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48 탄생 =========================
10월 중순이 되었다. 단풍이 붉게 물든 가을 날씨 속에서 한국은 어느 날이나 마찬가지로 유유히 흘러가고 있는 중이었다. 진한그룹의 성장으로 경제는 살아나고 있었고, 사람들은 서서히 힘들었던 기억을 잃고 열심히 살아가려고 하고 있는 중에 있었다. 그렇게 다들 일상을 보내고 있는 그때 다급히 차를 몰고 밤의 거리를 달리고 있는 모습이 있었다.
끼익! 부우웅!! 강한 엔진음과 함께 빠르게 달리는 차량 안에는 고통이 서린 신음성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으윽..!”
“괜찮아?!”
당황함이 뒤섞인 신우의 말소리가 들렸다. 그랬다. 차를 몰고 밤거리를 질주하고 있는 건 신우였다. 그리고 이런 신우의 옆에는 배가 산만하게 불러온 상태로 입술을 잔뜩 깨물고 고통을 참고 있는 예린의 모습이 있었다.
“괜..괜찮으니까. 차 좀 살살 몰아. 아직 진통이 시작 된지 얼마 안 됐어..”
“그. 그렇지.”
신우는 이미 한번 경험했던 일이지만 자신도 모르게 당황했다는 마음에 애써 호흡을 가다듬으며 진정하려 애썼다. 이런 신우를 보며 예린은 배에서 느껴지는 진통에 눈을 찡그리고는 신우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 좀 잡아줘.”
“알았어.”
신우는 손을 내민 예린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손끝에서 떨림이 전해졌다. 막상 진통이 시작되니 무서운 모양이었다. 이런 예린의 떨림을 느끼며 신우는 안심시키려 노력했다.
“걱정 마. 무사히 낳을 수 있을 거야. 진짜 위험하면 타노가 마법을 사용해 도울 거고, 그럼 위험은 전혀 없을 거야.”
이런 신우의 말에 예린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내 신우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런 상황 한번 겪었지? 어땠어?”
이런 예린의 질문에 신우는 그때당시 열악했던 환경을 생각하면서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땐 많이 열악했었어. 거긴 중세시대나 마찬가지였거든. 먼지도 많고, 심지어 의료시설조차도 전혀 없었어.”
“나 많이 힘들었겠다.”
예린은 기억에 없는 자신이 중세시대에서 아기를 낳았던 모습을 생각했다. 참으로 열악하고 힘겹게 아기를 낳는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졌다. 그때에 비하면 참으로 좋은 환경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던 예린은 이내 생각났다는 듯 챙겨온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냈다.
“어디 전화하게?”
“응. 아빠하고 엄마에게 알려야지.”
“나중에 내가 전화해도 되는데.”
“퍽이나. 아마 정신없어 연락도 안할걸. 어느 정도 정신이 있는 지금 내가 전화하는 게 나아.”
그렇게 장난스럽게 말하던 예린은 진통을 느끼는지 살짝 눈을 찡그리고는 이내 엄마에게 전화를 넣었다. 잠시 신호가 가고 곧 전화를 받은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나 지금 병원가고 있어. 무슨 일은. 애기 낳으려고 그러지. 전에 애기한 그 병원 알고 있지. 아직 시간 있으니까. 천천히 와야 해”
잠시 엄마와 통화를 하던 예린은 그대로 전화를 끊으면서 이내 자신을 보고 있는 신우를 보고 말했다.
“아빠하고 엄마하고 온데.”
“잠들 시간이었을 텐데.”
“그래도 전화해야지. 안하면 나중에 왜 안 불렀냐며 도리어 화를 내실 걸.”
“그것도 그러네.”
그렇게 말한 신우는 계속해서 차를 몰았고, 그대로 군포시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고 병원 앞에 도착한 신우는 그대로 차에서 내려 예린이가 타고 있는 보조석 쪽으로 달려가서는 그대로 문을 열고 예린이를 부축해 내리게 했다. 그때 그들을 향해 휠체어를 끌고 오는 간호사의 모습이 보였다.
