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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 속 처녀 지키기-23화 (23/72)

〈 23화 〉 음모(8)

* * *

"뭐야 벌써 시작한 거야?"

"아니 너 기다리고 있었잖아. 빨리 좀 와 씨발"

"끄응 알았으니까 좀만 기다려. 이제 설치만 하면 되니까"

얼마 안 되는 시간이 흐르고 이나쌤이 카메라와 거치대를 양손에 쥔 체 이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카메라를 설치하는 이나쌤을 노려봤지만 내게 돌아온 것은 그녀의 비웃음과 조롱이 담긴 눈빛 뿐이었다.

이나쌤이 뭔 일을 벌일 것이란 건 대충 예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까지 더럽게 행동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상식적으로 지금 상황이 내게 있어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냥 자기를 무시했다는 이유로 강간이라는 계획을 짠다고?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인가.

내가 은하를 보고 평소에 미친년이라 말한 것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저 새끼는 진짜로 미친년이 분명했다.

"얼씨구? 이번에는 무시 안 하시네?"

"... 이거 안 풀어? 트레이너라는 사람이 회원한테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것 같..."

"아 존나 조잘 거리네"

짜악­

순간 한쪽 뺨에서 강력한 얼얼함이 느껴졌다.

내가 말하는 도중 이나쌤이 내 왼쪽 뺨을 강하게 후려친 것이었다.

"... 퉤! 참나 어이가 없어가지고. 아직 여유가 있나 보네? 이렇게 걱정까지 해 준다니 말이야."

"으윽...!"

"뭐 어차피 그것도 나중엔 다 사리지겠지만. 야! 이제 시작할 거니까 준비해 둬"

거칠게 내 얼굴에 침까지 내뱉고 나를 잠시 무섭게 노려보더니 이나쌤은 카메라가 설치된 곳으로 물러났다.

찌이익­

"자자 일단 좀만 닥치고 있어 오빠. 괜히 비명 지르면 우리도 귀찮아지니까"

"...?! 읍읍!!"

그리고 이나쌤이 물러나기 무섭게 지금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보라색 머리의 양아치가 어디서 구해왔는지 청테이프를 찢어 내 입을 봉합해 버렸다.

양아치는 나를 침묵시키겠다는 의도로 내 입술에 테이프를 붙여 놓았지만 그거와는 별개로 다른 심각한 문제가 터져 나왔다.

아까부터 양아치들을 뿌리치려고 계속 반항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입이 봉해지는 바람에 입으로 숨을 못 쉬게 된 것이었다.

때문에 들이마시는 공기의 양이 확연하게 줄어들었고 그러다 보니 조금만 움직여도 쉽게 헐떡이게 되면서 체력도 빠르게 소진되었다.

띠링­

그러는 사이 촬영 준비를 모두 끝마쳤는지 앞에서 이나쌤이 양아치들에게 신호를 주었다.

보라머리 양아치는 이번엔 또 어디서 가져 왔는지 손에 커다란 가위를 쥔 체 내 뒤로 다가왔다.

"다치기 싫으면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거야. 뭐 상처가 나든 말든 우리는 크게 상관 없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깨끗하게 하는게 좋잖아?"

"...!"

스걱 스걱­

"..."

양아치가 내 등 쪽을 가위로 자르는 동안 나는 아무런 반응하지 않았다.

트레이닝 복은 종이처럼 쉽게 잘려저 나갔고 어느새 모두 잘라버렸는지 양아치는 등 쪽에 붙은 옷 쪼가리를 손으로 떼어내기 시작했다.

"우와... 오빠 그래도 운동은 꽤 열심히 했나 봐? 등근육이 장난이 아니네"

"지랄 하지 말고 빨리 벗겨. 나 지금 존나 흥분돼서 미칠 것 같으니까"

"그래그래. 이제 앞에 붙어 있는 남은 쪼가리도 모두 떼어버려야지?"

