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하산이 천재매니저였다고-13화 (13/170)

< 잠깐 뵙자고 할 수 있을까요? >

<캠퍼스 낭만이 원래 이런 거야?>는 무려 24회로 예정되어 있다.

하지만 대장정이라 하기엔, 그 러닝타임이 고작 1회당 평균 20분 정도.

웹드라마 치고는 길지만, 여타 드라마들에 비하면 매우 짧은 수준이다.

그래서 촬영이 시작되고 끝이 날 때까지의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편집 또한 촬영이 다 끝난 후에 하는 100%사전제작이고.

그러나, 그 짧은 기간 동안 채희에게서 일어난 변화는 매우 직관적이었다.

아직 영상이 하나도 업로드 되지 않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팬들이 생겨났다.

물론 그 팬들이 일반 대중들은 아니었다.

“채희 언니, 이거 이 대사요. 혹시 한 번만 봐주실 수 있을까요? 연습하는데 조금 어려워서···. 헷.”

“정채희 배우님, 저 가볍게 미소 띠는 연기가 어색한 것 같은데 혹시 조언 좀 구할 수 있을까요?”

같이 촬영을 하는 배우들.

같은 신인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에게선 배우고자 하는 의지와 더불어 선망의 감정이 훤하게 엿보였다.

도저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거지.

“채희야, 오늘 특히 더 카메라빨 잘 받는데? 카메라 마사지 며칠이나 받았다고 이렇게 효과가 좋아?”

“어머! 채희야, 방금 입 샐쭉이는 거 되게 좋았던 것 같아. 괜히 대본 걱정하지 말고 한 번 마음껏 풀어볼래? 정말 괜찮아.”

촬영감독님과 조수연 작가님을 비롯한 스텝들까지.

배우들과 스텝들은 이미 채희의 팬이 되어 있었다.

아무렴.

예쁜 데다가, 예의도 바르고, 성격도 좋으며, 연기도 잘하고, 모난 곳이 하나도 없으니 안 좋아할 래야 안 좋아할 수가 없는 것이다.

허나, 언제나 예외가 되는 경우는 존재하는 법.

누구에게나 친절한 채희는, 유일하게 나에게만큼은 그 태도가 조금은 달랐다.

요즘 들어 유독 더 귀찮게 굴고 시도 때도 없이 가자미눈으로 쳐다보는 채희.

송하연이 나를 원한다는 소문이 그녀의 귀에 들린 이후로 이렇게 되었다.

‘대체 어디서 소문이 난 거야?’

젠장.

어떻게 제안을 거절했는데도 이렇게 피곤해지는지 모르겠다.

아니, 거절해서 이렇게 피곤해지는 건가.

거절을 안 했으면 이렇게 하지도 못했겠구나.

“그만 좀 노려보지?”

“저 안 노려봤는데요? 그냥 본 건데 왜 그러세요? 혹시 뭐 찔리는 거라도 있으신 거 아니에요? 그 왜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들 하잖아요. 그런 경우 아니냐구요.”

말을 말자, 말을 말아.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해탈한 듯 저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왜 대답이 없어요! 진짜 왜 그러세요 저한테! 제가 초콜릿 못 먹게 했다고 그러시는 거예요? 그래놓고 맨날 드셨잖아요! 오늘도 먹은 거 내가 일부러 안 말하고 있는데!”

그녀의 입장은 이해한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마른 하늘의 날벼락.

내게 잔뜩 의지하고 있다가, 모르는 사이에 뺏길 뻔했으니 얼마나 경계심이 끓어오를까.

그녀는 지금 다른 모든 사람들에겐 친절모드로, 그리고 내겐 경계태세를 잔뜩 끌어올린 비상체제에 돌입한 상태였다.

이거 뭐 강아지도 아니고, 가는 곳마다 쫄래쫄래.

오죽했으면 스텝들의 이런 말도 귀에 들려왔다.

“저 매니저 뒤에 꿀 발라놓은 거야? 엄청 친해 보이네.”

“쓰읍···. 글쎄. 어쩌면 협박당하고 있는 거 아냐? 그렇잖아. 이 바닥 별의별 일 다 있는 거.”

협박은 무슨!

큰일 날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다.

오히려 협박은 내가 당하고 있거늘.

