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탑스타-180화 (180/186)

180   12. 끝과 시작

명훈은 눈치 없는 것처럼 굴고 있어도 사실은 눈치가 제법 빠른 사람이었다. 그러니 남일에게 입안의 혀처럼 구는 거였다.

요즘 명훈은 가온 엔터테인먼트의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걸 느끼는 중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했던 남일의 안색이 급속도로 안 좋아졌다.

‘무슨 일이지?’

많은 걸 알 수는 없어도 남일의 최근 행보는 알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도 남일이 엘 엔터테인먼트의 대주주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명훈은 그래서 남일의 기분이 좋은가 했다. 그 연장선으로 잘하면 명훈도 한자리 차지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요즘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있던 상태였는데 남일이 달라진 모습을 보이니 불안해졌다.

‘일이 잘 안 풀리나?’

이재성 PD의 새로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합류한 게 여전히 좋게 풀리고 있어서 기분이 좋았으나, 남일의 불안한 모습에 그를 티 내고 싶어도 티 낼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 그렇다고 남일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기에는 남일은 전혀 말하고 싶어 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이거 잘못하다가 불똥만 튀기겠는데.’

차라리 현장에 나가는 게 낫겠다 싶어 잠시 사무실에 들렀다가 나가려는데 마침 사무실로 돌아오는 재원이 보였다.

처음 가온 엔터테인먼트로 돌아왔을 때의 재원은 명훈을 극도로 경계했지만, 어느 날부터 편하게 명훈을 대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명훈도 재원에게 치대서 제법 친해진 상태였다.

‘애초에 김수한만 아니었어도 사무실 사람들이랑 딱히 얼굴 붉힐 일도 없었단 말이야.’

아니다. 재원과는 있기는 했다. 예진의 일로 말이다. 지금 그 일을 생각하면 흑역사였다. 그때 대체 왜 그렇게 했는지 명훈조차 이해가 안 될 지경이었다.

“요즘 사무실 분위기가 왜 이래?”

남일의 분위기가 안 좋으니 그 분위기가 회사 전체로 번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재원은 나간 사람들과도 잘 지냈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과도 잘 지내서 다들 편하게 재원을 봤다. 하나같이 영문을 알 수 없다는 얼굴이라 재원이 명훈을 보니 명훈도 몰라서 고개를 저었다.

“그럼 잠깐만 있어 봐. 내가 알아볼게.”

성민이 나간 이후로 일부러라도 다른 부서 사람들과 나쁘지 않게 지내기에 연락하니 금세 답을 얻어내었다. 그러니까 이건 재원에게 있어서도 확실히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세무 조사가 들어올지도 모르겠다는데?”

“네? 갑자기 왜요?”

세무 조사를 제대로 하면 어디 하나 먼지 한 톨 안 나올 곳이 없기에 하나같이 걱정하게 되었다. 특히나 이 중에는 남일이 연예인을 감시하기 위해 심어 둔 첩자 같은 존재들도 있기에 남일이 더러운 일에 손을 안 댔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내가 자세히 알아볼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재원의 경우 다른 기획사로 이직을 하면 그만이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를 수 있기에 재원은 우선 안심시키는 쪽으로 움직였다. 원래 이런 일은 실장이 해야 하지만, 그조차도 남일이 떨어뜨린 낙하산이니 제 할 일을 제대로 못 했다.

남일이 달리 성민에게 미련을 가지는 게 아니었다. 낙하산 중에서도 능력이 있는 낙하산이 있고, 없는 낙하산이 있다. 당연히 성민은 전자였다. 스스로 남일에게 폐 끼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재원에게도 이 사무실은 어서 탈출하고 싶은 직장이었다. 재원은 이 일을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나 고민하다가 성민에게 연락해 보기로 했다.

[뭐? 세무 조사?]

성민도 이 일을 처음 듣는 것이 매한가지이기에 놀란 목소리를 냈다. 덕분에 재원은 전화할 상대를 잘못 골랐구나 싶어서 다음에 다시 전화한다고 말한 뒤, 이번에는 수한에게 연락했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지.’

