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 속 처녀 지키기-14화 (14/72)

〈 14화 〉 찌라시

* * *

"해서 여기에 a를 대입하면..."

머엉­

수업이 시작됐지만 나는 집중을 할 수 없었다.

그러건 말건 교수님은 계속 수업을 진행하셨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교수님만 멍하니 바라보는 것 외엔 없었다.

그만큼 현재 내 머릿속은 복잡함으로 인해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씨발 내가 살면서 도촬을 당할 줄이야.

생각할 수록 어이가 없네 아무리 내가 싫어도 그렇지 그런 병신같은 찌라시를 이렇게 만들어버린다고?

'... 좆같네 그냥 신고 할까? 진짜 별 거지같은 일만 계속 생기니까 원'

속으로 한숨이 나왔다. 지금도 뒷 자리에서 나를 주제로 수군거리는 소리가 가끔씩 들려왔다.

허이구 이제는 철벽의 남신이 아니라 걸레의 남신이렌다. 씨발 기가 막혀가지곤.

그렇게 생각에 잠긴 사이 시간은 빠르게 흘러 갔다.

어느새 수업이 끝나고 교수님이 강의실을 나가시자마자 본격적으로 노골적인 시선들이 내게 쏟아졌다.

나는 그 시선에 역겨움을 느끼며 빠르게 강의실을 나갔다.

"하아 씨발... 이걸 어떻게 해야되지. 아니 그보다 서은하도 지금 이 상황을 알고 있나"

멘탈이 나간 건 아니다. 이런 일로 부서질 내 멘탈이 아니었다. 그냥 단지 살짝 짜증이 났을 뿐이지.

무엇보다도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될지가 가장 걱정스러웠다.

솔직히 나만 쓰레기 소리를 듣는 건 상관이 없다. 내 이미지에 미련도 없었고 남들이 뭐라 하던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었으니...

원래라면 그냥 그런가 하고 넘어 갔을텐데 이번일은 나뿐만이 아니라 서은하도 같이 포함이 되어 있어서 일이 복잡했다.

띠리링­

[서은하]

"... 거지같은년. 생각하니까 바로 전화가 오네"

깊게 한숨을 내쉬고 전화를 받았다.

서은하 성격상 아마 지금쯤 일어나서 찌라시를 들었을 것이다.

[괜찮냐? 어떤 머저리 새끼가 지랄을 해놨다는데]

답지 않은 황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서은하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새끼가 그래도 의리는 있나 보네.

"조금 좆같기는 한데 뭐 그렇게까지 큰일은 없어. 넌 별일 없냐?"

[몰라 다들 너만 존나게 욕하고 나는 걱정하던 데?]

... 씨발 좆같은 년. 역시 자기는 인싸라 이런 거에 특별히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건가? 그러면 결과적으론 나만 병신이 되는 거네.

'이게 이미지 관리에 중요성인가? 씨발 나도 친구 좀 만들걸'

그래도 다행히다. 서은하 말대로라면 결국엔 나만 욕을 먹는 셈이 되는 것이니 이러면 어느 정도 해결은 될 것 같다.

뭐 대학에서의 찌라시는 어처피 수명이 짧으니 대충 시간이 흐르면 어느 정도 잠잠해질 것이다. 그 때까지만 몸 좀 사리면 되겠지.

'... 갑자기 열받네? 잘못한 새끼는 따로 있는데 왜 내가 사려야 되는거지?'

에휴 뭐 어쩌겠는가. 대응을 하자면 할 수는 있지만 생각만해도 존나 귀찮은 일들이 벌어질 것 같은데.

'차라리 그냥 잠깐 닥치고 끝내버리는게 더 났지'

[뭔 일 있으면 전화해. 나는 도촬범 새끼좀 찾아 볼 테니까]

"그래. 너도 뭔 일 생기면 전화해라"

[... 풋 알았어]

뚝­

"..."

전화가 끊기고 나는 잠시 멍하니 휴대폰을 바라봤다.

이 새끼는 갑자기 왜 쪼갠 거지? 하여간 도통 이해를 할 수가 없는 여자다.

"... 뭐 그런 점이 매력이지만"

순간 눈살이 찌푸려졌다. 어우 씨발 난 또 뭐라는 거야. 그게 왜 매력이야 등신 같은 점이지.

"... 쩝 헬스장이나 가야겠다"

안되겠다. 정신 좀 차릴 겸 땀이나 한 번 쫙 빼야겠다.

솔직히 이 날씨에 그냥 걷기만 해도 땀이 날 것 같기는 하지만 딱히 할 일도 없으니 운동이라도 해야지.

"..."

그래도 이건 아니다. 가는 길에 아이스크림이라도 하나 물어야겠다.

***

쾅­

"으어...! 더 이상 못해먹겠네"

덤밸을 던지 듯이 내려놓으며 바닥에 주저 앉았다.

팔이 자연스럽게 저려왔고 입에선 마른침이 잔뜩 고였다.

"... 어유"

바닥에 내팽겨친 덤밸을 바라봤다.

예전에 들었던 것에 비해 훨씬 작은 덤밸이지만 지금 내 수준으론 저것조차 힘겹게 느껴졌다.

"... 쓰읍 그냥 유산소만 할까"

축축해진 손에 눈쌀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뭔가 운동을 하면 찝찝한 기분이 해소 될 줄 알았는데 별로 그렇게 해소 되지 않았다.

'오히려 피로감만 늘어 버린 것 같은데...'

