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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 속 처녀 지키기-13화 (13/72)

〈 13화 〉 성수아(4)

* * *

"..."

"..."

잠시 우리 사이에 침묵이 발생했다.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 한 점이 나와 유나를 부드럽게 스치고 지나갔다.

유나는 불안해 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고 그것은 마치 해명을 요구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하아..."

지금 벌어진 상황에 한숨이 나왔다.

그렇게 속으로 진아를 욕하면서 그렇게 유나에게 해명을 하려고 했다.

"그게 그러니까 말이야..."

멈칫­

"... 진성아?"

내가 입을 다물자 유나는 어리둥절해했다.

생각이 바꼈다. 해명을 하지 않을 것이다.

"맞아"

"... 어?"

"맞다고. 나 그 양아치년이랑 같이 잤어"

의아해하는 유나에게 나는 비릿하게 미소 지으며 유나를 비웃었다.

만약 내가 진아가 말한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유나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갑자기 쓸데없는 궁금증이 들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재미있을 것 같았다.

유나는 내 말을 듣고 바보마냥 멍하니 나를 바라봤다. 충격을 받았나 보다.

"... 저, 정말이야?"

"뭐 문제있어? 내가 여자랑 잤다는게?"

"..."

"그리고 아니 아무리 소꿉친구 사이라도 이런 걸로 지적하는 건 좀 그렇지 않냐? 무슨 찐따 새끼도 아니고 내가 너에게 이런 것 까지 모두 말해줘야 돼?"

"..."

음... 내가 생각해도 존나 띠겁게 말하는 것 같네.

그래도 생각외로 너무 격한 반응을 보여주는 거 아니야? 지금 뭐 그냥 툭 치면 쓰러질 것 같아 보이는데.

"어떻게..."

"어?"

"... 여, 여자친구도 사귀지 않았다면서..."

그렇게 계속 침묵하고 있던 유나가 몸을 벌벌 떨면서 겨우 한마디를 내뱉었다.

너무 힘들어 하는 유나의 모습에 여기서 장난을 멈출까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고개를 푹 숙인 유나에게 나는 냉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꼭 여자친구가 있어야지만 섹스를 할 수 있냐? 너 등신이야?"

씨발 근데 생각해보니까 나랑 아예 맞지 않은 대답들이네?

섹스는 당연히 사랑하는 사람하고만 해야지 뭔 걸레마냥 아무 여자랑 섹스를 하는 게 등신이지.

"하지만 진성이 너는 예전부터..."

"아~ 그 병신같이 낡은 생각들? 그 양아치를 만나고 나서 전부 버려버렸어. 보니까 왜 낡은 생각 낡은 생각 그러는지 알 것 같더라고"

"..."

진아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계속 어둡게 변했다.

더 이상 장난을 쳤다간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아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하고 그만 하기로 했다.

"근데 너 왜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냐? 내가 누구랑 사귀던 섹스를 하던 네가 무슨 상관인데? 우린 그냥 소꿉친구이지 그 이상은 아니잖아. 안 그래?"

"..."

"아니면 혹시 너..."

순간적으로 유나에게 얼굴을 들이대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을 바라보며 나는 조용히 유나의 귓속에 속삭이 듯 말을 내뱉었다.

"너 나 좋아하냐?"

멈칫­

그 말에 벌벌 떨고 있던 유나의 몸이 굳어졌다.

유나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체 계속 땅바닥에 시선을 집중했고 나는 그런 유나를 지긋이 바라봤다.

유나의 작은 얼굴이 또 다시 시뻘게졌다. 아무래도 시답잖은 내 말에 화가 잔뜩 났나보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까지 얼굴을 붉힐 이유가 없겠지 안 그래?

유나는 그렇게 계속 얼굴을 붉힌 체 침묵을 유지했고 나도 멈추지 않고 유나를 바라봤다.

"... 풋"

결국 유나가 대답을 하기 전 내 웃음이 먼저 터져버렸다.

내가 통쾌하게 웃음을 터뜨리자 유나는 바보처럼 멍하니 나를 바라봤고 나는 웃음을 머금으며 유나에게 말했다.

"장난이야 장난! 푸하하. 설마 이렇게까지 몰릴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어우 야 미안하다. 나도 반응이 이렇게 좋을지는 몰라가지고"

"... 장난... 이라고?"

그 말에 굳어있던 유나의 몸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다시 고개를 들은 유나는 커다란 눈망울로 나를 멀뚱멀뚱 쳐다봤다. 복잡한 유나의 심정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것 같았다.

'쓰읍... 이렇게까지 걱정해 주니까 조금 죄책감드네'

어느 정도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을 필요할 것 같아 잠깐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잠시 뒤 나는 유나에게 서은하와 있었던 일들을 모두 설명했다.

내 말을 들을 수록 유나의 표정은 확실히 풀어져 갔다.

"... 그래서 그랬던거야. 무슨 말인지 이해 돼?"

"... 으응 무슨 말인지 이해가 돼"

다행히 유나는 내 말을 모두 믿어주었다. 확실히 소꿉친구는 소꿉친구인가 보다.

내 말을 모두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걸 보니 솔직히 감격스러웠다.

하긴 하나 밖에 없는 동생은 타락이니 뭐니 개소리만 잔뜩 지껄이면서 아에 내용을 와전시켜버렸는데. 그에 비해 유나는 천사지 천사.

