 그보다 왜 그런 말씀을 하신 거예요? 아무래도 곡이 심심한 것 같죠? 정확히 어느 파트요?”
해결책은 얼토당토않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부족한 점만은 찾아보려고 한다.
뭐, 바로 받아들이는 게 어렵긴 하겠지.
나는 강요를 하는 대신 그녀가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었다.
“팬의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수록곡들도 그렇고 타이틀도 그렇고 다 정말 좋아요. 팬들이 1년 반 동안 기다린 보람이 느껴질 만큼이요.”
내 말에 그녀의 얼굴 위로 금방이라도 녹아내릴 듯한 미소가 지어졌다.
칭찬은 언제나 잘 먹히는 법.
그게 팬이 하는 거라면 더할 나위 없지.
나는 그 표정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을 이어갔다.
“일단 타이틀은 네 번째 노래 맞죠?”
“아! 맞다. 타이틀을 말 안 해줬구나. 네, 그거 맞아요. 역시 그게 제일 꽂히죠?”
“네. 그런데 후반부로 갈수록 조금 무난한 것 같기도 하고 특별히 임팩트가 충분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더라고요.“
송하연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역시 팬한테도 그렇게 들리나 보네요. 그래서··· 특히 어느 부분이요?”
사실이든 아니든, 그녀의 고민이 뭔 지 아는 이상, 간지러운 속을 긁어주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효과가 정말 좋아서, 그녀는 눈빛을 빛내며 내 다음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첫 번째 후렴이랑 두 번째 후렴 사이에 2절 부분이 조금 붕 뜨는 느낌이에요. 감흥이 끊긴다고 해야 하나? 곡 자체는 너무 좋긴 한데 팬의 입장에서 아쉬운 거 말씀드리는 거니까 너무 기분 나빠하진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아니에요. 걱정 말고 계속 말씀하세요.”
팬이라고 철썩 같이 믿어서 그런지 수용의 폭이 넓다.
그동안 그녀를 설득하기 위해 용을 쓰던 직원들이 이 장면을 보면 넋이 나갈지도 모르겠다.
“네. 조금 아쉬웠던 부분? 아니면 이랬으면 좋겠다는 부분이 딱 그 부분이거든요. 두 번째 후렴 직전이랑 직후. 이 부분에 멜로디의 큰 변화나 자극이 들어가면 후렴의 감흥이 떨어지니까-“
“그쵸. 맞아요. 오히려 소탐대실이에요. 그래서 랩을 넣자고 한 거였어요? 자극은 주되 후렴의 자극은 안 떨어뜨리니까?”
“네. 기존 파트를 일부 지우고 그 부분에 랩을 넣으면, 오히려 후렴을 더 빛나게 해줄 것 같아서요. 신선하기도 하고, 듣는 재미도 있고.”
“···.”
내 말에 그녀는 잠시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대뜸 랩을 언급할 때는 부정적이다가, 그녀가 간지러워하는 부분에 공감하며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추니 진지하게 고려해보는 거다.
“근데··· 제가 랩을 한 적이 없는데, 팬들 입장에선 갑작스럽지 않을까요?”
나는 씨익 웃었다.
이 부분에서만큼은 정말로 팬의 입장에서 확신을 담아 말할 수 있었으니까.
“갑작스럽죠. 그것도 엄청. 아마 서프라이즈 선물 받은 것처럼 깜짝 놀라면서 좋아할 거예요.”
***
매니지먼트3팀의 사무실.
한실장을 비롯한 매니저들이 있는 곳에 1팀에서 사람이 찾아왔다.
“선배님, 잠깐 시간 괜찮으신가요?”
송하연을 맡고 있는 1팀의 최실장.
그가 3팀으로 직접 찾아와 한실장을 불렀다.
최근, 회사 내에 흥미로운 이슈거리가 돌았다.
은근슬쩍 귀를 기울이고 흘끗 쳐다보고 있는 이들은 모두 최실장과 한실장 사이에서 어떠한 얘기가 나올 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박한울. 3팀의 로드매니저.
가뜩이나 송하연의 매니저 제안을 거절한 일로 박한울의 이름이 여기저기 언급되고 있는 상황에서, 송하연과 관련된 추가적인 소식까지 들리고 있으니 궁금증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어, 그래.”
그리고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한 건 한실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뭔가 조언을 해줬다는 건 들었지만, 그게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는 아직 모르니까.
한실장은 최실장과 함께 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그놈 대체 뭐지?’
