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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 속 처녀 지키기-27화 (27/72)

〈 27화 〉 여행(3)

* * *

"여어 둘이 데이트 잘 다녀왔어?"

"아빠...! 그, 그런 거 아니라고요...!"

"하하... 진성아. 우리 수아가 네 기준에선 정말 덜떨어져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잘 부탁한다. 이 아줌마는 우리 진성이가 사위로 오는 거 찬성이니까"

"엄마!!"

펜션으로 들어오자마자 수아네 어머니께 한 소리를 들었다.

하여간 예전이나 지금이나 수아네 부모님들은 나이에 비해 다들 젊게 행동을 하신다.

뭐 그에 비해 우리 부모님은 딱히 큰 관심이 없는 것 같지만 말이다.

장난이 아니라 살면서 나는 부모님이 눈물을 흘리신 모습을 뵌 적이 없다.

이게 나랑 진아 몰래 뒤에서 눈물을 훔치는 그런 게 아니라 바뀌기 전 수아 아줌마 말로는 두 분이 너무 감정이 메말라 있어 별명도 로봇 부부라고 들 하셨다.

"응? 아이스크림이야? 마침 입이 심심했는데 잘 사 왔네"

"... 수아 너...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수박 아이스크림을 안 사오다니. 이제 너도 성인이다 뭐 그런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편의점에 수박 아이스크림이 없었는..."

"수박 아이스크림이 어떻게 없을 수가 없어! 내가 저기 산골짜기에 출장을 갔을 때도 마트에서 수박 아이스크림을 팔았는데"

... 뭐 그래도 내 개인적인 처지에선 우리 부모님의 성격이 조금 더 나은 것 같다.

'저긴 너무 피곤할 것 같단 말이지...'

그런데 수아는 왜 이렇게 내성적인 거지? 저런 집안에선 내성적인 사람도 강제로 외향적이게 될 것 같은데 말이야.

"... 어우 몸이 끈적하네. 올라가서 샤워나 해야겠다"

뭐 어찌 됐든 저기도 나름에 사정이 있을 것이다. 시답지 않은 생각은 그만하고 방으로 올라가 샤워라도 한번 해야 될 것 같다.

햇볕이 가장 잘 든다는 정오 때 산책해서 그런지 내 몸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이게 펜션 구조가 중앙에 커다란 거실이 하나 있었고 1층은 수아네 가족이, 2층은 우리 가족이 사용하기로 돼 있었다.

부모님들이 큰 맘 먹고 좋은데를 구하셨는지 1층과 2층 모두 화장실이 있어서 샤워를 하려면 2층으로 올라가야 했다.

아무튼 아까부터 아줌마에게 계속 잔소리를 듣는 수아를 내버려 두고 샤워를 하러 2층으로 올라갔다.

덜컥­

"응? 데이트 잘 보냈어?"

"그래. 잘 보냈다"

"흐음... 아닌가 보네. 수아 언니는?"

"아래에서 아줌마에게 잔소리 듣고 있어"

"어으... 또 무슨 꼬투리를 잡혔길레"

"됐고 너도 내려가서 아이스크림이나 먹어. 나랑 은하가 넉넉하게 사 왔으니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진아는 아랫층으로 내려갔다.

진아의 행동에 나는 작게 실소를 내뱉었다.

확실히 전에 비해 식탐도 예전보다 훨씬 많아진 진아였다.

'... 잘됐네'

그래도 차라리 이게 나았다. 전에는 정말... 어우 무슨 컵라면 작은 컵을 반도 못 먹는 얘였으니 뭐.

감정 표현이 무색한 부모님들조차 진아의 식습관엔 온갖 감정들을 내뱉을 정도였다.

뭐 어쨌든 그렇게 진아가 떠나고 대충 가방에서 갈아입을 옷과 수건을 든체 나는 샤워를 하러 화장실로 들어갔다.

"... 여기는 뭔 화장실마저 화려하네"

내가 지금까지 가 본 화장실 중에서 단언 원탑이라 생각했다.

땀으로 축축해진 옷을 벗어 한 곳에 몰아 둔 뒤 곧바로 호스를 틀어 샤워를 시작했다.

대충 20분 정도가 흘렀을까?

이 정도면 충분하다 싶어 호스를 잠그고 수건으로 몸을 깨끗이 닦았다.

