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 서은하(5)
* * *
"... 이, 이 망할련이 진짜!!"
머리가 뜨거워 지면서 내 손이 하늘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곧바로 무지막지하게 빠른 속도로 다시 내려와 반쯤 벗은 서은하의 몸뚱아리를 내려쳤다.
짜악! 짝!!
"뜨아악!! 야야 장난이야 장난이라고!"
"마침 비도 오겠다 오늘 한번 먼지나게 처맞어봐라!"
씨발 응큼하긴? 아오 진짜 개 열받네. 이거 뭐 좀 더 효율적으로 팰 수 있는 방법이 없나?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허억... 헉... 넌 진짜... 사람 새끼도 아니야 망할년아...!"
미친 듯이 서은하를 패다가 오히려 내 체력이 먼저 떨어져버렸다.
나는 팔을 내려놓고 거칠게 숨을 골랐고 서은하는 울상을 짓고 있었다.
일부로 손바닥으로 쳤는데 그 때문인지 까맸던 서은하의 피부는 나로 인해 붉게 변한 상태였다.
"아오... 존나 따갑네..."
가끔씩 움찔 거리며 기가차다는 눈빛으로 자신의 몸을 관찰하던 서은하에게 나는 옷을 건넸다.
솔직히 온 몸이 붉게 물들인 것을 보고 내가 조금 과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과는 하지 않을 생각이다.
***
쏴아아
하늘에 구멍이 뚤렸는지 비가 아까부터 미친 듯이 쏟아지고 있었다.
"여기"
"오~ 땡큐"
그래도 손님인데 뭐라도 대접해야 싶어 저번에 친구 집에서 훔쳐온 코코아를 서은하에게 건냈다.
웅크린 자세로 호로록 코코아를 마시는 모습이 마치 도토리를 먹는 다람쥐 같았다.
"그런데 넌 언제부터 깨어 있었냐?"
"... 방금전에 일어났어"
왠지 모르게 은하의 목소리가 살짝 떨린 것 같았지만 아마 착각일 것이다.
설마 사실 이미 깨어있었는데 일부러 자는 척을 했던 거겠어? 그러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사이코패스지.
"어쨌든 이거 마시고 가라"
"응 오늘 도와줘서 고마웠고 가는 길에 우산 좀 빌려줘라"
그래 우산이 어디있... 잠깐만.
"... 씨발"
"어? 이번엔 또 무슨일인데?"
질린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 은하에게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생각해보니까 저번에 우산을 친구 집에 두고 왔네"
"어? 그럼 하나도 없는거야?"
"... 응"
"..."
"..."
문득 우리는 고시원에서 하나 밖에 없는 작은 창문으로 바깥을 바라봤다.
비가 내렸다. 그것도 말도 안되게 무식하게 내리고 있었다.
"흐음... 근처의 편의점은 있냐?"
"아! 여기서 5분 정도 거리의 편의점이 하나 있기는 한데... 설마 저 물줄기를 뚫고 편의점을 가려고?"
"다른 방법이 딱히 없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
그렇기는 한데... 그래도 이건 아무리봐도 말도 안 되는 짓거리같은데.
안 그래도 서은하 저년 상태도 멀쩡해 보이지 않았고 비록 5분거리지만 저 비를 뚫고 가는 건 좀...
"그럼 나 간다?"
"... 에씨! 야야 잠깐만 기다려봐"
내가 그런 고민을 하던 사이 이 무식한년은 정말로 저 물난리를 맞을 생각이었는지 신발을 신었다.
나는 일단 나가려는 서은하를 붙잡고 잠시 망설이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 네 그래서 오늘만 좀... 아 감사합니다!"
"... 뭔데? 설마 요즘은 우산도 배달해주냐?"
그건 또 뭔 개소리야. 우산을 왜 배달해줘?
"닥치고 너 오늘 여기서 자고 가라"
"... 뭐?"
내 말에 은하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상식적으로 저 날씨에 우산도 없이 나가는 것은 미친 짓이고 업주 아저씨도 허락해주셨으니 그냥 자고 가"
"... 저, 정말?"
"싫으면 그냥 꺼지던가"
갑자기 열불나네. 내가 얘를 위해서 왜 이딴 짓거리가까지 해야 되는거지? 걍 처맞으면서 가라고 할까?
"... 그럼 뭐 어쩔 수 없으니 하룻밤만 신세질께"
하지만 이미 신발을 벗고 고시원으로 들어온 서은하였다.
하긴 아무리 서은하라도 저 비를 뚫는건 미친 행위겠지.
"너가 침대에서 자라. 난 바닥에서 잘테니까"
"... 뭔소리야? 집주인인 네가 침대에서 자야지. 어처피 난 원래 바닥에서 자는 편이라서"
"... 그럼 그렇게 하던가"
솔직히 그냥 해본 말인데 그래도 양심은 있나보다.
대충 잘 때 이불 하나 정도만 주면 되겠지.
이 말을 끝으로 불편한 침묵이 시작됐다.
투둑 투두둑
"..."
"..."
현재 시각은 9시 30분. 아직 자기엔 이른 시간이다.
조용한 방에선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외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 솔직히 조금 거시기하다. 다 큰 남녀가 한 방에 같이 있으니 당연히 분위기가 민망해 질 수 밖에 없었다.
어우 씨발 불편해서 못 견디겠네. 일단 뭐라도 말을 하는게...
"유진성"
"어?"
그 때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던 서은하가 입을 열고 정말 무심한 말투로 내게 말을 했다.
