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티스트병 걸린 싱어송라이터? >
“이제 좀 괜찮아?”
완전히 침착함을 되찾은 채희에게 물었다.
채희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오빠가 진짜 제 부적이긴 한가 봐요. 어떻게 효과가 이렇게 좋지?”
“끼 부리는 거야?”
“···무슨 말을 못 하겠네.”
“아무튼 그런 말은 다 끝난 다음에 해. 아직 진짜는 시작도 안 했다?”
다시 한번 크게 심호흡을 하는 채희.
단단하게 굳은 눈빛이 퍽 믿음직스럽다.
우리는 더 이상 시간을 끌지 않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애가 닳도록 기다리고 있던 그들 앞에서, 채희는 실력을 보여줬다.
“음···. 뭐야. 달달한데? 소주 별거 아니네. 이 정도면 아무리 먹어도 안 취하겠다.”
동기들과의 첫 술자리, 그리고 술을 처음 마시는 ‘유나현’.
채희는 마치 우리가 그 동기가 된 것처럼, 그리고 이곳이 식당의 룸이 아니라 시끌벅적한 대학가의 술집인 것처럼,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 원래 다 이런 거야?”
의아한 기색이 만연한 얼굴로 술잔에 담긴 술을 바라본다.
캐릭터가 대본 밖으로 툭! 튀어나온 듯한 모습.
피디와 작가, 조연출은 그녀에게 흠뻑 빠져들었다.
“그래? 취기가 아예 안 올라와서 그런가. 야, 그냥 병째로 줘봐.”
작가는 입을 틀어막으며 완전히 심취한 듯했고, 피디는 채희의 연기가 끝난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박수를 쳤다.
“최곱니다! 최고! 와!”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감독의 눈동자에 언뜻 욕심이 깃들었다.
다시 자리에 앉아서도 엉덩이를 들썩들썩.
잠시 말없이 눈동자를 굴리던 그가 이내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빨리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캐스팅 보드를 전면적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요.”
그 말에 작가의 얼굴에 환희가 비쳤다.
채희를 바라보는 조수연 작가의 눈은 마치, 구원자를 바라보는 듯했다.
그럴 만도 하지.
채희의 연기를 보고 캐스팅 보드를 고치겠다고 하는 건, 원래의 기준이 낮았다는 뜻.
이런 작품을 쓴 작가로서는 그게 만족스럽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이 업계의 시스템을 세세하게는 모를지언정, 대본 속에 녹아든 그녀의 열정과 재능은 낱낱이 읽어낼 수 있었다.
욕심 많고 재능이 뛰어나며 열정 있는.
그런 작가가 채희를 구원자처럼 바라보고 있다.
일단 첫 단추는 더 이상 좋을 수 없을 만큼 잘 끼운 듯했다.
***
그들은 돌아갔지만 우리는 그대로 남아 우리만의 회포를 풀기로 했다.
한 잔, 두 잔··· 테이블 위에 술병이 쌓이며, 윤팀장님과 한실장님은 고삐가 풀린 것처럼 원 없이 마셔댔다.
“하하하! 채희 본실력 나오면 진짜 눈 뒤집어질 기세였어! 봤지? 감독님이랑 작가님은 이게 채희 본실력이 아닌 걸 꿈에도 모를 거야? 이야! 기대된다, 기대돼! 하하하!”
윤팀장님은 얼큰하게 취해서는 크고 시원한 웃음을 터뜨렸다.
어린애 같이 좋아하시는 팀장님.
어떻게 저 위치까지 올라갈 때까지 저렇게 순수함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슬퍼할 때와 분노할 때는 어떻게 반응하실지 잘 모르겠으나, 기쁨과 즐거움을 느낄 때만큼은 절제하지 않고 즐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한실장님은 윤팀장님보다는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기쁨을 즐기며 얼굴에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고.
“아무리 웹드라마라지만 작품이랑 채희 연기 때문에 이거 진짜 잘 될 수도 있어. 위에서 투자 결정한 것도 작품이 잘 될 것 같아서 투자하는 거라 하고. 게다가 채희는 주연이잖아. 이거 좀처럼 없는 기회다?”
“네! 진짜 이 한 몸 다 바쳐서 열심히 연기할게요!”
모두의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채희는 아까부터 저 상태다.
술은 안 먹었지만 그보다 더 취한 것 같은 상태.
평가의 시선에 짓눌리지 않고 연기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도 무척 고무된 듯했다.
그래, 이렇게 차근차근 조금씩 겁이 사라지고 좋은 기억만 남게 되면 좋겠다.
이런 식으로 공포증이 사라지게 되면 아예 날아다닐걸?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를 정리하고, 술 한 모금 입에 대지 않은 나는 운전대를 잡았다.
취한 실장님과 팀장님은 뒷좌석에, 그리고 채희는 보조석에.
기분 좋은 여운을 느끼며 운전을 하다가.
슬슬 뒷좌석에서 들려오는 코골이 소리가 커져갈 때쯤.
채희는 내게 말을 건넸다.
