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 속 처녀 지키기-64화 (64/72)

〈 64화 〉 콘서트

* * *

쾅쾅­

"네 나가요"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는 현관으로 달려갔다.

아까 시켰던 배달 음식이 온 것이다.

빠르게 계산을 마치고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짱개 음식을 식탁으로 옮겼다.

"야 서은하! 밥 먹으러 나와"

나는 음식을 세팅하면서 은하를 불렀다.

덜컥­

"하아암... 존나 빨리 왔네..."

잠시 후 피로에 찌든 체 길게 하품을 내쉬며 은하가 터덜터덜 걸으며 방에서 나왔다.

숙취가 안 된 몸으로 대략 3시간 정도를 운전한 은하였다.

때문에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은하는 침대에 코를 박고 쓰러졌고 뭘 먹고 싶냐는 말에 짜장면이 먹고 싶다고 해서 짱개를 시킨 거였다.

"먹고 더 자. 오늘 고생 많았다 야"

"그래야겠다... 피로가 전혀 안 풀리네"

눈을 게스름히 뜬 채로 은하가 탕수육을 콕 집어 먹었다.

'이거 편의점에 가서 숙취 음료라도 사와야되나?'

하지만 은하 성격상 그런 건 줘도 안 먹겠다고 할 것 같은데.

"... 그런데 왜 하필 짜장면이냐. 나중에 더부룩할텐데"

"에이... 여잔 그런 거 신경 쓰는 거 아니야. 걍 먹고 싶은 거 먹으면 되는 거지"

허이구. 지랄도 이런 지랄이 없네. 뭐 어쨌거나 저런 반응을 보아하니 숙취 음료는 안사도 될 것 같다.

띠리링­

"...?"

그렇게 평범하게 식사하던 도중 누군가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뭐야? 재현이잖아?'

"나 전화 좀 받고 올게"

예상치 못한 등장에 의아해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하는 별 관심이 없었는지 계속 짜장면을 먹었고 나는 휴대폰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형! 잘 지냈어요?"

듣기만 해도 피로해지는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나왔다.

뭔가 위급한 일 때문에 전화를 한 줄 알았는데 다행히 그런 건 아니나보다.

"어 무슨 일이야."

"... 형은 여전하시네요. 좀 일부러라도 반갑다던가 그런 티라도 내주지..."

"됐고 그래서 왜 전화했는데"

"아 참. 형 이번 주 일요일날 시간 돼요?"

이번 주 일요일? 아니 뭐 시간이야 있기는 한데 갑자기 그건 왜 묻는 거지?

"되긴 하는데..."

[그럼 저랑 라인식스 공연 보러 가요!!]

"... 뭐?"

[사실 제가 라인식스 콘서트 티켓을 얘매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나는 벙찐 표정으로 재현이의 말을 들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이번 주 일요일 날 아는 지인이랑 라인식스 콘서트를 가려 했는데 지인이 급한 일이 생겨 못 가게 되었고 혼자는 가기 싫었던 재현이 아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돌리다가 그렇게 어느새 나까지 오게 되었다고 하는데....

'아니 근데 이 새끼 라인식스 팬이였어?'

이건 또 처음 알았네. 전혀 그런 거에 관심이 없을 줄 알았는데 실상은 빠돌이였다니.

[같이 가주실 거죠?]

"아니 근데 난 라인식스의 대해 별로 관심이 없는데?"

[그럼 이왕 이렇게 된 거 이번에 한번 관심을 가져 보면 되겠네요. 팬이 아니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걸요?]

재현이가 간절한 목소리로 같이 콘서트의 가자며 나를 설득했다.

얘가 얼마나 간절했는지 자기가 먹고 타고 다 해줄 테니 그냥 몸뚱어리만 가져오라고 말했는데 무조건 더치페이 아니면 내가 사주는 것만 처먹던 재현이가 처음으로 이런 태도를 보이니 참 감명이 깊어 가겠다고 답했다.

[정말이죠?! 그럼 제가 일요일날 다시 연락드릴게요!]

