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희 씨 매니저라고 했지? >
송하연.
우리 회사의 에이스.
물론 나도 굉장히 좋아하는 가수다.
컨텐츠 덕후로 한량 생활을 하며, 그녀의 음악을 질리도록 듣곤 했다.
때문에 난 지금 무척이나 기대가 됐다.
이렇게 코앞에서 그녀의 라이브를 들을 수 있다니.
마지막 곡이 나온 뒤로 벌써 1년 반이니까, 더욱 귀한 경험이라 할 수 있겠다.
‘무슨 곡일까?’
어떤 곡을 들려줄 지 아직 듣지 못했다.
무언가 막 시작하려는 찰나에 들어왔으니까.
그래도 기대하는 건 있다.
히트곡 중 하나이자, 그녀의 노래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푸르른 하늘에게>.
그리고 그때.
손가락으로 기타를 사정없이 쓸어내리며 귀에 꽂히는 소리.
어떤 곡인지 파악하기에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우연히도 이 곡이다.
나는 그 순간부터 눈을 크게 뜨고 귀를 활짝 열며 집중하기 시작했다.
지금 내 앞에서 라이브로 펼쳐지는 무대가 ‘푸르른 하늘에게’라는 걸 알았으니, 이제 즐기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
나를 슬쩍 바라본 송하연의 입가에 미소가 띠워졌다.
콘서트장이나 팬들 앞에서 공연할 때면 여지없이 나오는 저 미소.
그녀가 가장 아름답고 빛날 때는 저렇게 텐션이 올라가며 진정으로 즐기는 모습을 보여줄 때였다.
‘이러니까 팬들이 환장을 하지.’
1년 반이 지났는데도 팬들이 계속해서 그녀의 노래와 직캠 영상을 찾아보는 이유이기도 하고.
저 미소, 저 표정, 보는 사람까지 기분 좋아지게 해주는 분위기.
지금 그녀의 모습이 그러했다.
“우리 아파트 뒤, 그 풀밭 위, 즐겁게 뛰놀던 우리.”
‘뒤’, ‘위’, ‘우리’에 강세를 주며 통통 튀듯 밝게 내뱉는 노래.
하연을 바라보고 있는 정채희는 거의 뭐 온몸에서 하트를 뿜어내고 있었다.
“8차선 도로가 옆에 있는 그곳이 우리에겐 초원이었어.”
“그때의 하늘은 무척이나 맑았지. 마치 지금처럼.”
기타를 튕기는 손이 더 강하고 빠르게 움직이며, 음악이 고조된다.
몸을 슬쩍슬쩍 흔들며 함께 흔들리는 그녀의 머리칼 또한 하나의 연출이 되는 듯한 모습.
앞에 관객이 단 두 명밖에 없음에도 진심으로 즐기며 노래 부르는 그녀가 찬란하게만 보였다.
“지금은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어. 비록 지금 함께 있지는 않지만, 저 푸르른 하늘 아래 우린 같이 있잖아.”
또한 재능.
즐기는 모습 또한 그렇지만, 그녀가 가진 재능은 눈이 높은 나마저도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아직은 그녀가 갖고 있는 실력이 잠재된 재능을 다 끌어내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건 시간이 해결해줄 터.
난 그 재능의 편린을 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럼 지금 우리 같이 있는 거 맞지?”
이곳은 연습실이지만 또한 무대와도 같다.
나와 채희는 두 명의 관객이 되어 그녀가 보여주는 무대를 함께 즐겼다.
가수의 무대가 끝나고 팬이 환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
나와 채희는 활짝 웃으며 박수를 쳤다.
“선배님! 진짜 최고예요! 너무 좋아요!”
“정말 잘 봤습니다. 좋은 무대였어요.”
송하연의 입꼬리가 귀에 걸릴 듯이 올라갔다.
신이 났는지, 그녀는 우리에게 물었다.
“둘 다 회사 사람들이기도 하고, 제 팬인 것 같으니까 미발표곡 하나 들려드릴까요?”
미발표곡.
좋아하는 가수가 말하는 ‘미발표곡’이라는 단어의 힘은 매우 막강했다.
채희는 홱!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 거절하면 진짜 두고 보라는 듯이 노려봤다.
