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 음모(3)
* * *
"... 뭐야 얼굴이 왜 이렇게 죽상이야"
앞에서 순대국을 시원하게 말아먹는 서은하가 나를 보며 말했다.
그 말에 나는 눈살을 찌푸리기만 했을 뿐 딱히 답하지는 않았고 그런 내 모습이 익숙하다는 듯 은하는 다시 밥에 열중했다.
어제부터 하도 같이 점심을 먹자고 해서 지금, 이렇게 먹게 되었는데... 이 새끼는 씨발 밖에 온도가 지금 몇 도인데 순대국을 먹을 생각을 한 거야?
"... 김치 좀 가져올께"
"응? 내가 갔다 와도 되는데"
하여간 그래도 복스럽게 먹는 모습을 보니 뭔가 흐뭇하기도 하고... 에휴 모르겠다. 날씨건 뭐건 그냥 지가 맛있어하는 음식을 먹는 게 중요한 거지.
반찬통에서 김치를 넉넉히 담아오고 테이블에 내려놓자 은하는 다시 신나게 젓가락질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뭐... 도저히 순대국은 아닌 것 같아 열무 비빔 국수를 시켰고 면 음식에 특성상 은하보다 먼저 먹어치울 수 있었다.
그래서 그냥 서은하가 먹는 모습을 바라보는 중이다.
"... 혹시 내 얼굴에 뭐 묻었냐? 그렇게 처다 보면 아무리 나라도 부끄러운..."
"뭐래 그냥 잘 처먹는 게 신기해서 그런 건데"
그놈의 가끔 나오는 개지랄은 도통 언제쯤 줄어 들 것인지 참 에휴 이럴 때는 정말 한심하다니까.
은하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으로 잠깐 나를 노려봤지만 나는 깔끔하게 무시했다.
"후르륵"
"..."
그렇게 다시 은하가 처먹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사실 아까부터 은하를 보면서 이나쌤을 생각하고 있었다.
딱 봐도 양아치스러운 은하의 모습에 비해 어중정한 양아치의 끼를 가지고 있는 이나쌤, 하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완전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적어도 얘는 순진한면이 있기라도 하지 그 여자는 정말...'
그 거지 같은 눈초리를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허 참 내가 살면서 은하와 누군가를 비교해 은하의 편을 들어 주는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역시 세상은 넓고 색다른 병신들도 많은 것 같다.
"어으 잘 먹었다"
국물 한점까지 쓱쓱 긁어 먹은 은하가 그제야 배부르다는 듯 숟가락을 내려놨다.
참 이렇게 보니까 얘가 먹는 건 많은데 그에 비해 살을 별로 찌지 않는 것 같다.
'두 공기 처먹는 애들은 몇 번 봐 왔는데 세 공기를 처먹는 건 또 처음이네'
하여간 처먹기는 참 잘 처먹는다.
뭐 그래도 깨작깨작 먹는 것보단 이렇게 잘 먹는 모습이 더 좋지 않겠는가.
"... 배가 터질 것 같아"
"... 등신"
별로 달라진 것도 없어 보이는데 은하는 자기 배를 붙잡고 얼굴을 찡그렸다.
약간 무지성으로 처먹는 것 같기도 하지만 뭐 나쁘게 보이지는 않았다.
"땡큐~"
자판기에서 뽑은 커피를 은하에게 건네자 은하는 찡그린 얼굴을 금세 풀며 커피를 마셨다.
'분명히 또 밖에 나가면 덮다는 핑계로 카페에 가자고 지랄을 할 텐데'
그래서 자판기 커피로 카페를 때울 생각이었다.
"그래서 넌 이제 뭐 하냐?"
뜨거운 커피를 움찔거리며 마시는 은하가 내게 물었다.
"헬스장가는데"
"... 헬스장?"
"응. 거기 갔다 와서 다시 알바 가야지"
"..."
갑자기 은하의 말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뭐 문제있어?"
