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08 신우 만나다. =========================
한중구의 손에 들려있는 서류에는 신우에 대한 신상정보들이 적나라하니 나와 있었다. 그리고 그의 딸인 수아가 신우와 만나고 있다는 사실까지 나와 있는 상황이었다.
“요즘 갑자기 행동이 달라 보인다고 했더니 이 남자와 만나고 있었던 것인가?”
일주일 전부터 하루아침에 행동이 변했던 딸이었다. 안하던 치장과 쇼핑을 하고, 심지어 매일을 자신과 지엄마에게 붙어 다녔던 딸이었다. 왜 이렇게 딸이 갑자기 변한 건지 몰랐던 한중구로서는 이 신우란 남자가 그 변화의 주된 이유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야 했다.
“그런데, 차예린씨에 관련된 부탁은 왜 한 거지?”
얼마 전 자신에게 갑자기 여가수 차예린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부탁해 왔었다. 평생 제대로 부탁을 하지 않았던 딸의 부탁이었기에 한중구는 들어줄 용의가 있었다. 솔직히 말도 안 되는 연예인 것도 아니었고, 차예린이라면 제품광고를 찍어도 전혀 문제가 없었던 것도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딸이 왜 차예린에 대해 부탁을 한 건지 의문이 드는 그때 이런 그를 향해 봉투를 건넸던 비서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어왔다.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라니? 뭘 말인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모습에 비서는 당연한 게 아니냐는 얼굴로 말했다.
“예? 당연히 수아아가씨와 그 놈을 때어놓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그런 자 따위가 수아아가씨를 넘본단 말입니까. 고아에다가 알바로 삶을 연명하는 자라니. 당연히 아가씨와 절대 맞지 않는 놈입니다.”
상당히 신우에 대해서 독설을 내뱉는 비서의 말이었다. 솔직히 말하는 비서는 신우에 대해 마음이 안 들었다. 오랜 시간을 엘리트 코스를 밞아오며 죽어라 공부를 해왔던 그였다. 그리고 그 노력의 결과물이 진한그룹의 입사였다. 그렇게 10여년을 보냈다. 이제 그는 회장의 곁에서 비서로서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디서 굴러온 놈인지 모를 고아놈이 회장님의 하나뿐인 외동딸인 수아아가씨와 만나다니 너무도 부럽고 질투가 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신우에 대한 독설을 내뱉는 비서의 말에 한중구 회장은 살짝 인상을 찡그려야 했다.
“자네 말이 심하군. 어쨌든 딸이 지금 만나고 있는 남자일세. 그러니 그런 말은 삼가도록 하게.”
“아. 아니 회장님. 설마 서로 만나고 있는 걸 허락하신다는 말씀이십니까?”
비서로서는 이건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어떻게 이런 만남을 허락할 수야 있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런 비서의 생각이 그렇든 말든 한중구 회장은 딸이 현재 남자를 만나고 있다는 사실에 크게 마음을 두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딸은 몸이 약했다. 그래서 그런지 제대로 된 학창시절을 보내지 못했다. 또래 애들이 관심가지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친구도 유일하게 최진영이라는 친구만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학창시절의 풋풋한 연예는 물론이고 여자애로서 예쁜 옷을 입는 것도 제대로 누리지 않았던 딸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런 딸이 한 남자를 만나고서 여자로서의 행동을 시작한 것이다.
한중구 회장으로서는 너무도 기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딸의 남자라는 말에 딸의 가진 아빠로서 조금 질투가 나지만 딸이 행복한 것이 우선인 것이다.
“딸이 좋다면 나야 상관없지. 흠. 한번 만나서 이야기를 해봐야겠군.”
그런. 비서는 한중구회장이 하는 말에 너무도 어이가 없었다. 회장이 이런 가벼운 사람이었다니 8년을 곁에서 모셨던 그로서는 회장에게 이런 면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어떻게 딸이 고아새끼를 만나는 걸 허락할 수 있지?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비서는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는 생각을 속으로 곱씹어야 했다.