"뭐야 어디 갔어? 설마 가방에서 안 꺼냈나?"

드라이기를 찾으러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도통 보이지가 않았다.

그러다 아까 가방에서 드라이기를 꺼내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렸다.

때문에 드라이기를 가져오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화장실 문을 열었는데.

덜컥­

"무슨 샤워를 온종일을 처하는..."

"..."

방에서 진아와 수아가 침대에 앉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

"..."

참고로 나는 알몸 상태였다.

항상 머리를 말리고 옷을 입는 습관이 있어 미처 옷을 입지 못했는데 자연스럽게 남자와 여자의 위치가 뒤바뀌었다는 것을 생각지 못했다.

나도 멍하니 진아와 수아를 바라봤다.

진아는 눈을 크게 뜬 체 나를 보고 있었고 수아는 입이 땅바닥에 떨어질 것 같을 정도로 입을 크게 벌리고 있었다.

"미, 미쳤어!! 지금, 이게 뭐 하는 짓거리야!! 빨리 들어가 이 미친 새끼야!!"

"어어..."

쾅­

그렇게 우리 모두가 당황해하는 사이 진아가 말을 더듬으며 나를 밀었다.

그렇게 나는 얼떨결에 진아에게 밀쳐져 다시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살면서 그렇게 화를 낸 진아의 모습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

멍하니 화장실 문을 바라봤다. 그리고 뒤늦게 엄청난 수치심이 찾아왔다.

"... 씨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체 조용히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멍청한 짓을 하며 수치심 느낄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진아는 그렇다 쳐도 문제는 수아인데... 하아 이건 뭐 그냥 머릿속에서 씨발 씨발거리는 생각 밖에 나오지 않았다.

"... 수아를 어떻게 보지"

입을 벌리며 나를 바라본 수아의 모습이 다시금 떠올랐다.

너무 안 일했다. 직설적으로 이번에는 그냥 내가 존나 병신이었다.

드높았던 자존감이 엄청난 속도로 내려와 바닥을 뚫고 지하끝까지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 일단 옷부터 입자"

참담한 기분을 머금고 빠르게 옷을 입었다.

존나 무기력한 상태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온종일 화장실에서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니.

끼익­

조심스럽게 화장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수아는 어디에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침대에선 진아가 팔짱을 낀 체로 나를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이리와봐"

"... 어 그래"

마치 죄인 마냥 어색한 발걸음으로 진아에게 다가갔다.

"오빠 미쳤어? 아무리 생각이 없어도 그렇지 어떻게 알몸으로 화장실에서 나올 수가 있어? 아니 아무리 성인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성인 남자일수록 몸가짐을 더 잘해야 하는..."

"..."

묵묵히 고개를 숙인체 진아의 설교를 들었다.

가끔 진아가 내게 욕을 내뱉으며 말하기도 했지만 나는 아무런 반항하지 못했다.

장난이 아니라 여기서 뭔가 반항했다간 어디 한대 맞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 후우 어쨌든 처신 좀 잘하라고. 오빠 남자야. 남자라고. 세상에 어떤 남자가 아무리 소꿉친구라고 하지만 자기 알몸을 보여 줘?"

"... 알았어. 앞으로 조심할게"

"... 어휴 진짜... 잘 좀 하자. 내가 왜 이런 얘기를 오빠한테 해야 되는 건데"

"..."

다행히 설교는 10분이 넘지 않게 끝났다.

뭐 그 10분 동안 정말 알차게 욕을 먹었지만 그래도 이쯤에서 끝이 난 것에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수아 언니는... 일단 지금은 만나지 마. 어차피 서로 만나 봤자 분위기만 곱창날 텐데 지금 만나서 뭐 하게? 차라리 시간이 조금이라도 흐른 뒤에 만나는 게 낫지"

조심스럽게 수아의 행방에 대해서 물었더니 진아가 이렇게 말했다.

나도 이건 진아의 말이 맞는 것 같아 알겠다고 말을 했고 진아는 한숨을 내쉬며 담배를 쥔 체 방을 나갔다.

"... 씨발 나도 피고 싶은데"

그 모습에 나는 입맛을 다셨지만 지금 나가서 담배를 피우면 이번엔 정말 맞을 것 같아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

담배가 미친 듯이 마려왔지만 이내 체념하고 드라이기나 찾기로 했다.

