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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이 천재매니저였다고-1화 (1/170)

< 천재 발견 >

취업에 대한 최소한의 노력도 안 하는 대졸 한량 백수, 박한울.

나는 이렇게 한 줄로 간단하게 요약이 가능했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대중문화예술의 전문가라는 정도?

비록 실전경험이 없는 방구석 전문가이지만, 적중률이 100%라면 말이 달라진다.

“한울아, 쟤 뜨는 거 맞냐? 소몰이 창법 극혐인데?”

“장르만 바꾸면 떠. 저 사람 재능 잘 살릴 수 있는 건 그냥 가요야. 저런 알앤비가 아니라.”

내가 이렇게 말하면, 다음 싱글로 가요를 가지고 나와서 대박을 터뜨리곤 했다.

“이 드라마 재밌는데 잘 되는 거 맞냐? 시청률 1퍼도 안 된다는데?”

“내가 볼 때 이거 대박 터진다. 입소문 나는 순간 훨훨 날 거야.”

내 말은 한 번의 실패없이 여지없이 들어맞았다.

드라마는 중반부부터 갑자기 불이 붙기 시작하더니, 최종화 때는 시청률 20%를 넘으며 모든 화제를 휩쓸었다.

“이 미친! 이 드라마가 이렇게 망한다고? 난 진짜 재밌게 봤는데?”

“내가 말했잖아. 웰메이드라 해도 대중들 인기랑은 다를 수 있다니까? 이건 딱 매니아층 만들기에만 좋은 드라마야.”

“그걸 넌 어떻게 1회부터 알았는데.”

“그냥 난 다 보여.”

정말로.

난 다 보였다.

“아주 개소리는···. 그냥 되는 대로 씨부리는 거겠지.”

“믿기 싫으면 말든가.”

“응, 구라. 그게 진짜면 넌 그 재능을 왜 썩히고 있는데? 진짜면 아버지한테 말씀드려보든가. 너네 아버지 기획사 대표님이시잖아.”

“회사에 끌려가서 일만 하게 될까 봐 숨기고 있는 거다, 새꺄. 회사 상황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고, 아버지도 나름 안목이 있으시거든. 난 그냥 평생 이렇게 한가롭게 살고 싶다.”

그저 방구석에서 컨텐츠를 즐기고, 친구들과 이렇게 어울려 노는 게 좋다.

다행히 집안이 풍족하기 때문에 앞날에 대한 큰 걱정도 없고.

환경과 취미가 한량을 하기에 굉장히 최적화된 상태.

그렇기에 나는 한평생 그러했던 것처럼, 대학을 졸업하고도 큰 걱정없이 한량생활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드라마, 영화, 음악 쪽의 대중문화예술을 즐기면서.

허나, 아버지는 그런 내가 못마땅하셨나 보다.

아버지는 어느 날 내게 말씀하셨다.

"박한울! 너 내일부터 우리 회사 출근해! 안 하면 용돈 없을 줄 알아!"

한량 생활은 그렇게 갑작스럽게 끝을 맺게 되었고.

나는 내일부터 연예기획사에 로드 매니저로 입사하게 되었다.

HJ엔터테인먼트 대표인 아버지의 낙하산으로.

***

모든 일에 있어 재능은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된다.

어느 분야에서는 중요한 수준 정도가 아니라, 그저 재능이 전부가 될 수도 있다.

음악, 드라마, 영화 등 대중문화예술 분야에 있어서도 비슷한 맥락.

노력으로 커버할 수도 있지만, 재능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 재능이라는 것이 외모가 됐든 매력이 됐든 운이 됐든 아니면 순수한 실력이 됐든.

그렇다면 그 가장 중요한 요소인 ‘재능’은 어떻게 키워질까.

애초에 타고난 재능도 그렇지만 조기교육 또한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나의 경우에는 아마 재능과 조기교육이 함께 갖춰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아버지가 1티어까지는 아니더라도 2티어 정도는 되는 기획사인 HJ엔터테인먼트를 키울 수 있었던 건 모두 안목 덕분.

나는 아버지의 재능을 한층 더 뛰어나게 물려받은 듯했다.

또, 내 기억을 뒤져보면 아주 어릴 때부터 주변엔 항상 음악이나 영화, 드라마가 함께 했다.

가수가 집에 오기도 하고, 배우, 감독, 작가가 집에 오기도 했다.

그들의 고충이 귀에 들렸고, 그들의 작품을 함께 감상하기도 했다.

여러 대화를 지켜봤고, 아버지의 통화를 듣기도 했다.

이건 그러니까 환경에 의한 실전적인 조기교육.

내 안목은 그렇게 높아졌고, 데이터 또한 그렇게 쌓여갔다.

물론 남들은 죽을 똥 살 똥 공부다, 입시다, 취업이다, 매달릴 때.

