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 적응하기(2)
* * *
"씨발... 그나마 해가 지니까 온도가 좀 떨어진 것 같네"
아니면 헬스장에서 나올 때 샤워를 해서 그런가? 아까처럼 무지막지하게 덥지는 않은 기분이었다.
한 손에 닭가슴살이 포장된 팩을 들고 걸어가며 저 멀리 노을이 지는 풍경을 바라봤다.
아름다운 풍경이었지만 나는 알 수 없는 씁쓸함을 느끼며 입을 다셨다.
"..."
갑자기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네... 마침 저 멀리 편의점도 보였겠다 가늘 길에 아이스크림이나 하나 사서 들어가야겠다.
잠시 편의점 특유의 창렬 가격에 망설임이 있었지만 오늘 만큼은 뭔가 참고 싶지가 않아 그냥 그대로 아이스크림을 구매했다.
물론 집 근처에 마트가 있긴 했지만 구지 그곳까지 가기는 귀찮았다.
"와그작..."
'... 설마 했는데 중량마저 줄어들 줄이야...'
한 손에 들린 붕어 아이스크림을 크게 한 입 베어 물면서 아까 전 헬스장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중량이 200이나 줄어들었다. 내 딴에선 전력을 다해서 쟀는데 정말 중량이 줄어든 것이다.
결과를 보고 어이가 없어서 소연쌤에게 남자와 여자의 3대 평균을 물어봤다.
소연쌤 말로는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지만 자신은 일단 600을 친다며 해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 씨발 이건 또 제대로 바꿔졌네. 도대체 바뀌는 기준이 뭐지?"
아이스크림을 모두 입에 집어 넣고 쓰레기를 근처 휴지통에 넣으면서 중얼거렸다.
소연쌤의 말이 믿기지가 않아 즉흥적으로 그 자리에서 소연쌤과 팔씨름을 했지만 단번에 처발린 뼈아픈 기억을 떠올랐다.
개인적으로 나 혼자 원래 남자였을 때에 힘을 가지게 된다면 큰 이점이 된다고 생각했지만 아쉽게도 평범하게 생활할 것 같다.
어쨌거나 대충 그럭저럭 앞으로 해야할 일들을 생각하며 나는 고시원으로 돌아왔다.
털썩
"후우... 알바도 찾긴 해야 하는데..."
손에 들린 닭가슴살을 대충 냉장고에 처박아두고 의자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 거렸다.
괜히 감정 소모하는게 싫어서 상하차를 했는데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아무거나 해야 될 것 같다.
그래도 가능하면 가깝고 돈 많이 주는 곳에서 하고 싶었는데 그런 곳이 있을리가...
"... 있네?"
정말로 있었다. oo호프집. 고시원에 오면서 항상 지나쳤던 곳으로 여기서 5분도 안되는 거리에있었다.
내용을 자세히 보니까 급여도 나쁘지 않았고 하는 일은 음식을 서빙하는 일과 청소정도로 딱히 부엌일은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정도면 생각보다 괜찮게 느껴졌다.
"저녁 8시부터 12시까지라..."
더불어 알바를 하는 시간도 늦은 시간대여서 수업이랑도 겹치지 않았다.
이거 이렇게 보니 정말 나를 위한 알바잖아? 그나마 특이사항이 남자만 뽑는다는 점인데... 뭐 남녀가 바뀌었으니 내 기준으로선 여자 서빙원을 뽑는 그런거겠지.
"여보세요? 네. 알바 자리 때문에 연락을 드렸는데요..."
바로 앱에 적혀 있는 호프집 사장님의 번호로 전화를 했다.
그리고 잠깐의 통화 끝에 호프집에 와서 간단한 면접을 보기로 했다.
***
면접은 별거 없었다. 그냥 요즘 하도 하루만 하고 튀는 얘들이 많아 형식적으로 보는 것이라고 사장님은 말하셨다.
그보다도 이 호프집, 생각보다 크고 시설도 좋았다.
사장님도 인심이 좋아 보였고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근로 계약서를 적고 호프집에 취직이 되었다.
"그럼 오늘부터 나올래?"
"아뇨 오늘은 조금 힘들어서..."
솔직히 오늘부터 나오고 싶었지만 빌어먹을 스쿼트 때문에 아직까지도 다리가 부들거렸다.
앉아있는 것 보다 서 있는 경우가 많은 서빙의 특성상 오늘은 무리일 것 같아 사장님께 내일부터 나오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사장님은 그럼 오늘은 그냥 간단하게 어떤 일을 하는지 한 번 보고 가라며 나를 잡으셨다.
"응? 뭐야 알바야?"
그렇게 대충 잡다한 것을 배우는 사이 머리에 검은색 두건을 착용한 여자가 커다란 통을 들고 조리실에서 나왔다.
"아 누나. 어때? 참하게 생긴게 잘하게 생기지 않았어?"
아. 참고로 이곳은 사장님과 사장님 부인분이 함께 운영을 하신다. 때문에 일손이 많이 부족하다고 하셨고 원래는 여자 알바생도 한 명 뽑으려고 했는데 이상하게도 잘 오지 않았다고...
"그래 열심히 하고 혹시 이상한 새끼들이 집적거리면 바로 나한테 말하렴"
"아 네..."
남사장님과 다르게 여사장님은... 이런 말 하기 뭐 하지만 되게 무섭게 생기셨다.