"진짜 너 밖에 없다 유나야..."

"어어? 지, 진성아?"

생각하댜보니 갑자기 뭔가가 울컥 올라와서 나도 모르게 유나를 껴안... 지는 않고 작은 손을 꼬옥 붙잡았다.

역시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건 유나 밖에 없었다.

손을 잡을 때 유나는 조금 당황스러워 한 눈치였지만 내 손을 억지로 놓지는 않았다.

친구 좋다는게 뭐 별거 있나 그냥 서로 공감만 잘 해주면 그것이 최고의 친구인거지.

"... 헤"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건 아마 기분 탓일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해명도 했고 시간도 늦었으니 이제는 정말 가야 될 것 같다.

'씨발 뭐 했다고 30분이 지나가냐. 수업 들을 땐 뒤지게 안 지나가던데'

나도 아쉬웠고 유나도 많이 아쉬워 하는 모습이었다.

뭐 나중에 밥이나 한 끼 먹자고 약속하고 우리는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헤어졌다.

[이번역은...]

늦은 밤이라서 그런지 지하철엔 자리가 많았다.

대충 문 옆에 있는 자리를 차지하고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오랜만에 이동을 많이 해서 그런지 몸이 피곤했다. 그렇게 앉은 체로 아까 유나와 나누었던 대화를 잠시 회상했다.

"... 얘가 원래도 수동적이었는데 지금은 완전 수동 그 자체가 돼버렸네"

질문은 내가 다 했고 유나는 대답만 했다.

원래 이 정도까지는 아니였는데 역전이 되고 나서 유나의 성격은 좀 더 소심하게 바뀐 것 같다.

"... 덕분에 장난칠 맛은 훨씬 늘었네"

문득 아까 나를 좋아하냐고 물은 질문이 떠올랐다.

아무리 그래도 몇 십년을 함께 한 소꿉친구인데 좀스럽게 좋아하냐고 물어보다니 이건 내가 병신 짓을 한 게 맞는 것 같다.

얼마나 화가 났으면 얼굴이 붉어졌겠어?

'그런데 유나가 뭐라고 말했더라?'

곰곰이 계속 생각했지만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뭐 어쨌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소꿉친구 사이에 우정은 영원하다는 것이다.

아마 나와 유나의 우정은 정말 이상한 일이 아닌 이상 변치 않을 것이다.

"..."

창 밖에 스쳐 지나가는 불빛들을 바라봤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씁쓸해졌다.

***

다음날 아침. 쏟아지는 피로를 뒤로하고 나는 강의실로 들어왔다.

씨발 내가 왜 월요일 아침에 강의를 신청해놨지? 생각할 수록 어이가 없네.

강의실에 들어서고 혹시나 해서 주위를 둘러봤지만 역시나 서은하는 보이지 않았다.

하긴 그 새끼는 수업이 오후에 있어도 지각하는 새끼인데 설마 아침 강의를 신청했겠어?

대충 빈 자리에 앉아 짐을 풀었다. 약 15분 정도 남았으니까 남은 시간에 물 좀 떠다오고 그러면 될 것 같다.

'근데 씨발 오늘은 무슨 증오의 날인가? 왜 다들 나만 노려보는 것 같지?'

물통을 들고 복도로 나가면서 불쾌한 시선들을 받았다.

원래도 노골적인 시선들을 많이 받아왔지만 특히 오늘은 이상할 정도로 많은 이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것도 원래는 남자들의 시선이 전부였는데 지금은 여자들의 시선도 적지 않게 느껴졌다.

꺼림직한 기분을 느끼며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뭔가 나에 관해서 어떤 일이 터진 것 같은데 좀 일이 크게 터졌나 보다. 그래서 그 일이 뭔데 씨발.

"... 쟤야? 그 톡방에 올라온 얘가?"

"쯧. 하여간 저 여우 같은 놈. 혼자서 고귀한 척은 다 해 먹더니 그럴 줄 알았어"

"쓰읍... 역시 저렇게 순결한척 하는 놈들이 오히려 더 변태적이라니까?"

"나도 함 대달라 하면 대줄까?"

심지어 성희롱을 비롯해 뒷담까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니 씨발 뒷담은 뭐 그렇다쳐도 당사자가 바로 앞에 있는데 이렇게 대놓고 성희롱질을 한다고? 저건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데.

"... 지랄을 하네 병신들"

무슨 일인지 물어볼까라는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귀찮아서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다.

솔직히 별 감흥도 느껴지지 않았다. 군대에서 워낙 호되게 당해가지고 이런 수위론 내 멘탈이 뚫어 지지가 않았다.

저 정도 수준이면 그냥 어린애들 말장난 수준이지 뭐.

그런데 씨발 진짜 뭐 때문에 뒷담을 까는거지? 그냥 한 번 물어볼까?

까똑­

그때 재현이에게 문자가 왔다. 얘는 아침부터 뭔 일이지?

[형]

[형]

[이 사진 진짜 형이에요?]

문자가 존나 빠르게 보내져 왔다.

나는 이건 또 무슨 소린가 하고 재현이가 보낸 사진을 유심하게 바라봤다. 그리고 곧바로 눈살을 찌푸렸다.

"... 씨발 이거 뭐야"

휴대폰 속에 사진은 나와 서은하가 같이 고시원에서 나오는 장면이 담겨져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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