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 적응하기(3)
* * *
까똑 까똑
"... 어우 씨발..."
모두가 잠든 늦은 밤 베개 머리맡에 있는 휴대폰 알림음이 내 귀를 두드렸다.
짧지만 되게 거슬리는 특유의 알림 소리 때문에 나는 결국 잠에서 깨어나 휴대폰을 잡았다.
[그렇다니까? ㅋㅋㅋ]
[헐...]
[대박이다 정말...]
(대충 토끼가 놀란 이모티콘)
"... 이 새끼들은 잠도 안자나..."
전에는 이렇게 새벽까지 톡방이 활성화 된 적이 별로 없었는데 바뀌고 난 뒤로부터 쉴 틈이 없이 문자가 오고 가기 시작했다.
불을 키고 인상을 찌푸리며 대화 내용을 들여다 봤다.
솔직히 처음엔 이렇게 톡방이 활성화가 되는 경우가 많으니 볼 거리가 생겨 나름대로 괜찮았지만 그 생각은 오래 가지 못했다.
아니 상식적으로 하룻밤 사이에 틈만 되면 섹스를 외치던 새끼들이 갑자기 '어머 어떻게 ㅜㅜ' 이딴 글을 쓰는데 씨발 이게 왜 보고 싶겠는가.
[정말 미친거 아니야??? 어떻게 하면 교수가 학생을 성추행 할 생각을 하지?]
[진짜 너무 역겹다... 그 학생 상태는 어때?]
[어떡해... 나 아는 형이 거기 재학중인데]
대충 내용을 읽어보니까 모 대학에서 여교수가 남학생을 성추행 했다는 찌라시를 얘기하고 있었다.
가끔씩 이런 글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렇게 남녀가 바뀌면서 성범죄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뀐 현실이 아직까지 쉽게 실감이 가지 않았다.
어쨌거나 이것도 빨리 적응해야 될 텐데. 누가 성폭행을 당했는데 내가 별거 아니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 그건 또 문제가 아니겠는가.
[이래서 한녀들은 안돼. 지금 대한민국 사회만큼 한국 남자가 힘이 없는 경우가 없다니까]
웃긴 것은 아까 말한 틈만 되면 섹스 섹스 거리던 새끼가 어느새 여성을 혐오하는 페미니스트가 되어 버렸다는 점이었다.
이런걸 보면 참 세상은 알다가도 모르는 것 같다.
[아 맞다. 진성아 있어?]
"...?"
뭐야 갑자기 나는 왜 찾지?
왜?
[너희 학교 주변에 바바리걸 나왔다며?]
"...?"
바바리걸? 아니 아무리 그래도 씨발 진짜 별의별개 다 나오네.
처음 듣는 얘긴데
[정말? 지난주 저녁 9시경쯤에 너네 학교쪽 골목길에서 바바리걸이 나왔데]
[진짜? 으... 더러워]
[대체 그런 여자들은 왜 사는걸까?]
[분명 가슴이 빨래판일거야 ㅋㅋ]
[앜ㅋㅋㅋ]
"..."
문득 톡을 읽다 이 새끼들의 예전 성격이 떠올렸다.
우리 학교의 바바리걸이 나온다고 했을 때 분명 예전 성격에 친구들이였다면,
[와 씨발 ㅈㄴ부럽네.]
[어디냐 바로 간다. 거기가 명문대지 명문대가 뭐 별거 있나?]
[뭐래 치토스 새끼가 ㅋㅋㅋ]
이 지랄을 떨었을텐데 참... 설마 내가 그 새끼들을 그리워 할 날이 올줄이야.
"... 에휴 잠이나 자자"
털썩
조금 더 메세지를 읽다가 더 이상 들을 가치가 없을 것 같아 휴대폰을 껐다. 그냥 잠이나 자는게 더 좋을 것 같다.
