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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 속 처녀 지키기-19화 (19/72)

〈 19화 〉 음모(4)

* * *

이나쌤에게 제대로 대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고 나는 더 이상 이나쌤에게 말하지 않았다.

짧지만 단답정도는 했던 내가 이젠 단답마저 그녀에게 하지 않자 이나쌤은 오히려 거칠게 나를 대하기 시작했고 그런 그녀의 말은 점점 수위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 하! 사람을 무시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

"... 그래. 어디 한 번 계속 그렇게 해 봐. 하여간 별것도 아닌 놈이 비싸게 굴기는"

이제는 욕설도 모자라 성희롱까지 서슴럼없이 행하는 이나쌤이었지만 뭐 이미 투명인간 취급을 하기 시작한 내겐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 는 지랄. 저 씨발년이 뚤린 입이라고 입을 함부로 놀려되네'

"... 에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삶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하기엔 운동이 딱이었는데... 요즘은 스트레스를 풀러 왔다가 오히려 더한 스트레스를 얻고 가는 듯한 기분이다.

그렇다고 소연쌤에게 말하기엔 별다른 효과가 없을 것 같고... 뭐 딱히 특출난 방법은 없는 듯했다.

'... 이제 한 달 정도 남았으려나'

머릿속으로 날짜를 계산하며 벽에 걸려 있는 달력을 바라봤다.

당연한 말이지만 연장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내가 미쳤다고 이 헬스장을 더 나오겠는가 차라리 저 앞에 깔린 산책로에서 조깅을 하고야 말지.

"... 소연쌤이 조금 걸리기는 하지만 거기까지는 내가 신경 쓸 부분이 아니겠지"

저쪽에서 열정적으로 PT를 하는 소연쌤을 힐끗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정말로 좋으신 분이지만 너무나도 좆같은 새끼도 같이 있어가지고...

뭐 나중에 헬스장이 아닌 바깥에서 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이곳에서의 만큼은 슬슬 정리를 해야 될 것 같다.

어쨌든 헬스장에서의 시간은 계속 그렇게 이나쌤이 성희롱과 욕설을 내뱉고 나는 그걸 계속 무시하는 형식으로 흘러갔다.

보통 이렇게까지 반응이 없으면 떨어져 나갈 만도 한데 이 새끼는 정말 뭐 하는 새끼인지 지치지 않고 꾸준히 내게 욕과 성희롱을 내뱉었다.

그나마 다행인점은 신체적인 행동은 하지 않았다는 점?

하긴 상식적으로 이렇게 CCTV가 적랄하게 우리를 찍고 있는데 트레이너라는 사람이 회원에게 폭력을 행사하기엔 껄그러움이 있을 것이다.

물론 만약 신체적인 행동을 가한다면 나도 그땐 가만히 있지 않을 거지만.

뭐 어쨌든 이런 부분에선 남부럽지 않은 멘탈을 가지고 있는 나로선 크게 신경이 쓰이지는 않았지만 뭐랄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는 나의 모습이 병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 이년도 박상병 같은 새끼를 만났나? 씨발 뭔 욕을해도 레파토리가 매번 바뀌는 거야'

하여간 얘도 정신력 하나는 끝내주게 역겨운 것 같다.

그렇게 나와 이나쌤은 서로가 창과 방패를 들고 싸우는 마냥 계속해서 공격과 방어를 이어나갔고 둘 다 서로 지치는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쯤되니 걍 우리 둘 다 미친 새끼처럼 보였지만 나와 이나쌤 모두 내색을 하지 않았다.

***

"... 아오 씨발 날씨가 풀릴 생각을 않하네"

오전 수업을 마치고 늘 그랬듯 헬스장으로 가던 나는 뜨거운 햇살에 눈을 잔뜩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이놈의 길은 씨발 어떻게 그늘 한 점이 없는지...'