나 또한 거절할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기껏해야 3분 정도에 지나지 않을 테고, 채희가 기분이 좋으면 내일 촬영도 기쁜 마음으로 잘하겠지.
게다가 나도 듣고 싶기도 하고.
“사실 아까 기분이 좀 다운됐었거든요. 그동안 팬들 반응도 좀 보고 싶었고. 그러니까 두 분이 좀 들어주세요. 감상 말해주시면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
그녀의 말에 채희와 나는 대답했다.
“네! 당연하죠! 영광이에요, 선배님!”
“저도 좋습니다.”
미발표곡은 어떨까.
기대감이 잔뜩 오른 채로, 나는 그녀의 무대를 지켜봤다.
그리고.
‘아···.’
나는 일말의 아쉬움을 느꼈다.
내가 기대했던 건 이게 아니었는데.
그녀는 아무래도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으려고 발악하고 있는 중인 듯했다.
‘이러니까 컴백이 늦지.’
나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개인적인 욕심과,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려는 욕심.
그녀는 지금 타협 없이, 둘 모두를 제 눈높이에 100% 맞추려 하고 있었다.
본디, 실력보다 눈높이가 먼저 상승하는 게 당연한 건데, 그 눈높이에 모든 걸 맞추려 하니 답이 나오지 않을 수밖에.
세계적인 명반들 또한 타협을 통해 만들어지는 경우가 꽤 많다.
정작 가수도 기대하지 않았는데 팬들이 엄청나게 좋아하게 되는 경우들.
그 반대의 경우들 또한 있다.
모든 욕심을 다 담았는데 반응이 신통치 않은 경우.
내가 볼 때, 이대로 가면 그녀의 다음 앨범은 아마 후자가 되지 않을까 싶다.
“와! 선배님, 진짜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이게 미발표곡이에요?”
“하하. 네 맞아요. 괜찮았어요?”
“엄청 엄청 좋아요! 특히 후렴구도 너무 좋아요!”
그래, 후렴구.
저게 이 문제를 해결할 열쇠였다.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으려다 둘 다 놓치게 생겼으니, 하나라도 잡는 쪽으로 목표를 수정해야 한다.
나는 짧은 시간 동안, 어떻게 하면 그녀가 이걸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답을 도출해냈다.
지금까지 앨범을 내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녀는 아마 독불장군.
회사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다만, 지금처럼 팬들을 사랑하고, 팬들의 반응을 보고 싶어 한다면.
답은 나왔지.
나는 감탄하고 흥분된다는 것을 연기하며 말했다.
“저도 정말 잘 들었어요! 특히 후렴이 너무 좋은데요? 후렴 부분만 계속 반복해서 들어도 진짜 좋을 것 같아요!”
열성팬과도 같은 내 반응에 송하연은 또다시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채희에게도 물었다.
“채희야 그렇지 않아? 후렴 부분 끝나니까 막 아쉬웠지? 아마 음원으로 나왔으면 한 번쯤 다시 뒤로 돌려서 들었을 것 같아.”
“맞아요! 엄청 좋았어요! 음원으로 나오면 계속 들을 것 같아요!”
아무것도 모르는 채희는 그저 ‘좋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쳐주기 바빴다.
참 순진하기 짝이 없어서, 이용해먹기가 이렇게나 쉽다.
나는 송하연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그녀의 얼굴에 띠워진 웃음기가 서서히 메마르고 있다.
뭔가 생각에 빠지고 있는 것처럼.
나는 이에 쐐기를 박기로 했다.
“콘서트나 라이브 무대 같은 거 할 때, 구성을 막 바꾸기도 하잖아요. 후렴 부분을 한 번 더 붙여서 해주시면 아마 팬들 다 되게 신나서 좋아할 것 같아요! 떼창도 하고, 즐기기에도 좋고. 와! 상상만 해도 좋다.”
“맞아요! 저도요, 선배님!”
하연의 눈동자가 갈피를 잃고 이곳저곳을 방황하고 있다.
이제야 깨달은 모양이다.
팬들이 원하는 것은 작품적으로 완벽한 것이 아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저 ‘이러면 더 좋을 것 같다’, 라는 기대를 채워주기만 하면 그뿐.
