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하산이 천재매니저였다고-2화 (2/170)

< 또라이 >

자그맣게 걸었던 내 기대는 무참하게 깨지고 말았다.

결국 그녀의 재능은 아무도 못 알아본 듯했다.

아버지마저도···.

오늘 앞선 지원자들에게서 몇 번이나 봐온 그 광경이 눈앞에서 똑같이 재현되고 있었으니.

“흐흑···! 흐윽!”

울음을 터뜨리기는 하는데 차마 오열할 수는 없어 꾹꾹 내리누르고 있다.

그녀는 비척비척 힘없는 걸음걸이로 복도를 가로질러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는 모르겠으나.

내 눈에는 어마어마한 황금이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걸 보는 것 같았다.

꿀꺽- 침을 삼키고, 나는 다시 직원에게 말했다.

“담배 좀 피고 와도 괜찮을까요?”

“네? 피신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아까와는 달리 눈썹을 확 찡그리며 대답하는 직원.

담배를 핀 지 한 시간 정도가 지났지만, 그래도 일하는 중이니 한 시간마다 피러 나가기에는 좀 그렇긴 하지.

“마지막으로 피고 오려고요. 지원자분들 우는 거 보니까 좀 씁쓸해져서.”

별 말 같지도 않은 핑계를 다 댄다는 듯, 한숨을 크게 내쉬며 손을 휘휘 내젓는다.

“어휴. 알았으니까 빨리 다녀오세요.”

“넵!”

나는 부리나케 튀어나가, 막 사옥 밖을 빠져나가려는 그녀를 붙잡았다.

“저기요!”

“흐어어··· 네에···?”

오열하다 말고 뒤돌아보는 그녀.

어떻게 망가진 모습마저 이렇게도 예뻐 보일까.

줄줄 흐르는 눈물은 청춘드라마의 가련한 여주인공 같았고, 파들파들 떠는 입술은 칭얼대는 아기를 보는 것 같았다.

“지원자 분,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정채희요. 왜··· 왜 그러세요?”

머뭇머뭇 말을 꺼내는 그녀의 눈빛에서 언뜻 희망의 빛이 스쳤다.

희망은 내가 보고 있는데 말이다.

“오디션··· 잘 안 됐나 봐요?”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 흔들림에, 턱 끝에 맺혔던 눈물이 똑똑, 땅으로 떨어졌다.

정채희.

나는 스타가 될 그녀에게 할 말을 골랐다.

일단 황금이 빠져나가는 것 같아서 급히 붙잡았는데, 뭐라 해줄 말이 생각이 안 나네.

‘뭐라고 하지?’

주차장에서 연기를 봤으니 안심해도 된다고 할까? 다른 회사에 안 가도 된다고?

아니, 그러면 내가 합격시켜주는 꼴이 된다.

나는 이 회사 대표의 아들이라는 걸 티 내면 안 된다.

그러면 뭐라고 해야 할까.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지며 그녀의 눈동자에서 희망의 빛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다시 그렁그렁 차오르는 눈물.

음. 일단 여기서 해줄 말은 없겠네.

집에서 해결해봐야지.

나는 그녀에게 아무렇게나 말을 건넸다.

“앞으로 행운이 깃들기를.”

“···!”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버지께 말했다.

“아버지! 정채희 배우 떨어졌어요?”

“음···?”

아버지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출근 첫 날, 아들에게 물어볼 게 많았을 테지만.

일단 내 질문이 먼저였다.

이건 절대 그냥 흘려보낼 만한 기회가 아니었으니까.

“정채희가 누구냐?”

“오늘 오디션 본 사람이요. 되게 청순하고 예쁘고··· 아니, 긴장 엄청 하고 들어가서 울면서 나온 사람이요.”

“그런 애들이 한둘이 아니었는데, 아무튼 그건 왜 묻는데.”

왜 묻냐니.

나는 눈에 최대한 힘을 주며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

“무조건 잡아야 돼요. 이대로 떨어뜨리면 안 되는 사람이에요.”

잠시 얼빠진 표정을 짓던 아버지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런데, 어이가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닌 듯했다.

입꼬리가 살짝 위로 올라가 있었으니까.

“그 말에 책임 질 수는 있고?”

“네. 제 말 한 번만 믿어주세요.”

“그럼 네가 키워보든가.”

“···네?”

아버지의 입꼬리가 이제는 씨익! 끝까지 말려 올라갔다.

“왜? 책임질 수 있다며. 그렇게 자신 있으면 네가 한 번 만들어보라고.”

