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하산이 천재매니저였다고-3화 (3/170)

< 효과 좋은 또라이 >

“또라이!?”

깜짝 놀란 얼굴로 정채희가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주변은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방금 전까지 나와 대화하던 선배 로드매니저도, 그녀를 데려온 직원도, 자리에 앉아있던 다른 실장님도, 그리고 3팀 바로 옆에 있는 2팀의 직원들도.

묘한 정적이 이어지는 가운데.

그녀의 얼굴에선 핏기가 싸악- 가시며 창백해졌다.

애초부터 하얀 얼굴이었는데 저것보다 더 하얘질 수도 있구나.

“어··· 그··· 저··· 그게 아니라···.”

동공이 팝핀을 추듯 거세게 흔들리고 있는 그녀에게, 나는 구원의 손길을 내밀기로 했다.

우리 회사의 기둥이 될 사람이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고.

‘또라이로 보였을 수도 있지.’

나는 인정할 건 인정할 줄 아는 남자였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박한울입니다.”

“아! 죄, 죄송합니다!”

내가 내민 손을 양손으로 붙잡고 허리를 확! 숙였다.

그리고 그녀의 긴 머리카락은 허공을 날아, 내 얼굴을 찰싹! 때렸다.

‘···그러고보니 인성이 문제가 될 수도 있겠구나.’

이거 일부러 그런 건 아니겠지?

제발 아니기를 빈다.

***

나와 정채희, 그리고 화장실을 다녀온 한실장님까지, 우리 셋은 미팅룸에 들어와 앉았다.

한실장님은 그녀를 미심쩍게 바라보며 침음을 흘렸다.

“음···.”

그럴 만하다.

어제 직접 면접을 본 사람들 중에는 한실장님도 있었으니까.

분명히 불합격으로 결정이 된 사람인데, 갑자기 합격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이상하게 볼 수밖에 없지.

그래도 뭐.

이미 위에서 결정을 내려 계약서에 사인까지 한 마당에, 엎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앞으로 한 식구가 된 사람에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캐물을 수도 없고.

결국 한실장이 꺼낼 말은 하나뿐이었다.

“앞으로 잘해봐요. 일단 지금은 작품 생각하지 마시고, 연기부터 차근차근 다듬어봅시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너무 긴장하지도 마시고.”

“저 긴장 안 했어요! 정말로요. 네. 하하!”

기계적인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한실장님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이 편하시다면야···. 아, 그리고 한울 씨.”

“예.”

“한울 씨가 정채희 배우 담당이긴 한데, 아직 둘 다 배울 거 많으니까 당장은 다른 데 많이 나갈 거야.”

“네, 알겠습니다.”

실장님은 나 또한 미심쩍은 눈빛으로 바라봤다.

갑자기 내가 정채희 담당으로 결정된 것에 대해 의문을 품은 것 같다.

혹시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아무렴 어때.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한다 해도, 개입이 있으면 결국 티가 날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지 못한 인위적인 움직임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정채희를 맡게 된 것만으로도 성공은 따놓은 당상이나 다름없거든.

“그럼 그렇게 알고, 당분간 해야 할 스케줄 알려드릴게요.”

나와 정채희는 한참 동안 한실장님의 말을 경청하며 새겨들었다.

그리고 한실장님이 잠시 소회의실 밖으로 나갔을 때.

그녀는 머뭇거리다가 겨우 말을 꺼냈다.

“저··· 아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제가 사람을 헷갈려서. 제 친구 중에, 아니 진짜 잘생긴 친구 중에 매니저님 닮은 분이 계시거든요. 걔 별명이 또라인데 정말 여자들한테 인기도 많고요! 엄청 착하고 완전 카리스마 있고 대박이에요! 진짜 매니저님 닮아서···.”

“···왜 거짓말 같죠? 마치 지금 막 실시간으로 짜내고 있는 것 같은데.”

“···!”

나는 당황하는 그녀를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 앞으로 서로 거짓말은 하지 말기로 해요. 그리고 다시 사과하실 필요도 없고. 이미 아까 사과하셨잖아요. 전 괜찮아요.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지.”

“아, 네.”

“···.”

“···.”

