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하산이 천재매니저였다고-7화 (7/170)

< 임팩트를 주는 연기 >

우리는 곧장 오디션 준비 겸 작품 준비에 들어갔다.

연기 트레이닝 시간일 땐, 내가 가만히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고.

트레이닝 시간이 아닐 땐, 나는 그녀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건 분석을 가장한 강의.

나는 말하고, 그녀는 들으면서 내 말에 호응하기에 바빴다.

“오.”

“다시 말하지만, 이 작품은 서사보다는 캐릭터성에 집중된 작품이야. 서사는 그저 거들 뿐이고. 그리고 캐릭터들 중에서도 여주인공이 제일 특별해.”

“오!”

“네가 잠재력은 넘쳐도 아직 경험은 많이 부족하잖아. 그러니까 우리는 캐릭터성에 꼼수를 넣어보자고. 이를 테면, 작가가 대본에 넣어두지 않은 배경이나 설정들을 상상해보는 거야. 얘는 낚지 볶음에 환장한다든가. 그게 중요하든 중요하지 않든 네 머릿속에서 캐릭터가 구체화되기만 하면 상관없어.”

“오오!”

“대신에 진짜 이 캐릭터랑 어울릴 것 같은 것들로만. 자, 그럼 일단 떠오르는 대로 한 번 쭉 적어보자. 적는 과정에서도 머릿속에서 구체화되기 쉬우니까. 취향, 취미, 특기, 좋아하는 음악, 노래 실력, 춤 실력 등등 아무거나 되는대로.”

“와아···. 진짜 교수님이라고 불러도 돼요?”

대개는 이런 식이었다.

그런데 교수님 소리를 듣기엔 좀 그렇지.

이건 전문적인 지식이 아니라, 수많은 작품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온 것들이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야매.

어쨌거나 효과만 좋으면 장땡 아니겠나.

“그냥 평소대로 불러. 교수는 무슨.”

“역시 오빠 소리가 듣기 좋다는 거죠? 진짜 남자들은 다 똑같다니까.”

“이상한 소리 할 때가 아니야. 집중하자.”

“···말 돌리는 거 봐.”

내가 이렇게 채희와 딱 붙어서 준비할 때.

한실장님과 윤팀장님은 뭔가 상당히 바쁘게 움직이셨다.

나도 눈치가 보여 도우려 했지만, 상사들은 내가 채희에게 하는 것을 지켜보고는 고개를 저으셨다.

지금은 이게 제일 중요하다면서.

사실 그 뜻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채희가 연기를 조금이라도 더 잘 해내는 것이었으니까.

그렇게 며칠 동안의 단기속성 강의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을 때.

마침내 기다리던 소식이 들려왔다.

“오디션 잡혔다. 그쪽도 급했나 봐. 오늘 저녁에 하기로 했어. 9시.”

지금 시간은 오후 2시.

남은 시간은 7시간이지만 꾸밀 준비 시간이나 이동 시간 등을 생각하면 여유 시간이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이에 채희는 깜짝 놀란 얼굴이 됐으나, 이내 내 얼굴을 정말 노려보듯이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어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웹드라마, <캠퍼스 낭만이 원래 이런 거야?>의 작가 조수연.

이 작품으로 입봉하게 된 그녀는 주연 배우 오디션 현장에 참석하며 속이 까맣게 타들어갔었다.

‘너무 마음에 안 들어.’

하지만 별 말을 하지는 못했다.

그녀도 자신의 주제 파악을 못하지는 않으니까.

웹드라마, 그리고 신인 작가.

여러모로 이래라저래라 할 처지가 아니었다.

웹드라마라지만 입봉하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

그동안 대본이 좋다는 말은 많이 들었어도, 요즘 같은 때에 좋은 작품이 엎어지는 일은 얘깃거리조차 되지 않을 정도니까.

그야말로 레드오션 중에 레드오션.

그런데 마침.

주연 배우가 딱 결정되기 직전.

HJ엔터테인먼트로부터 제의가 들어왔다.

투자 제의에 더불어 여주인공 역할 오디션 제의가.

“이건 뻔하지. 오디션은 그냥 겉치레고, 그냥 투자할 테니까 여주 자리 넘기라는 뜻이야.”

그렇게 말하는 감독님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입꼬리가 씰룩거리기까지 한다.

조수연은 그 꼴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앞뒤 안 보고 그저 제작비가 높아진다는 것, 그리고 HJ엔터가 먼저 손을 뻗었다는 것에 기뻐하는 그저 그런 감독에 더불어, 신인 작가, 그리고 정체불명의 확정 주연.

정말로 한숨이 절로 나올 만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어쩌겠어. 이렇게라도 입봉은 해야지.’

