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탑스타-186화 (완결) (186/186)

186    12. 끝과 시작

오랜만에 나간 마루 엔터테인먼트의 분위기는 굉장히 활기찬 상태였다. 수한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는 잠깐 침체되기는 했지만, 중간에서 성민이 잘해 주었다.

성민뿐만이 아니라 수한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의리가 있는 사람들이기에 수한이 무사히 복귀하는 데 어려움을 가지지 않았다.

“실장님 덕분에 회사가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네요.”

오자마자 급한 일들을 처리했기에 정신은 없었으나, 날아갈 것처럼 기분은 좋았다. 성민은 수한과 예진이 교제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기에 배신감에 찬 얼굴로 수한을 보았다.

“도둑놈.”

“분명 나쁜 말인데 기분이 나쁘지가 않네요.”

“이런 능구렁이 같은 녀석이 뭐가 좋은 거지?”

대놓고 하는 험담에도 수한은 웃음만 나왔다. 성민이 아무리 앞에서 욕해도 소용없었다. 성민은 더럽고 치사해서라도 빨리 애인을 만들고야 말겠다고 하는데 수한은 그게 과연 될까 싶었다. 그게 의지대로 되었으면 수한도 지금 애인을 사귀지 않았다.

“그보다 우편이 하나 왔는데…….”

성민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법원으로부터 온 우편이기에 그 내용이 짐작되어서였다. 수한이 직접 안의 내용을 살피니 재판에 참석해 달라는 출석 요구서가 왔다. 불안했던 성민의 예감이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다. 남일이 크게 사고를 쳤으니 속상해하는 게 당연했다.

“그래도 저지른 죄에 대한 대가는 받아야지.”

수한이 했던 말을 성민이 힘없이 읊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수한을 죽이려고 했던 사실에 성민은 큰 충격을 받았다. 나이수의 일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남일이 일을 저질렀으니 나이수와의 일까지도 신뢰성을 잃어 가중처벌을 받게 생겼다.

“수한아. 미안하다.”

“실장님이 미안해하실 필요가 있나요. 죄는 다른 사람이 지었는데요.”

수한이 개의치 말라고 웃으며 넘겨도 성민은 미안해했다. 성민이 수한이 없는 마루 엔터테인먼트를 더 필사적으로 지킨 데에는 의리도 있지만, 미안한 마음도 커서였다.

“그보다 오늘 나올 더 블랙 음원이 기대되네요.”

원래 계획되어 있던 거에다가 이미 녹음까지 마친 상태였기에 미룰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수한이 교통사고를 당했음에도 일정을 미루지 않았다. 수한도 입원해 있는 동안 티저 사진을 다 봤기에 그에 따른 기대감이 컸다.

다른 것보다 수한이 바라는 건 너튜브에서의 반응이었다. 돈을 아끼지 않고 투자했기에 영상 때깔부터 다르게 나왔다. 이미 수한에게 확인을 받고 올리기로 한 뮤직비디오여서 급격하게 커진 팬들의 규모와 별개로 대중적으로도 얼마나 통했는지 확인할 좋은 기회라 생각하였다.

“주혁이 콘서트 갈 거지?”

“네. 얼마나 고대했는데요.”

예진이 가고 싶어 한다는 것도 알아서 이미 표도 빼 둔 상태였다. 그 사실을 성민이 모를 리가 없기에 대놓고 혐오하는 표정을 지어도 수한은 웃음만 나왔다. 가진 자의 여유였다.

***

수한은 옆에서 콘서트 표를 들고 들떠 하는 예진을 보았다. 모자를 깊숙하게 써서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기본 태부터 달랐다. 비율부터 사기적이라서 멀리서 봐도 연예인이었다.

그나마 수한이 관리를 잘해서 함께 서도 어울리는 거지 과거로 돌아오기 전처럼 살았으면 여자가 아깝다는 이야기를 수십 번 들을 뻔했다.

“이런 건 전문가를 써서 만드는 거지?”

“네. 그렇습니다.”

연인이 되어서도 달라지지 않은 게 있다면 한쪽은 여전히 반말을 쓰고, 한쪽은 여전히 존댓말을 쓴다는 거였다. 아무래도 입에 붙은 게 커서인지 이런 쪽은 쉽게 바뀌지 않아 천천히 바꾸기로 하였다.

“예진 씨도 원하면 하나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걸 보고 돈 낭비라고 하는 거야.”

말은 돈 낭비라고 하면서도 은근 기뻐하였다. 현실적으로는 힘들어도 말이라도 해 준 게 좋아서였다. 수한은 들어가기 전에 급하게 달려가는 주혁의 팬들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고개를 돌려 굿즈 판매대를 보니 대부분이 품절 났다.

“슈퍼스타에 출연했을 때보다 인기가 더 많아진 것 같아.”

“예능 프로그램에 나간 게 신의 한 수였죠.”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다시 인지도를 넓히고 대중성 있는 곡을 내니 나갔던 팬들이 다시 돌아오다 못해 새로 팬이 되는 사람도 많아졌다. 소원까지는 아니어도 주혁은 이제 팬과 대중성을 모두 갖춘 가수가 되었다.