“···.”

“그런데 있잖아요. 정말 궁금한 게 있는데, 대체 어제는 저한테 왜 그러신 거예요?”

조심스럽게 물어오는 그녀에게, 나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행운이 깃들기를 바란다는 말이요? 정말로 순수하게, 정채희 배우한테 행운이 깃들기를 바란 것뿐이에요. 결국 이렇게 행운이 일어나서 지금 제 앞에 있는 거잖아요?”

“···저희 거짓말하지 말기로 하지 않았어요?”

“진짜예요.”

“아···. 그래요···. 고마워요.”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아무래도 거짓말이 들통난 모양이다.

***

그 뒤로.

나는 한실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매니저로서의 교육을 받음과 동시에 현장에도 나가야만 했다.

메뚜기처럼 여러 연예인들의 스케줄을 따라가며 운전과 잡심부름을 하는 나날들.

내가 정채희의 담당이 되기는 했어도, 그녀의 스케줄은 연기 수업을 받는 게 전부라서.

지금 당장은 내가 정채희랑 할 일은 없다는 거지.

아직 매니저로서 배워야 할 것도 산더미처럼 많았고.

아무튼, 일이 너무 바빴기 때문에, 도통 정채희의 연기를 구경할 틈이 나지 않았다.

아니, 구경은커녕 제대로 대화조차도 못 나눴다.

그래도 간간이 소식은 들려왔다.

가르쳐보니 정말 연기를 엄청 잘한다고.

‘아무렴, 누가 뽑았는데.’

나는 미래에 채집할 달콤한 꿀을 위해 얼마간의 시간 정도는 기꺼이 희생하기로 했다.

행사장, 촬영장, 방송국 등을 돌아다니며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을 익혔다.

정채희는 배우를 할 거기 때문에, 가수의 스케줄까지 따라다닐 필요는 없었지만, 언젠간 이런 경험 또한 쓰일 날이 오겠지.

아무튼, 이렇게 무진장 바쁘게 돌아다니며 느낀 게 하나 있다면.

‘역시 정채희가 최고야.’

재능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재능 없는 사람들은 더 많이 봤고.

하지만 직접 눈으로 본 사람들 중에는, 정채희 만큼의 포텐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교육을 받고 현장의 감을 익히면서도 계속해서 정채희가 떠올랐다.

그녀가 연습하는 걸 보고 싶다.

어떤 연습을 하고 있을까?

사실 그 실력이면 당장 오디션 보고 드라마 들어가도 괜찮을 텐데.

나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그녀의 연습을 보고 싶었기에, 어떻게든 시간을 만들어냈다.

아니, 시간을 만들어냈다기보다는 아침에 퇴근을 하고 집에 안 들어간 거지만.

“어? 매니저님 오셨어요? 오늘은 일 없으신가 봐요.”

정채희의 얼굴은 많이 좋아져 있었다.

기획사에 들어와 연기 연습을 하는 게 그녀에게 심적으로 안정감을 줬기 때문일 터.

“일이 없는 게 아니라 방금까지 일하고 퇴근 안 한 거예요. 정채희 배우 연기 연습하는 것 좀 지켜보고 싶어서요.”

내 말에 그녀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수업 참관하시게요? 안 피곤하세요? 다크 서클이 엄청 진하게 내려왔는데. 그냥 집에 가셔서 쉬시지.”

“연기 잘한다는 소문 들으니까 너무 궁금해서요. 피곤해도 와볼 수밖에 없더라고요.”

“···소, 소문이 났어요? 저 그 정도까지는 아닌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긴.

이미 주차장에서 한 연기를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겸손이 지나치다.

“어쨌든 참관해도 괜찮으시죠?”

“네, 당연하죠···. 제 담당 매니저시니까.”

자신감 없는 목소리.

그녀의 얼굴이 살짝 굳어져 있었다.

긴장하는 건가?

분명 수업 잘 따라간다는 말도 들었는데.

나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긴장하지 말고 편안하게 하세요. 저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네, 편안하게 한 번 해볼게요. 너무 기대하지는 마세요.”

조금 시간이 지나고 연기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나는 선생님께 참관을 허락받고, 연습실 벽에 딱 붙어 조용히 지켜보기로 했다.