"아니 뭐... 그냥 의외라서"
뭔가 되게 마음에 안 들어 보이는 듯한 눈치이다.
이건 또 무슨 지랄인가 하고 나는 유심히 은하를 쳐다봤지만 오히려 은하가 내 눈빛을 피했다.
"... 뭐 어쨌든 이제 그만 정리하고 일어나자"
커피도 다 마셨겠다 계산하고 순대국집을 나온 우리는 곧장 어마 무시한 날씨에 눈을 찡그렸다.
"존나 덥네... 그럼 나 간다?"
"... 야야 나는 뭐 안 물어 보냐?"
은하에게 인사하고 가려고 했을 때 은하가 내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니 알바 가는 거 아니었어?"
어떻게든 빨리 이 더위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나는 대충 말을 둘러 됐고 그런 내 말에 은하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 어떻게 알았냐? 이 시간에 알바를 다닌다는 걸 말해 준 적이 없는 것 같았는데"
"에이 씨! 그건 니가 알아서 생각해 보고 어쨌든 낼 보자"
무더운 더위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아 대충 인사하고 먼저 은하의 곁을 떠났다.
'... 씨발 찍었는데 그게 맞아떨어졌네'
뒤에서 은하의 헛웃음소리가 잠깐 들린 것 같지만 나는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빠르게 헬스장쪽으로 걸어 갔다.
현재 시각은 오후 1시, 한참 더울 때였다.
***
딸랑
"어우... 이제야 좀 살겠네"
문을 열고 헬스장에 들어서니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를 기분 좋게 반겨 줬다.
굳게 다물었던 표정이 사르르 풀려지면서 나는 숨을 크게 들이 마셨다.
'뭔 날씨가 연마다 두세 배씩 처오르는 것 같지?'
저번 여름이랑 별로 온도차이는 크게 없다고 하던데 씨발 그거 다 구라인 것 같다.
"진성 회원님은 되게 성실하게 나오시네요~"
"... 아 네"
언제나 기분 나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이나쌤에게 대충 인사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 아 저기 있으시네'
저쪽에서 열심히 등 운동을 하시는 소연쌤이 눈에 들어 왔다.
설마 오늘도 못 오실까 싶었는데 다행히 오늘은 나오신 모양이다.
"... 쳇 이거 서러워서 못 살겠네"
"..."
무시. 무시가 답이다.
이나쌤이 툴툴대건 말건 어쨌든 나는 빠르게 탈의실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곧바로 인사를 하러 소연쌤이 있는 쪽으로 갔는데 너무 열심히 운동을 하시는 모습에 혹여나 내가 운동의 흐름을 깨버릴 것 같아 그냥 나중에 인사를 드리기로 했다.
늘 그랬듯 전신거울 앞에 서서 가볍게 스트레칭하고 오늘도 본격적으로 유산소 운동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때 마침 운동이 끝났는지 소연쌤이 내게 다가왔다.
"진성 회원님! 언제 오셨어요? 운동하느라 회원님이 오신지도 몰랐네..."
되게 미안해하는 말투로 소연쌤이 사과를 건네자 오히려 당황한 나는 손을 마구 휘저으며 아니라고 말했다.
하여간 저 특유의 밝은 미소만큼은 소연쌤이 과연 최고인 것 같다.
'그에 비해 저기 데스크에 앉아 있는 사람은 참...'
말을 말자. 은하와는 완전 다른 의미로 비교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다.
"사실 어제 갑작스럽게 집에 문제가 터져 가지고..."
소연쌤은 어제 헬스장에 못 나온 이유를 내게 설명해 주었다.
PT가 있는 날이면 모를까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참 마음씨가 착하긴 정말 착한 사람이다.
스윽
그렇게 설명을 하다가 갑자기 주변 눈치를 살피더니 손으로 입을 가리고 소연쌤은 은밀하게 내게 무언가를 물었다.
"... 그 혹시 어제 무슨 일 없으셨죠...?"