"..."

끔찍한 상황이었지만 나는 제정신을 유지하며 앞에 선 양아치를 노려봤다.

양아치는 그런 내가 우습기라도 한 듯 싱긋 미소를 지으며 넝마가 된 트레이닝 복을 마저 떼어 버렸다.

결국 그렇게 상체가 훤히 드러난 상태가 되어 버린 내게 양아치들은 온갖 더러운 욕설과 음탕한 눈빛을 보내 왔다.

나 또한 최대한 매섭게 양아치들을 노려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어 보였다.

'... 처음하는 섹스는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랑 하고 싶었는데'

남자가 강간당한다는 사례가 흔하게 들려오는 세계이다.

이 정도까지 왔으면 더 이상에 희망은 없다고 보는 게 맞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전에 있던 세계의 경험 때문에 강간이 두렵거나 그렇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낙담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자 이게 뭔 줄 알아?"

"..."

점점 체념의 단계에까지 도달하게 되던 와중 이번엔 또 어디서 들고 왔는지 양아치가 손에 주사기를 쥔 체로 입을 열었다.

"이거 최음제야. 한번 맞으면 기절할 때까지 성욕에 불타오른다는"

"...!"

"오늘 니 불알에 들어 있는 한 방울에 정액 까지 모두 짜버릴 테니까 기대하는 게 좋을 거야"

"읍! 읍읍!!!"

내가 반항이 심해지자 양팔을 잡고 있던 양아치들도 더욱 힘을 주며 나를 압박했고 최음제를 든 양아치는 주사기에 뚜껑을 열어 버리고 내게 다가왔다.

"자... 한번 짐승 같은 시간을 보내 보자고"

"읍읍!! 읍읍!!!"

설마 최음제까지 투여하리라는 상상도 못 했다.

저 앞에서 카메라로 이 모든 걸 담아내는 이나쌤의 표독스러운 미소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뒤에선 은하의 주먹이 이나쌤에게 향하는 모습도 같이... 어라?

"하여간 나 없으면 아무것도 못해요"

퍼억­

"크아악!!"

쿠당탕­

정통으로 주먹을 맞은 이나쌤은 앞에 설치 된 카메라와 충돌하며 넘어졌다.

정말 어이없게도 그 한대로 이나쌤은 정신을 잃었는지 자리에서 쓰러진 체로 일어나지 못했고 은하는 그런 이나쌤을 벌레 보듯이 바라봤다.

폭력을 휘두른 은하의 모습은 그 어느때보다도 차분하기 짝이 없었다.

흠짓­

"... 씨발"

그리고 이쪽을 바라보다 내 상태를 보고 작게 욕설을 내뱉은 은하는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양아치들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

"..."

갑작스러운 은하의 등장에 나는 멍하니 은하를 바라봤다.

이대로 양아치들에게 꼼짝없이 당할 거로 생각했는데 생각지 못한 지원군이 도착한 것이었다.

양아치들의 말대로 탈의실에서 싸움이 있었는지 은하의 차림새는 엉망이었지만 옷차림만 그랬을 뿐 어디 다치거나 지친 듯한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에 양아치들도 당황해하며 은하를 멀뚱히 바라봤다.

"... 어떻게 나온 거지? 탈의실에 친구들이 있었을 텐데"

"어떻게 나오긴. 걍 다 때려 눕히고 나왔지"

"... 5명을 혼자서 다 때려 눕혔다고?"

보라머리 양아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곧바로 은하가 다가오자 인상을 찌푸리며 은하에게 달려들었다.

빠악­

"커, 커억!"

그리고 보라머리 양아치의 주먹이 은하에 은하에 얼굴을 가격하려고 했을 때 그에 맞춰 뻗어진 은하의 다리가 보라머리 양아치의 배를 정통으로 강타하며 양아치는 고통에 찬 얼굴로 배를 붙잡은 체 쓰러졌다.