이미 오기 전 연락을 했기에 간호사가 휠체어를 끌고 나왔던 것이다. 예린은 이런 모습에 쓰고 있던 모자와 마스크를 더욱 깊게 눌러쓰고는 그대로 휠체어에 앉았다. 휠체어를 끌고 가는 건 신우였다. 그렇게 산부인과로 들어선 그들이었고, 곧 기다리고 있던 여의사의 안내로 병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진통은 계속 될 거예요. 진통시간은 사람마다 다르니까 경과를 보고 분만실로 이동할게요.”
“네. 선생님. 부탁드릴게요.”
예린은 여의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부탁드린다고 말하고는 이내 신우를 보고 손을 뻗어 손을 잡아달라고 말했다. 이런 예린의 손을 꼭 잡는 신우는 너무 걱정 말라는 눈빛을 보이며 말했다.
“곧 우리 딸이 태어 날거야.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착한 우리 딸이.”
“응. 보고 싶어.”
보고 싶다고 말하는 예린의 눈빛은 아련함이 서려있었다. 그동안 계속해서 신우에게 딸의 이야기들을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더욱 더 보고 싶은 마음은 컸다. 그렇게 신우와 예린이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이었고, 이런 둘의 모습에 여의사와 간호사는 자신들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 흘렀고, 진통시간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렇게 1시간이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까. 병실로 예린의 부모님이자 신우에게 장인, 장모가 되는 분들이 들어오셨다. 신우는 예린의 손을 잡은 상태로 두 분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이런 신우에게 두 사람은 앉아 있으라는 듯 손짓을 하고는 이내 진통으로 땀이 흥건한 예린을 향해 걱정스럽게 물었다.
“괜찮니? 예린아?”
“많이 아파보이는 구나.”
“아빠. 엄마. 아직 괜찮아요..”
아직은 괜찮다는 말에 두 사람은 조금은 안심하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도 진통이 계속되는 예린이를 지켜보는 그때 이런 신우를 향해 말을 거는 예린의 아빠였다. 그는 앞으로의 일이 걱정인 모양이었다. 애기도 태어날 것이고, 그럼 그동안 미뤘던 결혼도 할 텐데. 속도위반으로 사람들이 딸을 어떻게 볼지가 걱정이었다.
“이제 아기도 태어나고 앞으로 어떡할 텐가?”
“예린이가 원하면 곧바로 결혼할 생각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걱정되지 않는가?”
“사람들이 어떻게 보던 저희가 신경 써야 할까요? 다른 사람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네가 그렇게 생각해도 주변의 반응은 많이 다를 거네. 예린이는 연예인이 아닌가. 아마 이리저리 말들이 오갈 테고, 그럼 예린이가 상처받을 거네.”
“걱정 마십시오. 예린이에게 상처 줄 사람이 있다면 제가 가만두지 않은 테니까요.”
허허허. 신우의 장인이자 예린의 아빠인 그는 사위가 될 신우의 성격이 전부터 느끼지만 보통사람과 무척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설적이고 거침이 없었다. 이런 성격은 사회생활에 있어서 문제가 되는 성격이겠지만 그래도 딸만은 끔찍이 위하는 모습이었기에 적잖게 안심이 되었다. 부모로서 딸을 끔찍이 위하는 사위가 싫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여보.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해요. 지금은 아기가 먼저잖아요.”
옆에서 신우의 장모가 그렇게 말하자 그제야 장인어른인 그는 헛기침을 하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 그나저나 어서 빨리 내 손녀가 너무 보고 싶구나.”
“저도입니다. 장인어른.”
신우의 말에 역시 그렇지? 라는 얼굴을 하는 장인어른이었는데, 둘 모두 손녀와 딸을 어서 봤으면 좋겠다는 얼굴들이었다. 앞으로 둘 다 얼마나 신예를 끔찍이 아낄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한편 이런 둘의 모습을 보던 예린과 예린의 엄마는 미래가 보인다는 듯 고개를 흔드는데, 그때 예린은 윽..! 하면서 신음성을 냈다. 다들 이런 예린의 모습에 황급히 예린을 챙기기 시작했다.
“고통이 심해지니?”
“가. 간호사를 불러야겠소.”
“제가 가겠습니다.”
