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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이상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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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 씨발"
죽겠다. 과장이 아니라 머리가 깨질 것만 같다.
아무리 내가 술에 약한 편이여도 이렇게까지 좆같은 적은 처음인데 지금 내 머릿속에선 씨발이라는 단어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감기에 걸렸을 때와는 비교도 안되는 고통을 억지로 음미하며 몸을 일으켰다.
시간을 보니 오전 11시, 평소 때 보다 3시간은 늦게 일어났다.
대충 해장으로 라면 하나 끓여먹고 수업을 가면 딱 알맞을 것 같아 퀭한 꼴로 천장을 뒤졌다.
"... 왜 없냐"
하지만 천장속엔 찢어진 비닐봉지만 있었을 뿐 유감스럽게도 라면은 없었다.
정말 좆같았지만 라면 생각이 너무 간절해서 억지로 마음을 다잡고 대충 후드집업에 반바지 차림으로 고시원을 나왔다. 그런데 씨발.
"아오 씨... 날씨는 또 왜 이따위야"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에 강렬한 햇빛으로 눈쌀이 저절로 찡그려졌다.
정오 때라 그런가?장난이 아니라 어제보다 온도가 10도는 오른 것 같다.
열불이 나서속으로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을 띄우며 나는 고시원 앞에있는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딸랑
"어우 이제야 좀 살겠네"
편의점에 들어가니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기계적인 말투로 인사를 하는 알바가 나를 반겨줬다.
대충 고개를 까딱 거린 뒤 빠르게 라면 코너로 갔다. 그리고 시뻘건 비닐로 덮혀있는 라면 한봉지를 집고 내친김에 김치와 햇반까지 골라서 카운터로 향했는데,
'뭐야? 아까부터 왜 이렇게 힐끔거리는거야? 설마 혹시...?'
"... 씨팔 옷좀 제대로 입을걸 그랬나?"
빠르게 계산을 마치고 후끈거리는 얼굴로 편의점을 나왔다. 분명 백수새끼 같은 내 옷차림이 거지같아서 보는거겠지.
역시 그래도 옷 좀 챙겨 입을 걸 그랬나? 아니 근데 생각해보니까 누가 편의점을 갈 때 차려 입고가? 이게 정상인거지.
"... 내가 다시는 술을...! 우욱!!"
'무슨 입만 열면 오바이트가...'
나는 유독 숙취가 심했다. 때문에 술을 마시는 것을 별로 꺼려했고 사실 어제도 친구놈이 군대 간다는 일만 아니었어도 혼자서 사이다나 마셨을 텐데...
"...?"
그나저나 오늘 따라 뭔가 좀 이상한데? 고시원으로 돌아오면서 벌써 세 번째나 여자들의 시선을 받았다.
뭐 이런 차림에 시선을 받는 것이 대수로운 것은 아니지만 이상한 점은 여자들이 역겹거나 불편한 눈빛이 아닌 노골적인 시선을 보내왔다는 것이다.
지금 저 앞에 여자 두 명도 눈동자를 굴리며 나를 힐끔씩 쳐다 보고 있다.
"... 술이 덜 깼나? 빨리 가서 해장이나 해야겠네"
오랜만에 술을 한계까지 처마셔서 그런지 내 상태가 이상한가 보다.
어쨌든 옆에서 스치면서까지 힐끔 거리는 시선을 대충 무시하고 길을 가던 중 우연찮게 뒤에서 숙덕거리는 여자들의 대화가 내 귓구멍으로 들어왔다.
"... 와 씨발 저놈 다리봐라. 개꼴리네..."
"병신아. 요즘 말놀림 한 번 잘못하면 페미인가 뭔가 하는 놈들한테 좌표 찍히는 거 몰라?"
멈칫
순간 귀를 의심했다. 뭐지? 내 다리가 꼴리다고 씨발?
너무 어이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그 여자들을 바라봤다.
이상하다? 생긴건 멀쩡하게 생긴 얘들인데 내가 잘못 들은건가?
"... 야 니가 한 말 들은 것 같은데? 저놈 우리 뒤에서 존나 야리고 있어"
"아 진짜 이 병신이 적당히 좀 하라니까...! 아씨 걍 튀자!!"
그렇게 멍하니 그녀들을 바라보는 사이 나를 성희롱한(?) 여자들은 빠르게 시야에서 사라졌다.
"..."
사람이 정말 당황에 빠지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지금 내 상태가 딱 그 상황인 것 같다.
