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탑스타-185화 (185/186)

185     12. 끝과 시작

눈앞이 깜깜하였다. 수한은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기계음에 정신이 어지러운 것을 느끼면서도 눈을 뜨기 위해 열심히 몸에 힘을 주었다. 그와 함께 밀려오는 고통은 수한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어 오히려 기뻤다.

‘사람이 참 웃기네.’

왜 이렇게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수한은 사랑보다는 일이 먼저라는 생각을 많이 한 사람이고, 실제로도 그리 행동한 사람이었다. 막상 이런 일을 겪고 나니 사랑을 먼저 해야 했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한 사람이 보고 싶고, 그리웠다.

그래서 수한은 그 보고 싶은 염원을 담아서 눈을 뜨려고 노력하였다. 그리고 덕분에 간신히 눈을 뜨게 되었다.

처음 눈을 떴을 때는 세상이 흐리게 보여 제대로 시야가 잡히지 않았다. 수한은 눈을 몇 번이나 깜빡이다가 뭉텅이로 보이는 여자의 형체에 눈에 힘을 주려고 하였다.

“대표님!”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듯한 목소리와 함께 병실 문이 열리면서 여자가 급하게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의사를 부르러 가는 것 같았다. 수한은 여자의 뒷모습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아서 소름이 돋았다.

‘이하나?’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면서 시야가 선명해졌다. 온몸이 고통스러운 것과 별개로 수한은 너무 놀라서 여자가 빨리 다시 돌아오기를 바랐다.

이하나. 스윗걸즈의 멤버이다. 수한이 기억하는 시간의 흐름이 맞는다면 이하나가 이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되었다. 수한이 겪은 시간대에 따르면 이하나는 지금쯤 초등학교에 입학했어야 한다. 그리 생각하자 소름이 돋았다.

수한은 고개를 돌려 병실을 살폈다. 병실은 1인 병실이었다. 꽤 좋은 곳을 빌린 것 같아서 살짝 안심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불안하였다. 달려간 여자가 이하나가 맞는다면 이제까지 수한이 이룬 모든 것이 허상으로 날아간다.

애당초 시간을 거슬러서 과거로 돌아간다는 게 말이 안 되었지만, 수한은 그 모든 게 현실이라고 믿고 싶었다.

수한은 얼마 안 가서 달려오는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에 정신이 없어지면서도 눈으로는 필사적으로 여자를 찾았다.

“정신을 차렸으니 곧 회복할 겁니다.”

긍정적으로 말하는 의사의 말에 수한은 집중하지 못하다가 겨우 삐져나온 여자에 크게 안도하였다.

“대표님. 저 알아보시겠어요?”

[한소원- 스타성: S, 연기력: E, 가창력: A, 춤: A, 인지도: S, 기타: S, 성장 가능성: 35%]

언제 스타일을 바꾼 건지 모르겠다. 더불어 가창력과 춤 실력도 늘어서 놀랐다. 수한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말하고 싶었지만, 꽤 오래 누워 있었는지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 고개를 작게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소원 씨가 왜 여기에 있을까?’

그래도 감사하였다. 수한이 옅게 미소를 짓자 소원이 울먹였다. 꽤 걱정을 많이 했는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려서 수한이 다 미안하였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몸을 일으키고 싶었지만, 몸에 힘이 안 들어갔다. 깨어난 지 얼마 안 되어서 근육이 움직이질 못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한 사정을 듣고 싶었지만, 수한은 얼마 안 가서 활짝 열린 병실 문에 그 질문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일어난 거야?”

왜인지 소원보다 더 먼저 눈물이 터진 것 같은 얼굴로 예진이 나타났다. 수한이 예진을 향해 미소를 짓기가 무섭게 예진이 갑작스레 끌어안아 그에 따른 고통이 찾아왔다. 아파서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동시에 마음 한편이 차오르는 느낌에 수한은 울컥하게 되었다.

“이렇게 일어날 줄 알았으면 계속 지키고 있을걸.”

울먹이는 목소리와 함께 환자복이 눈물로 젖어 가는 게 느껴졌다. 자세히 예진의 복장을 살피니 꽤 편한 복장이었다. 소원의 옆에 있는 의자를 보니 담요 하나가 위에 놓여 있었다. 옆에는 커다란 쇼핑백 하나가 놓여 있는데 옷가지들이 보였다. 수한을 꽤 오래 옆에서 보살핀 것 같다.