'어떻게 주먹이 얼굴만하지? 제대로 한 대 맞으면 골로 가겠는데'
어쨌든 그렇게 일을 배우는 사이 하나둘씩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이정도면 대충 알겠다며 사장님들께 인사를 드린 뒤 호프집을 나왔다.
아직 여름이라 그런가 저녁 7시지만 날이 어둡지가 않았다.
그렇게 다시 고시원으로 돌아오고 힘겹게 의자 위로 몸을 던졌다.
털썩
"아이고 지친다 지쳐"
서 있을때엔 그다지 체감이 안됐는데 자리에 앉자마자 스쿼트 100개를한 체감이 확연하게 몰려왔다.
근력이 약해져서 그런가? 평소라면 대충 무시하고 넘어갈 근육통들이 오늘따라 되게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나저나 저녁은... 닭가슴살을 먹어야되나?"
조금씩 허기가 지기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냉장고에 넣어 둔 닭가슴살이 생각났다.
고시원에서 제공해주는 밥과 김치가 있으니 그거랑 함께 대충 차려먹으면 될 것 같다.
뭐? 밥하고 김치가 떡하니 있는데 해장할 때 왜 따로 샀냐고? 뭐 딱히 별다른 이유는 없는데... 그냥 눈에 보여서 샀다. 솔직히 그 때는 숙취 때문에 정신이 오락가락 한 것도 적지 않았고... 대충 넘어가자.
"끄응..."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를 열었다.
그리고 아까 처박은 포장된 닭가슴살을 꺼내 잠시 조리법을 읽어보다가 그냥 한 번 뜯고 전자레인지에 넣었다.
닭가슴살이 데워지는동안 밥이랑 김치를 따로 그릇에 담아 방으로 가져갔고 생각보다 맛있는 냄새에 기대를 하며 데워진 닭가슴살을 전자레인지에서 꺼냈다.
띠리링
"응?"
그렇게 대충 차려진 식탁에서 이제 막 숟가락을 뜨려고 했을 때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
'성유나'
소꿉친구다. 부모님들이 대학시절 연을 맺어 자연스럽게 우리들도 친구가 된 그런 케이스.
뭐 그렇다고 그렇게 많이 친하지는 않고 그냥 농담따먹기 정도는 할 수 있는 그런 사이 정도?
[저기... 뭐해 진성아?]
음... 목소리를 들어보니까 유나 얘는 성격은 딱히 바뀌지 않은 것 같다.
특유의 그 소심한 말투와 무언가를 망설이는 듯한 목소리. 조금 포장해서 말하면 수줍음을 잘 타는 성격이었고 그냥 직설적으로 말하면 약간의 찌질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뭐하긴 밥 먹는데? 무슨 일인데"
[아니 그냥...]
유나랑 대화를 하면 가끔씩 답답함을 느낀다.
개인적으로 빙 둘러 말하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인데 유나가 바로 그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 그렇다고 그냥 빨리 요점만 말하라고 할 수도 없으니, 때문에 얘랑 통화를 하면 최소 20분정도는 영양가 없는 내용으로 전화를 하는 편이었다.
'꼴에 그러면서 대화는 주도하는 스타일이란 말이야'
[그... 다음주에 엄마 생신이여서 너희 가족이랑 우리 가족이랑 같이 식사를 하기로 했어...]
"그러냐? 알았어"
그렇게 대충 15분 가량 흘렀을까 유나는 그제서야 전화를 건 이유를 말하기 시작했다.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닌 이상 생일 날엔 두 가족이 항상 같이 모여서 밥을 먹었다.
'유나 아주머니라면 또 게장집에 가겠네 유독히 게장을 좋아하시니까.'
그러고보니 어렸을 때 게장이 너무 싫어서 유나랑 같이 밑반찬으로 나온 감자전만 잔뜩 먹었었는데. 그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추억이네.
[저, 저기 진성아..!]
데어진 닭가슴살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아직 전할 말이 남았는지 유나가 말을 걸었다.
"어 왜"
[...]
어우 닭가슴살 이거 생각보다 너무 싱거운데? 저번에 친구 집에서 쌔벼온 머스타드가 어디있더라...
"여보세요? 뭐 말하려던거 아니였어?"
찾았다. 이건 또 왜 김치통 뒤에 쳐박혀있지? 나는 여기에 둔 적이 없는데.
[... 아니야. 식사 맛있게 해]
뚝
'...?'
"뭐야...?"
갑자기 전화가 끊겼다.
한 손에는 머스타드를, 다른 한 손에는 휴대폰을 든 체로 나는 잠시 멍하니 휴대폰을 바라봤다.
아닌가? 얘도 뭔가 조금 성격이 바뀐 건가 원래 이런 얘가 아니었는데.
"... 에휴 밥이나 먹자"
모르겠다. 가만히 생각을 하려고 해도 아까부터 굶주린 위장이 자꾸만 개지랄을해서 그냥 대충 넘어가기로 했다.
몸을 너무 혹사 시켜서 그러나? 일단 밥부터 먹고 생각하는게 좋을 것 같다.
머스타드를 소스용 그릇에 뿌리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닭가슴살을 찍어서 입으로 가져다 넣었다.
"?! 퉤에에엑...!!"
그리고 무식하게 신 맛에 눈쌀을 찌푸리며 바로 뱉어 버렸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머스타드 통을 바라본 나는 머스타드의 유통기한이 3개월이나 지나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