"... 네 뭐 딱히 별다른 일은 없었어요"
아마 이 말은 이나쌤을 저격해서 하는 말이겠지?
내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소연쌤이 뭔가 조금 이상해 보였지만 아마 이것도 선한 마음씨에서 나온 걱정이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다음번에는 만약 자신이 헬스장에 못 올 것 같으면 연락을 주겠다고 말한 소연쌤이었다.
번호는 PT때문에 예전에 서로 교환을 했으니 알겠다고 답을 했고 소연쌤도 그럼 운동 열심히 하라며 이만 자리를 떠났다.
약 3시간 후
"후우... 후우... 여기까지만 해야지"
구슬처럼 흐르는 땀을 뒤로하고 런닝머신에서 내려온 나는 잠시 그 자리에서 숨을 골랐다.
확실히 헬스장에서 유산소 운동만 미친 듯이 해서 그런지 체력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조금씩 느껴졌다.
"으음~ 이제 그만하시게요?"
물통을 열고 물을 거침없이 마시는 사이 언제 왔는지 이나쌤이 눈초리를 살짝 올리면서 내게 물었다.
"진성씨 생각보다 되게 열심히 하시네요. 그렇게 안 봤는데"
"... 네"
뭐 늘 그렇 듯 이번에도 역시 대충 무시하고 지나쳤다.
그런 내 행동에 이나쌤 역시 눈살을 찌푸렸지만 뭐 그렇다고 지가 할 말이 있겠는가 나는 엄연히 돈을 낸 소비자인데.
그렇게 찜찜한 마음을 뒤로하고 샤워를 하러 탈의실에 들어가려고 했을 때 등 뒤에서 어떤 작은 소리가 들려졌다.
"... 쳇 존나 튕기네"
"... ?"
그 말에 나는 뒤를 돌았지만 이나쌤은 무슨 문제가 있냐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고 잠시 멍하니 이나쌤을 바라봤다.
이나쌤 또한 나를 바라봤고 잠시 나와 이나쌤 간의 침묵이 형성되었다.
'... 미친년이구나. 그것도 제대로 미친년'
당당한 이나쌤의 표정에는 그래서 이제 어떻게 반응할건데라는 표정이 드러나 있었고 그 모습에 나는 고민에 빠졌다.
만약 내가 이나쌤에게 아까 들은 말을 항의한다면 어쨌거나 이나쌤이랑 대화를 하는 연결점이 생성되어 버린다.
그러니 역시 이번에도 침묵을 하는 편이 옳았지만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었다.
"..."
"... 후우"
결국, 나는 다시 이나쌤을 무시하고 빠르게 탈의실로 들어 갔다.
쏴아아
화를 삭히려고 일부러 찬물로 샤워를 했지만 분은 쉽게 가라앉지가 않았다.
이건 학교에서 듣는 비난과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였다.
'적어도 걔들은 타당한 이유라도 있지'
"... 허 어이가 없어가지곤"
차라리 헬스장을 옮겨 버릴까라는 생각이 잠시 머릿말을 스쳐 지나갔지만 내가 뭐 다니고 싶어서 다니는 것도 아니고 예전에 끊어가지고 다니는 건데 그래도 돈 값해야되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소연쌤에게 얘기하기엔 일이 너무 커질 것 같았다.
"... 그래 씨발 기왕 이렇게 된 거 나도 그냥 제대로 무시해 버리자"
이를 악물고 샴푸로 머리를 헹구며 중얼거렸다.
그러니 이제 앞으로 그 미친년을 투명인간 취급을 할 것이다.
그년이 내게 무슨 말을 지껄이든 뒤에서 나를 바라보든 전부 관심을 끊어 버리겠다는 소리다.
"... 좆같은 년"
샤워를 하는 도중에 내 입에선 이나쌤에 대한 욕이 끊이지가 않았다.
쏴아아
차가운 물이 내 몸을 구석구석 적셨다.
그러나 딱히 그렇게 차갑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