그 생각을 하자 감동이 밀려 들어왔다. 예진이 수한을 다르게 보고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 사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느낌이었다.

“의사 선생님 말씀이 깨어났으니 빠르게 회복할 거래요.”

소원의 말을 듣고 나서야 예진이 수한에게서 떨어졌다. 얼마나 많이 운 건지 눈이 퉁퉁 부었지만, 그 얼굴도 수한의 눈에는 귀여워 보였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안 그래도 말랐던 사람이 더 살이 빠져서 걱정도 되었다.

수한이 이제 더는 걱정하지 말라고 예진을 향해 웃자 예진이 수한의 눈가에 손을 대었다. 무엇인가 했더니 어느새 수한도 울고 있었다.

“일단 회복하기만 해. 옆에서 열심히 도와줄 테니까.”

수한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

“그러니까 서남일 대표가 사람을 사주하여 교통사고를 내었다는 거죠?”

“응. 이미 증거도 다 확보해서 구속된 상태야.”

의사의 말대로 몸은 빠르게 회복하였다. 수한은 병실에서 보고를 받게 되었다. 장준환과 통화하던 중에 일어난 교통사고인지라 상황 파악을 빠르게 마친 장준환이 직접 일을 처리했다고 한다.

증거인멸을 시도한 그 현장 자체를 덮쳐서 잡아 왔다고 하는데 듣기만 해도 얼마나 긴장감이 넘치는 현장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수한은 옆에서 어색하게 웃는 명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옆에 탔던 명훈도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수한이 일어나지 못해서 난리였다.

“대표님. 사과 드실래요?”

잘 깎아 놓은 사과 하나를 포크로 찍어서 수한에게 넘겨주는 모습에 수한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역시 간신 기질은 어디 가지를 않았다. 그래도 주는 사과는 맛있어서 수한이 웃자 명훈도 따라 웃다가 곧 다른 곳을 보게 되었다. 누군가를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진 씨는 여기에 계속 있어도 되는 겁니까?”

“작품 없으니까 괜찮아.”

수한은 유지영이 한숨을 쉬고 있을 것 같아서 괜히 웃게 되었다. 영화를 찍은 것 말고도 홍보 일정이 있을 텐데 그걸 싹 무시했을 게 뻔하니 말이다.

수한의 교통사고 이후로 예진은 쭉 수한의 병실에서 살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몇몇만 예진의 감정을 알았는데 그 행보 덕분에 예진이 수한을 짝사랑한다는 사실이 모두에게 알려지고 말았다.

물론 그에 관해서 예진은 당당하게 그렇다고 말하였다. 자신이 왜 기죽어야 하냐는 게 예진의 태도였다.

‘성격 하나는 진짜 대단하단 말이야.’

재미있는 건 수한은 그 당당한 성격이 좋다는 거였다. 속으로 삭이는 것보다 저게 나았다. 음흉한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아 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수한은 솔직한 사람을 좋아했다.

“너랑 아주 잘 어울린다.”

마루 엔터테인먼트 돌아가는 사정에 대해 말해 주려고 온 성민이 그 말을 하자 예진의 얼굴이 붉어졌다. 수한은 그저 웃기만 할 뿐 그에 관한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제가 검토할 게 저것들이라는 거죠?”

가온 엔터테인먼트에서 넘어온 연예인 대다수가 배우이다 보니 수한이 직접 대본을 보고 판단하는 게 맞겠다는 결론을 내려 가져온 대본이었다.

다행히 교통사고와 별개로 능력치를 볼 수 있는 눈은 여전해서 수한은 대본을 보면서 능력치에 따라 대본을 골라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배우들의 작품 보는 눈이 아주 낮다는 거였다.

‘도전정신으로 가는 드라마도 있긴 하지만…….’

작품성이 있으면서도 화제성과 시청률도 모두 잡는 드라마가 존재하기에 수한은 대부분을 걸러내었다. 그중에는 성민이 이건 된다 싶었던 작품도 있어서 실망하는 성민의 얼굴이 보였다.

“이거 안 될 것 같아?”

“네. 아무래도 무리예요.”

수한이 그렇다는데 성민이 고집을 부릴 수는 없었다. 수한은 성민의 이런 점을 좋아했다. 사실 수한의 교통사고로 다른 생각을 마음에 품은 사람이 없을까, 의심도 하였는데 그 의심이 무색하게 성민의 통제 아래 마루 엔터테인먼트는 잘 운영되었다.