"그래. 알겠으니까 이제 전화 좀 끊자 이 미친놈아"

[헤헤... 진짜 형 밖에 없어요! 사랑해요 형]

사랑은 지랄. 장난인 건 알겠는데 남자 목소리로 사랑한다는 소릴 들으니 그렇게 역겨울 수가 없네.

뒤이어 이어지는 재현이의 말을 무시한 체 전화를 끊어 버리고 다시 식탁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이게 왠걸.

"... 아니 시발. 그 많은 탕수육을 그새 다 먹었냐..."

그 많던 탕수육들이 잠깐 통화를 하고 온 사이 텅 비어 버린 것이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은하를 바라보니 은하 역시 무안하긴 했는지 일부러 시선을 낮게 내렸다.

"... 허이구. 아주 그냥 떨어진 튀김 하나 없이 깨끗하게도 처먹었네"

"... 미안 해. 원래는 적당히 먹으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계속 손이 가가지고..."

"아니 뭐 미안해할 것까지는 아닌데..."

가시방석에 앉은 듯 어쩔 줄 몰라 하는 은하에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에 앉았다.

딱히 화가 난 건 아니었다. 그냥 지금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었을 뿐이지.

'잘 먹네. 다음번엔 탕수육을 만들어 줘볼까?'

컨디션도 좋지 않은 얘가 탕수육 하나 만큼은 기깔나게 먹어됐으니 이건 또 어떻게 보면 새로운 발견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다 불어 터진 짜장면을 먹으며 이따 탕수육 레시피나 찾아야겠다고 생각한 나였다.

식사를 끝내고 우리는 후식으로 과일을 먹었다.

"으하아암... 그런데 아깐 누구랑 통화한 거야? 되게 안 나오던데"

식곤증이 왔는지 은하가 길게 하품하면서 내게 물었다.

"별건 아니고 아는 후배가 일요일에 같이 콘서트를 보러 가자고 해서"

"콘서트? 그 뭐냐 아이돌 콘서트 그런 거 말하는 거야?"

"너도 알걸? 라인식스 콘서트를 가기로 했어"

열심히 깐 귤을 반으로 쪼개 하나는 입을 벌리고 있는 은하에게, 나머지 하나는 내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무슨 애새끼도 아니고 꼭 이렇게 까줘야만 과일을 먹냐'

하여간 손 하나 만큼은 더럽게 많이 간다. 이런 건 좀 스스로 까서 먹으면 얼마나 좋아.

"우물... 라인식스...?"

"응. 그래서 이번 주 일요일날 저녁은 따로 먹어야 될 것 같아"

"뭐 그건 상관없는데... 하필이면 왜 또 라인식스냐?"

은하가 뚱한 표정으로 접시에 담긴 사과를 콕 집었다.

저번에 내가 라인식스랑 은하를 비교해서 그런지 유독 라인식스에 대해서만 예민해 하는 은하였다.

"새끼가 쓸데없는 것에 질투하기는"

"뭘 내가 언제 질투했어?! 그냥 해 본 말인..."

"쌉치고 이거나 먹어 시꺄"

내 말에 발끈해 하는 은하에게 새로 깐 귤을 통째로 입에 넣어 주며 대답을 봉쇄시켰다.

입을 삐죽 내민체로 열심히 귤을 씹는 은하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옛날에는 이런 행동 하나하나가 존나 병신같이 느껴졌는데 이제는 그냥 귀엽기만하네'

이런 생각하는 걸 보면 나도 참 많이 변한 것 같다. 물론 그 변화가 나쁘게 느껴지지도 않았기도 하고 말이다.

인간의 마음을 갈대와도 같다는데 이건 갈대가 바람에 휩쓸린 게 아니라 아예 그냥 뿌리까지 뽑혀 완전히 반대로 가 버렸다.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극 비호였던 내가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게 만든 건지. 아마 세상에 마법사가 존재한다고 치면 은하 저 새끼는 멀린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럼 언제오는데?"

