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 서은하
* * *
"진성아 이건 3번, 이건 5번 테이블로"
"네 사장님"
딸랑
"어서오세요"
정신이 없었다. 서빙은 살면서 처음 해봤는데 설마 이렇게까지 난잡할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이게 어느 정도냐면 지금 손님 3명이 나갔는데 곧 이어 손님 5명이 들어왔다. 이게 대체 무슨 기적의 계산법이야 씨발.
"좆같은 새끼들. 좀 깨끗이 먹으면 어디 덧나나...?"
비워진 테이블 바닥에 떨어진 치킨 조각들을 치우면서 중얼거렸다.
서빙을 비롯해 자리를 청소하는 것은 상하차때와는 다른 노동의 고통이었다.
솔직히 개인적인 생각으론 비록 시작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상하차가 서빙보다 훨씬 나은 것 같게 느껴졌다.
"그래서 어제 내가말이야..."
"깔깔깔!!"
"뭐? 이따 남자친구 만나러가야되서 못 마신다고? 에라이 그냥 뒤져 이년아 니가 친구냐?"
그래도 그나마 좋았던 것은 분위기가 활기찼다는 점이었다.
적어도 이곳에선 우울해하거나 근심과 걱정이 있는 사람들이 없었다.
상하차를 할 때는 정말 꿈도 희망도 없는 눈빛들만 잔뜩 봐왔는데 이것 만큼은 호프집의 장점인 것 같다.
"으어어어... 허리아파 죽겠네"
"진성아 12번 테이블에 이거 가져다 주렴"
그렇다고 나까지 활기찼다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아니 씨발 술집이 여기밖에 없나? 왜 다들 여기로만 오는 것 같지? 이곳 말고 다른 술집이...
'... 생각해보니 여기 말고 다른 술집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이거 그럼 독점이잖아?'
딸랑
"어서오세요."
시답잖은 생각이지만 생각하는 도중에도 손님이 들어오자 나는 반복적인 말투로 인사를 했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가계로 들어온 손님들을 바라보다 두 눈을 크게 뜨었다.
"... 이진성? 너 여기서일하냐?"
"뭐? 이진성이라고?"
... 얘네 우리 과 동기들인데? 잠깐. 그러고 보니 아까 서은하가 동기들끼리 회식이 있다고 했는데 여기서 한다는거였어?
"뭐해 안들어가고. 입구에서 뭐하는 짓거리냐"
"그래. 은하 말대로 일단 자리부터 잡자"
서은하가 지나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고 그제서야 동기들도 비어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나도 조용히 주문을 받았다. 물론 이런 곳에서 동기들을 만나게 된 것은 반가웠지만 애석하게도 여자들만 나를 반기었을 뿐 남자 동기들은 뭔가 내게서 거리를두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씨발 저새끼는 왜 자꾸 나를 쨰려보는거야?'
자리를 잡고 서은하의 옆자리에 앉은 새끼가 나를 조용히 노려봤다.
문득 아까 오전에 말한 후배녀석의 말이 떠올랐다.
"진성이 이런 곳에서 일하고 있었구나..."
"힘들겠다... 그런데 혹시 이것 좀 더 줄 수 없어? 우리 동기잖아"
장난기 있는 목소리로 이런 영양가 없는 말도 말하곤 했는데 여기서 좆같은 점은 여자 동기들은 농담삼아 말했지만 사내 새끼들이 정말 노골적인 말투로 말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남자 새끼들의 말투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역함을 일으켰다.
데구르르
"어이쿠. 여기 컵이랑 포크좀 새걸로 가져다주세요"
"... 네네"
바닥에 떨어진 접시와 포크를 주으며 나는 화를 눌렀다.
동기들 중 또라이라 불렸던 저 미친놈이 벌써 세 번째나 식기를 바닥에 떨어뜨리는 짓을 반복하고 있었다.
아무리봐도 일부로 행동한 것 같아 보이는데 그래도 일단 저 새끼는 손님이고 나는 종업원이니... 어우 씨발놈들 내가 참아야지.
"너도 한 잔 할래?"
"... 일하는거 안보이냐?너나 많이 처마셔라"
그 와중에 서은하는 맥주잔을 들면서 내게 합석하라고 지껄였는데 이 새끼가 제일 얄밉게 느껴졌다.
솔직히 걍 빨리 처 마시고 꺼져줬으면 좋겠다. 역시 악질 중에서 가장 악질은 아는 놈이라고 하던데 그 말이 확실한 것 같다.
'이, 이 씨발놈들아! 작작 좀 흘리면서 먹으라고!! 니들이 애새끼도 아니고... 어어 저 새끼 방금 바닥에 침 뱉은거야? 저런 썅놈의 새끼가'
치워도 치워도 도저히 치워지지가 않는 이 상황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걍 다 뒤져버렸으면 좋겠다.
딸랑
"어서오세..."
"어우... 야! 정신좀 차려 새꺄"
"... 으...
"키킥. 지가 술이 쎄기는 무슨"
내가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는 사이 호프집의 문이 열리고 또 다시 손님들이 들어왔다.