인복이 있다는 걸 수한은 이런 데서 느끼게 되었다. 명훈이었다면 분명 마루 엔터테인먼트를 삼켰을 거라 확신하였다.

“곧 부대표 자리를 만들어야겠네요.”

그를 바라고 열심히 일했던 건 아닌지 성민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어차피 가온과 합병하면서 회사의 규모가 커졌으니 수한이 관리해야 할 인구가 더 늘었다. 정말 무능력했던 사람 말고는 다 데려온 거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수한은 대놓고 부럽다는 표정을 짓는 명훈을 뒤로하고, 탈락한 대본을 다시 한번 잘 보여 준 뒤 배우들에게 잘 말해 주라고 하였다.

“대표님 말씀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지요. 최명훈. 가자.”

“네? 저는 여기 더 있고 싶은…….”

명훈은 말을 하다가 예진과 눈이 마주치고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는 걸 택했다. 같은 환자복을 입었는데도 자유롭게 움직이는 걸 보면 명훈이 수한보다 덜 다친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수한이 어서 가라고 손을 흔들자 예진을 제외하고 모두가 나갔다. 사람들을 쫓아낸 건 예진인데 막상 수한과 둘이 남게 되자 어색하게 예진이 시선을 돌리는 게 보였다. 수한은 그런 예진이 귀여워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퇴원하고 하루 정도는 자유롭게 시간을 가지려고 하는데 뭐 하고 싶은 거 있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할 줄 알았는데 예진은 살짝 놀라는 반응만 보이더니 얼마 안 가서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연예인이 직업이다 보니 어딜 가기에는 모호하긴 했다. 그래서인지 예진이 더 신중하게 고민하는 것 같아서 수한은 살짝 안타깝기도 했다.

“제가 부자라면 놀이공원이라도 빌려서 데이트라도 할 텐데요.”

“뭐? 데이트?”

무언가 잘못 들었다는 듯이 놀란 반응을 보여서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수한은 확실히 말하기로 하였다.

“네. 데이트. 고백하기 좋은 장소가 아닙니까?”

안 그래도 큰 예진의 눈이 더 커다래졌다. 수한은 조용히 볼을 꼬집으며 꿈인가 확인하는 예진이 귀여워서 잠시 미룰까 하다가 결국 말하기로 하였다.

원래 계획은 이게 아니었는데 죽을 뻔하고 나니 조급한 마음이 들어 최대한 빨리 말하고 싶었다.

“좋아합니다. 예진 씨. 앞으로도 제 옆에 계속 함께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열심히 생각하고 말한 건데 실제로 나온 목소리는 상당히 떨렸다. 수한이 겪은 그 어느 순간보다도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예진이 수한을 좋아하는 건 알고 있지만, 언제 또 어떻게 마음이 바뀔지 모르는 게 사람의 마음이니 말이다.

수한은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열이 차오른 기분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후회하지는 않았다.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상태로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데 그 모습이 세상 예쁘게 보였다. 물론 수한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느라 살이 빠진 걸 생각하면 속상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있을 수 없었다.

수한은 안겨 오는 예진을 그대로 끌어안고는 미소를 지었다. 행복감이 밀려 들어왔다.

“그래서 대답은 안 하십니까?”

“그 데이트 해 보고 대답해 줄게. 그러니까 빨리 낫기나 해.”

그러면서 왜 허리춤은 꽉 잡는 건지 수한은 은근히 귀여운 행동에 웃음을 지었다. 물론 예진의 눈물을 닦아 주는 건 덤이었다.

한창 수한의 품에 안겨 있던 예진은 스스로 모순을 느꼈는지 어색하게 헛기침을 한 뒤 음료를 사 오겠다는 핑계로 병실에서 나갔다. 귀가 새빨개져서는 아닌 척하는 것이 역시 사랑스러웠다.

수한은 이제 다시 일해야 하나 핸드폰을 봤다가 인상을 찌푸리게 되었다.

[그래서 예진이랑 좋은 시간 보내고 있냐?]

[그럼 예진 씨한테 형수님이라고 해야 하나요?]

첫 번째는 성민이 보낸 메시지였고, 두 번째는 명훈이 보낸 메시지였다. 수한은 명훈의 간신배다운 모습에 혀를 찼다. 제수씨도 아니고, 형수님이란다. 이상하게 기분은 나쁘지 않아서 수한은 왜 왕들이 간신배를 좋아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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