정채희가 공포증을 이겨내게 해준 건 뭐, 우연일 게 분명했다.
실력을 드러냈다기엔 심리적인 문제에 불과했으니까.
나잇대도 맞고, 옆에 있다 보니 친해져서 의지가 됐겠지.
하지만 그 뒤로 캐릭터와 작품을 분석하고, 연기를 봐주며 조언을 해주는 것은 확실히 실력적인 부분이었다.
이제 막 입사한 로드 매니저가 그렇게나 정확한 분석과 조언을 하는 건, 오랜 시간 동안 이 업계에 몸담으면서도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었다.
더군다나 중간중간 업계 돌아가는 상황도 잘 집어내기까지 했지.
그런데 이제는 그보다 더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다른 팀, 그리고 음악적인 부분에 있어 간섭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 아티스트로 유명한 송하연.
그녀가 직접 매니저를 해달라고 제안하기도 했고, 거절당했는데도 불구하고 음악적으로 도움을 청했다.
초보 매니저에게, 가장 중요한 타이틀 곡에 대한 음악적 조언을 구한다?
한실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모르긴 몰라도 특별한 놈인 것만은 확실해.’
이윽고, 최실장과 함께 옥상의 흡연장으로 이동한 둘은 구석으로 가서 담배를 입에 물었다.
대화의 물꼬를 튼 건 최실장이었다.
“선배님, 그 신입 있잖아요. 걔 우리한테 주면 안 된답니까?”
“···그걸 왜 나한테 물어. 그리고 이미 안 가기로 결정났는데 뭘 또.”
뿌연 담배연기를 한숨처럼 내뿜는 최실장.
그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로 물었다.
“대체 왜 거절했다는 건데요?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전 정말 이해가 안 돼서 그래요.”
한실장은 피식피식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꾹 참고 물었다.
“그 얘긴 그만 하고. 네가 이렇게 나오는 거 보니까 타이틀 때매 불렀던 일도 잘 됐나 보다?”
“네. 타이틀 곡 제대로 뽑혔어요. 아주 제대로요. 걔 옛날에 뭐 음악했었답니까?”
“음악은 무슨. 물어보니까 전문적인 건 하나도 모른다더만.”
최실장은 잠시 물끄러미 한실장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선배님도 아시죠? 저희 팀이 하연이 앨범 내게 하려고 얼마나 개고생했는지.”
“허구헌 날 투덜대니까 모를 수가 없지.”
“그건 투덜대는 게 아니라, 하소연한 거죠. 팬 앞에선 천산데, 우리가 음악적으로 간섭하려고 하면 진짜 성질 장난 아니거든요.”
“그래서 뭐.”
“근데 저희가 1년동안 못 하고, 좀 더 걸릴 거라 생각했던 일을··· 그 신입은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이 해내버린 거예요. 저희가 다른 팀이라지만 회사 차원에서 생각해보면, 아무리 봐도 그 신입은 우리 하연이 매니저가 되는 게 가장 맞는 결정인 것 같아서요.”
뭔가 의미심장한 뉘앙스에 한실장은 최실장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리고 최실장은 의심을 품은 한실장의 눈빛을 피하긴커녕, 힘을 주며 똑바로 마주했다.
“선배님, 우리 회사도 이제 더 높이 올라갈 때 됐잖아요.”
“···뭔 개소리를 하고 있어.”
“하연이가 우리 회사 에이스인 건 인정하시잖아요. 하연이한텐 의지할 곳이 필요해요. 안타깝게도 저희 팀엔 없는 것 같지만.”
최실장은 담뱃불을 끄고는 마지막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그 신입, 저희 팀이 데려가려고요. 어떻게 해서든.”
***
촬영이 마침내 모두 마무리가 되었다.
날짜로 보면 그리 길지 않았던 시간이었던 건 맞지만, 이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느끼고 있을 거다.
길지 않았던 시간이긴 하지만 정말 찰나같이 빠르게도 지나갔다고.
촬영을 하는 내내, 현장엔 아주 약간의 트러블도 없었다.
스텝들끼리도, 그리고 배우들끼리도, 배우와 스텝들 사이에서도.
모두가 하나가 되어, 한 곳을 향해 일제히 열정을 쏟아내 지금 마무리가 된 것일 뿐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힘들지언정 지치지는 않는다.
우리는 모두 미소 띤 얼굴로 서로를 치하하며 기대와 기쁨을 나누고 있었다.
“감독님, 수고하셨습니다.”
