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 의심(2)
* * *
"휴대폰이 안 켜진다고?"
"응. 아무래도 장을 본 뒤 AS센터에 가봐야 할 것 같아"
검은 화면에 휴대폰을 툭툭 건드리며 화장실에서 돌아온 은하에게 말했다.
'수리비야 뭐 아까 그 아이의 아빠가 명함을 건넸으니까 거따 청구하는 걸로 하고 문제는 수아인데...'
어쩌다 보니 수아에게 걸려 온 전화를 끊어 버리게 되었다.
때문에 내가 통화를 받지 못한 건 고의가 아닌 사고라는 사실을 말해 줘야 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연락처만 저장돼 있을 뿐 번호 자체는 알지를 못한 나였다.
'어떡하지. 엄마, 아니 아빠한테 연락이라도 해서 번호를 얻어야 되나'
그런데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될까? 내가 무슨 노예도 아니고 그런 것 하나하나 다 수아에게 보고를 하는 게 과연 맞을까?
작은 의문에서 비롯된 반항심은 어느새 빠른 속도로 확산이 돼 가며 나를 고민에 빠뜨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노골적으로 변화는 수아와 그 모습을 지켜만 보고 있는 나. 이러한 관계를 개선시키기 위해선 내가 어떻게 하느냐가 핵심이였다.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수만은 없잖아. 시간이 지나면 더 악화할 수도 있고'
"뭔 생각해?"
"어?"
은하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나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고 그런 내 모습에 은하가 머리를 긁적이며 나를 바라봤다.
"아니 아까부터 가만히 있어가지고... 휴대폰 고장 난게 그렇게 맘에 아프디?"
"... 아니 뭐 그냥... 그래서 과자는 다 골랐어?"
"어엉. 난 다 골랐어"
"그럼 이만 돌아가자. 나도 살건 다 샀으니까"
잠깐 사이에 카트안엔 과자가 잔뜩 쌓이게 됐지만 나는 별 생각 없이 카트를 끌고 계산대로 갔다.
그렇게 물건을 계산하고 택배 시스템까지 사용한 뒤 우리는 마트에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AS센터 간다고 했나? 내가 태워다 줄게"
집에 돌아오고 다시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하려는 내게 은하가 말했다..
"굳이 그렇게까지 안 해줘도 되는데..."
"차 있는걸 이럴 때 써먹어야지. 그냥 드라이브 한다 치고 같이 갔다 오자"
천진난만한 저 미소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AS센터까지 거리가 꽤 됐고 왠지 은하랑 함께 드라이브하면 복잡한 마음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될 것 같았다.
'그래 뭐 별일이야 있겠어? 연락이야 나중에 휴대폰이 수리되면 그때 하면 되는 거지'
부드럽게 도로위를 질주하는 차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었다.
***
"뭔 시발 3일이나 걸려..."
"에이 3일이면 존나 빠른 거지. 나 아는 사람은 휴대폰 수리하는데 일주일은 걸렸다고 하더구먼"
은하의 말에 나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AS센터를 갔더니 직원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3일 뒤에 다시 오라고 말했다.
즉 그렇다는 것은 3일 동안 수아의 연락을 씹어야 된다는 소린데 생각은 한참전에 정리가 됐지만 그렇다고 불안감까지 정리가 된 건 아니었다.
'... 진짜 별일 없겠지? 지금이라도 부모님께 번호를 얻어야되나?'
텁
"어? 야 나 피고 있는데..."
"에이 씨. 한 번만 피고 돌려줄게"
신나게 연기를 뿜고 있던 은하의 전자담배를 뺏어 입술에 가져다 댔다.
마음이 초조해지니 자연스럽게 니코틴이 마려웠다.
"아니 시발 그럴 거면 그냥 내가 하나 사주겠다고. 왜 자꾸 내껄 피는 거야"
"우리 사이에 니꺼 내꺼가 어딨냐? 그냥 같이 쓰는 거지"
도넛을 만들며 담배를 피는 내 모습에 은하가 포기했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후우우..."
폐속에 니코틴이 들어오는 걸 느끼며 머릿속을 비웠다.
언제부터인가 이렇게 한 번씩 전자담배를 피게 된 나였다.
물론 내 방에 걸린 패딩 속에는 아직 반갑이나 남은 연초가 있었지만 요즘 들어선 연초보단 전자담배를 피는 재미에 맛이 들려 버렸다.
"... 이건 또 뭔 맛이냐? 존나 맛없네"
"그거 이번에 새로 산 오이 맛인데"
'... 뭔 그딴 좆 같은 맛이 다 있어?'
불과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달달한 망고맛이였는데. 하여간 별 그지 같은 짓은 다하고 다닌다니까?
"... 그리고 좀 필거면 닦아서 펴라. 왜 자꾸 간접키스하려고 하는 거야"
"아 몰라. 너가 무슨 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그냥 대충대충 넘어가지 뭐"
나는 자연스럽게 탱크에 담긴 액상을 버리며 소다맛 액상을 집어넣었다.
"후우우... 맛이 얼마나 그지 같으면 오이맛이 빠지지가 않냐 시발"
"꼬우면 피지 말든가 이 씨. 그거 액상도 방금 넣은 건데..."
"지랄하지 말고 오이맛은 넣지마라? 혼자 쓰는 것도 아니면서 서로 간 배려심이 있어야지. 쯧"
내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노려보는 은하였지만 큰 신경은 쓰이지 않았다.
타악
'... 어?'
천천히 올라오는 니코뽕을 즐기며 다시 한번 전자담배에 입을 가져가려는 순간 은하가 잽싸게 전자담배를 뺏어갔다.