비서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한중구 회장은 이대로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그대로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서 딸애의 전화번호를 찾았다. 그렇게 통화버튼을 눌렀고, 어느새 신호가 가면서 전화를 받는 소리가 들렸다.
“수아니?”
[아빠? 이 시간에 무슨 일이세요?]
“내가 이 시간에 전화도 못하겠니. 요즘 어떠니?]
[네? 뭐가 어떠냐니요?]
“하하. 다 알고 있단다. 남자 만나고 있다면서?”
이런 한중구 회장의 말에 수아는 순간 당황한 마음이 드는지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혹시 저 뒷조사 하셨어요!?]
“그건 아니고, 우연히 알게 되었단다. 자세한 이야기는 집에서 해주마. 그런데, 진짜 남자 만나고 있는 거니?”
[그. 그건. 아니에요..]
“그렇다는 말은 혹시 요즘 말로 썸이라는 걸 타고 있는 거니?”
[아. 아니에요.]
“뭐를 그렇게 빼니. 자세히 말 좀 해봐라. 내가 만나지 말라고 말하겠니.”
[그게. 사실 제가 좋아하는 거예요.]
“으응?”
한중구 회장은 딸이 좋아한다는 말에 조금 떨떠름한 표정이 되어야 했다. 지금 딸이 짝사랑하고 있다는 말인가?
[제가 혼자 그 사람을 좋아하고 있어요.]
“지금 네가 혼자 짝사랑하고 있다는 말이니?”
[그런 거예요.]
말을 하는 딸애의 목소리에서 조금 씁쓸하면서도 힘이 없는 말투였다. 한중구 회장은 조금 기분이 안 좋았다. 소중한 딸애가 짝사랑이라니 이건 좀 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이런 한중구 회장의 말을 듣고 있던 비서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짝사랑이라니? 그럼 그 고아놈을 지금 아가씨 혼자 좋아하고 있단 말인가!? 말도 안 된다는 마음이 들어야 했다.
“그 남자가 너 마음을 모르는 거니?”
[아뇨. 알고 있어요. 제가 좋아한다고 말했는걸요.]
“그럼 뭐가 문제인 거니? 널 안 좋아 한다던?”
[좋아하는 여자가 있어요. 그래서 제가 들어갈 자리가 없데요.]
“따른 여자가 있다는 거구나. 혹시 그 남자에게 네가 어떤 집안인지 말했니?”
[아뇨. 안다고 해도 소용없을 거예요. 그는 집안이 좋던 말든 상관하지 않는 사람이니까요.]
“허. 나는 조금 이해가 안 가는구나. 다른 여자가 있다고 하지 않았니. 그런데 왜 그런 짝사랑을 수아 네가 하고 있는 거니?”
[제가 좋아하니까요. 그 사람에게도 직접 말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거라고, 말려도 저 혼자 좋아할 거라고 말했어요.]
으흠.. 말을 하는 딸애의 목소리에서 확고한 신념이 느껴지자 말린다고 해도 그만둘 딸이 아니라는 사실에 한중구회장은 깊은 수심에 잠겨야 했다. 이런 그를 향해 이제 끊어야겠다는 수아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저 이제 끊어야겠어요. 지금 진영이를 만나러 가는 길이거든요.]
“아. 그래라. 집에서 보자구나.”
[네. 아빠. 사랑해요.]
“허허. 녀석도.”
확실히 예전과 달리 애정표현이 늘었다는 생각에 훈훈한 마음이 들던 한중구 회장은 이내 통화가 끊어지자 다시 수심에 잠겨야 했다. 짝사랑이라니.. 수아가 그런 짝사랑을 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한중구 회장이었다.
이런 수심에 잠긴 한중구 회장의 모습에 비서는 그저 어이없다는 마음으로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잠시 그렇게 수심에 잠겼던 한중구 회장이 순간 고개를 들면서 어이없어 하고 있는 비서를 보며 말했다.