“오빠, 저 진짜 열심히 해서 진짜 빨리 스타 되려고요. 그래서 꼭 주변 사람들한테 베풀 거예요. 은혜도··· 그리고···.”

“···왜 뒷말을 하다가 마냐?”

“왜요? 왜 궁금해요? 오빠가 왜 궁금해하시는 거예요? 제가 은혜 갚을 일만 하시면 되잖아요.”

두 눈 큼지막하게 뜨면서 저런 말을 하는 게 협박이 아니고 뭐겠나.

나는 무념무상으로 촬영장에 출퇴근을 반복했다.

다만, 꼭 이득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진짜 열심히 하겠다는 말이 그냥 내뱉은 말은 아닌 듯.

“아···.”

“와 진짜···!”

이곳의 신인들이 당장엔 범접할 수 없을 정도의 연기를 보일 때도 간혹 있었으니까.

‘···진짜 끝내주긴 하네.’

나마저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그녀의 성장 속도는 마치 게임 속에서 버프를 받은 듯 빨라지고 있었다.

이게 동기부여의 중요성이지.

그녀의 이런 연기를 볼 때마다 송하연에겐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런데 이제 이걸 볼 날도 얼마 안 남았네.’

24회, 그리고 1회당 평균 20분이기에.

이미 촬영은 어느새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 작품 터지면··· 다음 작품은 물밀듯이 들어오겠지?’

영화, 혹은 드라마.

그중에서도 선택지는 다양하고, 그 선택지들 사이에서도 대본은 더욱 다양하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최선의 것을 고를 준비가 되어 있다.

‘영화나 드라마, 둘 중에 하나를 고르기만 하면, 그 다음부터는 내가 또 나서야지.’

아직 촬영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내 머릿속에선 갖가지 시뮬레이션이 돌아가고 있었다.

이 작품은 이미 성공이 예정되어 있으니까.

또한, 채희의 화제성과 인기를 얻는 것도 마찬가지로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고.

‘다음엔 확 스릴러 영화를 찍어봐?’

즐거운 상상에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오빠! 무슨 노래 불러요!?”

“···송하연 가수님의 푸르른 하늘에게.”

“···!”

“뻥이야.”

“···이 씽.”

아무래도 스릴러는 좀 무리일 것 같은데?

이런 애가 스릴러는 무슨.

***

“음···.”

박한울 매니저에게 거절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른 매니저를 붙여주겠다는 걸 잠시 보류한 상태.

송하연은 손에 턱을 괴고는 한참동안 생각에 잠겼다.

“왜···?”

아무리 머리를 굴려 생각해봐도 이해를 하기가 힘들었다.

“분명히 내 팬이었는데.”

객관적으로 봐도 자신의 매니저를 하는 편이 훨씬 미래가 밝다.

정채희와 정이 들었다기엔 기간이 매우 짧기도 하고.

대체 뭘 보고서 정채희를 자신보다 낫다고 판단했는지 정말 알 수가 없었다.

자신만 그런 것이 아니라, 회사 사람들의 반응 또한 마찬가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결정이기에 소문이 더욱 빨리 퍼진 것일 터.

“채희 씨한텐 미안하긴 한데··· 대체 왜지?”

앨범 작업은 이제 거의 다 마쳐, 타이틀 곡 하나만을 남겨두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진도는 나가지 않았다.

음악이 충분히 좋기는 한데 이렇게 잘 뽑힌 앨범의 타이틀 곡 치고는 뭔가 하나 부족한 것 같기도 하고, 거절당한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아 집중이 잘 안 되기도 하고.

“쯧. 싫다는데 뭐 어쩌겠어.”

강요할 수도 없고, 그리 크게 아쉽지도 않았다.

자신을 진심으로 응원해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여차하면 자신에게 실직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말을 건네줄 수 있는 사람을 원한 것이지, 박한울이란 사람 자체를 원한 것은 아니었으니.

이 조건에 맞는 게 꼭 박한울 매니저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당장에 떠올랐던 사람이 그 사람이었을 뿐, 조건만 맞는다면 다른 사람이어도 딱히 상관은 없었다.

“매니저는 천천히 찾기로 하고··· 일단 타이틀이 우선이야.”

아무래도 또다시 팬의 시선이 필요한 순간인 듯했다.

그때 연습실에서는 우연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한 번 들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이 정도 요구는 그래도 들어주겠지.

팬인데 설마 이 정도도 못해주려고?