"근데 씨발 분명히 알람음을 꺼놨는데 왜 자꾸 울리는거야"
결국 휴대폰의 전원을 끄고 나서야 나는 다시 잠에 들 수 있엇다.
***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음주까지 A반 학생들은 발표 준비해 오시고..."
와르르르
교수님의 말씀이 떨어지기 무섭게 학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강의실을 나왔다.
하긴 예나 지금이나 점심 먹을 시간간때엔 교수건 과제건 그다지 중요한게 아니니 뭐.
학생들이 빠르게 자리를 비우고 나도 대충 짐 정리를 한 뒤 강의실을 나왔다.
"시간이... 10분정도 남았으려나?"
오늘은 그 때 내 자리를 맡아준 후배랑 같이 점심을 먹기로 했다.
내가 조금 더 일찍 끝났으니까 대충 중앙홀에서 시간을 뻐기면 될 것 같...
"어? 유진성?"
멈칫
... 씨발 이거 서은하 목소린데. 무시하고 가야되나?
"쌩까냐? 개서운하네"
"... 왜 또"
잠시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누군가 나를 불렀는데 무시하는건 예의가 아니잖아?
결국 체념하고 고개를 돌려 서은하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곳에는 저번 보다 옷차림이 간편해진 서은하가 하품을 내쉬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주 그냥 헐벗고 다니는구나...'
원래 이런 얘라서 뭔가 이해는 가는데 그래도 오늘은 좀 많이 심한 것 같다.
'저게 옷이야 브라야 씨발. 뭘 어떻게 입으면 옷이 브라를 잡아먹은 것처럼 보이지?'
장난이 아니라 나는 무슨 수영복을 입고 온 줄 알았다.
"점심먹으러가냐? 혼자 먹으면 같이 먹어 줄까?"
"아는 후배랑 먹기로 했으니까 가던 길이나 가라"
"아는 후배? 설마 너 연하 취향이였나"
"뭐래 씨발. 남자야 미친년아"
아 그냥 빨리 좀 꺼졌으면 좋겠다. 서은하와는 대화만 하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쉴 틈 없이 나온다.
"킥. 너도 그 소문 들었냐? 학교 인근에서 바바리걸 나왔다는거?"
"너냐 씨발?"
"응? 내가 그런 저급한 짓을 왜 해. 나는 오히려 돈을 받아야지"
뭐라는거야 세상에서 제일 저급한년이. 이년 내가 혹시 몰라서 몇몇 사람들에게 물어봤는데 아주 그냥 개새끼가 따로 없을 정도로 바뀌어 버렸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신입생 4명을 한꺼번에 따먹은거지?'
이건 남녀가 바뀐 걸 떠나서 내 상식으론 이해가 안되는, 아니 하기도 싫은 짓거리였다. 역시 이년은 나와 전혀 맞지 않는다.
"뭐 어쨌든 그냥 갑자기 떠올라서. 참 너 오늘 동기들끼리 회식한다는데 너도 오냐?"
"아니. 알바해야돼"
"그러냐? 아쉽네"
씨발련이 못오면 못오는거지 왜 입맛을 다시냐? 돌아버린건가?
위이잉
"어 왜. 뭐? 알았어 바로 갈께"
"그럼 나 간다. 점심 맛있게 먹어라"
그래 제발 꺼져라... 잠깐만.
"야야..!"
"응? 왜"
그렇게 속으로 욕을 씨부리다 문득 중요한 사실을 깜빡했다.
다른 얘들이라면 몰라도 서은하에겐 분명히 있겠지.
'씨발... 이걸 사는걸 깜빡해가지고'
대충 뭔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서은하에게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담배 한 개비만 빌려줘라"
"... 뭐?"
그리고 내 말에 잠시 벙쪄 있다가 크게 웃음을 떠뜨리던 서은하는 담배 한통을 통제로 내게 던져주고 건물을 빠져 나왔다.