이 외의 다른 경우들은 복잡할지 몰라도, 지금 들은 이 곡 같은 경우엔 간단하지.
후렴을 다시 한번 붙인 뒤에, 구성을 수정하는 것.
‘이 정도면 진짜 답안지를 보여준 거지.’
나는 아차! 하는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 그러면 또 작품성에 문제가 있으려나? 하하. 전 음악 쪽에 전문성이 없어서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해봤어요. 아무튼 곡이 정말 좋네요. 기대하고 있을게요.”
“아··· 네···. 고마워요.”
천천히, 천천히, 기타를 내려놓은 그녀는.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어기적어기적 느리게 연습실을 빠져나갔다.
“어···? 선배님이 왜 저러시지?”
불안한 얼굴로 걱정하는 채희.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영감이라도 떠오른 거 아닐까?”
***
헐레벌떡 작업실로 돌아온 송하연은 허겁지겁 컴퓨터를 켰다.
그동안 꽉 막혀 있던 머리가 뻥! 하고 뚫린 것만 같았다.
재능이 사라졌던 것만 같았던 요즘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그녀의 머릿속에선 악상이 폭죽처럼 화려하게 불꽃을 터뜨리고 있었다.
대중성을 버릴 마음은 애초에도 없었다.
음악이라는 건 '대중성'과 '작품성'이라는 두 가지의 흑백 논리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으니까.
다만.
조금 억울하지만, 흑백 논리로 판단하자면 작품성 때문에 대중성을 버린 것이 맞았다.
결과적으로는 말이다.
팬들이 더 좋아할 만한 구성이 있는데 그걸 자신의 욕심으로 인해 하지 않은 거니까.
역시 진짜 팬의 반응을 보길 잘했다.
지금의 이 방향은 자신의 가치관과도 맞지 않는다.
“진짜 내가 미쳤지.”
팬이 기뻐하는 걸 보고 싶어서,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퀄리티를 높이려던 거였는데.
사실 그게 온전히 자신만의 욕심일 뿐이었다니.
“결국 아티스트병이 맞았잖아···.”
억울하다. 그거랑은 결이 다른데.
팬들의 만족을 위해 퀄리티를 높이려던 건데.
아니, 이제 와서 그게 뭐가 중요할까.
지금은 단지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악상을 마음껏 풀어내는 것만이 중요할 뿐이다.
팬들을 위해서, 팬들의 만족을 위해서.
내 팬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게끔.
그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자신 또한 행복할 수 있게끔.
목표는 변함이 없지만 방향이 달라졌다.
그러나, 이 작은 변화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지고 있었다.
최근 들어, 작업실이 답답하게 느껴지고, 이곳에 들어올 때마다 숨이 턱턱 막혀왔는데.
지금은 예전의 느낌을 되찾은 것 같았다.
기대감과 흥분으로 가득한 작업실.
억지로 오늘의 일과를 하는 것처럼 작업실 의자에 의무적으로 앉는 것이 아니라, 해야만 하는 일을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작업이 하고 싶어서, 너무 재밌어서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 이 느낌.
송하연은 마스터 키보드를 두드리고, 기타를 연주했다.
평소에 하던 대로, 하던 방식 그대로.
그런데, 그 결과물은 사뭇 달랐다.
“하아···.”
희열로 인한 뜨거운 숨결이 입밖으로 새어 나온다.
그리도 열망하고 열망했던 그림이 이제서야 그려졌다.
고작 한 시간도 되지 않은 짧은 시간.
곡의 뼈대는 더 이상 수정할 부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맞춰졌다.
다시 들어봐도, 또다시 들어봐도, 만족스러움이 가슴을 뻑뻑하게 가득 채운다.
“이렇게나 간단한데···.”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고 있었다니.
아니, 방금 전의 일의 없었다면 어쩌면 한참을 더 고생했을지도 모르겠다.
“···.”
이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사람.
그 사람이 반응을 들려주었던 좀 전의 그 장면이 눈앞에 생생하고도 또렷하게 재생되었다.
“채희 씨 매니저라고 했지? 그런데···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하연은 고개를 털어 상념을 지워냈다.
감사 표시를 하는 건 다음에.
지금은 다른 곡들 또한 손보는 게 우선이었다.
< 채희 씨 매니저라고 했지?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