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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 속 처녀 지키기-40화 (40/72)

〈 40화 〉 하숙(7)

* * *

조용한 새벽.

"... 끄으으"

모두가 잠에 빠진 어둠 속에서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과 함께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

반쯤 감긴 눈으로 침대에 걸터 앉은 채 멍하니 있었다.

몸은 피로 했지만 정신은 맑았다. 한마디로 좆같았다라는 것이다.

"... 웁, 우웁!!"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 위에서 내보내는 신호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 다급하게 화장실로 달려갔다.

"우웨에엑...!!!"

처음이었다. 숙취로 인해 변기와 눈을 마주친 일은 내 생애 오늘이 처음이었다.

"허억... 허억.... 우웁..!!!"

이게 한 번으로 끝이 나면 좋겠지만 정녕 내 위장은 모든 것을 내보낼 생각이었는지 결국 위액까지 다 내뱉고 나서야 겨우 입이 다물어졌다.

"... 씨이바알..."

힘들어서 욕도 안 나온다.

처음 마셔보는 깡소주의 대가를 정말 혹독하게 받아 버린 것 같았다.

'... 내가 진짜 다시는 술 마시는가 봐라 씨발'

벌써 이런 의미 없는 다짐만 몇 번째인지 모르겠지만 딴 건 몰라도 깡소주 만큼은 절대로 마시지 않을 것이라 나는 다짐했다.

"..."

멍하니 자리에서 일어나서 거울을 봤다.

낯빛이 창백한 남자가 거울 속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충 세수를 하고 힘없는 발걸음으로 화장실에서 나와 냉장고로 걸어갔다.

멈칫­

"..."

물병을 꺼내고 아무 생각 없이 뚜껑을 따려다 잠시 멈춰섰다.

'이거 빈속에 찬물 마셔도 되나?'

마시면 분명 속이 뒤집어 질 것이다.

결국 잠깐 고민을 하다 한 손에 물병을 쥐여진 물병을 탁자 위로 올려놓은 뒤 구석에 처박힌 커피포트를 꺼내 전원을 선을 연결했다.

부글부글­

물을 데우고 데워진 물에 찬물을 살짝 부어 온도를 맞춘 뒤 천천히 물을 들이켰다.

"..."

목을 축이며 어제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수아와 통화를 한 뒤 깡소주를 마시다 정신을 잃었는데.... 그럼 은하가 나를 방으로 옮겨준 건가?

옷은 어제 입은 옷 그대로였고 아마 몸만 침대에 옮겼나보다.

'... 그래도 별일은 없었던 것 같았는데'

내가 술에 취해서 뭐 이상한 짓거리를 한 것도 아니고, 계속 생각을 해봐도 그냥 무난하게 넘어가면 되는 일들밖에 없었다.

물을 다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니 아직 5시 밖에 되지 않았다.

털썩­

"... 어휴"

푹신한 침대 위로 몸을 내던졌다.

당장에라도 잘 것 같은 피로가 몰려왔지만 몸에서 풍기는 냄새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결국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 옷가지를 품에 담은 체 나는 다시 화장실로 들어갔다.

새벽에 머리까지 감는 건 무리이고 간단하게 몸만 씻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약 10분가량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다시 침대에 몸을 맡겼다.

"..."

안 그래도 피곤해 죽겠는데 따뜻한 물로 샤워까지 하고 나니 눈이 스르륵 감겨졌다.

'... 그래도 내일, 아니 나중에 은하에게 고맙다는 말은 해야겠네'

언제나 내게 철없는 모습을 보여 준 은하였지만 이번에는 반대로 내가 철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말았다.

술에 취해 부린 투정이 조금 부끄럽기는 했지만 그래도 우선적으로 은하에게 고마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하여간 은하 얘도 워낙 수줍음이 많아서 그렇지 마음씨 하나 만큼은 참 따뜻한 년이다.

은하 덕분에 비록 얹혀 사는 입장이기는 하지만 이사도 했고 식사의 질도 달라졌으니 내 입장으로선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조심스럽지만 수아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은하가 치유해 주는 느낌도 있었다.

설마 내가 은하를 통해 안정감을 얻을 줄이야.

'반대로 수아에게 스트레스를 받을 줄도 몰랐지'

역시 인생은 알다가도 모르는 일이다. 애초에 남녀가 바뀐 게 가장 큰 원인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

'.... 새벽이라서 그런가? 자꾸 감성이 터지네'

뭔가 기분이 울적하다. 빨리 잠이나 자야겠다.

***

"..."

"..."

"..."

'아오 진짜 씨발...'

버티고 계속 버텼지만 끝내 못 버티고 거칠게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이 씨..."

이방은 정말 다 좋은데 딱 한 가지 그놈에 아침 햇빛이 문제이다.

눈살을 찌푸린 체 기필코 오늘은 커튼을 사겠다고 다짐하며 나는 방문을 열었다.

벌컥­

"어? 일어났냐?"

거실에선 방금 머리를 감았는지 머리에 수건을 두른 체 이빨을 닦고 있는 은하가 있었다.

"속 존나 쓰리지? 어제 그렇게 마셨는데. 저기 냄비에 육개장 데워 놨으니까 덜어 먹어"

"..."

"... 뭐야 그 애매한 눈빛은"

"아니 그냥.... 오늘은 일찍 일어났네?"

어제는 무슨 점심시간이 돼서야 일어나더만. 지금이... 아직 8시 밖에 안 됐는데 이건 또 무슨 바람이지?