“밑져야 본전이니까.”

확실한 도움이 될 수 있는 조언을 원하는 게 아니다.

그저 팬의 입장에서 어떻게 들리는지.

그게 궁금했다.

작업실에 앉아 있던 송하연은 즉시 자신이 속한 1팀의 최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실장님, 혹시 박한울 매니저님 잠깐 뵙자고 할 수 있을까요? 매니저 해달라는 요구는 아니고, 음악적으로 도움을 청할 게 있어서요.”

그로부터 약 한 시간 뒤.

송하연은 박한울이 ‘OK’했다는 답을 받을 수 있었다.

***

채희는 마치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것처럼 충격받은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그래도 송하연에게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우리 회사의 에이스 아티스트인데.

게다가 그녀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은 즉, 내 가치도 높아진다는 뜻.

안 할 이유가 없다.

내가 단호한 태도를 보이자, 채희도 한숨과 함께 겨우 수긍을 하고는, 대신 수십 가지의 말을 덧붙였다.

“오빠, 미인계에 넘어가시면 안 돼요. 그리고 안심하지도 마세요. 요즘 진짜 눈 뜨고 코 베이는 세상이잖아요! 전 오빠 믿어요. 오빠가 그럴 리는 절대 없겠지만, 그래도 아직 이 일은 한 지 얼마 안 되셨으니까 언제나 의심하고 또 의심하셔야 해요.”

이러한 말들.

‘···귀에서 피날 것 같아.’

어쨌든 이러한 고난의 과정을 거친 뒤에야, 나는 무사히 송하연의 작업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옥과 조금 떨어진 위치.

싱어송라이터인 그녀만의 작업실.

우리 회사가 2티어임에도 그녀의 작업실에 이런 고가의 장비들을 마련해준 것은 우리 회사의 에이스이기 때문.

엄연한 특별대우였다.

그리고 난 그런 그녀에게 특별대우를 받는 것만 같았고.

아무래도 그때의 조언이 크게 도움이 됐나 보지.

매니저를 제안한 것도 아마 그 때문일 테고.

“안녕하세요.”

문을 열어준 그녀에게 인사하자, 송하연은 멋쩍게 웃으며 사과했다.

“안녕하세요. 얼마 전엔 실례했어요.”

“아니에요. 그럴 수도 있죠. 괜찮습니다.”

“채희 씨한테도 미안했다고 따로 말씀드릴 텐데, 그 전에 잘 말씀드려주셨으면 좋겠어요.”

그 전의 과정이 어쨌든지 간에, 얘기를 꺼내기도 전에 먼저 깔끔하게 사과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사실 결과적으로 살짝 귀찮아진 것만 빼면 이득만 보고 있는데.

아무튼 우리 회사의 에이스가 인성이 괜찮으니 그녀가 더욱 좋게만 보인다.

아버지도 참 든든하시겠어?

나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이며 미소 지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채희한테도 제가 잘 말할게요. 그런데 그건 그렇고··· 저한테 음악적으로 도움을 구하신다고요?”

나는 그녀가 끌어다 준 의자에 앉으며 물었다.

작업실을 빙 둘러보니 보기만 해도 어지러운 각종 장비들이 가득하다.

급하게 쓰레기들을 치운 흔적도 좀 보이고.

나는 이런 장비들에 관하여 완전히 문외한.

전문적인 지식은 많지 않지만, 안목은 100%이기에 그녀의 이런 요청을 받았어도 부담이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흥미가 일어났으면 일어났지.

일전에 팬의 입장에서 힌트를 줬을 때처럼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녀도 내게 전문적인 조언을 바라고 부르지는 않았겠지.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고요. 제 팬이시잖아요. 그래서 팬한테는 제 음악이 어떻게 들릴 지 궁금해서 도와달라고 했어요. 그때처럼 그냥 솔직하게, 그리고 생각나는 대로 가감없이 말씀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너무 좋게 말씀해주실 필요 없고요. 그냥 가볍게. 정말 팬의 입장에서요. 저한테 도움되는 거니까 정말 솔직하게 말씀해주시면 더 좋아요.”

솔직하게 말해달라는 걸 계속 강조한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애초에 솔직하게 말할 생각이었다.

근데 아마 그냥 일반 팬들이랑은 그 감상이 조금 다를 거다.

