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 콘서트(2)
* * *
"입장하겠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길고도 길었던 시간 끝에 드디어 입장이 시작됐다.
"와 시발. 이제야 들어가네"
"형...! 욕 좀 하지 말라니까요...! 사람들이 쳐다보잖아요!"
아니 욕하는 것도 내마음대로 못 하나? 그리고 시발 이 추운 날씨에 1시간을 기다렸으면 욕이 나올 만도 하지. 앞에 있는 사람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잖아.
"됐고 빨리 들어가기나 하자. 이럴 줄 알았으면 옷 좀 따뜻하게 입고 오는 거였는데"
"에휴 걱정하지 마세요. 콘서트장에 들어가면 금세 더워질 테니까"
벌벌떠는 내 모습에 재현이가 주머니에서 핫팩을 건네주며 말했다.
'더워진다고? 난방이라도 잔뜩 틀어 주려나?'
이런 걸 와봤어야 알지 뭐 어쨌든 다른 사람들을 따라 나와 재현이도 티켓을 확인받은 뒤 안으로 들어갔다.
털썩
"어으으... 다리 아파 뒤질뻔했네"
"좀만 쉬세요. 어차피 여기서도 기다려야 되니까"
"기다린다고? 얼마나?"
"글쎄요? 정말 빠르면 40분 정도 걸리지 않을까요?"
허이구 시발. 40분이면 떡을 치겠네. 뭔 놈의 아이돌 공연하는거 하나 보기가 이렇게 힘드냐.
"그럼 난 좀만 잘 테니까 시작하면 깨워줘라?"
"목베개 드릴까요? 혹시 몰라서 하나 가져 왔는데"
"좋지. 빌려줘"
나는 재현이에게 받은 목베개를 목에 걸쳤다.
역시 경험자는 다른가 본지 별걸 다 가지고 다니는 재현이였다.
뭐 어쨌든 그렇게 세상 편한 자세로 눈을 감은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
"... 형 ... 형!! 일어나요!"
"... 어으?"
"콘서트 이제 시작됐다고요! 지금 잠잘 때가 아니예요!!"
눈을 감은지 5분밖에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시작이 됐다고?
[너에게로 다가가는 하얀 눈길처럼...]
"꺄아아악!!! 누나!! 사랑해요!!!"
순간 엄청난 환호 소리와 함께 길거리에서 몇 번 들어 봤던 노래가 흘러나왔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나는 앞에 있는 무대를 바라봤고 재현이의 말대로 라인식스의 멤버들이 무대에 서 있었다.
어벙한 표정으로 잠시 라인식스를 바라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를 보기 위해 휴대폰을 꺼냈다.
'세상에. 벌써 1시간이나 지났다고?'
잠이 덜 깼나 싶어 두 눈을 비비고 다시 시간을 확인했다. 하지만 몇 번을 확인해 봐도 시간이 바뀌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원래 몸이 예민해서 아무데서나 잠을 자지 못 하는 성격인데, 쥐 죽은 듯이 잠을 잔 내 모습이 어이가 없게 느껴졌다.
"형형!! 빨리 이거 같이 흔들어요!!"
"아니 뭘 이런 것까지..."
"이런 걸 하려고 콘서트를 온 거란 말이예요! 빨리요!!"
뭔 도라에몽 주머니도 아니고 재현이가 가방에서 야광빛이 맴도는 막대기를 억지로 내 손에 쥐어줬다.
"누나!! 여기 좀 봐줘요!!"
"꺄악! 방금 누나랑 눈 마주쳤어!!"
"..."
난리도 난리가 아니었다.
모두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미친 듯이 야광봉을 흔들어댔고 그중에는 재현이도 포함돼있었다.
'시발. 이거 군대에서 여자아이돌이 위문 공연을 왔을 때 느낌인데'
상상하고 싶지 않은 데자뷰에 나도 모르게 몸이 떨려왔다.
내가 보기엔 그때나 지금이나 딱히 다를 건 없어 보였다.
지이잉 징
"와아아아!!!"
첫곡이 끝나고 곧바로 다음 무대가 시작됐다.
천장에 설치된 레이저와 불빛들이 콘서트장을 화려하게 비췄고 준비된 퍼포먼스와 함께 라인식스 멤버들이 춤과 노래를 불렀다.
'... 뭐 그래도 볼거리는 많네. 역시 돈주고 파는 공연이라 그런가?'
나름대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왜 인기 아이돌의 콘서트 티켓팅이 빠르게 매진이 되는지도 알 것 같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이 이 정도 퀄리티에 공연을 한다는데 당연히 티켓팅을 하기가 어렵겠지. 팬이 아닌 나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퀄리틴데.
"형! 어때요? 생각보다 나쁘지 않죠?!"
"그래. 여까지와서 3시간 동안 기다림 보람이 있네"
"당연하죠! 이번 콘서트는 역대 최대로 공을 들인 공연인데요!!"
재현이가 흥분의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동안 재현이랑 지내오며 이렇게까지 흥분한 모습은 처음이었는데 라인식스를 좋아하긴 정말 좋아하나보다.
'새끼가 이런 열정으로 공부나 열심히 하지'
"혀엉...! 혹시 지금 속으로 저 욕한 건 아니..."
"와 와아아!! 라인식스 사랑해요!!!"
하여간 쓸데없이 눈치만 더럽게 빠르다니까.
