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탑스타-178화 (178/186)

178    12. 끝과 시작

무슨 문제로 사고를 쳤나 했더니 처음 표절 문제를 제기한 사람을 찾아내 고소했다고 한다. 수한은 생각한 것보다 더 화끈하게 움직인 나이수의 행동력에 놀랐다. 수한은 우선 예정대로 최민희 작가를 만나기로 했다.

‘역시 사람은 바뀌지 않는구나.’

처음 봤을 때의 모습으로 최민희 작가는 카페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중이었다. 얼마 안 가서 수한을 발견한 최민희 작가는 당당하게 그를 보며 말했다.

“저 이번에는 정말 아니에요.”

“정말 아닙니까?”

“제가 미쳤다고 한번 한 걸 또 하겠어요?”

수한은 절대 아니라면서 오히려 부담스럽게 수한과 시선을 맞추는 최민희 작가를 자세히 살폈다. 눈동자는 확신을 주려고 했지만, 부자연스럽게 손은 움직이는 중이었다. 이것으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겠지만, 수한은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거짓말이다.

“엘 엔터테인먼트에서 표절 의혹을 제기한 사람을 고소했다고 합니다. 이에 관해 알고 계십니까?”

“네. 알고 있어요. 저한테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묻더라고요.”

수한은 그를 통해 나이수 또한 최민희 작가를 떠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고소 결정은 최민희 작가의 뜻이기도 하다는 거다. 수한은 나이수가 최민희 작가를 믿는지 아닌지는 이제 상관이 없어졌다.

‘이런 건 신중하게 할 줄 알았는데.’

장준환이 얼마나 나이수의 목을 제대로 조이고 있으면 이렇게 조급하게 움직일까 싶었다. 수한은 자신에게도 묻지 않고 움직인 나이수의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의도치 않게 수한이 빠져나갈 틈을 주었으니 말이다.

“정말로 작가님께서 표절한 게 아니라면 그전부터 생각해 둔 거라는 증거가 있어야겠군요.”

수한은 찰나에 굳어진 표정에 미소를 지었다. 사람의 얼굴은 내면의 거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수한은 그 내면을 잘 보았다.

“혹시 웹툰 시기보다 늦은 편입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요.”

“그럼 우리가 표절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내놓을 수가 없다는 말이군요.”

“하지만 결단코! 저는 표절하지 않았어요.”

“네. 알겠습니다.”

수한이 믿는다는 듯이 최민희 작가를 보자 그제야 안심하는 얼굴이었다. 수한이 넘어가 주었으니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로 넘어가 줄 거라는 오만함에서 나온 안도였다.

‘하지만 어림도 없지.’

수한은 곧장 웹툰 회사로 찾아가 대표를 만날 생각이었다. 수한이 그러면 조심히 들어가 보라고 인사를 건네자 최민희 작가는 마지막으로 믿어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테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아! 네.”

끝까지 당당한 모습에 수한은 그 말을 끝으로 차에 올라타 곧장 웹툰 회사로 갔다. 소규모 자본으로 운영하는지 웹툰 회사 자체는 그리 크지 않았다. 작은 사무실에서 운영되었다.

“안녕하세요. 마루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김수한입니다.”

“아! 네.”

미리 전화를 주고 왔기에 수한이 무슨 일로 들른 건지 이해해 관계자는 살짝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수한은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제안서 하나를 내놓았다. 그 제안서를 본 관계자는 자기가 말할 선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는 곧 나가서 회사의 대표를 불러왔다.

“안녕하세요. 김은철이라 합니다. 잠깐 전해 들었는데 우리 회사 웹툰 중에 드라마화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19세 이상 웹툰으로 유명한 사이트이기에 이런 제안이 쉽게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래서 은철은 매우 놀란 상태였다.

은철은 제안서를 쭉 훑어보고는 수한이 데려가려는 웹툰이 사이트 안에서도 잘나가지 않는 웹툰이라는 걸 깨닫고 다시 한번 놀랐다.

“이 웹툰을 드라마화하겠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왜 이런 작품을 드라마화하겠다는 건지 전혀 몰라 하는 얼굴이라 수한은 그저 웃었다. 어쨌거나 드라마화가 된다면 이 웹툰 사이트가 홍보가 저절로 되는 거니 좋은 일이긴 했다. 하지만 그전에 은철은 궁금한 게 있었다.