나는 성능 좋은 족집게거든.

“기대되는데요?”

“음. 일단 앨범에 들어갈 수록곡들부터 다 들려드릴게요. 타이틀에 대한 고민도 그것 때문이···. 아니, 아니다. 그냥 한번에 다 들려드릴게요. 타이틀 곡은 말 안 하고요. 괜찮죠?”

“네.”

그런 블라인드 테스트쯤이야 거뜬하지.

나는 짐짓 기대된다는 표정으로 그녀의 눈을 마주 바라봤다.

근데 새삼 신기하긴 하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방구석에서 컨텐츠 탐구자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송하연쯤 되는 가수가 내게 1:1로 도움을 요청하다니.

물론 힌트만이라도 얻고자 하는 가벼운 마음에서 요청한 것이겠지만, 그래도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순간이긴 했다.

“그럼 들려드릴게요?”

“네.”

송하연이 음악을 틀었다.

그리고 모니터링 사운드 시스템이 잘 갖춰진 작업실답게, 평소에 내가 듣던 것과는 격이 다른 오디오의 감각이 귀에 꽂혔다.

이건 싸구려 이어폰이나 싸구려 헤드폰으로 듣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며칠 전에 코앞에서 라이브를 듣기도 했지만, 이건 또다른 맛이지.

나는 그 음악들을 매우 기분 좋게 음미했다.

컨텐츠 덕후인 나에게 있어 포상과도 같은 순간.

‘역시 힌트가 잘 먹혔어.’

눈을 감고 들으니 절로 입가에 미소가 감돈다.

내가 거슬리는 점 없이 순수하게 즐길 수 있는 음악을 만들 줄 아는 가수는 굉장히 드물거든.

이런 귀한 경험을 누구보다 먼저 하니, 안 기뻐할 수가 없다.

아마 지금 눈을 뜨면 내 표정을 보고 만족스럽게 웃음 짓는 송하연이 보이겠지?

그것도 보고 싶지만 지금은 눈을 뜨고 싶지 않다.

나는 컨텐츠 덕후.

지금은 순수하게 컨텐츠를 즐길 시간이었다.

그러나.

곡이 하나둘 지나고, 마침내 네 번째 곡이 흘러나오고 있는 도중.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게 타이틀이네.’

곡에 힘이 들어가 있다.

곡 자체가 타이틀 감이 될 만큼 귀를 딱 잡아끄는 매력도 있고.

‘고민이 뭔 지도 알겠어.’

후반쯤 지나갔을 때, 비로소 그녀의 고민이 뭔 지 눈치 챌 수 있었다.

나는 방금 전까지 띠우고 있던 미소를 지웠다.

눈을 뜨자, 역시나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송하연이 보였다.

“···.”

곡이 끝나고 그녀는 재생을 멈췄다.

다음 곡을 틀지 않고, 아무 말도 없이 내 입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끝까지 들어보고 말씀드리기로 했잖아요.”

“아! 아, 네.”

앨범에 실릴 곡은 총 10개.

아직 최종적으로 결정된 건 아닐 수도 있지만, 내가 볼 때 이 곡들 중에 버릴 곡은 단 하나도 없었다.

역시 이게 재능이지.

모두 다 한 앨범에 실으면 무척이나 잘 어우러질 것이다.

순서 구성 또한 정말 잘 되어 있었고.

‘딱 하나, 타이틀만 조금 손보면 되겠구나.’

아마 내가 말한대로만 한다면··· 이 앨범은 지금까지 그녀가 낸 작업물들 중 최고점을 찍을 것이다.

커리어 하이. 그게 내 덕분이면 내 가치도 함께 올라가는 거지.

나중에 가수를 맡았을 때 개입할 수 있는 폭도 넓어지고.

“···어땠어요?”

모든 곡이 끝나고 묻는 그녀의 질문.

조금 가벼운 마음이었던 처음과는 달리, 지금은 긴장을 잔뜩 집어먹고 있었다.

내가 아까 타이틀 곡에서만 표정을 굳혔고, 그 뒤로는 다시 미소 지으며 즐길 수 있었거든.

이러니, 타이틀 곡을 들으며 느꼈던 문제가 뭔 지 굉장히 궁금하겠지.

나는 순순히 입을 열었다.

“혹시 랩도 하시나요?”

< 잠깐 뵙자고 할 수 있을까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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