아버지의 표정은 어딘지 모르게 기꺼워 보였다.

생각해보면 그럴 만도 했다.

한평생 의욕 있게 하는 일 없이 방구석에서 뒹굴거리는 게 일상이었던 내가, 이렇게 일적인 부분에 있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으니.

‘내 말 못 믿으시네.’

아직 내 안목을 모르시니 납득할 수 있긴 했다.

아마 아버지는 그 사람을 합격시켜주는 걸 대가로, 내가 일에 흥미와 열의를 가지길 원하시는 것 같았다.

설령 그 사람이 능력이 되지 않더라도 내가 의욕이 생기고 일에 빠지게 만들면 그걸로 성공이라고 생각하실 테지.

나는 대답하기에 앞서, 잠시 고민했다.

일단 정채희를 데려오는 건 확정.

아버지의 의도가 어떻든, 그것에 굳이 반발해서 황금덩어리를 날려보낼 이유는 없다.

‘뭐라도 더 얻어내는 게 좋아.’

의욕? 흥미? 열정? 열의?

아무 의미 없다.

그 사람한테 좋은 대본과 시나리오만 골라주면 그뿐.

더불어 멘탈 케어만 좀 해주면 알아서 탑스타가 될 사람이다.

“그럼 아버지,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해보고 싶어서요.”

나는 의도적으로 눈에 힘을 빡 줬다.

열정에 이글이글 타오르는 것처럼 보이도록.

“무슨 부탁?”

역시 아버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 자식, 이러다 사람 되는 거 아냐?’라고 희망회로를 풀가동 중이신지는 모르겠으나.

난 그냥 일을 편하게 하고 싶을 뿐이다.

편하게 하는데 누구보다 성공하면 그거야말로 최고의 방법 아니겠나.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대본이나 시나리오는 제가 결정하고 싶어요. 위의 간섭 없이.”

***

“그 새끼 완전 또라이라니까!?”

정채희는 눈물을 한 바가지 쏟으며, 통화로 친구에게 울분을 토해냈다.

“뭐 그런 놈이 다 있어? 오디션 망쳐서 울면서 나오고 있는데 갑자기 붙잡고 이름 물어봤다고! 응. 그리고 오디션 망했냐고 물으면서 행운이 깃들기를, 딱 이렇게 말했다니까? 상처 난 데 소금 뿌리는 것도 아니고!”

말을 하다 보니 다시 서러움이 복받쳤다.

지금까지 몇 번 오디션을 다녔고, 그때마다 긴장감 때문에 망한 건 똑같았는데.

이번엔 마지막에 그놈 때문에 더 서러웠다.

면접관으로부터 폭언은 들어봤을지언정, 그런 또라이는 처음이었다.

문제는, 그가 붙잡았을 때 일말의 희망을 가졌다는 것.

그때만 생각하면 부끄럽고 분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딱 봐도 뻔해. 직원이 그런 또라인데 회사가 제대로일 리가 있어? 그런 회사는 내가 안 가! 절대로! 제발 와달라고 사정사정해도 절대로 안 갈 거야!”

그런데 그때였다.

우웅-!

짧게 진동음을 울리며 도착한 문자 한 통.

정채희는 핸드폰을 귀에서 잠시 떼고 문자를 확인했다.

“···어?”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문자를 끝까지 읽고, 눈을 비빈 후, 다시 처음부터 읽었다.

“돼, 됐어···.”

채희의 눈앞으로 그동안의 고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영화를 보고 연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일, 연기 학원에서 재능이 있다고 들은 일, 그리고 긴장감으로 인해 모든 게 어그러졌던 일, 그리고 오늘 있었던 일까지.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무언가 뜨거운 것이 울컥 솟구쳐 올라왔다.

“나···. 나··· 나··· 됐어··· 됐어! 됐어! 합격했어! 합격했다고!”

함께 HJ엔터를 씹어주던 친구도, 꺄아악! 소리를 지르며 축하해줬고.

대체 언제 씹었었냐는 듯, HJ엔터에 들어갔을 시의 장점이 수없이 떠올랐다.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

정채희의 눈앞에는 벌써부터 화려한 배우 생활이 그려지고 있었다.

“아아··· 행복해. 역시 HJ가 안목이 제대로라니까? 어떻게 내 재능을 그렇게 딱 알아보냐고!”

게다가 내일 바로 계약서를 쓰러 오라고 했다.

절대 놓치기 싫다는 듯, 이 늦은 시각에 연락해서.

