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 속 처녀 지키기-48화 (48/72)

〈 48화 〉 감기 몸살(2)

* * *

"... 진짜 가기 싫은데..."

"뭔 애새끼도 아니고. 지랄하지 말고 빨리 나갈 준비나 해"

"... 에이 씨"

내 말에 은하는 엉기적 거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뭔놈에 병원 한번 가기가 이렇게 힘든지. 나는 또 무슨 나쁜 트라우마라도 있는 줄 알았는데 그냥 병원냄새가 싫어서 안간 거라고...

"에휴... 진작에 병원에 갔으면 그렇게 쓰러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이미 지나간 일인데 지금이라도 적극적으로 행동해야겠지 뭐.

나갈 채비를 마친 은하와 함께 나는 집을 나섰다.

역시 집 주변에 인프라가 좋아서 그런지 바로 앞에 이비인후과가 보였고 옆에서 투덜거리는 은하의 손을 억지로 잡은 체 나는 병원으로 들어갔다.

"처음이시면 여기 종이에 인적 사항을 적어 주시고..."

집 앞에 있는 병원을 아예 처음 와봤다니, 하여간 쓸데없는 고집하고는.

그런데 맨날 여자 간호사만 보다가 이렇게 남자 간호사가 접수대에 있는 걸 보니 이건 또 조금 신선하네?

어쨌든 그렇게 인적 사항을 적고 은하의 차례가 올 때까지 우리는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서은하님. 2번 진료실로 들어가실게요"

"야야. 일어나. 지금 들어가야 돼"

"... 으으 가기 싫어"

마침내 간호사가 은하의 이름을 불렀고 은하는 입이 삐죽 나온 상태로 투덜거리면서 진료실로 들어갔다.

솔직히 은하 홀로 의사 선생님과 면담하는 것이 조금 불안하기는 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

철컥­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은하가 들어간 진료실에 문이 열렸다.

"... 뭔 인상을 그렇게 찡그리고 있어? 의사 선생님이 뭐래?"

"... 몰라. 몸 상태가 최악이라고 수액 하나 맞고 가래"

"그래? 잘됐네. 얼른 맞고 와"

"... 내가 이 나이 먹고 의사 한테 혼이 날 줄은 정말..."

신나게 의사 선생님을 욕하던 은하는 간호사를 따라 수액실로 들어갔다.

가기 전에 약 1시간 정도 걸릴 것 같다고 말을 했는데... 기다리는 동안 쪽잠이나 자면 될 것 같다.

"하아암..."

'아까 수업 들을 때도 계속 졸면서 들었는데... 그럼 은하가 돌아올 때까지 잠깐 눈이나 부쳐볼까?'

히터도 따뜻하게 틀어져 있었고 그대로 소파에 등을 기댄 체 눈을 감았다.

피로로 지쳐 있던 몸에 빠르게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각심은 남아 있어 결국 최종적으론 조는 상태에 들어가게 되었다.

'... 자세가 불편해서 그런가? 되게 답답하네'

"... 성아.."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도 들리는 것 같고...'

"... 유진성!"

"으어어?!"

아무래도 환청이 아니었나 보다.

'... 왜 지금 나오지? 설마 벌써 한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고?'

느낌상 5분도 체 안 지난 것 같은데... 시간을 확인해 보니 한 시간 조금 안 되게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일어나. 잘거면 돌아가서 자던지"

"..."

멍하니 은하를 올려다봤다.

확실히 수액이 효과가 좋았는지 아까보다 훨씬 생기가 있어 보이는 은하였다.

"... 그래. 이제 돌아가자"

"가기 전에 뭐라도 좀 먹고 들어갈레?"

"지랄하지 마 환자 새끼야. 넌 오늘부터 무조건 죽만 먹을 줄 알아"

"... 그건 좀..."

아직 힘겨운 모습이 약간씩 보였지만 이렇게 회복을 한 모습이 참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야 내가 대충 나오느니라 담배를 못 챙겨 왔는데 들어가기 전에 한대씩 마는 게..."

"..."

수액을 풀파워로 맞아도 저놈의 지랄병은 고쳐지지 않았나보다.

***

나른한 일요일 오후.

[... 세상에 언니! 도대체 그 패션은...]

[너희들이 뭘 모르나 본데 이게 요즘 패션이야!!]

"..."

"..."

나와 은하는 세상 편한 자세로 소파에 앉아 티비를 시청하고 있었다.

"아 존나 심심하네..."

"... 아가리 좀 닥쳐봐. 뭔 입만 열면 투덜거림이 나와"

"아니 그냥 내가 혼잣말로 심심하다고 말하는 것도 욕먹을 짓이야?"

'그 말을 씨발 5분에 한 번씩 내뱉는데 어떻게 욕이 안 나오겠어 미친년아'

하여간 입만 삐죽 나와가지곤.

아픈 몸 걱정하느라 하루 세끼 계속 죽만 내어줬다고 요즘 들어 삐지는 일이 많아진 은하였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몸이 아프면 그에 맞는 음식을 먹어야지. 개인적으론 나는 무국 보다는 죽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데.

투덜거리는 은하를 대충 무시하고 다시 티비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오늘 모실 게스트는 바로...!]

[안녕하세요! 라인식스입니다!]

"... 어?"

익숙한 이름과 함께 익숙하지 않은 얼굴들이 차례대로 티비에서 나왔다.

'라인...식스? 쟤네 그 뭐야 추석때 진아가 말해 준 걸그룹 아니야? 막 우리 학교 축제 때 공연도 했다는'

얼굴은 잘 모르지만 내가 이곳에서 처음 알게 된 아이돌이라 쉽게 기억 할 수 있었다.