여자들은 사라졌지만 내 몸은 움직이지가 않았다.
"우욱...! 씨, 씨발..."
하지만 그런 당황스러움도 결국엔 좆같은 숙취로 인해 가루처럼 풀어졌고 죽을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나는 고시원으로 돌아갔다.
달칵
냄비에 물을 올리고 물이 끓을 때 스프를 넣고 면을 넣는게 상식은... 개뿔 그냥 귀찮아서 물 올리고 전부 부어 버렸다.
솔직히 그거나 이거나 내가 볼 땐 별 차이 없는 것 같은데 그냥 처먹는게 답이지 무슨.
"후르륵!!"
으음... 물을 너무 적게 부었나? 존나 짜네... 역시 햇반을 하나 사기를 잘한 것 같다.
퉁퉁 분 라면을 허겁지겁 먹으면서 반절 즈음 비웠을 때 돌리지 않은 햇반을 그대로 뜯어 냄비 속에 투척했다.
씨팔 이렇게 처먹으니까 갑자기 군대에서 보초섰을 때가 생각나네. 그 때 박상병 그 폐급 새끼 지금 뭐하고 살려나?
국물 한 점까지 남기지 않고 모두 위 속으로 털어 버린 뒤 설거지는 미래의 나에게 맡긴 체 담배를 피러 다시 밖으로 나왔다.
이것도 슬슬 끊어야 되는데... 씨발 생각해보니 담배도 군대에서 배웠잖아.
"후우..."
폐속의 니코틴이 들어오면서 정신이 멍해졌다.
이제 어느 정도 숙취도 된 것 같고... 그나저나 오늘 따라 여자들이 많이 보이네? 원래 이 동네는 여자가 별로 없던 걸로 아는데?
저기 골목길에서 또 여자 두 명이 걸어 오는 것을 보고 나는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뭐 내 알빠는 아니지만 이제 슬슬 학교갈 준비를...
"... 와 저 남자 담배피는거 봐라? 존나 꼴리지 않냐? 옷 차림 보니까 이미 한 판 한 것 같은데?"
"씨팔 남자가 무슨 담배야. 남자가 담배피면 기형 정자 생기는거 몰라?"
...???
... 숙취가 아직 덜 됐나? 기형정자라니, 담배를 피면 기형정자가 생긴다고? 그런 얘긴 내 23년 인생 처음으로 듣는 것 같은데?
"저기요 지금 뭐라 하셨어요?"
"네?"
"지금 저보고 기형 정자니 뭐니 하셨잖아요"
"아 그게..."
나도 모르게 기형정자 얘기를 꺼낸 여자의 팔을 붙잡고 물었다.
내가 말을 걸 줄 몰랐는지 여자는 당황해 하며 어쩔 줄 몰라했다.
반면에 옆에 있던 다른 여자는 조용히 나를 바라봤다.
"그...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제가 일부로 그런게 아니고..."
"오빠 혹시 섹스 했어요?"
"... 네?"
"야이 개색...!"
"아니 봐봐. 오전 막바지에 이렇게 대충 차려 입은 옷으로 담배피는 남자? 아무리 봐도 섹스 후 상황 밖에 없잖아 안그래?"
섹스 얘기를 짓거리던 여자의 말에 나는 멍하니 그 여자를 바라봤다.
섹스라고? 그게 이렇게 이성 앞에서 쉽게 나올 단어였어? 아니 요즘 대한민국이 성에 대해서 많이 관대해진건가?
"어? 야?! 왜 잡아!"
"죄, 죄송합니다!! 미친년아 가자고 좀!"
"..."
또 다시 멀어져가는 여자들의 뒷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나는 담배를 떨어뜨렸다.
이건 숙취 문제가 아닌 것 같다. 하룻밤 사이에 뭔가 많이 이상해진게 분명하다.
덜컹
빠르게 고시원으로 돌아와 휴대폰으로 인터넷 기사들을 둘러봤다.
그리고 그렇게 약 30분간 인터넷 서핑을 하면서 나는 커다란 충격에 빠졌다.
"... 세상에 이게 어떻게 된거야? 남성 할당제? 여자만 군대를 갈 수 없다 남자도 군대에 가야된다?! 저는 잠재적 여성 가해자입니다. 남성 혐오를 멈춰주세요??"
멍하니 손을 움직이며 기사를 읽었다.알고있는 내용들이 어딘가 많이 비틀어진 상태였다.