마음 편히 대중문화예술을 주구장창 봐온 덕분이기도 했고.

“쯧. 그냥 집에서 즐기는 게 더 재밌을 텐데.”

우리 아버지, 박, 호 자, 진 자의 이름 이니셜을 딴 HJ엔터테인먼트.

나는 작은 사옥을 올려다보며 혀를 찼다.

“그래도 용돈은 끊기면 안 되지.”

나는 옷 매무새를 다듬고 정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들어가시면 안 돼요!”

경비 아저씨가 나를 막아섰다.

그래, 연예기획사에 팬들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곤 하니까, 이렇게 막아야지.

나는 아저씨께 고개를 꾸벅 숙이곤 말했다.

“저 오늘부터 매니저로 출근하게 됐어요.”

“이름이 어떻게 되시는데?”

“박한울이요.”

내선 전화를 든 아저씨가 누군가와 통화를 하자, 안쪽에서 직원 한 명이 걸어왔다.

“박한울 씨?”

“네. 박한울입니다.”

“잠시 이쪽으로.”

그를 따라, 회사 안으로 무사히 들어가고, 나는 인사팀이 있는 사무실로 올라갔다.

‘그럭저럭 괜찮네.’

회사에 온 것은 이번이 처음.

나는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인사팀 직원과 함께 작은 미팅룸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대뜸 표정을 굳히곤, 엄중하게 경고의 말을 내뱉었다.

“이미 말씀을 들으셨겠지만, 사내의 질서를 흩트리는 것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대표님 아들이라는 건 밝히지 마시라는 말씀입니다.”

이미 어젯밤, 아버지께 귀에 피가 나도록 들었다.

낙하산인 거 티 내지 마라, 철없이 행동하지 마라, 아버지 얼굴에 먹칠하지 마라, 직원들한테 함부로 하지 마라 등등.

나는 한량이었을지언정, 망나니는 아니다.

사고를 친 적도 없으며, 예의를 모르지도 않는다.

대기업 로열 패밀리면 천하가 내 발 밑인 줄 착각할 수도 있으나, 2티어 기획사 대표 아들이 그럴 리가 있겠는가.

나는 직원의 말을 경청하며 꼬박꼬박 대답했다.

이런 내 태도에 안심했는지, 조금은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소속팀은 저희가 결정했습니다. 한울 씨는 매니지3팀 소속으로 근무하게 될 겁니다. 그쪽 로드가 이틀 전에 도망가서요. 괜찮으시죠?”

팀에 대해 아는 게 없어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이 회사의 대표라 해도, 내가 회사 내부 사정에 대해 아는 건 아니니까.

“네, 알겠습니다.”

3팀에 대한 설명, 매니저의 직무, 회사를 다니면서 알아야 할 규칙 등.

많은 걸 머리에 쑤셔박고서는 미팅룸을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간 곳은 3팀 사무실이 아니었다.

“오늘은 배우 오디션이 있는 날입니다. 거기서 간단한 업무부터 도우시면 될 겁니다.”

그러니까, 잡일부터 하라는 말이었다.

나보고 심사를 보라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우리는 회사 내 오디션장에 도착했다.

연습실에 카메라, 의자, 테이블만 있을 뿐이긴 하지만.

“한실장님!”

인사팀 직원이 누군가를 불러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통통한 뽀글머리 아저씨, 한실장.

얘기를 들어보니 저 사람이 내 직속 상사인 듯했다.

인사팀 직원은 내가 낙하산인 걸 티가 나지 않게 아주 상세한 듯 허술하게 얘기를 꾸며내고 있었다.

아직 다른 건 몰라도, 이 사람 능력은 꽤 좋은 것 같네.

“안녕하십니까! 신입 매니저 박한울입니다!”

“어, 잘 부탁해. 이번엔 좀 오래 갔으면 좋겠네. 한울 씨, 한울 씨는 혹시 그만두더라도 무조건 연락하고 그만둬야 돼. 알겠지? 막 갑자기 연락두절되고 도망가면 안 돼?”

“네.”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지만.

용돈을 받으려면 일해야지.

어쩔 수 없다.

이제 내 인생에서 한량생활은 끝난 거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하필 바쁘다고 소문난 매니저라니, 차라리 지금이라도 구직활동 하겠다고 할까?

뽀글머리 아저씨, 아니 한실장님은 손목시계를 보고는 말했다.

“한울 씨는 이제부터 밖에 나가서 다른 직원분들 도우면 될 거야.”

“네.”

오디션 지원자들에게 번호표를 나눠주거나, 명단을 체크하거나, 화장실을 안내하거나, 정수기를 안내하거나, 흡연 구역을 안내하거나.

오디션이 시작되기 전에 내가 한 일은 그러한 것들이었다.