원래 처음이 가장 힘든 바닥이다.

지금의 스타 작가들도 신인 시절엔 개차반 취급을 당했다고 들었다.

‘혹시 반응이 좋을 수도 있으니까··· 일단은 참아야 돼.’

남들이 볼 땐 자신 역시도 그 나물에 그 밥일 테니까.

배우나 감독도 ‘일단 지금은 참자’라고 생각하고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조수연 작가는 미팅 자리에 도착하기 전, 속으로 빌었다.

‘많은 건 안 바라도 제발 평균 정도만 연기해줬으면 좋겠다.’

아니면 차라리 외모라도 엄청나든가.

연기가 구려도 외모 때문에 화제가 될 지 모르는 일이니.

“조 작가. 표정 관리 잘해야 돼? 우리가 막 그렇게 많이 따질 처지는 아니라서. 연기가 별로여도 너무 대놓고 실망하지는 말고.”

“네, 감독님. 걱정 마세요. 하하.”

드르륵-

복잡한 심경을 끌어안고, 예약한 식당 룸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감독과 조수연 작가의 몸은 쩌적! 얼어붙었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안녕하세요, 작가님. 신인배우 정채희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들어온 장소에.

지금껏 상상으로만 그렸던 ‘유나현’이 현실로 강림해 있었다.

***

“실장님, 궁금한 게 있는데 뭐 하나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어. 눈치 보지 말고 편하게 물어봐.”

한실장님이 너그럽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지금까지 해온 것도 그렇거니와, 오늘 그녀를 준비시키는 데에 있어서 거의 완벽하게 준비한 덕분인 것 같다.

캐릭터와 배경을 낱낱이 분석하고 내 나름대로의 안목을 덧붙여, ‘유나현’ 캐릭터에 가장 안성맞춤인 메이크업과 의상을 준비시켰거든.

나는 아까부터 의문이었던 것을 묻기로 했다.

윤팀장님과 한실장님이 나누시는 대화를 들으며 몇 번씩이나 고개를 갸웃했었는데.

“혹시 채희 프로필도 안 보내신 거예요?”

“아, 그거? 원래 보내야 하긴 하지. 근데 우린 자신 있으니까 이러는 거야. 숨겨놨다가 보여줘야 더 임팩트 있잖아. 거기다 웹드라마기도 하고, 투자도 하니까.”

“아.”

“우리도 자신 없었으면 프로필 보냈지. 아무리 투자한다고 해도 굳이 서로 얼굴 붉히거나 앙금 쌓여서 좋을 거 없잖아.”

다행이다. 채희가 화장실에 갔을 때 물어봐서.

만약 이걸 들었으면 부담감이 더 커졌겠지.

아니, 실장님도 알아서 대답을 바꿨으려나?

그런데, ‘임팩트’라···.

‘그럼 이것도 한 번 시켜봐야겠다.’

나는 화장실에 갔다 온 채희에게 몇 가지를 말해주었고.

그걸 들은 윤팀장님과 한실장님, 채희는 눈빛을 빛냈다.

***

여주인공 캐릭터 ‘유나현’.

가난하지만 자존감 있게 자란 스무 살.

가정을 떠난 아버지, 화류계에 몸담은 어머니.

유나현은 이러한 가족을 창피해하거나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지 않았다.

“그게 뭐.”

냉소적으로, 시니컬하게.

감정에 무디거나 세상만사 초탈한 정도는 아니지만, 또래 소녀들과는 확실히 다른 면이 있었다.

공부를 해서 대학에 가고, 친구들과 잘 어울려 지내고, 어머니와도 친하게 지내는.

열등감이나 피해의식 때문이 아니라, 남들과의 성장환경차이를 인정하면서도 별로 개의치 않아 하는.

자존감이 무척이나 높은 신입생.

“안녕하세요, 감독님. 안녕하세요, 작가님. 신인배우 정채희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은근한 느낌의 은은한 미소를 띤다.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하곤 어깨와 허리를 쭉 편다.

신인 배우지만 움츠러들지 않고 당당하게.

예의 바르면서도 강인해 보이게.

잘 보이려 목매지 않으면서 여유롭게.

그 또렷한 목소리와 행동에 작가와 피디, 조연출의 몸이 굳었다.

우리는 그 모습을 보며 눈빛을 교환했고, 한실장님은 내게 엄지를 추켜세워주었다.

“오셨습니까. 어서 앉으시죠. 하하!”

윤팀장님은 잠시 얼이 나갔던 그들을 안으로 이끌었다.

목소리와 표정을 보아하니, 윤팀장님도 지금의 상황에 아주 신나하고 계시는 것 같았다.