'잠깐만. 그러고 보니 은하 이 새끼도 나랑 같은 대학이잖아? 그러면 얘도 쟤네를 알고 있나?'

문득 궁금증이 생긴 나는 엎드린 체로 티비를 보고 있는 은하에게 시선을 돌렸다.

"... 뭔 이름이 저래? 라인식스가 뭐야 라인식스가. 라인섹스로 바꾸면 딱이겠네"

"..."

"... 아 맞다. 여기에 너도 있었지. 깜빡 잊었네..."

'저 병신'

아무래도 은하는 라인식스를 기억하지 못한 것 처럼 보였다.

"너 쟤네 몰라? 전에 학교 축제에 왔었잖아"

"응? 학교 축제에 왔었다고? 언제?"

"... 아마 저번년도 축제 때 왔을 걸?"

"그러냐? 난 이번 학기 때 전역해가지고 잘 모르겠네"

"..."

탁자 위에 있는 과자를 뜯으면서 말하는 은하에 나는 침묵했다.

'... 그러면 뭐 당연히 모르겠네'

군대에서 있었다는데 학교 축제에 대해 알리가 없겠지.

"그나저나 라인섹스, 아니 라인식스가 울 학교에서 공연했다고?"

"... 뭐 그렇다고 하는데..."

"그럼 너도 쟤네를 실물로 봤겠네?"

"... 난 라인식스랑 사진도 같이 찍었어 임마"

"뭐? 너 저 걸그룹 좋아하냐?"

"..."

말같지도 않은 소리를 지껄이는 은하를 나는 한심하게 바라봤다.

"아니. 그런건 아니고 그냥 단체 사진이야"

"흐음... 그래?"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은하는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눈빛으로 티비를 바라봤다.

"진성아"

"...? 왜"

"그래도 내가 쟤네들 보단 예쁘게 생기지 않았냐?"

"...?"

갑자기 뭔 개소리야 이 새끼는.

"그치 않냐? 응?"

"... 또 지랄이네. 얘는 감기 몸살이 걸렸는데 어떻게 지랄하는 횟수가 더 늘어난 거지?"

"지랄이라니. 거참 말 섭섭하게 하시네"

진심으로 마음이 상했다는 듯 다시 입을 삐죽 내밀은 은하였지만 나 역시 대충 무시하고 다시 티비에 집중했다.

[... 수연아! 해낼 수 있지]

[저만 믿으세요 언니!]

그렇게 티비를 보던 중 문득 갑자기 장난심이 돋은 나는 잠깐 곁눈질로 은하의 눈치를 살피다 입을 열었다.

"... 그런데 확실히 예쁘게 생겼긴 했다"

"...?"

"피부도 누구와는 다르게 새하얗고 역시 아이돌은 아이돌인 건가? 이렇게 보니까 사람이 다르게 느껴지기는 하네"

"... 허참"

내 말에 은하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물론 나는 옆에서 쏘아 보는 은하의 눈빛을 사뿐히 무시한 채 계속 티비에 시선을 고정했지만 말이다.

"너 지금 나 도발하냐?"

"응? 이게 왜 도발이야? 그냥 쟤네가 예쁘다고 말한 것뿐인데"

"하아... 왜 또 갑자기 개소리를 지껄이지?"

"... 개소리라니. 막말로 너가 쟤네랑 같이 있으면 넌 오징어 되는 거야 임마"

"허이구! 진짜 지랄도 이런 지랄이 없네"

은하가 답답하다는 듯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며 신나게 투덜거리시 시작했다.

어찌 보면 정말 별것도 아닌 장난이었지만 생각보다 혜자스러운 반응에 나 또한 놀리는 맛을 톡톡하게 볼 수 있었다.

'풋! 새끼가 귀엽기는 그런 것 가지고 삐지네'

"... 됐어 시꺄. 내가 언제 너가 못생겼다고 말했냐?"

"... 그럼 난 어떻게 생겼는데?"

"응? 넌 너답게 생겼지 뭘 어떻게 생겨"

"... 내일부터 하숙비 내고 싶냐?"

"..."

하숙비라니. 미친년이 비겁하게 가불기를 쓰네.

하긴 나도 만족할 만큼 놀려댔고 이쯤에서 살살 달래주면 좋다고 받아들이겠지 뭐.

비스듬하게 누웠있는 자세를 제대로 고쳐 앉아서 은하를 바라봤다.

'어떻게 생겼냐고...?'

어떻게 생겼기는 무슨. 노란색의 긴 머리에 까맣게 태닝한 피부, 그리고 몸에 그려진 문신까지.

'그냥 금태양처럼 생겼는데 이걸 뭘 어떻게 말해야 되지?'

"... 너 지금 눈빛 안 좋다? 또 머릿속으로 이상한 생각했지"

"... 뭐래 이제 막 생각 끝내서 얘기하려고 했는데"

"그럼 빨리 말해 봐. 뭐 얼렁뚱땅 예쁘게 생겼다. 매력있게 생겼다. 이지랄 하면서 대충 넘어가려고 하기만 해 봐?"

"... 당연하지 임마"

'... 꼴에 눈치는 빨라가지곤'

이럴 때는 괜히 돌려서 말하기보다는 정공법으로 뚫어야 된다.

"넌 아름답게 생겼어"

"... 내가 그런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아 좀. 끝까지 들어봐 시꺄"

"..."

내 말에 은하가 침묵했다.

그리고 어서 다음 말을 해 보라는 눈빛으로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 흠흠! 네 얼굴은 값으로 따지면 0원과도 같아"

"..."

"네 아름다움은 '영'원하니까 말이야"

"..."

"..."

"..."

은하의 얼굴이 세상 심한 표정으로 굳어졌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