“오빠, 저 막 뭔가 해낸 것 같아요. 아직 촬영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주위에서 너무 비행기 태워주셔가지고.”
“해낸 거 맞지. 이제 막 데뷔하는 신인배우가 주연 자리 오디션에서 작가랑 감독 만족시켰는데. 그리고 고질병도 나아지는 게 눈에 보이잖아. 암만 봐도 앞에 희망밖에 안 보이니까 팀장님이랑 실장님도 그렇게 좋아하신 걸 거야.”
채희는 풉,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오빠는 안 그런 척하시는 거예요? 오빠가 제일 좋아하셨잖아요.”
“···내가? 팀장님이랑 실장님보다?”
“네. 엄청요.”
내가 팀장님이랑 실장님보다 더 좋아했다고?
‘그랬나···?’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술 한 모금 하지 않았는데 단 한 번도 입꼬리가 내려온 적이 없었던 것 같으니까.
‘내가 좋아했구나.’
그것도 엄청 많이.
내 입에서도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일하기 싫어하고, 방구석에서 컨텐츠를 즐기는 걸 최대의 낙으로 알고 있던 나인데.
어느덧 일에 대한 보람을 느끼며 진심으로 즐기고 있지 않은가.
‘내가 이렇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었는데.’
이게 다 채희 덕분이다.
그녀가 내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주차장에서 쪼그려 앉아 연기를 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쯤 무척이나 피곤하고 고달픈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수도 있다.
요즘처럼 의욕적인 매일매일이 아니라.
“오빠, 계속 제 매니저 해주실 거죠?”
“응? 갑자기 그게 무슨 질문이야?”
“그냥요. 갑자기 그만둘 수도 있고, 오빠가 다른 사람 맡게 될 수도 있으니까 여쭤본 거예요. 오빠가 사라지면 제 부적 없어지는 거잖아요. 그건 싫어서요.”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다.
난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그럴 일은 없을 거다.
그녀도 내가 필요하겠지만 나도 그녀가 필요한 건 마찬가지니까.
“어···? 뭐야···. 왜 대답을 안 해요?”
“시끄러워서 운전을 못 하겠네.”
“···! 아니 그냥 대답을 하라니까요? 왜 대답을 안 하냐니까요!?”
“운전하잖아. 다 같이 황천길 갈래?”
“아니! 저기요 매니저님! 저 갑자기 배신감 확 들려고 해요!”
“나도 그래. 운전하는데 방해나 하다니. 이것도 엄연히 내 일이다?”
그만둘까 봐 걱정된다는 건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다.
내가 이 재미를 포기할 리가 없지.
“아니 대답을 하시라구요! 네!?”
놀리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고.
“조용히 좀 해라. 시끄럽게 정말.”
***
시간이 지나, 어느덧 대본 리딩 날짜가 다가왔다.
우리는 그동안 채희의 공포증을 고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나는 화장실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온종일 그녀와 붙어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우리 회사 직원들은 모두 한 번씩은 채희가 연기하는 걸 구경하고 갔을 거다.
공포증을 고치기 위해서는 나도 필요하지만 낯선 이의 시선 또한 필요하거든.
그렇게 하루도 게을리하지 않고 노력한 결과.
그녀는 처음 보는 이들 앞에서도 전혀 떨지 않고 연기를 할 수가 있었다.
물론 내가 옆에 있다는 전제 하에.
아직 내가 없으면 안 되더라고.
아무래도 처음 극복하게 된 게 내 앞이라서 그런지, 심리적으로 많이 의지하게 되는 모양이었다.
뭐, 지금으로선 그 제약이 딱히 문제가 될 건 없었다.
어차피 계속 옆에 있을 테니까.
“오빠, 저 어때요? 좀 괜찮지 않아요? 역시 여자는 돈을 들일수록 더 예뻐지나 봐요.”
샵에서 풀 세팅을 한 그녀가 자아도취에 빠져 있다.
생글생글 웃으며 한껏 자신의 예쁨을 만끽하는 중이다.
그러나 그게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었다.
매일같이 그녀와 함께 하는 내가 봤을 때도, 채희의 지금 모습은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예뻤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네 입으로 그런 말 하면 안 창피해?”
“그래서 안 이쁘다고요?”
자신감이 아주 철철 넘치네.
“그래. 예쁘다, 예뻐.”
다른 자리도 아니고 대본 리딩 자리이니, 자신감을 좀 채워줘도 되겠지.
나는 툭 던지듯 칭찬을 건네고는 한실장님의 뒤를 따라 걸었다.
대본 리딩 현장.
나와 채희는 이런 곳에 처음 오지만 한실장님은 상당히 많이 와본 듯, 걸음을 옮기며 우리에게 이것저것 알려주었다.
인사를 하는 방법, 대본 리딩이 진행되는 과정, 끝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아주 기본적인 것이겠지만 백지 상태인 우리에게는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들이다.
실장님의 말을 경청하며 따르다 보니, 우리는 어느새 리딩실에 도착해 있었다.