대본도 아니고 그저 내 지시였기에 정식 연기로 받아들이지 않은 모양인지, 채희는 처음 보는 그들 앞에서도 아주 자연스럽게 연기해냈다.

물론 인사가 다 끝난 지금은 평소의 모습으로 대하고 있었지만.

‘임팩트가 정말 중요하긴 한가 보네.’

새로 하나 배웠다.

채희가 원래대로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작가와 피디, 조연출의 눈은 수시로 부딪혔다.

저 번들거리며 흥분한 눈빛들이 뜻하는 바는 하나.

‘대박!’

첫 인상, 첫 인사.

고작 몇 초 만에 우리가 가진 미팅의 공통적인 목적이 훌륭하게 달성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직 모든 과정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방금 전, 인사를 하며 곁들인 연기는 채희가 스스로 받아들이기에 ‘연기’가 아니어서 그런지 아주 매끄럽게 해냈지만, 이제 곧 볼 오디션은 아니었으니까.

이건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평가’의 순간이었다.

내가 그녀와 수시로 아이 컨택을 하며 안심시켜주고 있는 가운데, 윤팀장님은 잔뜩 너스레를 떨며 능청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하! 우리 채희가 비주얼도 되고 연기도 잘하고 인성도 좋아서 우리 회사 기대준데, 알고 보니까 작품 보는 눈까지 높더라고요. 이 작품도 채희가 직접 골랐어요. 꼭 하고 싶다고 얼마나 떼를 쓰는지!”

첫 인사 때 저들의 반응을 보고 어깨가 올라가신 듯했다.

거짓말이 아주 자연스럽다.

저분들도 이 말을 믿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아 보였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

게다가 작가도 신인이고, 깐깐하지 않은 웹드라마 피디인데 칭찬이 아무런 효과도 없으려고.

물론 첫 인사로 인해 분위기가 아주 부드럽게 풀린 덕분이기도 했다.

정작, 분위기를 이렇게 만들어낸 당사자인 채희는 전혀 편해 보이지 않았지만.

‘물을 대체 얼마나 마시는 거야?’

긴장 때문에 목이 타나 보다.

나는 테이블 밑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화장실 간다고 해. 따라 나갈게.]

분위기를 보아하니, 이제 곧 오디션을 볼 듯하다.

피디와 작가가 아주 애간장이 타는지, 채희를 계속 힐끔거리며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우웅-!

“···죄송한데 잠시만요.”

그녀는 짧게 말하며 일어섰고, 나는 그녀를 따라 룸에서 나왔다.

그리고 함께 복도의 코너를 도는 그 순간.

채희는 애써 숨겨왔던 표정을 투명하게 드러냈다.

“어떡해요! 저 진짜 너무 떨려서 죽을 것 같아요!”

필사적으로 구원을 바라는 얼굴.

나는 또다시 트릭을 쓰기로 했다.

이번엔 그녀도 안 믿을 테지만, 그냥 동아줄이라고 봐야지.

심리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동아줄.

“아까 잘해놓고 왜 이제 와서 그래? 너 처음에 인사했을 때는 유나현 역할 잘만 소화했잖아.”

“그거랑 이거랑은 다른 거잖아요!”

“다르긴 뭐가 달라. 대본에 안 나와있다고 연기 아니야? 캐릭터처럼 행동하는 거 자체가 연기지. 그리고 내가 몇 번이나 말했지? 이미 저 분들은 네 연기를 보고 좋게 보신 분들이야. 똑같은 캐릭터 연기하는데 겁먹을 필요가 전혀 없다니까?”

뻔뻔하게 내뱉은 말에 그녀는 입술을 몇 번이나 달싹거렸다.

반박할 말이 목구멍까지 튀어나오는데, 꾸역꾸역 삼켜내는 듯한 모습.

나는 그녀의 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채희는 지금 내가 내민 동아줄을 붙잡으려 하고 있는 거다.

그럼 좀 더 힘을 낼 수 있게 도와줘야지.

“그리고 그 필살기 있잖아. 주문 외우는 거. 그거 한 번 해봐.”

“···아, 그거?”

“그래, 그거. 중얼중얼대는 거. 대신 저 방에선 소리 내면 안 된다? 이상하게 볼 수 있으니까 입모양도 조심하고. 차라리 그냥 들어가기 전에 몇 번 외우고 가.”

채희의 고개가 무겁게 끄덕여졌다.

그리고··· 그녀는 내 눈을 빤히 쳐다보며, 입을 아주 작게 뻐끔뻐끔.

주문이 뭔 지는 잘 모르겠으나 정말 효과가 있는 듯하다.

표정이 점점 침착해지고 있어.

< 임팩트를 주는 연기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