신우가 행동에 먼저 옮겼고, 그 뒤를 따라 후다닥 병실을 나가는 장인어른이었다. 이런 둘의 모습에 예린은 고통 속에서 웃음이 나왔다. 이런 예린의 웃음에 엄마인 그녀도 웃음이 나와야 했다.
“어떻게 점점 두 사람 닮아가는구나?”
“쿡쿡.. 그러게요..”
“웃으니 다행이구나.”
“저도 애 낳을 때 웃을 줄 몰랐어요. 엄마. 엄마도 이렇게 고통 속에서 절 낳은 거죠?”
“그럼. 나도 널 나을 때 이렇게 진통과 고통을 느꼈단다. 그나저나 벌써 그게 21년 전이구나. 시간도 참 빠르지.”
“언젠가 저도 이렇게 엄마처럼 딸 옆에서 아기를 낳는 걸 지켜보겠죠?”
“물론이지. 시간이라는 게 자식을 키우다보면 언제 그렇게 시간이 흐르게 됐냐는 듯 흘러버리니까.”
“엄마 사랑해요.”
“애는 뜬금없이 무슨 사랑타령이니.”
갑작스럽게 사랑한다는 딸애의 말에 그렇게 말하던 엄마였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은지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예린은 더욱더 큰 진통을 느끼자 으윽! 하며 신음성을 내뱉어야 했다. 그때 양수까지 터졌는지 다리사이로 흥건히 물기가 흘러나왔다. 이제 슬슬 아기가 나오려는 징조 같았다.
어느새 신우와 신우의 장인어른이 간호사를 데리고 병실로 들어왔고, 양수까지 터진 모습을 본 간호사는 이내 예린의 다리사이를 살펴보고는 생각보다 너무 빠르다는 말을 하고는 서둘러 분만실로 이동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는 예린을 분만실로 이동시키려는 행동을 보였다.
그렇게 예린이 분만실로 이동했고, 곧 뒤따라 온 신우와 장인, 장모의 모습을 본 간호사가 신우에게 고개를 향하며 말했다.
“남편 분께서도 함께 들어가실 테니 소독하고 준비된 소독복을 갈아입고 들어오세요.”
이런 간호사의 말에 신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키는 대로 몸을 소독하고 가운과 같은 소독복을 입고서 분만실 안을 들어갔다. 그렇게 신우가 분만실로 들어갈 그때 예린은 점점 배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커지자 비명을 지르고 있는 중이었다.
“남편 분. 아내분의 손을 꽉 잡아주면서 안심시켜 주세요.”
언제 온 건지 여의사가 신우에게 그렇게 말하자 신우는 서둘러 예린이의 손을 잡았다. 이런 신우의 손길에 예린은 손에 힘을 꽉 주었고 신음성이 뒤섞인 비명을 토해야 했다.
“으으윽!! 아악!”
“괜찮아.. 괜찮아.. 내가 옆에 있잖아.”
신우는 괜찮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자신이 너무 무력하다고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이런 일을 한번 겪었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자신이 너무 미안할 수밖에 없는 신우였다.
그렇게 신우가 예린을 잡으며 예린이를 안심시키고 있을 때 여의사는 조금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뭔가 잘못된 건가 싶을 수도 있지만 오히려 잘되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머리가 조금씩 보이면서 조금씩 아기가 나오려는 모습인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불과 병실에 온지 3시간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심지어 양수조차도 30분 전에 터졌는데, 아기가 나오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통상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역시 다른 아기들과 달리 아기 심장이 우렁차다는 것부터가 달랐던 것일까? 너무 빠른 속도이기에 여의사도 당황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는 중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여의사의 당황함 속에서 계속해서 예린의 자궁 문이 열렸고, 신예의 머리가 조금씩 나오면서 세상 밖으로 빠져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아아악!! 아아악!!”
“조그만 더! 머리가 거의 다 나왔어요! 예린씨! 좀 더 힘을 더 주세요!”
“크으윽..!!”
예린은 신우의 손을 잡으며 계속해서 배웠던 아기를 낳을 때 해야 하는 호흡을 계속해서 하며 배에 힘을 주어야 했다. 그렇게 예린의 노력이 계속되었을까. 순간 예린은 뱃속에서 먼가가 빠져나가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드디어 태어난 것이다.