채희와 함께 이 감독님에게 인사를 드리자, 이 감독님은 웃는 얼굴로 앓는 소리를 내뱉으셨다.
“이제 큰일 났네. 촬영은 최고로 찍었는데, 편집에서 다 망하는 거 아닌가 몰라.”
그 불길한 소리에, 옆에 있던 조수연 작가가 눈에 불을 켜며 소리쳤다.
“감독님!”
“···조 작가, 그렇게 무섭게 쳐다보지 마. 농담이잖아.”
“하아···.”
조수연 작가의 등쌀에 이 감독님은 크흠! 헛기침을 하며 말을 바꿨다.
“걱정하지 마. 진짜 죽여주게 나올 거야. 촬영이 이렇게 잘됐는데 발로 붙여도 때깔 곱게 나오겠지.”
이제 저 둘도 완전히 친해진 상태다.
그래도 아마 콤비로 활동하지는 않을 것 같다.
작가의 실력이 훨씬 더 좋아서.
나는 조수연 작가님을 바라보며 말했다.
“작가님도 수고하셨습니다. 정말 좋은 작품 함께 할 수 있게 돼서 영광이었습니다. 우리 채희 잘 챙겨주셔서 감사드리고요. 다음에도 좋은 작품 있으면 꼭 연락주세요. 달려가겠습니다.”
“맞아요! 진짜 영광이었어요, 작가님. 잘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말에 맞장구를 치며 허리를 꾸벅 숙이는 채희.
조수연 작가님은 보물을 바라보는 눈빛으로 고개를 냉큼 끄덕였다.
“제가 더 감사하죠. 다음에도 정말 나와주셨으면 좋겠어요. 최대한 빨리 써볼 테니까, 너무 멀리 도망가시면 안 돼요?”
“걱정 마세요!”
채희는 히죽히죽 웃으며 작가님의 손을 잡았고, 둘은 애틋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한테 마저 인사해야지.
등을 돌리며 다른 곳으로 가려 하는데, 조수연 작가님의 말이 귓가에 꽂혀 들어왔다.
“매니저님도 같이 오셨으면 좋겠어요. 아니, 둘 중에 한 명만 부르면 알아서 따라오시려나? 하하.”
“저 오빠는 제가 꽉 잡고 절대 안 놔줄 테니까 그건 걱정 마세요. 근데, 매니저님은 왜요?”
조수연 작가님은 나를 바라보며 눈매를 부드럽게 휘었다.
“채희 씨한테 말씀하시는 거 얼핏 들었는데, 제 작품에 대한 이해력이 굉장히 뛰어나시더라고요. 되게 기발하시고. 매니저님, 꼭 다음에도 제 작품 도와주셔야 해요?”
왠지 촬영장에 자주 나타나서 우리 주위를 서성거리시더니.
그래도 대화를 엿들은 것 치고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내가 내놓은 해석이 작가의 마음에 쏙 들었다는 거잖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물론이죠. 작품도 좋고 채희한테 어울리는 캐릭터 있으면 언제든지요.”
“네···. 작품도··· 캐릭터도··· 아무튼 잘 써볼게요.”
아무리 그래도 채희를 그냥 출연하게 할 수는 없지.
재능이 있는 사람들도 중간중간 망하곤 하니까.
나는 언제나 내 안목을 믿을 뿐이다.
“채희야, 이제 다른 분들한테도 인사드리자.”
“네에!”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고, 마침내 차에 올라탔을 때.
내 핸드폰에서 짧은 진동음이 울렸다.
문자의 발신자는 송하연.
[조언 감사드려요! 덕분에 랩도 해보네요?ㅎㅎ 막상 해보니까 훨씬 더 괜찮아진 것 같더라고요. 발매되기 전에 미리 듣고 싶으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원하시면 라이브로도 들려드릴게요.]
“···오빠.”
“응.”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하지만 걱정 마라.
얘는 떡볶이 하나면 끝이니까.
“촬영 끝난 기념으로 떡볶이에 맥주 하나 콜?”
“···콜.”
우리는 회사에 차를 주차하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우리의 지정석 테이블.
아마, 이 작품이 공개되면 그때는 이렇게 맘대로 돌아다니지 못하겠지?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이 정도 자유쯤은 뺏겨도 얼마든지 웃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시간은 흘러.
마침내 <캠퍼스 낭만이 원래 이런 거야?>의 1회와 2회가 공개되었다.
< 그 신입, 저희 팀이 데려가려고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