***

수아를 다시 만난 건 저녁 식사 때였다.

당연히 어른들은 우리를 내버려 두고 자기들 끼리 모여서 밥을 드셨고 우리도 조용히 밥을 먹었다.

그래도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니 나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는데 수아는 아니었나보다.

식사하는 도중에 수아에게 열심히 말을 걸어 봤지만 수아는 묵묵히 시선을 아래로 깔고 식사에 열중했다.

그렇게 불편한 식사가 끝이 나고 자연스럽게 1층에선 술판이 벌어지면서 나랑 진아, 그리고 수아는 자연스럽게 2층으로 올라갔다.

"..."

"..."

"..."

어색한 침묵이 방안에 뒤덮혔다.

뭐라도 말하고 싶었지만 글쎄... 여기서 뭔 말을 해야 할지 참 난감한 상태였다.

"... 아오 이게 뭐 하는 짓거리야. 오빠 언니, 이대로 서로 영원히 말 안 하면서 살 거야?"

그러던 찰나 더 이상 이런 분위기를 못 참겠었는지 진아가 거세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나 지금 간식거리 사러 나갔다 올 건데 그 전에 둘이 알아서 해결해. 만약 내가 돌아왔는데도 분위기가 계속 그대로다. 두 사람 모두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쾅­

그렇게 진아는 방을 떠나갔다.

"..."

"..."

졸지에 둘만 남게 된 방에서 아까보다 훨씬 어색한 분위기가 형성 되었다.

하지만 그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 미안해"

"어? 어휴 아니야. 네가 뭘 잘못한 게 있어 내가 잘못한 거지"

"... 미안해. 정말 미안해 진성아..."

내가 먼저 입을 열려고 했는데 수아가 먼저 말을 꺼냈다.

덕분에 어색했던 기류는 점차 가라앉기 시작했고 나는 이 분위기를 꺼뜨리지 않기 위해 아무 말이나 지껄였다.

그렇게 어느 정도 분위기가 잡히자 나는 이 틈에 평소에 묻고 싶었던 것을 수아에게 물었다.

"... 야 근데 나 정도면 잘생긴 거냐?"

"... 어? 그건 왜..."

"아니 그냥 별 뜻은 없고 궁금하잖아. 몇십 년 지기 친구인 너에겐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객관적으로 보일 테고"

솔직히 원래라면 관심도 없을 내용이었지만 오늘 외국인 여자들을 만나며 생각이 뒤바뀌었다.

'왜 자꾸 여자들이 꼬이는 건지... 내가 봤을 땐 그렇게 잘생긴 얼굴도 아닌데 말이야'

이게 과연 내가 잘생긴 얼굴이라 꼬이는 건지 아니면 그냥 내 착각인 거지...

정말 쓰잘때기 없는 질문이었지만 진지하게 궁금하기는 했다.

"... 음 진성이 너는... 잘생겼다기 단 뭐랄까...? 이상할 정도로 시선을 끄는 매력이 있다고 해야 되나...?"

"아... 그래?"

"무, 물론 이건 내 생각일 뿐이고... 다른 사람들의 처지에선 어떻게 바라볼지 모르는 거니까..."

수아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아무래도 내가 잘생겨서 여자가 꼬인다는 것은 아닌가 보다.

쾅­

"뭐야? 잘 해결 된 거야? 으음... 어색한 기류가 없는 걸 보니까 그럭저럭 해결은 됐나보네"

그러는 사이 진아가 문을 발로 걷어차며 뭔가를 잔뜩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러면서 바닥에 간식거리를 쏟았는데 진아가 눈빛을 음흉하게 빛내며 마지막 비닐봉지를 들쳐 냈다.

스윽­

"... 야 너 그건"

"아 이거? 아래에서 몰래 몇 개 슬쩍했지"

진아의 말에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 그게 몇 개를 슬쩍한 거냐?"

"... 그분들 처지에선 이 정도면 몇 개지 뭐"

마지막 비닐봉지에선 적어도 8병은 돼 보이는 소주병이 비닐봉지에 담겨져 있었다.

"참고로 저분들 빨뚜만 드시는 거 알지?"

"... 어유 난 모르겠다. 나중에 걸리면 네가 다 책임져라"

"뭘 내가 다 책임을 져. 같이 먹으면 공범인 건데"

소주잔을 내려 놓으며 진아가 말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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