애써 재현이의 시선을 외면하고 손에 들린 야광봉을 신나게 흔든 나였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 외쳐 줘!]
팍
"와아아아!!!"
"오빠들 사랑해요!!!!"
몇번째 공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또다시 공연하나가 끝이 났다. 그리고 잠시에 쉴 틈도 없이 새로운 반주가 연이어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여전히 높은 텐션을 유지하며 환호성을 질렀고 지칠 대로 지쳐 버린 나는 힘없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털썩
"헥헥... 더워... 이 사람들은 지치지도 않나..."
주변에서 팬들이 뿜어되는 열기 때문인지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래서 재현이가 더워질 거라고 말한 건가?'
문득 밖에서 재현이가 했던 대답이 떠올라 옆자리를 바라봤지만 그곳에는 한 명의 빠돌이만 있을 뿐이었다.
덥썩
잠시 숨을 고르며 나는 바닥에 놓여 있는 물통을 집었다.
이 세계가 역전 세계인 만큼 남자들의 체력도 현저히 줄었을텐데, 이놈의 아이돌 팬들은 체력이 남들보다 두세배는 되나보다.
'아이돌 팬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군대에서도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정말인지 대단한 사람들이다.
다시 한번 공연이 끝나고 약간의 텀이 발생했다.
"어 형. 왜 앉아 있어요?! 설마 벌써 재미없어진 거예요?"
자리에 앉아 있는 내 모습에 재현이가 깜짝 놀라해하며 물었다.
"아니야 시꺄. 그냥 힘들어서 쉬고 있는 거야"
"아니 뭘 했다고 벌써 힘들어해요. 얼마 하지도 않았는데"
내 말에 이해를 못하겠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 재현이였다.
"그런 열정으로 공부를 했어봐라. 상위권 대학은 다 씹어 먹고도 남았겠네"
"그거랑 이건 전제가 다르잖아요"
"아 몰라. 난 이제 앉아서 관람할 테니까 너는 열심히 뛰어 놀아라"
공연을 보러 왔는데 무슨 헬스장에 있는 기분이야. 유산소는 맨날 조지고 있는데.
[네에. 정말 좋은 무대였습니다. 역시 라인식스가 아닌가 싶군요!!]
혼잡한 분위기 속에서 이번 콘서트의 MC를 맡은 여자가 무대에 등장했다.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는 김에 이벤트 뽑기를 할 예정인데요 라인식스를 보러 온 여러분들을 위해 푸짐한 상품들이 준비돼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무대에 있는 전광판에 거대한 번호 뽑기 프로그램이 떠올랐는데 총 5번의 숫자를 뽑아 그에 맞는 팬들에게 선물을 준다는 방식이었다.
'이야 진짜 별의별거를 다하는구나'
물론 좋은 의미로 말이다. 아이돌도 사람인데 당연히 휴식 시간이 필요하겠고 그 짜투리 시간을 이벤트로 버는 것이니 팬들 처지에서도 딱히 나쁠 건 없어 보였다.
[여러분의 행운의 숫자는 티켓 뒷면의 적혀 있습니다! 상품은 라인식스의 신곡 앨범과 여러분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로 준비가 돼있구요...]
사람들은 모두 급하게 티켓을 꺼내 숫자를 확인했다.
MC의 설명이 끝나기가 무섭게 전광판의 적힌 숫자들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고 격양된 분위기 속에서 재현이가 내게 말을 걸었다.
"... 형. 형은 몇 번이에요? 전 1395번인데"
"흐아암...? 나? 내가 티켓을 어디에 뒀둬라..."
나는 길게 하품을 내쉬며 주머니를 뒤졌다.
혹시나 버린 건 아니나 싶었는데 티켓은 주머니 속에 고이 잠자고 있었다.
"여깄네. 어디 보자... 난 225번이라 적혀 있는데?"
"... 어휴 진짜 저거 한 번만 당첨됐으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은데"
"쯧쯧. 상식적으로 그게 되겠냐? 여기 사람이 몇 명인데 지금"
대충 눈으로만 봐도 사람만 수천이 넘어 보이는데 이게 확률이 몇퍼센트야?
한심한 표정으로 재현이를 바라봤다.
하지만 재현이는 나를 무시한 채 전광판에 온 신경을 쏟아 부었고 재현이 뿐만 아니라 모두 간절한 마음으로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 나만 빼고 말이지'
지금 내게 간절한 것은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것이었지 이벤트엔 전혀 관심이 없는 나였다.
빠바밤
[네! 첫 번째 숫자는 738번 입니다! 738번의 숫자 주인분은 티켓과 함께 무대 위로 나와주세요!]
요란한 효과음과 함께 MC가 전광판에 적힌 숫자를 불렀고 곳곳에선 아쉬워하는 탄성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렇게 첫 번째 당첨자가 세상을 다가진 표정으로 상품을 받아 갔고 숫자들이 뽑힘과 동시에 상품들도 하나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네. 이걸로 마지막 상품까지 모두 소진이 됐습니다. 여러분 아쉬우신가요?!]
"네!!!"
[그럼 마지막으로 우리 라인식스 누나들과의 포옹을 걸고 한 번 더 뽑아볼까요?!]
"와아아아아아아!!!!!"
엄청난 환호성이 콘서트장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숫자가 전광판에서 나왔는데.
[마지막 당첨분은 225번! 225번 분입니다]
...
...
"... 어라?"
그런데 그게 내가 뽑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