‘잘하겠지?’

기대감을 듬뿍 갖고 지켜보자, 곧바로 수업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내가 그렸던 그림과는 조금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연기를 하면서 이쪽을 계속 신경 쓰는 듯한 정채희.

그게 눈에 훤히 들어올 정도였으니.

선생님은 그녀의 연기를 끊으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채희야. 뭘 그렇게 신경 써. 평소대로 해, 평소대로.”

“아, 네!”

“그럼 처음부터 다시 해볼까?”

정채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정을 잡고 다시 연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채희야. 자꾸 저쪽 보지 말라니까? 시선이 흔들리니까 전체적으로 다 흔들리잖아. 집중도 안 되고.”

“아, 죄송합니다.”

“후우. 그래, 다시 해보자? 원래 잘하잖아. 왜 그래. 그냥 평소처럼만 해.”

선생님은 억지로 웃고 계셨다.

그러나, 그녀가 한 번 더 실수하자, 선생님의 얼굴에서는 억지 미소마저 사라졌다.

“정채희. 너 왜 그래? 집중 안 해?”

“죄, 죄송합니다!”

그녀의 몸이 딱딱하게 경직됐다.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몸이 지금 긴장감에 잡아먹혔다는 것을.

아마 연기 선생님도 알고 계시겠지.

지금까지 가르치면서 이런 것을 수도 없이 봐왔을 테니까.

“다시.”

“네!”

이게 그녀의 교육 방식인가 보다.

안 되면 될 때까지.

오히려 그녀의 공포가 더 커질 수도 있으나, 내가 얼마간 현장을 다녀본 바, 현장의 공기는 몇 배로 무거웠다.

어르고 달랜다고 될 문제가 아니라는 거지.

이 정도의 공포도 이겨낼 수 없으면 재능이고 뭐고 아무런 소용이 없다.

나는 속으로 그녀를 응원했다.

진심으로.

허나, 선생님과 나, 그리고 정채희 스스로도 예상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녀는 제대로 연기를 할 수 없었다.

더 악화되면 악화됐지.

“흐윽···! 흑! 죄송합니···흐흑!”

“이게 운다고 해결될 문제야? 하아. 잠깐 쉬었다가 다시 할 테니까 세수라도 하고 와.”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아주 부드러웠던 선생님은 어느덧 호랑이 선생님이 되어 있었다.

정채희가 연습실을 나가고, 선생님은 내게 다가왔다.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하아. 이거 당분간은 못 고쳐요. 조금씩 해결해 나가야 돼요. 진짜 재능은 확실한 친군데···.”

“잠시 얘기 좀 나눠보고 오겠습니다.”

“네. 매니저님이 조금 안정시켜주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연습실을 빠져나왔다.

울음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그녀를 찾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울 만한 장소는 화장실 아니면 비상계단이니까.

역시 그녀는 비상계단에 앉아 무릎에 고개를 파묻고 있었다.

“채희 씨, 괜찮아요?”

내 말을 들은 척도 안 하고 울고만 있다.

그래서 한 번 더 말했다.

“채희 씨, 괜찮아요?”

또 대답이 없다.

그럼 한 번 더.

“채희 씨, 괜찮아요? 저 지금 세 번 물었어요.”

“안 괜찮아요!”

고개를 번쩍 든 그녀가 나를 노려봤다.

화장은 엉망이 됐지만 그럼에도 예쁜 얼굴.

“왜 성질을···. 잘못은 본인이 하셔 놓고.”

“세상에 그렇게 위로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위로하러 온 거 아닌데요? 물어보러 왔지.”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채희 씨, 혹시 무대 공포증 같은 거예요? 카메라 공포증?”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카메라도 괜찮고 상대 배우나 선생님들하고 있으면 괜찮은데··· 다른 사람이 지켜보면 계속 신경 쓰여요. 특히 오디션 같이 평가받는다고 생각하면 더 그래요.”

“연기할 때만요?”

“아뇨, 학교에서 발표할 때도 그랬어요. 갑자기 시선 모일 때도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디션 때도 그래서 망친 거죠? 배우로서 정말 최악의 체질이긴 하네요.”