재원이 수한을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건 순전히 예진 때문이다. 물론 수한은 재원이 보기에도 좋은 남자이긴 했다. 같은 남자가 봐도 좋은 녀석이니 말이다. 하지만 역시 예진을 아끼는 마음이 더 컸기에 예진이 속앓이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다른 여자를 만나지 않는 건데.’

수한이 예진을 가지고 노는 거면 나쁜 놈이라고 멱살이라도 잡을 텐데 둘이 있으면 분위기가 묘해서 더 모호했다. 재원은 얼마 안 가서 전화를 받는 수한에 용건부터 말했다.

[그 문제라면 알고 있기는 한데 혹시 다른 사람에게 공유할 생각입니까?]

“아니, 뭐…….”

재원이 뭐라고 말을 끝내지 못하자 핸드폰 너머로 웃는 소리가 들리더니 괜찮다는 듯이 수한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들려주었다.

[서 대표님과 엘 엔터테인먼트의 나이수 회장님 사이가 안 좋아진 모양이에요. 최근 서 대표님의 행보에 대한 보복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강우형의 죽음 이후로 남일과 나이수의 사이가 좋아진 거로 알고 있었기에 재원은 깜짝 놀랐다. 게다가 보복이라니?

‘언제 그 정도로 사이가 나빠진 거야?’

언제 그렇게 상황이 돌아갔는지 이해가 안 되지만, 수한이 하는 말이니 신뢰도가 높았다. 재원은 무슨 일이냐고 보는 사람들에게 뭐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몰라 망설여졌다.

‘애초에 상황 파악 자체가 안 되는데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하는 거야?’

재원이 난감하다는 듯이 보고 있자 명훈이 빠르게 눈짓을 보냈다. 명훈이 알고 있는 것과 합쳐져야 답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에 재원은 일단 명훈과 둘이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나이수 회장이 보복하는 거라고요?”

“그래. 그보다 대표님이 엘 엔터테인먼트의 대주주라고? 그게 어떻게 가능해?”

뒤로 꿰차고 있던 돈이 그렇게나 많았던 건가 싶어서 재원은 소름이 돋았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나이수가 달리 세무 조사로 공격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괜찮겠죠?”

“글쎄. 그거야 모르지.”

재원은 불안해하는 명훈의 표정에 괜찮다는 듯이 어깨를 두드려 주었지만, 안심을 줄 수는 없었다. 명훈이 어떻게 이 회사로 돌아왔는지 알기 때문에 안쓰러운 마음이 있긴 하지만, 수한과는 좋은 일로 얽히지 않았기에 무턱대고 마루 엔터테인먼트로 데려갈 수는 없었다.

‘승택이까지는 수한이가 직접 제안했지만.’

다시 주혁을 맡아 줄 수 있겠냐는 수한의 제안을 김승택은 받아들였다. 더불어 지훈과도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더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재원이 넘어갈 때 함께 넘어가겠다고 말을 하여 재원도 나름대로 나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게. 잘 좀 하지 그랬냐.’

차라리 아부를 안 떠는 인사였으면 수한과도 그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어쨌거나, 재원이 명훈에게 할 수 있는 건 위로하는 것뿐이라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당장만 해도 예진을 챙기기에 바쁘니 말이다.

‘새 영화에 들어간다고 민감해져서.’

“마음의 준비를 해 두라고 이야기해야겠네요.”

의기소침해진 명훈을 보며 재원은 동의했다. 그래도 매니저 일은 인력이 많이 필요한 부분이라 이직을 하려고 마음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 오죽하면 새 매니저를 뽑을 때 학벌을 안 보고 뽑을까?

“너는 어떻게 하게?”

“일단 키워 둔 연예인이 있으니 다시 독립하죠. 뭐.”

명훈은 남일이 누군가를 믿고 그리 행동한 것을 눈치채긴 했지만, 이상하게 느낌이 안 좋아 재원에게 말한 대로 마음의 준비를 하기로 했다.

***

“네. 이야기 들었습니다.”

수한은 장준환이 따라 주는 술을 마시며 차분하게 머릿속을 정리했다. 수한의 계획이긴 했지만, 제대로 붙는 두 사람의 모습에 수한은 크게 감탄했다. 이렇게 생각대로 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건 김 대표가 가지겠다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수한이 장준환에게서 사기로 한 건 가온 엔터테인먼트의 주식이었다. 남일이 장준환에게 넘긴 것을 수한이 받았다.