그나마 헬스장이 대학에서 가장 가까운 쪽에 있어서 다행이지 지금 이 날씨에선 씨발 장난이 아니라 10분도 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헬스장에 도착한 나는 한시라도 빨리 시원한 공기를 맞으려 빠르게 계단을 올라갔다.

"... 아니 뭔 소리를 하는 거야. 3개월치가 20만원인데 왜 한 달치가 10만원이냐고!"

"그러니까 그건 할인 행사 때문에 깎아진 거고..."

멈칫­

어느새 문까지 도착했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 이 목소리는'

그리고 투명한 유리문을 바라보니 역시나 내가 아는 사람이 눈앞에 서 있었다.

"... 서은하?"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말했지만 내가 문밖에 있어서 그런지 은하는 내 말을 듣지 못했고 나는 잠깐 멍하니 안쪽의 상황을 들여다봤다.

보니까 은하가 또 뭔가 개짓거리를 하는 것 같은데 그걸 이나쌤이 찐담을 흘리며 받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난동에 주변에 있던 회원들도 눈쌀을 찌푸리며 데스크를 바라봤지만 그 누구도 난감해하는 이나쌤을 도울 생각이 없어 보였고 오히려 속이 시원하다는듯한 표정이 태반이었다.

'하긴 명색이 트레이너라는 사람이 데스크에서 휴대폰 게임만 하는데 누가 좋게 보겠어?'

딸랑­

뭐 어쨌든 잠깐 놀란 감은 있었지만 나는 문을 열고 헬스장으로 들어 갔다.

내가 헬스장으로 들어서자 그제서야 뒤를 돌아본 은하는 나를 발견하고 이나쌤과 대화를 하다만 체 내게 다가왔다.

뒤에서 이나쌤에 한숨 소리가 들려왔지만 나와 은하 둘 다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 왔냐?"

"넌 왜 여기 있어?"

"아니 뭐 나도 오늘부터 운동이나 할까 해서 헬스장이나 다녀볼려고"

약간 멋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는 은하를 나는 조용히 바라봤다.

'굳이?'

이미 은하의 몸을 한 번 본 적이 있는 나로선 솔직히 의아함이 들기는 했다.

겉보기와 다르게 은하의 몸은... 큼! 뭐 하여튼 이곳에 다니는 회원들보다는 평균 이상이라고 확신 할 수가 있다.

스윽­

"그런데 저 새끼는 왜 저렇게 싸가지를 밥말아 먹은 거냐? 저 사람 원래 저런 사람이야?"

은하가 슬그머니 내게 붙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 걍 내버려 둬. 원래 저런 사람이니까"

"아니 그래도 그렇지 걍 내가 아는 새끼들하고 비슷한 동류인 것 같은데... 견적만 봐도 그냥 양아치잖아"

"..."

누가 누구한테 양아치라고 하는 건지...

"... 뭐야 너 지금 뭔가 되게 한심스럽게 보이는 눈빛을 지은 것 같은데"

"뭐래. 난 옷이나 갈아입을 테니 마저 등록이나 하고 와"

꼴에 눈치는 빨라기지곤. 아무튼 은하가 다시 등록하러간 사이 나는 옷을 갈아입으러 탈의실로 들어 갔다.

그리고 내가 탈의실에서 나왔을 땐 어찌어찌 잘 해결이 되었는지 은하가 이나쌤에게 라커룸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었고 세상 자연스러운 그들을 잠깐 바라보다 신경을 끄고 스트레칭하러 전신 거울로 갔다.

"그래서 이쪽은 사용하시면 안돼는..."

"아 네 알았으니까 키 좀 달라고요"

역시 그래도 양아치끼는 은하가 더 높았는지 뭔가 이나쌤이 은하를 조심스럽게 대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나저나 소연쌤은 어디에...'

늘 내게 먼저 다가와 인사를 하시는 소연쌤이 보이지 않자 나는 헬스장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소연쌤을 찾았다.

"아... 저기 계시네"

소연쌤은 헬스장 한 쪽에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계셨다.