‘게다가 주혁 씨 콘서트에 대한 평은 예전부터 좋았다고 하니까.’

일본 콘서트에 가서 주혁이 노래를 부르는 것도 본 적이 있기에 수한은 그 호평을 이해하였다. 그리고 이제는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으니 기대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도 예진 씨와 함께였네.’

수한은 걸어가다가 은근슬쩍 손을 잡아 오는 예진의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이거 예진 씨 팬들이 알면 난리가 나겠는데.’

유지영과 함께 찍은 영화가 대박이 나면서 예진의 팬이 더 늘어난 사실을 수한은 알고 있었다. 재미있게도 남자 팬보다 여자 팬이 또 늘었지만 말이다.

수한이 예진을 슬쩍 보자 예진이 뭘 보냐고 쳐다보면서도 손에 힘을 주어 수한은 가슴 한쪽이 간지러웠다. 이런 맛에 연애를 하나 보다.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주혁의 노래 실력이 더 늘었다. 어떻게 더 늘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수한의 시선은 어느새 감탄하는 예진의 얼굴을 향하게 되었다. 얼마나 눈이 별처럼 밝게 빛나는지 그 눈을 본 것만으로도 수한은 예진과 함께 이 자리에 온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

“와. 추이가 미쳤네요.”

명훈은 심심할 때마다 ‘더 블랙’의 뮤직비디오를 보았다. 처음에는 조회 수를 높여 줄 겸 해서 본 거였지만, 지금은 바뀌는 조회 수를 보기 위해서 틀었다. 이 주도 안 지났는데 벌써 1억 뷰가 넘었다. 댓글에 영어도 많은 것이 해외에서도 제대로 반응을 얻기 시작했다.

음원도 여전히 1위를 차지하고 있고, 꽉 짜인 군무와 별개로 쉬운 안무로 커버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물론 노래 커버는 기본이었다. 예전에도 많기는 했으나, 이번에는 세 배로 는 것 같다.

많은 아이돌을 봤지만, 이렇게 빠르게 반응을 얻는 남자 아이돌은 처음 봐서 명훈은 매우 놀랐다.

“우리가 얼마나 정성으로 만든 그룹인데.”

‘더 블랙’ 멤버들과 친한 성민이 흐뭇하게 웃으며 말하자 명훈은 쓰게 웃었다. 정성으로 만든다고 하여도 망하는 아이돌 그룹이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

‘이건 인정을 안 할 수가 없네.’

연예계에서 성공하려면 운도 필요하다고 하지만, 명훈이 보기에 이건 운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수한의 실력이었다. 운이 작용했다면 수한이 그 교통사고에서 살아남은 게 운이라고 볼 수 있었다.

“김수한이가 대표인 이상 우리는 더 올라가면 더 올라갔지, 내려가지는 않을걸?”

명훈은 그 말에 적극적으로 동의하였다. 마루 엔터테인먼트가 손대는 것마다 성공하니 업계에서도 마루 엔터테인먼트의 다음 행보를 기대하였다. 물론 최민희 작가의 표절 문제로 살짝 삐끗할 뻔했으나, 그 마무리도 잘 해서 업계 평판이 더 좋아지면 좋아졌지 나빠지지는 않았다.

더불어 수한이 출연해도 좋다고 허락한 배우들의 드라마도 시청률이 꽤 잘 나와 좋은 대본들도 마루 엔터테인먼트에 몰리는 중이었다.

“이건 정말 타고난 거네요.”

너무 높게 올라가서 질투도 안 날 정도였다. 오히려 수한과 같은 안목을 기르고 싶다는 동경하는 마음만 생겼다.

“우리 대표님 탈 안 나도록 우리가 옆에서 잘해야지.”

중소기획사가 대형기획사로 탈바꿈하는 순간을 직접 보고 싶은 욕망이 올라오면서 성민은 여전히 부대표 자리를 노렸다. 아마도 상장하게 되면 그때 부대표 자리를 만들어 주지 않을까 싶었다.

“근데 이 정도면 우리 회사에서 자체 콘텐츠를 제작해도 되는 거 아닌가요?”

“안 그래도 그에 관해서 기획하고 있어. 그 표절 작품 원작자 말이야. 그 사람이 차기작으로 준비하는 작품에 유지아 작가가 도움을 줄 예정이야.”

그 작품에 수한이 피드백을 하면 대중성까지 갖춘 좋은 작품이 나오니 안 만들 수가 없었다. 명훈은 역시 수한처럼 되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다.

“저희는 그냥 시키는 일이나 잘해야겠네요.”

“그래. 그게 내가 너한테 바라는 거니까 시키는 거만 잘하자고.”