"그럼 일찍 일어나야지. 수업이 있는데"

"아..."

그 말에 모든 의문이 풀린 듯했다.

찌뿌둥한 몸 상태에 스트레칭을 하면서 나는 부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육개장을 끓였다고? 니가 직접?'

솔직히 반신반의한 마음이었다.

자기가 직접 요리를 했다니. 그것도 숙취로 고생을 하는 날 위해 육개장을 끓여 줘? 자연스럽게 기대감이 차오른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저건가?'

달칵­

"오..."

뭔가가 담겨져 있는 냄비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과 함께 먹음직스럽게 끓여져 있는 육개장을 보며 작게 감탄을 내뱉었다.

[3분 요리 육개장]

"..."

냄비 옆에 이상한 봉지가 뜯겨 있었지만 나는 애써 모른 척했다.

그럼 그렇지. 요리는 무슨 이것도 다 가공식품이네... 라고 말하기엔 그래도 나를 생각해서 끓여 준 것인데 이건 염치가 없어도 너무 없는 생각이지.

"... 넌 안 먹냐?"

"나? 나 아까 배고파서 먼저 먹었는데"

"... 그러냐? 뭐 그래 그럼. 잘 먹을게"

밥그릇에 밥을 프고 집에 국그릇이 없어 그냥 냄비를 통제로 들고 와 밥을 말았다.

이곳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지내면 지낼수록 사야 할 것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다.

'하긴 애초에 식사는 밖에서 해결하고 집에도 별로 있는 시간이 없다고 하니 당연히 뭔가가 부족하겠지'

빠른 시간 내에 은하랑 다시 한번 대형 마트를 들려야겠다고 생각한 나였다.

후르륵­

"어우..."

이제야 좀 살겠네. 역시 해장에는 얼큰한 국물이 짱이다.

"넌 수업 언제 가냐?"

"우물우물... 나? 10시 수업인데?"

"쓰읍... 그러냐? 난 수업이 9시에 있어서"

"우물... 뭐 듣는데?"

아직 수업을 듣기엔 시간이 남았는지 은하는 나와 소소한 대화를 나누었다.

뭐 그래 봤자 30분 아니, 20분도 안 되겠지만 그래도 식사할 때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그렇게 서로가 실없는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버리고 있을 때 갑자기 은하가 조심스럽게 내 눈치를 살폈다.

"... 야 너 근데 있잖아"

"응? 뭐가"

"... 그 뭐야... 그, 그..."

"...?"

뭐야? 얘 왜 이래? 또 뭔 이상한 말을 꺼내려고 하는 거야?

갑작스럽게 말 수가 줄어든 은하에 나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며 은하를 응시했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 내 방에 있는 사진 말이야... 그거 너가 올려놓은 거야...?"

"..."

아... 그 얘기였구나.

확실히 은하에겐 민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 어 그거 내가 어제 청소를 하다 발견했는데... 어디에서 떨어졌는지 몰라가지고 일단 네 침대에 올려놨거든...?"

"아하..."

"... 혹시 내가 괜한 짓거리 한 거냐? 그렇다면 미안하다 야"

"으응? 너가 왜 사과해 전혀 사과할 일이 아닌데"

은하가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에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모호하게 말을 해주는 것보단 그냥 침묵을 하는 게 더 도움이 될 것 같아 나는 조용히 식사를 이어 나갔다.

"... 어우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그럼 나 먼저 간다?"

"어어. 먼저 가라... 야야 잠깐만!!"

"응?"

밖으로 나가려는 은하를 멈춰 세우고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았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어제 내가 은하에게 건넨 내 후드집업이었다.

"아 여깄네. 이 미친 새끼가 춥다니까 왜 자꾸 그딴 옷차림으로 나가는 거야"

"아니 나 진짜 괜찮은데..."

"닥치고 입으라면 그냥 입어. 내가 안 괜찮아 미친 년아"

보니까 추위에 그렇게 강한 것도 아니면서 옷이라도 따뜻하게 입어야지. 언제까지 그렇게 입으려고 하는 거야 얘는.

"일단 임시 방편으로 그거라도 입고 다니고... 너 가을 옷 어딨냐?"

"어 그게... 저기 베란다에 있는 노란 박스에 있는데..."

"그럼 그게 다 가을, 겨울옷이라는 거지?"

이 새끼는 긴팔 긴바지를 찾기가 귀찮아서 안 입고 다닌다고 했으면서 그럼 저기 보이는 노란색 박스는 뭔데 대체?

"아니 근데 나 진짜 아직은 이 옷으로도 생활할 수 있는..."

"지랄하지 말고 내가 니 가을 옷들 전부 빨아 놓을 테니까 앞으론 그거 입고 다녀라?"

"..."

"잘됐네. 가을 옷은 모두 꺼내고 여름 옷을 노란색 박스에 담으면 되니까"

"아니 야..."

너무 느닷없는 내 행동에 당황을 했는지 은하는 어쩔 줄을 몰라 했지만 나는 눈도 깜짝 하지 않았다.

집주인이건 뭐건 장담컨대 얘는 이거 내가 손을 쓰지 않으면 11월달까지 계속 저 옷을 입고 다닐 것이다.

얹혀 사는 대신 모든 가사일을 대신 하겠다고 선언한 내 처지에선 이건 당연한 행동이었다.

"너 수업 있다며. 안 가냐?"

"..."

은하가 허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가볍게 무시를 하고 나는 계속 식사를 이어 나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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