정채희는 마치 세상을 다 가진 듯했다.

일단 지금은.

***

다음날 아침.

나는 아버지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처음부터 너 혼자 맡는 건 좀 그렇고, 일단 담당은 그쪽으로 돌렸어. 그리고 본부장은 너에 대한 거 다 알고 있으니까 네가 결정한 거 말하면 본부장이 알아서 할 거야. 그래도 영 아닌 건 쳐낼 테니까 너무 막무가내로 하지는 마.”

하긴, 갑자기 내가 알아서 다 결정해버리면 낙하산이라는 게 티가 날 수밖에 없다.

사내 질서가 망가지고 말 터.

또한 나는 이제 막 2일차가 된 신입.

심지어 어제 한 일이라고는 허드렛일밖에 없었으니, 실질적으로는 아직 매니저 경험이 아예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지금은 이 정도로도 충분해.’

내가 무리해서 이상한 작품을 할 리도 없고.

정채희의 재능이 온전히 드러날 수 있게 연습을 시켜 오디션만 똑바로 볼 수 있게 하면 게임 끝이다.

작품 하나만 대박 터지면, 그때부터는 내 말에도 힘이 실리겠지.

아버지도 내 안목을 믿기 시작할 거고.

‘그때부터는 쉽고 편하게 일하는 거지.’

딱 한 작품.

딱 하나만 터져주면 그 앞은 탄탄대로일 게 분명했다.

나는 고개를 굳게 끄덕이며 단단한 어조로 말했다.

“할 수 있어요. 제대로 보여드릴게요.”

“그래. 안 된다고 해도 너무 실망하지는 마. 다음부터 잘하면 되니까.”

겉으로 보이는 열정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보이시는 아버지.

나는 아버지의 차를 얻어 타고, 회사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내렸다.

‘걸어서 가도 10분.’

지금 시각은 출근시간 30분 전.

넉넉하고 여유 있다.

나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락 밴드 에이씨디씨의 ‘Shot In The Dark’를 들었다.

“A shot in the dark! Beats a Walk in the park! Yeah!”

헤비메탈의 흥겨움.

출근하는 좀비들이 가득한 길거리 속에서, 나만 유일하게 흥겨운 락스타가 된 듯했다.

‘얘 잘 되면 그다음엔 가수나 키워볼까?’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실장도 달고 팀장도 달고, 본부장도 달고, 나중엔 아빠 밀어내서 대표까지?’

참으로 옳은 생각이다.

나는 안목으로 콕콕 집어주기만 하고, 귀찮은 일은 다른 직원들이 하면 그거야말로 산업경제의 정수가 아니겠나.

분업과 전문화.

대체재가 없는 내 안목은 나를 평탄하게 성공의 길로 이끌어줄 것이다.

‘일이 이렇게 편할 줄 알았으면 진작에 할걸.’

아무래도 능력 있고 성공한 남자가 한량보다는 훨씬 멋진 법이니까.

“나도 이제 사랑할 때가 됐지.”

흥얼거리며 걷다 보니 어느새 회사 앞이다.

나는 이어폰을 빼고, 밝은 미소를 띠며 매니지먼트3팀으로 올라갔다.

거기엔 처음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허리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신입 매니저 박한울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두근두근- 심장소리가 들려왔다.

긴장감 때문이 아니라, 설렘 때문에.

‘진짜 계약했어!’

누군가의 못된 장난도 아니었고, 꿈도 아니었다.

정말로, 진짜로 HJ엔터와 계약한 것이다.

정채희는 친절한 직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매니지먼트3팀으로 향했다.

“소속 팀은 3팀이고요. 담당은 한실장님, 그리고··· 박한울 매니저예요.”

“아, 그렇군요!”

한실장, 박한울.

입 안으로 굴러가는 발음마저도 좋은 느낌이 들었다.

이제부터 자신을 이끌어줄 사람들이니, 퍽이나 기대가 되는 순간.

마침내 3팀에 도착하고, 직원이 두리번거렸다.

“한실장님이··· 안 계시네? 음. 박한울 매니저님?”

박한울을 부른 순간, 뒤돌아있던 남자가 앞으로 몸을 돌렸다.

정채희의 눈에 그 사람의 얼굴이 훅 들어왔다.

잊을 수 없는 얼굴.

어제 친구와 함께 신나게 씹어대며 몇 번이고 떠올렸던 얼굴.

정채희는 그 사람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도 모르게 높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또라이!?”

< 또라이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