그 말에 명훈은 씩 웃으며 밀려 있던 일을 처리하기로 했다. 이 회사는 다 좋은데 일을 잘 하는 만큼 일도 많아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

[더 블랙, 마루 엔터테인먼트, -년 영업이익 30% 상승]

중소기획사 출신이라고 처음에는 무시당하던 아이돌 그룹 ‘더 블랙’이 어느새 대형 아이돌을 뽑으라고 하면 손에 꼽히는 아이돌이 되었다. 더불어 멈추었던 한류가 ‘더 블랙’으로 인해 다시 퍼지기 시작했다.

― 사실 처음에 나왔을 때만 해도 이름 구리다고 생각했는데ㅋㅋㅋㅋ

ㄴ 난 사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함ㅋㅋㅋㅋㅋㅋ

ㄴ 어쨌거나 성공하면 됐지ㅎㅎ

한국뿐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기이다 보니 해외 연예인들이 한국에 들어오게 되면 물어보는 단골 질문이 되었다.

“두 유 노우 더 블랙?”

‘더 블랙’뿐만이 아니라 마루 엔터테인먼트에는 잘 나가는 가수들이 많아서 연습생을 모집한다는 소문이 돌자 오디션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 사실 이재성 PD가 조작만 안 했어도 걔들이 아이돌 탑 먹었을 텐데.

ㄴ 그런 의미에서 엘 엔터테인먼트 개 쓰레기 아니냐? 조작에도 관여했다며.

ㄴ 정확히는 전 회장임. 그래도 조작 묻은 건 사실이니까 ㅇㅇ

남일의 징역이 선고되면서 엘 엔터테인먼트 투자자들은 빠르게 남일을 버리고, 다른 전문 경영인을 내세웠다. 그러나 이 업계에 대해 잘 아는 인사가 아니었으므로 3차 마약 사건이 터지면서 엘 엔터테인먼트는 진정한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한때 아이돌 하면 떠올리던 기획사로서 그 결말이 좋지 않았다.

당연히 엘 엔터테인먼트에 있던 연습생들도 뛰쳐나와 마루 엔터테인먼트에서 한다는 오디션에 참가하게 되었다.

수한이 직접 참여를 한다는 소문이 돌았기에 대부분이 긴장하였다. 무조건 수한의 눈에만 띄면 어느 길이든 열린다는 게 세간에 널리 퍼진 소문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수한이 오디션 현장에 들어서게 되면서 그 긴장이 배가되었다.

“네. 좋습니다.”

수한은 앞에 있는 연습생을 보고 웃었지만, 실제로 평가는 좋지 않았다. 그나마 엘 엔터테인먼트 출신 연습생들이 능력이 좋기는 했다. 엘 엔터테인먼트에서 괜히 데리고 있던 게 아니었다. 하지만 능력만 좋았지, 특별히 눈에 들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수한이 그동안 봐 왔던 S급의 스타성을 가진 사람도 없고 말이다. 그러고 보면 S급 스타성을 가진 연예인이 수한의 앞에 왔던 것도 수한의 운이었다.

수한은 지루하게 오디션 현장을 보다가 한 지원서를 보고 멈추게 되었다.

‘이름이 이하나라고?’

수한은 동명이인이 아닐까 의심하면서도 안에 들어오는 참가자를 보자 멈칫하게 되었다. 수한이 아는 얼굴보다 더 어려졌지만, 수한이 아는 그 아이가 맞았다.

“노, 노래를 준비했습니다.”

긴장이 많이 되었는지 카메라에 붉은빛이 들어와 있자 지나치게 굳은 게 보였다. 그런데도 어려서 그런지 귀여웠다.

[이하나- 스타성: C, 연기력: C, 가창력: B, 춤: B, 인지도: F, 기타: A, 성장 가능성: 78%]

노래는 가창력 B에 맞게 나쁘지 않게 부르는 편이었다. 예전과 다를 것 없는 능력치였지만, 수한은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수한이 그토록 기다려 온 순간이었다. 이 순간을 위해서 스타성이 떨어지는 연예인들의 능력치도 어떻게 하면 높일 수 있는지 연구를 많이 했고, 실제로 성공도 하였다.

이전에 못 해 줬던 것을 비로소 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심사위원들은 이하나에게서 큰 가능성을 보지 못했기에 엑스를 치려다가 수한의 남다른 반응에 다시 한번 이하나를 보게 되었다.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으나, 그 가운데 있는 수한만 몰랐다.

수한은 오디션이 다 끝난 후 함께 심사를 본 관계자들에게 그동안 미루었던 계획을 말하였다.

“이 아이를 중심으로 여자 아이돌 그룹을 만들어야겠습니다.”

수한이 이하나의 지원서를 딱 짚어서 말하자 여자 아이돌 그룹을 만들 때가 됐다는 것을 이해한 관계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한이 이 아이를 고른 데에도 이유가 있겠지 싶어서 오히려 무슨 가능성을 보고 선택한 걸까 기대하게 되었다.

“이름은 스윗걸즈로 하겠습니다.”

남자 아이돌을 뛰어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자 아이돌 그룹의 이름이 탄생하는 순간이자 수한이 과거로 돌아와 가장 원하던 것을 시작하게 된 순간이었다.

완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