“이 신우라는 남자의 연락처 좀 알아오게.”
“알겠습니다. 회장님.”
비서는 회장님의 표정이 살짝 굳어진 모습을 보고는 역시 그 고아놈에게 경고를 보내시려나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비서는 신우의 전화번호를 알기위해 회장실을 나섰고, 한중구 회장은 상당히 고민하는 표증을 지으며 일처리를 해야 했다.
* * *
슬슬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며 노을이 지는 초저녁때인 이때 군포의 한 병원에서 조금 떨어진 7층 규모의 상가건물 옥상위에서 신우가 여전히 저격총의 조준경을 통해 예린이가 있는 병실 안의 모습을 살펴보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신우의 모습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타노가 사용한 투명화마법으로 모습을 보게 할 수 없게 만든 상태였던 것이다.
-아무래도 오늘 하루종일 한 정밀검사를 통해서 임신사실이 알려질 것 같아? 임신사실을 알면 예린이가 많이 충격 받을 것 같은데.-
타노의 말에 신우는 조준경에 들어오는 예린이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상당히 많이 놀랄 것이다.
-내가 인터넷의 각종 정보들을 조합해 조사해 보니까. 소속사 사장이라는 놈이라면 예린이를 낙태 시키려 할 거야. 어떻게 할 생각이야?-
“당연히 막아야지. 만약 그렇게 행동 한다면 소속사 사장 놈을 죽여야지.”
소리 소문도 없이 깨끗이 죽여 버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신우였다. 이제 더 이상 사람을 죽이지 않고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하지만 예린이와 딸 신예의 문제만큼은 절대 망설이지 않고 죽일 생각인 신우였다.
-난리 날 텐데?-
“상관없어. 난리가 나든 말든.”
-역시 예린이와 신예의 문제만큼은 과감 없구나.-
“당연하지.”
그렇게 대답한 신우의 눈은 여전히 예린이의 모습을 살피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이런 신우의 호주머니에서 우웅~ 우웅~ 거리는 진동음이 들려왔다. 신우는 또 쓸 때 없는 광고전화인가 싶어 눈을 찌푸렸다. 한번 받았다가 계속 뭐라고 시끄럽게 말하는 걸 겪었던 경험이 있었기에 받지 않으려 했다.
-응? 이 전화 받아봐야겠는데?-
“누군데? 광고전화 아냐?”
-아니야. 내가 한번 번호를 역추적해서 누군지 살펴봤는데, 전화번호의 소유주가 한수아의 아버지였어.-
“한수아의 아버지?”
신우는 한수아의 아버지란 사람이 자신에게 전화했다는 사실에 의문을 느꼈다. 딱히 자신에게 전화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무슨 일로 전화한 거지?
-그 전화 안 받을 거야?-
“굳이 전화를 피할 이유는 없겠지.”
타노의 말에 그렇게 중얼거린 신우는 그대로 저격총을 내려놓고는 호주머니에 든 스마트폰을 꺼내서 받았다.
“전화 받았습니다.”
[자네가 김신우군인가?]
“그렇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자네. 내가 누군지 알고 그러나?]
“한수아 아버지 아닙니까?”
[그걸 어떻게 알았나? 자네 혹시 수아에게 내 전화번호를 들었나?]
“아뇨. 그냥 알았습니다.”
[음.. 자네 혹시 내 뒷조사를 한 건가? 내 뒷조사를 하는 건 쉽지 않았을 텐데?]
“안했습니다.”
[안했다고 하기에는 내 번호를 아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이상하긴 하군요. 하지만 뒷조사는 안했습니다.”
타노에 대해 말해줄 필요가 없기에 신우는 그저 뒷조사를 안했다고 말할 뿐이었다. 이런 신우의 단호박 같은 말에 한중구회장은 조금 어이가 없어야 했다.
“무슨 이유로 전화하였습니까. 할 말 없으면 끊으시죠. 전 바쁩니다.”