"야이 씨 피고 있는걸 뺐어가 무슨..."
"그 정도 폈으면 됐지. 그렇게 담배가 피고 싶으면 나가서 연초나 펴"
갈 곳을 잃은 손이 허망하게 공중에서 맴돌았지만 어림도 없다는 듯 은하는 내 쪽에서 멀리 떨어져 전자담배를 피었다.
"후우우... 그렇게 간접키스가 하고 싶으면 그냥 말하지"
아니 근데 이 새끼는 왜 자꾸 이상한 드립을 지껄이는 거야?
"이 새끼 뭐야 아까부터. 너 뭐 나랑 키스라도 하고 싶은 거야? 함 대줘?"
"콜록콜록...! 얘기가 왜 그렇게 되는 건데?!"
은하가 요란하게 기침하며 말했다.
자꾸 간접키스 간접키스 거리길레 지나가는 말투로 말을 했더니 반응 한번 맛깔나게 해주는 은하였다.
'뭐야? 얼굴은 또 왜 토마토마냥 시뻘겠지는 건데?'
하여간 정말인지 무슨 생각하고 다니는지가 궁금한 년이다.
"쓰읍... 진짜 나도 연초에서 전자담배로 갈아 타야 되나..."
어느새 뿌연 연기로 가득해진 거실에 베란다 창문을 열며 중얼거렸다.
"콜록...! 그래 제발 그래라. 내가 다 알아서 해줄 테니까 말만 하라고"
"흐음... 니껀 얼마쯤 하는데?"
"가격이나 그런 비용적인 문제들은 내가 다 내줄 테니까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정하기만 해. 빌려 쓰는 것도 한두 번이여야지"
힘없는 목소리로 말하는 은하에 나는 곰곰이 고민했다.
'어차피 담배는 못 끊을 것 같은데. 그럴바엔 차라리 전자담배를 피는 게 건강에 낫지 않을까?'
물론 전자담배에도 니코틴이나 발암물질 같은 건 존재하지만 그래도 연초보다는 훨씬 건강해 보였다.
"그럼 니꺼랑 비슷한 거로 하나만 구해다 줘"
"그래... 좋은 선택이다"
창문에서 들어오는 찬 바람에 은하가 몸을 바르르 떨며 답했다.
그 모습이 귀여워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3일후.
"와 진짜... 휴대폰 없는 3일이 이렇게 힘들줄은 꿈에도 몰랐네"
AS센터에서 말끔히 작동되는 휴대폰을 받고 얼굴에 부비부비 비빈 나였다.
그런 내 행동에 은하가 무슨 정신병자를 보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뭔 중독자 새끼도 아니고 아주 그냥 염병을 떠는구나"
"아가리 여물고 그래서 주희씨가 일하는 곱창집에서 친구들이랑 만나기로 했다고?"
"엉. 너 집에 데려다주고 난 바로 나갈 거야"
"그래. 잘 다녀와. 가서 술 마실거면 꼭 대리부르고"
차에 타기전 잠깐 근처 골목길에서 담배를 피며 우리는 수다를 떨었다.
그때 전자담배기기를 하나 구해 달라고 했더니 이튿날 바로 구해다줘서 그때 이후로 나는 연초를 끊게 되었다.
"후우... 연초피다 이걸로 갈아 타니까 진짜 계속 피게 되네"
"적당히 펴 시꺄. 그것도 엄연히 니코틴이랑 발암물질이 들어 있는 담배라고"
허이구 지는 나보다 더 많이 피는 주제에 충고는.
그 뭐야 옛날 순정만화에 보면 남자가, 아니지 이곳 기준으로 해야겠지? 뭐 어쨌든 여자가 담배를 피우면서 남자에게 '후 너는 이런 거 피지 마라' 이런 느낌으로 말한 건가?
'에휴. 지랄도 지랄하기 나름이지'
"쯧. 이제 그만 가자. 너 약속까지 1시간 남았다며"
뭐 그래도 예쁘니까 내가 봐줬다. 애초에 기분이 좋은 상태이기도 했고.
탁
골목길에서 빠져나온 나와 은하는 차로 돌아갔다.
"어디 보자~ 그동안 밀린 연락들 좀 확인하고..."
차에 탄 상태로 그렇게 휴대폰을 키고 그동안 밀린 연락들을 쭈욱 살펴봤는데.
[서은하 (78)]
'어?'
순간 갑자기 몸이 굳어 버렸다.
"뭐야? 휴대폰에 또 무슨 문제 생겼어?"
"... 아, 아니야. 잘 돌아가네"
"그럼 뭔데?"
"별거 아니야~ 운전이나 해 새꺄"
갑작스러운 내 모습에 은하가 의아해하며 말했지만 애써 표정관리하며 대답을 회피했다.
은하는 그런 나를 잠시 바라보다 다시 운전에 집중을 했고 나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휴대폰을 바라봤다.
'시발.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손발이 미친듯이 떨렸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떨리는 손으로 메시지를 눌렀다.
그리고 쭈욱 나열돼 있는 메시지를 읽으며 점점 입술이 메말라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진성아 어디야? 연락이 안 돼네...]
[무슨 문제라도 생겼어? 혹시 지금 통화하기 힘든 거야?]
[오늘도 휴대폰이 꺼져 있네... 혹시 몰라서 아저씨께 연락을 드려봤는데 아저씨도 연락이 안 된다고 하고...]
[진성아...]
...
...
[너 이사 갔어?]
이것이 은하가 보낸 마지막 메세지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