“···!”

“근데 사실 발표나 다른 거면 몰라도, 연기할 때는 상관없지 않겠어요? 엄청 잘하시잖아요. 잘하면 자신감도 넘치고 그러는 거지.”

“제 연기 본 적 없으시잖아요.”

“봤어요. 오디션 날, 주차장에서. 쭈그려 앉아서 연습하셨잖아요.”

“아···. 그걸 봤어요?”

“네. 엄청 잘하시더라고요.”

“아···.”

어느새 그녀의 울음은 뚝 그쳐 있었다.

지금이 타이밍이겠지?

나는 별거 아닌 부탁을 하듯 가볍게 물었다.

“혹시 그때 그거 한 번 더 보여줄 수 있어요?”

“뭘요? 그 연기를 지금 여기서 해보라고요?”

“네.”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다.

공포증이라는 게 한 번에 고쳐지면 그게 공포증이겠는가.

하지만 공포증이라는 것도 결국엔 심리적인 문제.

나는 생각의 틈을 파고들어가 보기로 했다.

설령 내 말이 논리에 완벽하게 들어맞지 않을지라도, 혹은 궤변일지라도.

결국 그녀만 넘어오면 그만이다.

“평가받는 게 신경 쓰인다면서요. 저는 이미 그때 그걸 봤고, 엄청 좋았다고 했잖아요. 다시 한번 더 하는 게 무슨 상관이에요.”

“그래도···.”

“그래도는 무슨 그래도요. 그때랑 똑같이 하면 되는데.”

이런 방법으로 촬영장에서의 공포를 이겨낼 수는 없을지언정, 그래도 한 걸음씩 차근차근 걸어나가다 보면 어떻게든 해결되어 있지 않을까?

일단은 나 한 명부터 시작해보자.

나는 그녀의 재능을 절대, 조금이라도 썩히고 싶지 않았다.

하루 빨리 그녀의 재능을 만천하에 드러내서 편안하고 멋진 성공의 삶을 만끽하고 싶었다.

“어려울 것 같아요? 새로운 걸 하는 것도 아니고, 이미 좋은 평가를 내린 걸 한 번 더 하는 것뿐인데? 그때랑 똑같이 연기하면 어차피 똑같은 평가 나올 텐데, 망설일 이유가 뭐가 있어요.”

“음···.”

“아니면 그냥 연습실 들어갈래요?”

“아, 아뇨! 한 번 해볼게요!”

막 그렇게 당기는 건 아니나, 그래도 연습실에 들어가 방금 전과 같은 과정을 반복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녀는 이미 머릿속에 대사가 다 있는지, 숨을 길게 내쉬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잠시 집중하며 몰입하다가 눈을 뜬 순간.

그녀는 방금 전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천연덕스러운 표정, 그리고 중간중간 실성한 듯한 헛웃음을 터뜨리며 대사를 내뱉는다.

“어쩌면 사랑이란 거 다 개구라 아닐까? 그렇잖아. 나만 안 되는 게 말이 안 되잖아. 세상 사람들 다 하는데 나만? 나만 안 된다고? 사실 영화 트루먼쇼도 나한테 주는 힌트 같았던 거야. 어쩌면 날 농락하고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 원래 사랑이라는 건 없는데, 세상이 전부 날 속이는··· 아, 잠깐. 이거 눈물 아니다?”

그때 본 것보다는 조금 덜 매끄러웠지만 그래도 방금 전의 그 울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오! 진짜 잘한다. 한 번 더 가능해요?”

한 번 물꼬를 트니, 그녀도 뭔가 느껴지는 게 있었는지 눈빛을 빛냈다.

다시 한번 처음부터 대사를 내뱉는다.

방금 전보다 더 깔끔해진 연기.

그러나 아직도 조금 부족하다.

그때 본 건 이것보다 훨씬 더 잘했거든.

“와! 좋은데요? 한 번 더 가능해요?”

“네!”

우리는 그렇게 계단에서 몇 번의 연습을 더 반복했고.

그녀의 얼굴에서는 싱그러운 미소가 활짝 피어났다.

< 효과 좋은 또라이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