"... 하여간 지 주제도 모르면서 달려드는 얘들이 제일 멍청한 새끼들이란 말이야"

"저, 저 새끼가!"

"벌건 대낮에 강간을 하려고 해? 이거 완전 미친 새끼들 아니야!"

퍽­

퍼억 퍽퍽­

뒤늦게 내 팔을 잡고 있던 양아치들이 나를 뿌리치며 은하에게 달려섰지만 은하는 손쉽게 그녀들을 때려 눕히고 경찰에 신고를 했다.

양아치들은 은하에게 심하게 얻어맞았는지 앓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고 은하는 곧바로 이쪽으로 다가와 내 모습에 눈살을 찌푸리고 입에 붙여진 테이프를 단숨에 뜯어 버렸다.

쫘악­

"흐어어...! 허억 허억...!"

좀 더 많은 양의 공기를 들이 마실 수 있게 되면서 나는 허겁지겁 숨을 내쉬었다.

내가 그렇게 헐떡이는 동안 은하는 탈의실에 들어가 몇 벌의 트레이닝 복을 가져 왔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일단 은하에게 받은 옷을 건네 입었다.

"괜찮냐? 저 새끼들이 혹시 니 뺨도 때렸어?"

"... 으으 뺨도 뺨인데 살면서 침까지 맞아 볼줄은 꿈에도 몰랐어 씨발"

"... 풋! 이런 상황에서도 욕이 나오는 걸 보니까 다행히 정신은 멀쩡한 것 같네. 한편으로는 멘탈이 나간 모습도 보고 싶었는데"

되도 않는 은하의 말장난에 나는 잠깐 매섭게 은하를 노려보다 고개를 내저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은하가 나를 걱정한다는 것이 눈빛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쨌든 한동안 무릎을 굽혀서 그런지 저린 다리를 억지로 일으키고 벽에 걸린 휴지를 뽑아 얼굴을 닦았다.

"... 그래서 이제 어떡하지? 경찰이 올 때까지 묶어 놓을까?"

"그래 뭐 내가 알아서 할게 넌 그냥 쉬고 있어"

그 말을 끝으로 은하는 헬스장을 기웃 거리며 무언가를 묶을 수 있는 밧줄 비슷한 것을 찾아 양아치들과 이나쌤을 묶었다.

"야 나도 도와줄..."

"지랄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시꺄.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

그러면서 나를 강제로 벤치프레스의자에 앉히는 은하였다.

"... 참나 그래 고맙다"

"고맙긴 무슨 내가 말을 그렇게 했지만 넌 피해자잖아. 이건 당연한 거지"

그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하여간 보면 볼 수록 겉과 다르게 속은 참 따뜻한 새끼라니...

"... 이 빌어먹을 새끼들 아직 나조차 벗겨보질 못한 걸 지들끼리 벗겨 버리다니. 씨발 부러워 미치겠네"

"..."

"... 응? 설마 들렸냐?"

"... 뭔 소리? 됐고 하던 거나 마저 해"

"응 알았어!"

그러면서 다시 양아치들을 묶기 시작한 은하에 다소 어이없음을 느꼈다.

속이 따뜻하면 뭐 하냐 따뜻함이 100이면 겉에 있는 병신스러움은 500인데 나 참...

"... 그것도 생각해보면 나름대로 매력이긴 한데"

흠짓­

순간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에 나는 놀라해하며 헛웃음을 지었다.

한동안 미친년이랑 계속 다니다 보니 나도 슬슬 미쳐가나보다.

삐용 삐용­

밖에서 경찰차 소리가 들려왔고 잠시 뒤 경찰들이 헬스장을 처들어오며 양아치들과 이나쌤을 빠르게 체포했다.

피해자와 증인에 입장으로 나와 은하도 경찰차에 올라탔고 경찰서로 가는 동안 나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해는 여전히 쨍쨍한 모습으로 빛살을 내뿜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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