“근데 표절 이야기하러 오신 거 아니었어요?”

“네. 맞습니다. 그러니 이건 어떻게 보면 거래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수한의 말에 은철의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그러니까 드라마화를 시켜 줄 테니 표절에 관해서 입을 다물라는 말이 아닌가? 이래도 되나 싶어서 수한을 보니 수한은 고개를 저으며 다른 이야기를 했다.

“저는 표절을 묻어 달라고 온 게 아닙니다. 명확하게 알아보자는 차원으로 온 겁니다. 표절 문제와 연관이 된 웹툰은 유료 웹툰이 아닙니까? 결제 내용을 살피면 그 문제는 쉽게 판별할 수 있겠죠.”

“아…….”

어떻게 보면 간단한 일이었다. 최민희 작가가 그 작품을 본 흔적이 있는지 없는지만 확인하면 되는 일이니 말이다. 잠시만 기다려 보라는 말에 수한은 여유 있게 기다리기로 했다.

‘물론 다른 사람의 명의로 봤으면 일이 조금 복잡해지는데…….’

수한은 그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나 짧게 고민하다가 얼마 안 가서 결과를 알려 오는 은철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있네요. 결제한 사람 중에 최민희라는 사람이.”

생각보다 최민희 작가가 멍청한 사람이라 다행이었다. 아이디도 확인하니 평소 최민희 작가가 사용하는 계정이었다. 설마 안 들킬 줄 알았나? 그렇다면 어리석었다고밖에 말할 게 없었다. 결제 날짜까지 확인하니 집필 시기보다 앞이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

“당연히 보상을 받으셔야죠. 물론 드라마화 자체도 보상 중 하나겠지만, 그 전에 작가님도 보상을 받아야 하니까요.”

수한의 당연하다는 말에 은철은 의아해하면서도 수한이 참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수한 한 사람으로 그런 게 가능할까 걱정도 되었다. 엘 엔터테인먼트에서 취한 행동 때문이었다.

“만약 제작사에서 그렇게 안 나오면 제가 도움을 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수한의 믿음직한 말에 은철은 우선 수한을 믿어 보기로 했다. 정 안 되면 법적으로 해결 보면 될 테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그 문제는 대표님을 우선 믿겠습니다. 그러면 드라마화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요?”

수한은 미소를 지으며 대충 그의 계획을 설명했다.

“좋네요. 작가님에게도 따로 전달하겠습니다.”

“네. 그러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게 힘써 보겠습니다. 부디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

나이수는 조용히 수한의 움직임을 보고 받았다. 나이수가 아무 행동을 하지 않았을 때만 해도 잠잠하게 있더니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이 너무 수상해서 나이수도 의문이 들던 차였다.

“저 회장님. 저희가 실수한 것 같습니다.”

“실수? 무슨 실수?”

나이수의 말에 비서가 사람들의 반응을 보여 주니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표절 의혹이 있으면 깨끗하게 밝히면 될 걸 왜 고소를 하냐는 것이다. 오히려 고소하니 더 수상하게 여겨진다면서 더 비교해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게 대세 여론이 되었다.

“요즘 애들은 겁대가리가 없나?”

“아무래도 저번에 터진 마약 사건이 반발심을 일으키는 데 도움을 준 것 같습니다.”

나이수는 마음 같아서는 이들도 다 같이 고소해서 넣고 싶었다. 물론 고소한다고 해서 다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공포감은 심어 줄 필요가 있었다.

“고소한다고 협박하면 오히려 더 반항이 심할 것 같습니다.”

“그래 봤자 집에서 키보드나 두드리는 것들이.”

나이수는 인상을 구기면서 그 여론을 무시하기로 했다. 그보다 수한의 행보가 궁금했다. 느낌이 이상하게 싸하다. 최민희 작가를 만난 뒤 곧장 웹툰 회사에 갔다고 하니 이상하지 않은가?

“그 웹툰 회사에는 무슨 일로 간 건지 아나?”

“드라마를 제안했다고 합니다. 드라마화할 만한 좋은 작품이 있나 봅니다.”