"... 허어"
아무래도 내가 자고 일어난 사이 세상이 바뀐 것 같다.
***
"... 씨발 수업 가기 싫다"
정보를 찾겠다고 인터넷 서핑을 하느라 30분을 날린 나는 급하게 차려 입고 고시원을 나왔다.
세상이 바뀌건 말건 지금 내가 학교를 가야된다는 것은 변하지 않은 상황이다.
고시원에서 학교까지의 거리는 약 20분정도이니 부지런히 걸어야 그나마 지각을 면할 것이다.
무더운 여름 날씨의 땀을 뻘뻘 흘려가며 나는 빠르게 학교로 갔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저쪽 시야에서 낡지만 위로 솟아 오른 괴상한 건물들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 씨발 이게 날씨냐? 대체 어떻게 하면 하룻밤 사이에 8도가 처오르는거지?"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빨리 건물 안으로 들어가 에어컨 바람이나 쎄고 싶다는 마음 밖에 없었다.
덥썩
'응?'
"뭐야? 너가 나랑도 같이 갈 날이 있네?"
그렇게 강의실이 있는 건물로 들어가려 문을 열었을 때 허스키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졌다.
이런 목소리는 우리과에서 한명 밖에 없다. 그리고 내가 가장 껄끄러워하는 목소리이고.
"... 씨발"
"어? 너 지금 욕했냐? 허이구 같이 수업듣는 것도 이렇게 욕먹을 짓인가. 서러워서 못살겠네"
조용히 말했는데 역시 자기 욕은 기가막히게 잘 듣는년이다.
"미친년..."
서은하, 우리 동기 중에서 가장 유별난년이다.
피부를 까무잡잡하게 태우지 않나 머리는 언제나 금발이지 않나 몸매는 또 꼴사납게 생겨가지곤... 가만 이년 원래 남자 관계가 더럽기로 소문났는데 그럼 지금은 어떻게 되는거지?
"뭐해 안들어가고 이제 2분남았는데?"
씨발 생각해보니 지금 저년이 걸레인지 하렘왕인지가 중요한게 아니지.
"어어? 야 같이가!"
뒤에서 뭐라 소리치는 은하를 말끔히 무시하고 빠르게 계단을 오르며 강의실로 들어갔다.
지금 듣는 강의실은 건물 2층에 위치해 있어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래야 된다.
벌컥
약 1~2분 정도 늦었지만 다행히 교수님은 역시나 오늘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안도에 한숨을 쉬고 주위를 두리번 거리던 중 아는놈이 손을 흔드는 것을 발견하고 빠르게 옆자리에 착석했다.
"형 왜 이렇게 늦게 왔... 형 술마셨어요? 형 술 잘 못 마시잖아요"
"아씨 친구 놈이 군댈 간다는데..."
"... 군댈간다고요?"
참 생각해보니 이제는 남자가 군대를 안가... 잠깐만 그럼 그 새끼는 어떻게 되는거야? 아니 그건 그렇고 씨발 나도 군대를 미뤘으면 안가는거였잖아? 세상에 이렇게 좆같을 수가.
"... 하아 됐다. 더 이상 묻지마라 머리아프다"
알아봐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우선 친구들과 가족들의 상태, 내가 군대를 간다고 휴학했을 때, 그리고... 생각해 보니까 나 상하차도 하는데 그럼 그건 어떻게 되는거지?
"형.. 형!"
"어어?! 왜 무슨일이야"
"수업 끝났어요"
"뭐? 벌써?"
"네. 어우 형은 진짜 술 마시면 안되겠다. 강철이라고 불리던 사람이 정신을 못차리네"
후배놈이 웃음기가 찬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그제서야 나는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봤고 강의실엔 후배와 나, 그리고 구석에서 쳐 자고 있는 은하 밖에 없는 것을 알게 되었다.
"... 허."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두 시간 동안 멍을 때렸다고? 미친놈인가?
다음 수업이 바로 있던 후배는 먼저 강의실을 빠져 나왔고 나는 잠시 강의실에서 멍하니 자리를 지키며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흐아아암!!!"
씨발 생각해보니까 저년도 있었지.
"벌써 끝났... 뭐야 너 왜 안나갔냐? 설마 나를 기다려 주려고 했던..."
"뭐라는거야 미친년이 나갈 때 강의실 불 끄고 나와라"
뒤에서 뭐라 씨부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말끔히 무시하고 일단 조용한 곳에서 생각을 마저 정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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