***
한편 그 시각.
HJ엔터테인먼트의 간판 스타이자, 싱어송라이터.
송하연.
그녀는 뜨거운 한숨을 내쉬며 기타를 내려놓았다.
“하아. 진짜 싫다···.”
마지막 곡이 나온 지 벌써 1년 하고도 6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을 팬들에게는 너무나도 미안하지만, 도무지 만족할 만한 곡이 나오질 않는데 어떡해.
불안함과 초조함이 점점 더 여유와 영감을 좀먹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송하연은 팬카페에 들어가 팬들의 반응을 살폈다.
이제 하루에 많이 올라오지도 않지만.
[언니 직캠 영상 정주행만 2만5천 번···. 컴백 언제 하시나요ㅠㅠㅠ]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봐요ㅠㅠ 그래도 SNS랑 이곳저곳 얼굴은 비춰주시니까.
-나도 앨범!!! 앨범이 듣고 싶다!!!!ㅠㅠㅠㅠㅠㅠ 제발 하윤아 싱글이라도 내!!!
-하연이가 곡에 대한 욕심이 커서 그래요. 우리가 하연이 좋아하는 이유도 이거잖아요. 그러니까 좀만 더 여유 갖고 기다려봐요! ^^
-앨범의 반 정도는 다른 작곡가한테 곡 받으면 안 되나? 아니면 공동 작곡이라거나. 그래도 괜찮을 텐데. 오히려 새로운 느낌도 받을 수 있고.
-그냥 제발 싱글이라도 내주세요ㅠㅠㅠㅠㅠ
송하연은 인터넷 창을 껐다.
보면 볼수록 더 조급함이 커지는 것만 같았으니.
“이러면 안 되는데.”
음악가병, 명반병, 아티스트병 등등.
인터넷 곳곳에 적나라하게 쓰여진 악플도 그렇거니와, 회사 내부에서도 비슷하게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그녀 스스로도 자신의 이 고질병을 똑똑히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도무지 고쳐지지가 않는다.
다른 사람의 곡을 받거나, 공동 작곡을 하게 되면 모든 것을 잃어버릴 것만 같은 꺼림칙한 느낌.
다른 싱어송라이터들도 그렇게 하는데 왜 나는 안 될까.
내 손으로 명반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 아니라, 그 꺼림칙한 느낌이 너무 싫고 불안해서 못 받고 있었다.
물론 욕심도 어느 정도 있긴 하지만.
“짜증나, 진짜.”
하연은 의자에 몸을 기대어 잠시 눈을 감고 마음을 다스리기로 했다.
그러나 눈을 막 감은 그 순간, 작업실 문이 열리며 자신의 담당 매니저가 들어왔다.
하연은 의자에 앉은 채 그를 올려다봤고, 매니저는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 작업은 잘 되고 있어?”
“아니, 안 돼.”
“근데 있잖아. 우리가 듣기엔 지금도 진짜 괜찮은데···. 네가 이대로 내기에 정 마음에 안 들면, 편곡만 살짝 거치면 괜찮지 않을까? 공동 작곡이 아니라 편곡.”
하연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몇 개월 전, 송하연은 저 순진한 척하는 매니저가 하는 뒷담화를 우연히 들은 적이 있었다.
-일 존나 개꿀이긴 해. 송하연이 아티스트병 걸려서 일을 못하거든. 크크큭. 근데 시발 지가 언제까지 버티겠어. 회사가 쩔쩔매는 탑스타도 아니고, 이제 압박 넣어서라도 일 시키겠지. 암튼, 난 아티스트 하나 건져서 지금 개꿀 빠는 중.
매니저를 바꿔달라고 해야 하는데.
앨범을 내지 못하는 지금 회사에 요구하기엔 좀 미안했다.
매니저를 바꾸는 건 앨범을 모두 만든 뒤.
저 얼굴이 꼴도 보기 싫긴 하지만, 그래서 더 동기부여가 되기도 한다.
앨범을 빨리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아 오르니까.
하연은 지금 이런 식으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것이 있다면 뭐든 다 가리지 않고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아, 물론 작곡이나 편곡을 맡기는 건 빼고.
그건 정말 싫었으니까.
“조금만 있으면 될 거야. 알아서 잘 하고 있으니까 걱정 마.”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근데 다른 방법도 한 번 생각해 보라는 거야. 도움을 받는 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니까.”
“알겠어. 이제 다시 작업하게 나가줄래?”
“그래. 힘내, 하연아.”
“응.”
매니저가 작업실 밖으로 나가고, 하연은 다시 기타를 집어 들었다.
역시 효과가 있다.
잠시라도 말을 섞은 게 역겨워서 손이 근질거렸다.
지금 당장 곡을 만들고 싶다.
하연은 다시 기타를 튕기며 처음부터 연주하기 시작했다.
잡힐 듯 말 듯 안 잡히고, 벽 너머가 보일 듯 안 보일 듯 보이지 않는다.
이번 고비만 넘기면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은데.
< 아티스트병 걸린 싱어송라이터?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