나이수는 순간 웃음이 나왔다. 다른 건 몰라도 이쪽으로는 머리가 잘 돌아가는 그다. 수한이 고작 그 이유로 직접 찾아갈 리가 없었다. 표절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찾아간 게 틀림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조용하다고?’

최민희 작가와 직접 통화를 해 보니 나이수는 알 수밖에 없었다. 무조건 표절이었다. 그 사실을 수한이 모를 리가 없었다. 아무리 감이 떨어진 나이수여도 배신의 싹은 알아보는 법이다. 수한이 배신을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자 나이수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무엇을 위한 배신이지?’

나이수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아무 연락도 받고 싶지 않았지만, 나이수에게 있어 평소 정보를 물어다 주는 사람이 전화한 거라 전화를 안 받을 수 없었다.

“여보세요? 나이수입니다.”

[서남일 대표에 대한 소식 들었나 해서 전화했습니다.]

“서남일이요?”

너무 뜬금없는 이름이라 나이수는 그 인사가 이 화제에 왜 나왔는지 이해가 잘 안 되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려는데 마음은 상대가 더 급했는지 먼저 말이 나왔다.

[요새 엘 엔터테인먼트 주식을 누군가가 사들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죠.”

나이수가 장준환 하면 치가 떨리는 게 그 이유였다. 최근 들어 주식을 매입하는 속도가 줄어들었지만, 마약 사건이 터졌을 때 나오는 족족 사들여서 문제였다. 주주들 몇 명만 포섭하면 엘 엔터테인먼트를 순식간에 꿀꺽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 주식을 사들인 사람이 다름이 아니라 서남일 대표라고 하더군요.]

“네? 뭐라고요?”

나이수는 잠시 머리가 하얘졌다가 노래졌다가를 반복했다. 그리고 곧 정신을 차렸다. 그러니까 그 말은 이제까지 주식을 사 온 게 장준환이 아니라 서남일이란 소리가 아닌가?

‘아니지. 이건 다른 의미로 보면 서남일이 장준환에게 붙었다는 이야기지.’

남일에게 그만한 자본금이 있을 리가 없으니 말이다. 강우형을 계기로 엘 엔터테인먼트에 붙었으나, 생각보다 얻어먹을 게 없어서 장준환에게 붙은 게 틀림이 없었다.

[회장님. 괜찮습니까?]

“그, 그럼요.”

나이수는 순간적으로 혈압이 올라 뒷골이 당겼지만, 이럴 때를 대비해서 준비한 약을 먹고는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서남일 네가 이러면 안 되지.’

장준환이 직접 나서기 싫으니 남일을 앞세우는 게 틀림이 없었다. 그걸 옳다구나 잡은 남일의 모습에 나이수는 주먹을 꽉 쥐었다. 강우형에 있어서 남일도 자유로울 수 없건만 당당하게 구는 모습이 역겨웠다.

‘일단 하나를 먼저 정리해야 해.’

수한과 남일, 둘 중에 한 사람을 정리하라고 하면 당연히 나이수의 선택은 남일이었다. 물론 난도는 수한이 더 쉬운 편이지만, 그래서 남일이었다. 장준환에게도 어느 정도 자신의 힘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

‘김수한은 일단 보자고.’

수한과는 따로 대화가 필요했다. 배신의 냄새를 맡았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수한을 그냥 잘라 버릴 수는 없었다. 일단은 남일을 정리한 뒤에 수한을 정리해도 늦지 않았다. 정말 나이수가 착각해서 수한이 배신했다고 여기는 걸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동안 수한이 보여 준 강직함이 배신의 싹을 보고도 못 본 척하게 하는 모순적인 믿음을 주었다.

“아무튼,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일은 나중에 꼭 보답하겠습니다.”

[네. 그럼 일이 잘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나이수는 조용히 숨을 고르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남일에게 관심을 안 준 지 꽤 오래되었기에 가온 엔터테인먼트에서 요즘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나이수는 곧장 가온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모든 것을 들고 오라고 비서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서남일도 깨끗한 사람은 아니니 약점이 있겠지.’

가온이 중소 기획사라고 해도 이 정도로 오래 살아남았으면 축적되어 있는 게 틀림없이 있다. 나이수는 그 축적된 것을 이참에 모조리 털어 버리기로 했다. 나이수는 경쟁자에게도 가차 없지만, 배신자에게는 더욱더 가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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