"새끼... 비싼거 피네"
씨발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이젠 담배도 눈칫껏 펴야되나?
***
"형. 뭐 드실거에요?"
"글쎄... 넌 뭐 먹고싶냐?"
"형이 골라야죠. 형이 사는건데"
서은하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후배놈이 중앙 홀로 나왔다.
저번에 얘랑 점심빵 내기를 하다가 져 가지고 오늘 내가 사기로 했는데 씨발 기왕 바뀌려면 이런 것도 좀 틀어주지 저 새끼 웃는꼬라지 보니까 또 기분이 좆같아지네.
"아이씨... 존나 덥네. 야야 저기나 가자"
현재 시각은 12:30. 더위로 짜증이 몰려오자 그냥 냉면을 먹기로 했다. 마침 저 앞에 냉면집이 보여 그곳에 들어갔다.
"여기 물냉 하나 비냉 하나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냉면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다행히 냉면은 빠르게 나왔다.
"후르륵. 근데 형은 여자친구 안 사겨요?"
"응? 갑자기?"
"이런말 하기 좀 뭐 하지만 형 모쏠이라면서요"
이 새끼는 갑자기 왜 또 지랄이지? 얘도 원래 이런 성격이 아니였는데?
"... 생각 없어. 내가 뭐 특출나게 잘생긴 것도 아니고... 언젠간 만나겠지"
계란을 안먹는다는 후배 녀석에 계란을 젓가락으로 집으면서 말했다.
자고로 나는 순정파다. 괜히 어디서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는 싸구려 사랑이 아닌 아닌 정말 인생에 있어서 딱 한 명만을 사랑하는 그런 사랑.
때문에 선입견일지도 모르겠지만 남자 문제로 시끄러운 여자들을 별로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꺼려한다.
내가 서은하를 싫어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고. 내게 있어 사랑은 신념과도 같은 것이다.
"그래도 형은 우리과에서 남신이잖아요. 어떤 여자에게도 넘어가지 않는 철벽의 남신!"
"풋...!!"
순간 냉면 국물을 마시다가 그대로 뱉어버렸다.
철벽 남신은 무슨 어디 만화식 이름이냐. 대체 누가 그딴걸 만든거지?
"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 나 보다 잘생긴 새끼들이 얼마나 많은데"
"걔넨 형처럼 철벽을 치지 않고 꼬리만치잖아요. 여자들 입장에선 쉽게 넘어오는 남자보단 형처럼 굳건한 남자가 더 관심있는거 몰라요?"
몰라 이 미친놈아. 세상에 그런 병신이 어디있어.
"별 이상한 년들이 따로 없네"
"그래서 형 지금 위치가 되게 애매해요"
후배 녀석이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아니 근데 아무리 봐도 또 개소리일 거 같은데.
"과에서 형이 여자들한테 꼬리치는 줄 아는 남자들이 많아요. 때문에 형에 대한 시선도 별로 호의적이지 않고"
"... 뭐? 내가 꼬리를 쳐??"
역시 개소리다. 그럼 씨발 지금 과에 있는 남자 새끼들이 나를 질투한다는 거야? 이건 정말 너무 역겨게 들려지는 소린데?
"뭐 저는 형이랑 잘 아니까 당연히 아닌걸 알지만 이게 생각보다 심각해요. 알잖아요. 우리 같은 남자들이 남자 같은 남자 욕하는 건 기가막히게 잘한다는거"
씨발 그런건 알고 싶지 않은데. 아니 이러면 과에서 왕따를 당하는거나 다름 없는거잖아.
어쩐지 오늘 아침에 서로 인사 정도는 주고 받던 얘들이 돌연히 싹 무시하더니 설마 이게 이런 병신 같은 이유 때문일 줄은...
"... 어우 씨발. 걍 전부 꼬추 뗐으면 좋겠네"
"네? 뭐라고요?"
"... 아무 것도아니야"
... 빨리 돌아가서 담배나 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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