얼굴 표정을 봐서는 뭔가 심상치 않은 대화하고 계신 것 같은데 이러면 인사는 나중에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 야 너"

어디선가 놀란듯한 목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봤다.

언제왔는지 은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설명 잘 들었냐?"

"..."

"... 응? 무슨 문제라도 생겼어? 왜 또 죽상을 처짓고 난리야"

"... 아니 뭐 생각보다 니 트레이닝복이 화끈해 보여서"

그 말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내 옷을 내려다봤다.

'이게 왜? 그냥 평범한 트레이닝복인데'

오히려 화끈한 건 저기 소연쌤처럼 배가 훤히 드러난 저런 옷차림이지 이건 그냥 반바지의 반팔인데?

굳이 지적을 한다면 바지가 허벅지까지 온다는 정도인데... 이게 화끈하다고?

"... 큼! 뭐 나도 일단 옷 좀 갈아입고 온다"

"... 그래라"

은하는 그렇게 말하면서 빠르게 탈의실로 들어 갔다.

뭐 남녀가 바꼈으니까 어쩌면 이런 간단한 옷차림도 이성에겐 파격적일 수도 있겠지. 아니면 워낙 내 이미지가 보수적이다 보니까 이런 옷차림이 신기했을지도 모르고.

뭐가 됐든 어쨌든 딱히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진성 회원님 오셨네요!"

"아 소연쌤"

그렇게 은하가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동안 통화를 모두 마치셨는지 소연쌤이 특유의 헤맑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갑자기 어머니께 전화가 와가지곤... 오늘 날씨 많이 덥죠?"

"어우 오면서 날씨 때문에 미쳐 버리는 줄 알았다니까요?"

이렇게 소소한 주젯거리로 나랑 소연쌤은 담소를 나누었다.

이게 내 주위에 병신들 밖에 없어서 그런지 이런 평범해 보이는 소연쌤의 말이 내게 있어선 너무나도 인상 깊게 들려져왔다. 물론 대화를 나누는 대상이 소연쌤인 것도 적지 않지만.

덜컥­

그러는 사이 옷을 모두 갈아입었는지 은하가 탈의실에서 나왔고 나는 자연스럽게 은하를 바라보다 감탄을 내뱉었다.

'쟤는... 진짜 왜 다니는 거지? 걍 혼자 알아서 관리해도 될 것 같은데'

소연쌤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의 건강한 몸매는 그녀가 꾸준히 자기 관리를 해 왔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줬다.

은하는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나를 발견하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소연쌤을 바라보고 잠깐 고개를 갸우뚱 거리더니 내게 물었다.

"... 뭐야 니 여자친구 없다고 하지 않았어?"

"뭐래 미친년이 나 PT선생님이야"

"아 그래?"

참으로 등신스러운 말에 나도 모르게 부끄러움을 느끼며 한숨을 쉬었다.

소연쌤과 대화를 하다 이 새끼를 대화를 하니 무슨 대화를 하는 대상이 사람에서 동물로 바뀐 듯한 기분이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새로 등록 하신 회원님이신가요?"

은하의 말에 소연쌤은 잠깐 당황해하다 다시 페이스를 되찾고 은하에게 정중히 인사를 했다.

"네 뭐. 맞아요"

소연쌤의 말에 은하는 뭔가 불편해 보이는 표정으로 답을 했다.

"하하... 진성 회원님과 친하시나보네요. 어떻게 둘이 친구 사이?"

그러건 말건 소연쌤은 특유의 활발한 말투로 은하에게 말을 걸었고그 말에 은하는 조용히 나를 바라보더니 천천히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 그렇죠. 친구에요"

그런 은하의 행동에 나는 불길함을 느끼며 입을 열려했지만 뒤이어 들려오는 은하의 말에 입이 턱하고 닫혀버렸다.

"... 친구이긴 한데 뭐 같이 잠도 잘 수 있는 그런 사이?"

"..."

소연쌤의 얼굴이 빠르게 굳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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