"할 거 없으면 우리 진실게임이라도 할레?"
"... 진실게임?"
'뭐 시간 때우기엔 괜찮겠네'
내가 긍정의 표시를 보이자 은하는 곧바로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어 자신의 엄지 손가락 위로 올렸다.
"숫자면 내가 너한테 물어보고 그림이면 네가 나한테 물어보는거다?"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은?"
"빚진걸로 치고 넘어가는거 어때?"
"..."
씨발 이거 뭔가 불안한데...? 에이 뭐 별일이야 있겠어? 정 말하기 그러면 거짓말이라도 하지 뭐.
"그래 그렇게 하자"
"... 킥 그럼 던진다"
핑
묘한 미소를 짓던 서은하는 손가락 위에 있는 동전을 위로 튕겼고 동전은 튕겨지는 소리와 함께 그대로 곧장 침대 위로 떨어졌다.
우선 첫 번째 결과는... 씨발 숫자네. 이러면 쟤가 나한테 질문하는거잖아?
"넌 지금까지 여자친구는 있었어?"
"... 음 초등학교때 있긴 있었는데 사귀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아서 그게 사귄건지는 모르겠는데?"
초딩 때 어떤 여자애가 나한테 고백을 하고 사귀기로 했는데 딱히 아무 일도 하지 않았던 것이 생각났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이성과 사귄다는 개념을 잘 몰랐었다.
'한 달 사귀고 헤어졌나?'
"오~ 그래도 철벽의 남신도 여자친구는 있었다는거네"
"제발 그 좆같은 말 좀 안하면 안되냐?"
진짜 들으면 들을 수록 존나 역겨워 죽겠는데 도대체 어떤 새끼가그딴걸 처만든거야.
"풋...! 그러면 내 질문은 끝나고 이번엔 공평하게 네가 던져"
나는 잠시 서은하를 노려보다 침대 위에 있는 동전을 잡고 위로 튕겼다.
핑
'씨발'
"... 또 숫자네"
결과는 또 숫자였다.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은 체 서은하는 동전을 만지작거리며 또다시 내게 질문을 했다.
"넌 어떤 여자가 좋냐? 그 뭐야 저번에 말한 것처럼 바람안피고 착한 여자 말고 좀 더 자세하게 말이야"
"... 그게 대체 왜 궁금한 건데?"
"왜긴 이거 솔직히 과에서 너 빼고 다 궁금해 할걸?"
'그니까 씨발 그게 왜 궁금한 거냐고...'
"흐음..."
그나저나 내가 원하는 여성의상이라...
"솔직히 외적인 면은 둘째치고 일단 개념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성적으로도 너무 문란하지 않고... 한 사람만을 사랑해주는 그런 사람?"
"... 그건 또 무슨 애늙은이 같은 취향이냐?"
"뭐래 미친년아 상식적으로 이게 정상적인거야"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 서은하를 나는 존나게 째려봤다.
아니 이게 당연한게 아닌가? 설마 바뀌고 나서 성적인 개념들도 다 바뀐거야?
"... 그럼 넌 섹스도 한 사람하고만 할거냐?"
"그럴건데?"
"허어 정말로 존경스럽다 참..."
'... 미친년'
그래 괜히 이해하려고 한 내가 등신이었지. 그냥 그런가하고 넘어가는게 속편하겠다.
"... 에휴 동전이나 던져"
피잉
"아니 씨발 너 동전에다 뭔 짓거리 해놨냐? 어떻게 3번 연속 숫자가 나와?"
"왜 확률적으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인데"
또 다시 동전이 하늘 위로 솟아 올랐고 지랄맞게도 숫자가 그려진 면이 나왔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올랐지만 서은하는 곧장 내게 질문을 했다.
"만약에 아주 만약에 말이야..."
"... 이번엔 뭘 말하려고 그렇게 뜸을 들여?"
"... 그니까 내가 네 말대로 개념이 있고 성적으로 문란하지도 않으며 평생을 너만 사랑해 준다고 하면 넌 나랑 사귈 의향이 있어...?"
"..."
"..."
눈을 동그랗게 뜨며 서은하를 바라봤다. 서은하 또한 그런 내 시선을 피하지 않고 나를 바라봤다.
"... 뭔 개소리야 내가 너랑 왜 사겨"
"그니까 만약에, 만약에 말이야..."
"..."
"..."
분위기가 다시 묘해졌다. 다시 우리 둘 사이에 침묵이 피어 올랐고 조용한 방 안에서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 뭐 그렇다면 사귀겠지"
"... 어?"
"어처피 네가 그럴일은 절대로 없겠지만"
개념이 있고 성적으로 문란하지도 않으며 평생을 나만 바라보는 서은하라... 씨발 우리나라가 통일을 하는 게 더 현실성 있어 보이네.
'근데 왜 이딴 질문을 한거지...? '
"... 크흠! 됐지? 이제 동전 내놔 이년아"
"..."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일부로 장난치 듯이 말했다.
서은하는 말 없이 내게 동전을 건넸고 왠지 모르게 그녀는 즐거워보였다.
씨발 입가에서 계속 웃음이 흘러나오는 모습이 왜 이렇게 얄미워 보이지? 괜히 말했나?
"... 그럼 던진다?"
피잉
어쨌든 나는 서은하에게 받은 동전을 하늘 위로 던졌다.
"씨바알!! 이게 주작이지 뭐가 주작이야!!"
또 숫자가 나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