이것도 만만히 봐서는 안 될 만큼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일이지만, 그래도 긴장은 되지 않았다.

여기 정말 꽃밭이었거든.

‘진짜 이쁜 사람들 왜 이렇게 많냐.’

잘생긴 사람들도 많지만, 그건 내 관심 밖.

어디 가서 ‘연예인 한 번 해봐!’라고 수십 번은 들었을 만한 사람들이 여기에 전부 다 모인 듯했다.

물론, 대사를 연습하는 모습들을 보아하니, 재능들은 죄다 고만고만한 것 같았지만.

그렇게 잡일··· 아니, 업무를 하다 보니 어느새 오디션 시간이 임박했다.

그리고 직원들로 보이는 이들 몇몇이 아버지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상황.

나는 지금에서야 홍길동의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는 내가 일하는 모습을 흘깃 보더니, 심히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며 나를 지나쳤다.

내가 일하는 게 그리도 좋으신 건지, 아니면 집에서 밥만 축내던 식충이가 마침내 일하는 걸 보니 고소하신 건지.

아무튼 퇴사하고 싶은 마음이 벌써부터 샘솟고 있었다.

‘역시 한량 때가 좋았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어제.

나는 건너선 안 되는 강을 건너고 만 것이다.

‘아, 담배 땡겨.’

방금 나를 지나친 지원자의 몸에서 담배 냄새가 풀풀 풍겨와서 더욱 그런 걸지도 모른다.

나는 이 복도에서 모든 걸 진두지휘하던 직원에게 물었다.

“혹시 흡연 좀 빨리 하고 와도 괜찮을까요?”

“네, 빨리 다녀오세요.”

다행히 그리 빡빡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명단을 보니, 어차피 한두 시간으로 끝나지도 않을 거라서.

그렇게 건물 뒤편의 흡연구역으로 이동하는 도중.

나는 매우 특별한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주차된 자동차들 사이에 쪼그려 앉아있는 여자의 모습.

그녀는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그리고 중간중간 실성한 듯한 헛웃음을 터뜨리며 대사를 내뱉고 있었다.

“어쩌면 사랑이란 거 다 개구라 아닐까? 그렇잖아. 나만 안 되는 게 말이 안 되잖아. 세상 사람들 다 하는데 나만? 나만 안 된다고? 사실 영화 트루먼쇼도 나한테 주는 힌트 같았던 거야. 어쩌면 날 농락하고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 원래 사랑이라는 건 없는데, 세상이 전부 날 속이는··· 아, 잠깐. 이거 눈물 아니다?”

불만을 맛깔나게 늘어놓으며 코믹 연기를 하는 그녀의 뒤로 후광이 비치는 듯했다.

온몸에 번개가 관통한 듯 짜릿짜릿했고, 머릿속에 섬광이 스쳤다.

‘쟤는 된다!’

눈이 번쩍 뜨일 만한 미모, 그리고 그보다 더욱 광채가 나는 재능.

나는 직감했다.

우리 회사는 오늘 미래의 탑스타를 얻는다는 것을.

‘좋네.’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일은 하기 싫지만, 그래도 아버지 회사가 잘 되면 좋으니까.

나는 재차 발걸음을 재촉했다.

얼른 담배 피고 들어가봐야 했다.

***

오디션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와중이었다.

이제 이곳은 꽃밭이 아니다.

꽃은 오로지 한 송이의 고귀한 꽃만 있을 뿐, 나머지는 잡초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오직 아까 자동차 사이에서 쪼그려 앉아 연기 연습을 하던 그녀만을 집중해서 관찰했다.

그리고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덜덜덜덜-

손에 들고 있는 대본이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다.

몸은 한껏 경직돼 있고, 입술은 자꾸 메마르는지 연신 혀로 핥고 있다.

‘···어라?’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든다.

혹시, 만약에.

그녀가 긴장으로 인해 아까의 실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리고 오늘 오디션에서 떨어진다면?

넝쿨째 굴러들어온 호박을 통째로 다른 회사에 넘기게 되는 꼴이다.

지금의 긴장이야 어쨌건, 저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탑스타로 성장할 재목이니까.

‘오디션을 한 수십 번쯤 보면 이런 긴장도 별거 아니게 느껴지겠지.’

그렇게 긴장을 안 하게 됐을 때 그녀를 채가는 이는 로또 1등 따위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큰 행운을 움켜쥐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지원자들과 직원들이 한가득 모인 이곳에서 그녀의 긴장을 풀어주겠답시고 대화라도 시도해보면.

오히려 시선이 쏠려 더욱 긴장을 집어먹게 될지도 모른다.

방법은 하나.

‘아버지를 믿어봐야지.’

아버지도 한 안목 하시니까.

설마··· 못 알아보겠어?

저렇게 반짝반짝 빛나는 인재를?

< 천재 발견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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