"나도 몰라. 콘서트를 가 봤어야 말하지. 가기 전에 밥은 다 차려놓고 갈 테니까 어디 배달 음식 같은 거 시키지 말고..."

"어유 알겠어 알겠어. 내가 애도 아니고 왜 계속 애취급만 하는 거야?"

투덜거리는 은하에게 조용히 방금 깐 귤을 건네줬다.

"자. 아~"

"아~"

아기새 마냥 은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신나게 귤을 씹어 먹었다.

'애새끼한테 애취급하는 게 뭐가 문제라고'

이런 걸 모성애, 아니 부성애라고 하는 건가? 뭐 어쨌든 은하는 모르겠지만 나로선 크게 불만은 없었다.

"우물우물... 귤이 다네. 원래 이렇게 달았나?"

"그럼 한 박스 더 살까?"

"그냥 두 박스로 사자. 금세 떨어질 것 같은데"

하이고 이 시발련. 아주 그냥 내 손깍지를 오렌지 색으로 물들이려고 작정을 하는구나.

어느새 껍질만 잔뜩 남게 된 바구니에 나는 베란다로 가서 넉넉하게 귤을 리필해 왔다.

***

마침내 약속의 일요일이 찾아왔다.

나와 재현이는 만나기로 한 역에서 만났고 꽤 과하게 꾸민 재현이는 나를 옷차림에 경악해했다.

"하아암... 뭐 콘서트라면 편안한 옷차림으로 가는 거 아니야?"

"아니 형. 아무리 그래도 그건 편해도 너무 편한 옷차림이잖아요!"

대충 쓴 모자에 대충 입은 츄리닝과 대충 입은 롱패딩, 그리고 대충 신은 캔버스화까지. 편하게 입고 오라고 해서 편하게 입고 왔걸랑 설마 내가 이렇게까지 편하게 입고 올지는 몰랐나보다.

원래는 슬리퍼까지 신고 오려 했는데 날씨가 날씨인 만큼 차마 슬리퍼를 신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찾다 찾다 캔버스화를 신고 왔는데 뭐 이것도 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 에휴 난 몰라요. 혹시나 가가지고 저 아는 척 하거나 그러지는 말아 주세요"

"어쭈? 이 새끼 봐라? 내가 누구 때문에 귀한 시간을 내서 나온 건데"

"지하철 왔다! 형 빨리 타요!"

짜식이 말 돌리는 꼬라지 하고는.

어쨌든 나와 재현이는 그렇게 지하철에 올라탔다.

콘서트장으로 가는 길을 모르는 나로선 재현이의 뒤만 졸졸 따라 다녔고 재현이와 얘기를 나누며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던 라인식스의 TMI를 알게 된 나였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어! 저기예요 형"

"..."

"다행히 줄이 그렇게 길지는 않네요. 저희도 빨리 가서 줄 서요!"

'저게 줄이 길지가 않다고 시발?'

나는 멍하니 콘서트를 보러 온 사람들을 바라봤다.

무슨 놀이동산도 아니고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 것이었다.

"앞으로 입장까진 대충 1시간 정도가 남았으니까..."

"...? 잠깐만. 대기 시간이 1시간이라고?"

"네. 조금 늦게 오기는 했는데 다행히 이 정도면 나쁘진 않은 것 같아요"

세상에 내가 지금 뭔 소리를 들은 거지? 저 줄은 1시간 동안 서야 된다고?

"... 재현아. 형이 갑자기 두통이 생겨서 그런데..."

"이야. 제가 마침 타이레놀이 있는데 어떻게 이거라도 드릴까요?"

"..."

재현이가 이미 다 예상했다는 말투로 가방에서 작은 종이 박스를 꺼내 흔들었다.

덥썩­

"어어..."

"자자. 지금도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저희도 어서 가서 줄 서요~"

'이런 니미'

어디 도망가지 못하게 재현이는 내 팔목을 강하게 잡고 길게 모여 있는 사람들 쪽으로 걸어갔다.

문득 라인식스를 욕하던 은하가 그립게 느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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