상당히 바빴다. 예린이를 계속해서 살펴봐야 했으니 말이다.
허. 거대 기업을 운영하는 자신에게 바쁘다고 전화를 끊으라고 말하다니 한중구 회장은 신우란 이 남자가 참으로 거리낌 없는 성격과 직설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자네 참 직설적이구만. 보통은 그렇게 말하지 않지 않나?]
“모르겠군요. 보통이 어떤 건지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아서.”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은 없구만. 나도 딱히 딸애를 위해 생판 처음 보는 남자에게 전화를 해본 적이 없으니까.]
“한수아의 문제로 전화한 겁니까? 말하시죠.”
[자네는 참. 휴, 그럼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네. 자넨 우리 수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좋은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자로서 말인가?]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라면 전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우리 수아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나?]
“아니요. 그녀를 일찍 만났다면 그녀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서로 좋아 했을 겁니다.”
[그런 건가. 먼저 만난 여자를 사랑하니까 받아드릴 마음이 없다는 거로군.]
“그렇게 아십시오.”
[으흠.. 자넨 내가 누군지 아는가?]
“아까 한수아 아버지라고 말했던 걸로 아는데요.”
[그것 말고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사람인지 말이네.]
“글쎄요. 제가 알아야 합니까?”
신우의 말에 한중구 회장은 자꾸만 직석적인 신우의 말이 익숙지 않다는 마음이 들어야 했다. 하지만 이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한 가지 희망을 생각하며 자신에 대해서 말하는 한중구 회장이다.
[진한그룹이라고 아는가?]
“압니다. 그걸 모르는 한국 사람도 있습니까.”
[안다면 말해주겠네. 내가 진한그룹의 회장인 한중구회장일세. 그리고 우리 수아가 내 하나뿐인 외동딸이자 진한그룹의 유일한 후계자지.]
“그렇군요.”
참으로 맥을 끊는 신우의 대답이었다. 그렇군요. 라니. 놀라는 기색도 없다는 사실에 한중구 회장은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알고 있었던 것인가? 그래서 일부러 이렇게 놀라지 않는 반응을 보인 것인가?
[혹시 알고 있었나? 내가 진한그룹의 회장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지금 놀라지 않는 건가?]
“지금 알았습니다. 놀라야 합니까?”
[딱히. 그렇진 않네만.. 자네를 도통 모르겠군.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아닌지..]
“뭘 생각하든 전 상관없습니다. 더 이상 할 말은 없습니까? 그럼 전화를 끊습니다.”
신우가 그렇게 말하며 전화를 끊으려 하자 한중구 회장이 다급히 이런 신우를 불렀다.
[자. 잠깐만 기다리게.]
“다른 할 말 있으십니까?”
[크음. 자네를 직접 만나서 보고 말을 하고 싶네.]
“바쁩니다만”
[나도 바쁘네. 시간 끌 것 없이 오늘 밤 당장 만나도록 하지. 자네를 직접보고 진솔한 대화를 하고 싶군.]
만나자고? 신우는 상당히 귀찮다는 얼굴이 되었다. 굳이 왜 한수아의 아버지를 자신이 만나야 하냐고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 이내 이번 참에 확실히 한수아와의 관계를 제대로 알리고 나중에 있을 귀찮음을 피하자는 생각으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만날 장소를 정하시면 시간과 장소를 문자로 전송해 주십시오.”
[알겠네. 잠시 뒤 보세.]
한중구 회장이 그렇게 말하며 통화를 끊자 신우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중얼거렸다.
“음식이 맛있는 곳에 약속장소가 잡혔으면 좋겠군.”
문뜩 어제 한수아와 제대로 마치지 못한 코스요리들이 생각 난 신우였다. 한중구회장과 만나다는 건 안중에도 없었다.
============================ 작품 후기 ============================
질질끌어서 나중에 만나는 것보다는 바로 만나는 걸로 했습니다. 그리고 늦어서 죄송해요. 재밌게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