“어머?!”
여의사의 놀란 음성이 터져 나왔다. 막 예린의 뱃속에서 나온 아기의 입에서 양수가 흘러나온 것이다. 기존에는 엉덩이를 쳐서 아기가 양수를 뱉게 만들어 기도를 확보해야 했는데, 그런데 태어난 이 아기는 스스로 양수를 뱉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도 기이한 일이었다.
“세상에? 아기가 스스로 양수를 뱉어내다니..?”
학계에도 보고되지 않는 일에 놀라던 여의사는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얼른 탯줄을 묶고 자르고는 아기를 씻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몸을 씻기고 보온담요까지 덮어 예린을 향해 데려가는 여의사는 곧 예린의 모습을 보고는 놀란 얼굴을 했다.
“흑흑... 흑흑....신우야.. 엉엉~!”
울고 있는 예린의 모습과 이런 예린의 등을 토닥이며 꼭 안아주고 있는 신우의 모습이었다. 뭔가 아기가 태어난 것에 기뻐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흑흑.. 나 기억났어. 다 기억났다고..”
“축하해. 예린아.”
“신우야. 엉엉!”
환하게 웃으며 말하는 이런 신우의 모습을 본 예린은 너무도 꺼이꺼이 울었다.
그랬다. 예린은 딸 신예를 낳고 기억을 모두 되찾게 된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딸 신예를 낳기 위해 기억을 잃었던 것이었고, 신예가 태어난 순간 기억을 되찾게 된 건 당연한 순리일지 몰랐다.
“저기 아기는?”
그때 여의사가 보온담요에 싸인 신예를 내밀었고, 이런 모습에 예린은 울면서 이런 예린을 받아 들고는 너무도 소중한 보물마냥 꼭 안았다. 이런 예린의 곁에서 신우도 꼬물꼬물 입을 움직이는 신예의 모습을 보면서 환하게 웃어야 했다.
“신예야.”
“신예야.”
딸의 이름을 부르는 둘의 모습은 참으로 많은 의미가 담겨있었다. 둘은 기억하고 있었다. 무척 짧은 시간이었지만 함께 보냈던 시간들. 그리고 이런 딸이 스스로 희생했던 순간을 말이다. 둘은 다시 태어난 딸의 모습을 보고는 이제 두 번 다시는 딸 신예를 잃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함께 모여 행복하게 살길 기도했다.
그렇게 신우와 예린이 드디어 태어난 딸 신예를 안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겠다는 기도를 하는 그 순간 군포시 하늘 위에는 갑작스럽게 무지갯빛 오로라가 밤하늘을 채우고 있었다.
사라라락~
다들 이런 모습을 발견하고는 놀랄 얼굴들을 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오로라가 하늘위에 나타났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무척이나 축복과 같은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하지만 과연 아름다운 광경만 이었을까? 무지갯빛에서 흘러나오는 알 수 없는 미지의 기운은 대지 아래로 흘러 내렸다.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을 이 미지의 기운은 타노의 탐지에도 걸리지 않았다.
역시 세상일이라는 것은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런 현상은 과거로 돌아갈 방법을 제시했던 기하란 존재조차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 이 세계는 스스로 또 다른 방법으로 세계를 유지하려고 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 방법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아직까지 미지수였지만 어쨌든 대지 아래로 흘러가는 미지의 기운들은 대지 아래로 내려와서는 어떤 특정한 극소수의 존재들의 몸속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바로 갓 태어난 아기들의 몸속이었다. 그렇게 갓 태어난 아기들의 몸속에 스며든 미지의 기운들은 조용히 때를 기다리듯 잠복기에 들어가고 있었다.
신예의 탄생은 또 다른 변화의 시작이었던 모양이었다.
============================ 작품 후기 ============================
드디어 신예가 태어났습니다. 그나저나 날씨 참 덥네요. 더워서 잠도 많이 못자겠네요. 평균 잠자는 시간이 4시간 정도랄까요. 역시 잠을 못자니 자꾸 연참을 못하는 모양이에요. ㅎ 아무튼 다들 재밌게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