“그래서 가온 엔터테인먼트도 가질 생각인가요?”

“네. 그래야죠.”

“그러면 세무 조사를 막아야겠군요.”

겉으로 보기에는 남일을 도와주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결국은 수한을 도와주는 거였다. 수한이 그리해 주면 고맙다는 인사를 하자 장준환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웃었다.

“우리의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양쪽에서 김 대표를 가만 놔두지 않을 텐데요.”

“저도 조심해야겠죠.”

강우형에게 한 일을 수한에게 못 할 리가 없으므로 수한 또한 경계하기로 했다. 어떻게 보면 수한에게 굉장히 위험한 일이지만, 수한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위험을 감수한 만큼 장준환에게서 받은 돈에 대한 빚도 갚을 수 있으니 말이다.

오히려 장준환에게 빚을 지게 하여 그전에 진 빚을 갚으려는 게 수한의 계획이었다. 강우형의 말대로 장준환에게 끌려다닐 생각은 없었다. 그것을 장준환도 알기에 수한이 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미 엘 엔터테인먼트의 일만 해도 손해를 감수하고 시작한 일인데 수한 덕분에 크게 이득을 봤으니 말이다. 오히려 장준환은 끝까지 수한이 계획한 대로 될지 궁금해했다.

***

최민희 작가의 드라마가 무사히 종영되었다. 시청률은 25%를 찍었으나, 그에 대한 말은 오히려 많이 나오는 상태였다. 원작자가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표절이 맞는다는 확신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졌다. 특히나 결말까지 비슷하니 말이 안 나오는 게 이상했다.

“그 문제는 이미 다른 친구한테 맡겼어요. 뭐 표절 하나 가지고 난리입니까. 그보다 우리가 함께 만든 회사가 아닙니까. 젊은 친구에게 휘둘려서는 무슨 미래가 있겠습니까?”

나이수는 예상한 것보다 더 거친 반응들에 놀란 상태였다. 수한이 생각한 것보다 일을 잘 못 했다. 작정하고 배신을 하겠다는 건지, 아니면 이런 쪽으로는 정공법만 고수하여 일을 못 하는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그래서 나이수는 두 배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아무래도 원작자가 소송까지 갈 모양입니다.”

“하라면 하라지.”

판사가 배정되면 그 판사에게 돈을 쓰면 그만이다. 수한이 일을 잘 못 한다고 해도 최후에는 그런 방법이 있으니 나이수는 그에 관해서는 이제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세무 조사를 하겠다고 확답을 주었던 쪽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곤혹이었다.

“장준환이 나선 것 같습니다.”

“그 인간은 돈을 얼마나 뿌려 댄 거야.”

돈 싸움을 하면 절대로 지지 않을 거라 자신했는데 장준환에게서 턱 막혀 버렸다. 결국은 장준환이라는 벽을 넘어야 남일을 내려 앉힐 수 있다는 건데 이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하는데 그 순간, 나이수의 비서가 실마리를 던져 주었다.

“예전에 서 대표와 관련된 소문이 있지 않습니까?”

“응?”

그러고 보니 가온 엔터테인먼트가 성장하는 데 누군가의 죽음이 크게 작용했다고 들었던 것 같기도 했다.

“공소 시효로 따지면 이미 지난 일이긴 한데…….”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어차피 일이 이렇게 된 거 더럽게 가기로 했다. 물론 강우형의 건에 대해서 나이수도 자유롭지 못했지만, 그건 남일도 마찬가지이므로 아주 더러운 싸움을 하기로 했다. 여론전을 한다면 여기서도 여론전으로 맞서면 그만이다.

그때 무슨 보고를 받은 건지 바깥에 있던 비서 하나가 급하게 안으로 들어왔다.

“회장님. 신경 쓰실 일이 또 생겼습니다.”

“또 뭔데?”

“이건 저희도 파악하지 못한 건데 또 마약 사건이 터졌습니다.”

“뭐?”

나이수가 당황하여 기사를 보자 엘 엔터테인먼트 아이돌이 또 마약 사건에 얽히게 되었다. 이번에는 같은 아이돌 그룹의 다른 멤버가 걸려 나이수는 뒷목이 당겨 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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