그런데 이번에 들어온 손님들은 이미 거하게 한 잔을 마셨는지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 씨발년들이 그렇게 쳐마셨으면 그냥 집에서 잠이나 자지'
지독한 술냄새에 인상이 찌푸려지려는 것을 억지로 참아내고 주문을 받기 위해 그녀들이 자리한 테이블로 갔다.
저런 새끼들은 그냥 빨리 먹이고 보내는 것이 가장 깔끔한 방법이다.
"와우... 오빠 내 스타일인데? 이름이 뭐야?"
내가 메뉴판을 들고 다가가자 걔중 한 년이 갑자기 내게 들이댔다.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헤에? 말 안해줄꺼야? 난 오빠 같은 날카로운 눈빛이 마음에 드는데. 그래야지 굴복시키는 맛이 있지"
그 여자는 능글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자꾸만 개소리를 짓거렸다.
저런 년은 무시가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대충 주문만 받아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이 미친년이 갑자기 내 어깨에 손을 올리더니 강제로 나를 의자에 앉히려고 했다.
"씨, 씨발 뭐하는...!"
"키킥...! 오빠 욕하는 것도 존나 섹시한데? 아니 이름이 뭐냐니까?"
너무 당황스러워서 욕까지 내뱉었지만 이 미친년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내가 재밌다는 듯 거지같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봤고 내 목에 자신의 팔을 감은 체로 어깨를 눌러 나를 억지로 의자에 앉히게 만들었다.
'... 이걸 한 대 칠 수도 없고'
지독한 술냄새와 함께 참고 있던 인상이 결국 찌푸려졌다.
아무리 옆에 있는 여자가 선을 넘어버린 일이지만 첫 날부터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 일단 사장님이 오실 때 까지 대충 버티기로 마음먹었다.
어쨌든 내가 그렇게 인상을 찌푸린 체로 계속 침묵을 하자 여자가 헛웃음을 내며 입을 열었다.
"씨발 말 안할거야? 네놈도 그 새끼처럼 나 무시하냐? 어?!"
짜악
"으윽...!"
순간 아릿하게 느껴지는 고통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나 씨발 방금 저년한테 뺨 맞은거야?
"하여간 남자 새끼들은 말을 안들으면 몇 대를 맞아야 정신을 차리... 으응?"
역시 그냥 다 때려치우고 저 또라이년의 면상을 한 대 갈기는 것이...
콰앙
"으억!"
그 때 갑자기 내 뺨을 때렸던 여자의 얼굴이 테이블 위로 처박혀버렸다.
호프집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바닥엔 접시와 유리잔이 반동으로 인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와장창 깨져버렸다.
"야 너..."
"쯧. 취했으면 집에가서 잠이나 처 잘것이지"
멍하니 이 여자를 처박은 사람을 바라봤다. 허스키하면서 묘하게 텐션이 높은 여성의 목소리, 이런 목소리는 우리 과에서 하나 밖에 없었다
"..."
서은하는 무표정한 얼굴로 테이블의 처박힌 여자를 바라봤다.
한 번도 이런 표정을 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 서은하의 표정은 소름이끼치도록 차가웠다.
이렇게 분노 하고 있는 서은하는 처음이었다.
'아니 근데 맞은 건 난데 왜 지가 화를 내는거지?'
"크윽...! 이 새끼가 죽고싶어가지고..."
테이블에 처박힌 여자는 금세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난 뒤 험학한 표정으로 서은하를 째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슨일이 벌어질 것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이 형성 되었지만 천만다행히도 험학한 분위기는 길게 가지 못했다.
"니들도 내게 죽고 싶은 것이 분명하나보구나"
"허어? 아줌마는 꺼지... 우왓...!?"
화장실에 다녀온 여사장님이 기가막힌 타이밍에 등장해 그 미친년과 친구들을 가계 밖으로 내쫓아버렸다.
잠깐의 헤프닝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이 나버렸다.
전후 상황을 모두 듣게 된 사장님은 서은하에게 감사를 표하며 동기들이 있는 테이블에 서비스를 잔뜩 가져다주셨다.
때문에 동기들은 때 아닌 포식을 하게 되었지만 주인공인 서은하는 맥주잔만 몇 번 더 비웠을 뿐 음식에 손을 대지는 않았다.
"넌 뭐 할 말 없냐?"
"... 그래 고맙다 이년아"
음식을 나르는 내게 서은하가 노골적인 말투로 말을 걸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 말에 히죽 거리더니 맥주잔을 깨끗히 비워버렸다.
나는 그런 서은하를 바라보며 복잡한 마음을 느꼈다.
어찌됐건 별로 좋아하지않은 년이지만 서은하에게 도움을 받아서 그런지 그런 서은하의 행동이 딱히 밉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겉과 속은 서로 다르다고 하나? 생각보다 괜찮은 년일지도...'
그렇게 사장님이 내어준 서비스까지 모조리 처먹은 돼지새끼들은 2차를 가자고 말하며 호프집을 나왔다.
나가기 전 서은하는 나를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지만 역시나 이전만큼 불쾌함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 씨발 신고식은 제대로 치룬 것 같네"
동기들이 먹고 마신 돼지우리같은 자리를 정리하며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