"오늘도 열심히 하시네요 진성 회원님"

"아 소연쌤"

그러던 찰나 소연쌤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언제나 봐도 느끼는거지만 소연쌤의 저 미소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몸에 비해 미소가 많이 순박한 것은 소연쌤에 매력아닌 매력이었다.

"...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 표정이 너무 암울해 보이시는데"

"네? 아 뭐... 그냥 별일 아니에요"

소연쌤의 말에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눈치도 빠르시네 아니면 내가 너무 티를 낸 건가?

"어우 근데 소연쌤은 몸매 관리를 어떻게 하시는거에요? 볼 때 마다 감탄이 나오네"

괜히 민망스러워서 빠르게 주제를 돌렸다.

다행히 소연쌤은 내 말에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나도 꾸준히 운동을 하면 멋진 몸매를 가꿀 것이라 얘기를 했다.

'서은하가 소연쌤에 반만이라도 닮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 에휴"

말을 말자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는 법이니.

아니 근데 씨발 난 왜 자꾸 소연쌤이랑 서은하를 비교하는거지? 비교 자체가 안되는데.

"..."

소연쌤은 조용히 나를 바라봤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많은 생각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으... 안 되겠다! 진성 회원님 저 따라오세요!"

"어어..?"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나는 소연쌤에게 말을 하려고 했지만 소연쌤이 먼저 선수를 잡았다.

뜬금없는 소연쌤의 행동에 나는 의아해 했지만 내가 뭐라 묻기도 전에 소연쌤이 먼저 입을 열었다.

"보니까 머리를 비우시려고 오늘 평소 보다 좀 더 강하게 운동 하시는 것 같은데"

"... 네?"

"그럴 거면 제가 하는 방식대로 따라 해 보세요. 진성 회원님에겐 조금 무리일지도 모르지만 절대로 딴 생각은 나지 않을거에요!"

그러면서 웬 봉을 하나 가져 오더니 내게 건네 주고 자기도 봉을 하나 가져 왔다.

소연쌤에 의도를 전혀 알 수 없었던 나는 멍하니 봉을 쥔 체로 소연쌤을 바라봤다.

"자 진성 회원님! 제 동작을 따라 하세요"

소연쌤은 봉을 어깨에 걸치고 그 자세로 스쿼트를 하기 시작했다.

안정적인 자세와 팽팽해진 엉덩이, 그리고 규칙적인 호흡이 삼위일체를 이루며 정말 교과서적인 자세가 나오기 시작했다.

정말 볼 때마다 느끼는데 확실히 트레이너는 트레이너인가보다.

분명히 따라했는데 난 왜 저런 자세가 안 나올까?

텅­

"후~ 그럼 이제 진성회원님이 해 보실까요?"

"아. 네"

정확히 1세트를 하고 나서 소연쌤은 곧바로 내게 자세를 잡아주었다.

딱히 자세는 힘들거나 그러지 않았다.

"봉으로 하는 스쿼트는 맨몸 스쿼트보다 좀 더 힘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성 회원님이라면 충분히 견뎌내실 수 있을 거에요!"

"..."

뭔가 불안한 말을 잔뜩 하는 소연쌤이었지만 일단 그렇게 자세를 잡았다.

무슨 소연쌤이 내게 악강점을 가진 것도 아니고 나를 위해서 해주는 건데 그래도 해 보기는 해야겠지.

'에이 맨몸 스쿼트에 봉만 추가됐을 뿐인데 뭐가 달라지겠어'

그리고 잠시 후

"으어어어...!"

"좋아요 회원님! 앞으로 3개만 더하면 끝납니다!"

"부, 분명히 아까는 2개만 더하면 된다고...."

"자자 조금만 더 힘을 내세요! 이번엔 정말로 거의 다 왔어요!"

이를 악물었다. 씨발 내가 등신이지 도대체 뭔 생각으로 소연쌤의 운동 루틴을 따라할 생각을 했을까.

아니 그건 그렇고 이건 운동이 아니라 그냥 몸을 혹사시키는거나 다름 없어 보이는데 이게 무슨 운동이야.

여기서 더 악랄한 건 소연쌤의 눈빛이다. 어떻게 그 순박했던 눈빛이 운동만 시작하면 매섭게 바뀌는 건지.

'씨발 눈에서 레이저가 나온다는 게 이런거구나'

지금 당장 봉을 내팽개치고 싶어도 소연쌤의 저 눈빛만 보면 저절로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좋아요!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4번만 더!"

"으어어...!!!"

절망해 하는 나를 소연쌤은 아랑곳하지 않아 하며 계속 스쿼트를 시켰다.

스쿼트는 그 이후로 30개를 더 하고 나서야 끝이 났고 나는 거칠게 숨을 고르며 자리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허억 허억..."

"어때요? 잡 생각 따윈 정말 하나도 떠오르지 않죠? 이게 바로 운동의 효과인 거에요! 그러니까 현생에서 지치는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헬스장으로 와서..."

"..."

지금은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던 중 갑자기 소연쌤의 복부에 있는 복근이 눈에 들어왔다.

저 정도로 몸을 만들려면 어느 정도의 정성과 시간이 소모 될까? 하여간 평소에 눈치나 행색 같은 건 바른 사람이 유독 운동을 할 때에만 바보가 되어버리니.

"진성 회원님? 지금 제 말 제대로 듣고 계세요?"

소연쌤의 말에 나는 멍하니 소연쌤을 올려다봤다.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순박한 미소가 내 눈에 들어 왔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